진짜 음악을 사랑한다면…우리 집으로 오세요(한겨레 2007.10.22) | |
하우스콘서트 여는 피아니스트 박창수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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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무대에 바닥객석…연주자 표정·숨소리·땀방울까지 생생히
음악시장 상업화 맞서 장르 구분없이 5년3개월째 ‘행복한 소통’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박창수(44)씨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하우스콘서트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다. 2002년 시작된 그의 콘서트는 5년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1천만원 가까이 손해를 보지만 그는 “이름난 연주가를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진짜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과 이들 앞에서 연주한 뒤 행복해하는 음악가 사이의 소통을 보면서 느끼는 보람”을 이 콘서트의 지속 이유로 꼽았다. 17일, 박씨의 집 2층이 작은 무대로 변신하는 날이다. 시곗바늘이 저녁 8시에 다가가자 관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창문을 닫고 조명이 켜지면 평범한 가정집 2층 거실은 멋진 무대로 거듭난다. 167회째 콘서트의 연주자는 김영기(바이올린), 강주이(비올라), 김우진(첼로)씨. 김우진씨가 베토벤과 도흐나니의 현악 3중주곡을 짧게 소개한 뒤 연주가 시작됐다. 객석에는 의자가 없다.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음악은 귀만이 아니라 몸으로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관객들은 연주자의 표정과 숨소리,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까지 감상하며 음악에 빠져 들었다. 앙코르곡 연주가 끝난 뒤 한 관객이 세 악기의 서로 다른 음색을 느끼고 싶다고 하자 이들은 최희준씨의 가요 ‘하숙생’을 돌아가면서 멋들어지게 연주했다. 한 달에 두 번 이곳을 찾는다는 이충진 한성대 철학과 교수는 “대형 콘서트홀에서 앰프를 통해 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김영기씨는 “작은 공간이라 소리를 크게 내려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었다”며 “관객들 수준이 높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음악을 잘 알고 이해하는 분들이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연주자들과 관객들의 ‘소통’은 공연 뒤 포도주를 마시며 1시간 넘게 이어졌다.
박씨가 하우스콘서트를 기획한 것은 1981년 서울예고 1학년 때다. “친구들과 집에서 연습할 기회가 가끔 있었는데 집과 콘서트장에서 하는 연주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꼭 공연장이 아니라 집에서도 콘서트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구상이 하우스콘서트로 불린다는 것은 대학 때 음악사를 배우며 알았다. 생각할수록 매력적이었다. 그의 눈에 하우스콘서트는 갈수록 연예인화되고 있는 음악계에 예술 정신을 불어넣을 수 있는 좋은 도구로 보였다. “음악인들 눈에 명성과 실력이 일치하지 않는 연주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이름난 연주가만 쫓아다닙니다. 연주자도 명성을 위해 개런티는 고사하고 자기 돈을 들여 대관을 하고 초청장을 찍어 가족, 친지, 친구를 관객으로 모읍니다.” 박씨의 눈엔 그런 무대에 선 연주자도 ‘동원된’ 관객도 모두 행복하지 않았다. 더구나 예술에 상업 논리가 끼어들면서 음악 시장이 왜곡되고 음악가는 광대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 분개하면서도 구상을 현실에 옮기는 데는 20년이 걸렸다. “뭐든지 오래 생각하고 꼼꼼히 준비하는 편입니다. 실패할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어떤 연주자들은 명성을 얻기 위해 자기 돈을 들여 대형 음반회사에서 음반을 내기도 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녹음하면 제대로 된 음반이 나오고 이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음반 제작과 유통 또한 하우스콘서트 못지않게 오래 걸리는 일이다. 박씨는 “어떤 일이든 성과를 내려면 10년 이상 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안단테’로 이어지고 있는 그의 하우스콘서트는 벌써 음악계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첫 콘서트를 알리려 아는 사람 100명에게 보내던 전자우편은 지금 5천명에게 발송된다. 권혁주, 김선욱, 진보라, 드라마 〈아일랜드〉와 〈궁〉의 배경음악으로 이름을 알린 ‘두번째 달’, 강산에, 국악 연주그룹 상상트리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아르헨티나에서 탱고 음악에 도전한 듀오 오리엔탱고 등 무대에 선 이들 가운데 유명인도 적지 않다. 그의 무대에는 재즈 연주자, 가수, 인디 밴드 등도 가끔 올라간다. 단편영화 상영, 명상 요가 워크숍, 세미나 등 다양한 갈래의 행사가 열릴 때도 있다. 40~50명의 관객이 2만원씩 내는 입장료의 절반인 ‘푼돈’을 개런티로 주지만 “관객과의 교감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고자 하는 연주자”들이 줄을 이어 2008년 일정은 이미 꽉 찼다. 우리나라 첫 하우스콘서트 운영자로 알려졌지만 박씨는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딱 한 달 레슨을 받은 뒤 피아노를 혼자 익혀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수석으로 들어가 천재라는 말을 들은 그는 중2 때 이미 행위예술을 시도했다. 대학 때 발표한 두 차례의 행위예술 작품은 체제 저항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오해를 받아” 경찰에 쫓기거나 학교로부터 제적하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2003년 전주영화제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성영화를 틀어놓고 즉흥 연주를 한 그는 해마다 한두 차례씩 독일과 일본에서 연주 초청을 받고 지난해 프랑스 국영라디오에서 그의 음악을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할 정도로 외국에 더 많이 알려졌다. “힘들고 지칠 때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주자와 관객들로부터 이렇게 행복한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면 너무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 freepiano.net
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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