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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남아있을까? : 헌책방을 추억하다.Posted by qbio in book, all, th

은바리라이프 2007. 11. 26. 11:37

아직도 남아있을까? : 헌책방을 추억하다.

Posted by qbio in book, all, the five senses, someplace (Sunday May 29, 2005 at 20:27)

어느 날, 가만히 앉아있다보면 잊혀졌던 무엇인가가 불현듯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한참을 옛 상념에 젖어있다보면 어디서부터 이 기억이 다시 생각났는지 근원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오늘, 내 손목시계와 헌책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계를 차다가 문득 생각난 헌책방에 대한 기억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교보문고라는 대형 서점에 대한 첫경험의 길로 나를 안내해 주셨던 아버지[1]는, 헌책방이라는 또 다른 보고(寶庫)로의 길을 안내해주셨었다. 당시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디자인 관련 서적들을 헌책을 통해 구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다니던 난, 자연스레 헌책방에 익숙하게 되었고, 어느 틈에서인가 헌책방을 제 방 드나들듯 이용할 수 있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경부터 헌책방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와 인근 동네를 통틀어 내가 이용하던 헌책방은 총 세 곳이었다. 재밌게도 이 세 곳은 각각 고유의 특색이 있었다. 먼저 집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자주 이용했던 단골 헌책방 A. 이곳은 다른 책들보다도 온갖 종류의 소설이 풍부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한때 코널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에 흠뻑 빠졌던 내가 가장 많이 이용하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헌책방보다 10여분 더 걸어가야 갈 수 있었던 헌책방 B. 이곳은 다른 곳들보다도 참고서가 많았던 헌책방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을 해 보니 그 이유는 아마도 주변에 초,중,고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더불어 백과사전같은 사전류도 많았고, 잡지류도 많이 구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곳은 주로 숙제를 하기 위한 참고서류를 구입하거나 잡지를 구입하기 위한 용도로 이용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멀었던 헌책방 C. 이 곳은 집에서는 가장 멀었고,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곳의 특징은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구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자주 가던 헌책방들 가운데 가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던 곳이었고 가장 지저분한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곳은 주로 헌책방 A와 B에서 구하지 못한 책을 구하러 가거나, 의외의 책을 발견하는 기쁨[2]을 느끼려고 친구를 꼬셔서 가던 곳이었다.

앞서 말한 세 곳의 헌책방 가운데 헌책방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것은 짐작할 수 있듯이 바로 헌책방 A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아저씨[3] 형제가 주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주로 겨울에 이용했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는데, 헌책방 문을 열고가면 작은 연탄난로가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저씨(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물론, 반갑게 맞아주던 웃음도.

두 아저씨들 중 형은 굉장히 얌전하고 지적으로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 계실 때는 별로 말이 없이 책을 읽고 있었으며 내가 책을 골라 내밀면 가격을 말해주곤 했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그 아저씨는 늘 한자로 가득찬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는 것. 한자는 잘 알지 못했던 난, 늘 어떤 내용의 책일까 궁금했었고 내용을 물어보려다가도 너무나도 점잖은 아저씨의 모습에 늘 다음 기회를 다짐했어야 했다.

반면, 동생은 굉장히 사교적이고 쿨한 아저씨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일어서서 맞이해주었으며, 이번엔 어떤 책이 새로 들어왔으니 그걸 한번 보라는 등의 단골 챙기기 코맨트도 잊지 않는 분이셨다. 내가 자주 사가는 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늘 새로 들어오는 책-그래봤자 헌책이지만-을 한곳에 모아두고는 먼저 보여주는 배려도 해 주시던 분이었다. 형이 있을 땐 주로 책만 사고 헌책방에서 나왔지만, 동생이 있을 땐 책을 사고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따뜻했던 난로가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그 날은 눈이 내리던 성탄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회에서 성탄절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가던 난, 늘 그랬듯이 두 형제가 운영하는 헌책방에 들렀다[4]. 늘 그렇듯이 이제는 그 끝으로 가고 있는 한 추리소설의 씨리즈의 몇 권을 집어들고는 동생 아저씨에게 갔다. 난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면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으슥해보이던 아저씨의 모습을. 성탄절이라서 평소보다 두둑하게 생긴 용돈탓에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이 책을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몽땅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게 건네주었던 것이다. 동생 아저씨의 크리스마스 선물 덕택에 두 손 가득 책을 들고왔던 난, 집에 와서도 한참이나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헌책방으로의 발걸음이 뜸해진 것은 해가 지나면서 머리가 커졌다고 착각하던 때부터라고 생각한다. 어느 틈에서인가 헌책방보단 시내의 큰 대형서점에 가는 것을 더 즐겼으며, 세련된 대형서점에서 책을 구입한 뒤 서점에서 담아주는 쇼핑봉투에 책을 들고 오는 것이 또 다른 기쁨으로 대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후 이사를 하게 되면서 동네의 헌책방에는 더더욱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고, 어느 틈에서인가 헌책방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지고 있었다.

이제는 인터넷 서점 탓에 멀쩡하게 운영하던 동네의 대부분 서점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새책을 파는 서점들의 형편이 이러한데 헌책방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동네에는 한두곳 이상 있었던 대부분의 헌책방들의 자취는 이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6].

하루 내내 헌책방이란 단어가 떠나지 않았던 오늘, 세상의 모든 것을 검색해주는 구글을 띄우고서 난 헌책방이란 키워드를 넣어보았다. 놀랍게도, 구글이 보여준 것은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헌책방들이었다. 인터넷 헌책방-헌책을 파는 것은 동일할지 몰라도 책을 함께 찾고 고르며[7], 가끔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몽땅 주는 따스함은 결코 없을 것이다.

