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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새책으로 만들기

은바리라이프 2007. 11. 26. 11:44
헌책 새책으로 만들기
     
헌책방의 기억⑤

부깽(bouquins) 기자
2007-11-13 01:42:23

요전에 헌책방 앞에서 잠시 앉았는데, 지나는 이가 헌책방은 한 번도 안 가봤다며 옆 사람에게 중고는 너무 더럽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선 들어가 보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팔자에 헌책방이 없는 걸 권한다고 될 일일까 싶어 말았다.

중요한 건 헌책방의 책들 대개는 더럽지 않다는 것이다. ‘더럽다’는 것은 손 떼 묻으며 자연스럽게 책이 낡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 곱게 나이를 먹은 책과 전 주인에게 함부로 대해진 책은 확연히 모습이 다르다. 찢어지고, 비 맞은 자욱하며 볼펜으로 찍찍 마구잡이로 밑줄이 그어진 책을 상종하고 싶지 않기는 누구나 매한가지일 게다. 그래도 대개는 걸레로 한번 쓱 닦아 주면 새 책처럼 반짝이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 정도 수고는 즐길 수 있어야 헌책방이 훨씬 신나고 재미난 곳이 된다.

책을 애지중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보고 마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 시절 신줏단지 모시듯 책을 대할 때가 있었다. 날마다 책을 보는 게 아니라 닦는 게 일과였는지라 앞의 수사가 그닥 민망하지 않다. 장정일처럼 책에 지문 묻는다며 손을 씻고 책을 읽은 것도, 초판만 고집하는 것도, 책에 볼펜 따윈 절대 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책을 닦을 때만큼은 나도 손을 닦았다. 열심히 닦고 빛나는 책을 보고 있으면 장서가니 애서가니 하는 휘장이 없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헌책방 글을 마무리 지으며 이왕 쓰는 글 알뜰한 도움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다녀 본 곳 중 ‘어디 헌책방이 좋다더라’ 혹은 소개하는 것은 몫이 아니기도 하고 능력도 안 되는지라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말을 주섬주섬 담아 볼 참이다. 그러니깐 이 얘기는 헌책을 새 책처럼 만드는 나름의 노하우인 셈이다.

책과 노는 색다른 방법

주방 세재 중에 ‘무균무떼’는 책 표지를 닦는 가장 탁월한 세재 중 하나이며 냄새가 역하지 않아서 오래오래 책을 닦을 수 있다. 무균무떼는 대개의 집에는 하나쯤 있으니 다음엔 무엇으로 닦을지를 살펴야 한다. 동네 ‘무조건 천원 코너’에서 안경 닦는 천과 재질은 비슷하면서 좀 더 두껍고 큰 천을 살 수 있다. 여기까지 준비되면 거의 모든 책을 새책처럼 만들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코팅된 책에 한한 것이고, 행여나 코팅되지 않은 표지라면 퍽 수고스럽지만 지우개만 한 것이 없다. 열심히 끈질기게 지우는 수밖에.

‘물파스’는 책 표지에 볼펜이나 사인펜 자국을 지울 때 한 번 바르고 휴지로 쓱 닦으면 감쪽같이 없어진다. 책 겉표지에 볼펜과 사인펜으로 된 낙서를 지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헌책방을 가끔 이라도 다니는 이들은 주인들이 이렇게 닦는 것을 보곤 할 것이다. 무슨 성분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아주 말끔해진다.

헌책방에선 도서관 인장이 찍힌 책을 자주 보게 된다. 꼭 필요한 책인데 책 위로 아래로 여기저기 구석구석에 도서관 인장이 찍혀 있는 책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 인장 찍힌 책이 헌책방까지 오게 된 경위는 차치하고 이를 지울 땐 ‘유한락스’만 한 게 없다. 처음 시도라면 조금 어려울 수 있으니 두 명이 함께 하는 게 좋다.

우선 물러터진 칫솔을 준비한다. 그리고 마른 헝겊. 유한락스를 콜라 뚜껑만큼 콜라 뚜껑에 담은 다음, 집에서 노는 사람 아무나 데리고 와서 책을 꽉 누르라고 하면서 칫솔에 유한락스를 발라 한번 살짝 쓱 문질러 준다. 바로 마른 수건으로 책에 묻은 유한락스를 닦아 낸다. 아주 적은 양을 해야지, 자칫 잘못하면 책이 울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유한락스가 얼마나 독한지 결과를 볼 수 있다. 도서관 