참 어리석다. 잃은 뒤에야 좋다는 것을 깨우치니 말이다.


[1] 말로만 들어보던 교보문고를 처음 가 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의 일로 기억한다. 어느 평일 저녁 아버지가 나를 이끌고 갔던 그 곳에서 난 세상에 이런 별천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무척이나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 경험했던 교보문고는 세상의 책이란 책은 모두 가져다가 진열해 놓은 곳이었으며, 우리 나라의 모든 서점을 한데 모아도 이보다 클 수 없겠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환타지의 공간이었다. 교보문고와의 첫만남을 축하하며 당시 아버지는 나에게 다섯권의 책을 사 주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일본에서 나왔던 MSX(*) 관련 컴퓨터 책을 번역한 것이었는데 1권부터 5권까지 씨리즈로 되어 있던 책이었다. MSX의 기본 철학부터 간단한 베이직(Basic) 문법, MSX의 그래픽 구현 원리, 사운드 구현 원리 그리고 주변기기에 관한 이야기 등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벅찬 내용이었지만 나는 근 2년동안 그 책을 늘 보며 컴퓨터에 대한 꿈을 하나씩 그려갔었고, 그 꿈은 어느 틈에서인가 현실이 되었다.

(*) MSX : MircoSoft eXtended 의 약자. 이름의 약자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도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사와 일본의 아스키(ASCII)사가 1983년에 제안한 일종의 컴퓨터 플랫폼의 통일규격이다. 일본의 아스키사에서 하드웨어 설계를 담당했고,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는 하드웨어를 구동한 소프트웨어 부분을 담당했다. 당시 8비트 컴퓨터는 컴퓨터 제조사의 고유 규격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호환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시대였다. 예를 들어 삼성에서 나오던 SPC-1000A라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면, 무조건 SPC-1000 씨리즈용으로 나온 주변기기와 소프트웨어만을 사용해야만 했다. 따라서 이러한 고유 규격은 자원의 낭비를 초래했으며, 소프트웨어 역시 동일한 내용의 소프트웨어를 플랫폼별로 제작해야하는 불편이 있었다. 이러한 낭비와 불편을 타개하고자 야심차게 계획했던 것이 바로 MSX 규격이다. 소니와 파나소닉에서 첫 상용화가 되기 시작하여 야마하, 도시바, 필립스, 삼성, 대우 등이 MSX 기종 컴퓨터를 생산했었다. MSX컴퓨터는 특히 그래픽과 사운드가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게임 부분에서 비교 우위를 차지 했었고, 향후 MSX2, MSX2+로 규격이 확장되어 더더욱 강력한 멀티미디어 컴퓨터로서의 위상을 굳힐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파나소닉에서 발매한 MSX TURBO-R은 16비트 R800 CPU를 채용하여 16비트 MSX 세계를 열기도 하였다.

당시 내가 처음 사용해 보았던 MSX 컴퓨터는 삼성전자에서 나왔던 SPC-800이란 컴퓨터였다. 여담이지만,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싶었던 MSX컴퓨터는 대우에서 나왔던 XII로 8비트 컴퓨터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체와 키보드가 분리되고, 3.5″ FDD가 내장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블랙컬러로 도색된 꿈의 MSX2 머신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가격은 영원히 ‘꿈의 컴퓨터’로 머물게 할 뿐이었다.

[2] 헌책방 C는 관리가 엉망이지만 규모가 컸던 만큼 다양한 종류의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책저책을 뒤지다 보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의외의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만큼이나 나머지 두 곳의 헌책방 중에서 가장 책 가격도 저렴했었다.

[3] 당시에는 나이가 참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딱 지금의 내 나이였던 것 같다. 따로 의식할 필요 없이 ‘아저씨’라고 불렀었는데, 조금은 후회가 된다. ‘형’이라고 불렀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직 ‘아저씨’라는 호칭이 늘 불편하고 어색한 내 기분을 생각하니 더더욱 그런 후회가 밀려온다.

[4] 형제가 운영하던 헌책방은 집에서 교회가는 길 중간 즈음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유독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는 주일날 점심 즈음에 빠지지 않고 들러서 책을 사 가곤 했다. 그 날은 일주일 동안 모은 용돈이 있었기 때문에 평일보다는 한 두 권 더 많은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날이라서 헌책방에 들르는 발걸음이 한결 더 신났던 기억이 난다.

[5] 며칠전부터 재고 정리에 들어간 동네의 한 서점이 기억난다. 한번도 책을 구입하지 않았던 서점이지만, 재고 처분이라는 글귀와 함께 ‘현금 구입시 20% 할인’이라는 빨간색으로 써진 문구를 보고서 묘한 씁슬함을 느꼈던 기억이. 결국 인터넷 서점의 편리함 때문에 동네 서점 한 곳이 문을 닫는 현장에 내가 서 있었던 것이었다.

[6] 물론 인문사회서적이나 예술 서적등의 전문서적을 취급하는 헌책방은 아직 존재한다. 하지만, 다양한 책을 조근조근 가져다 놓고 파는 동네 헌책방은 이제 거의 찾을 수 없을 것이다.

[7] 이 시절, 헌책방의 주인 아저씨들은 찾는 책을 헌책방 구석 어디선가 빠른 속도도 척척 찾아주곤 했었다. 아울러 단지 책을 찾아주는 것 이외에도 볼 만한 책을 적당하게 추천해주는 것까지 훌륭하게 감당하고 있었다. 이는 대형 서점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검색용 컴퓨터도, 인터넷 서점 사이트의 검색 기능도 줄 수 없는 무엇인가가 분명 담겨 있는 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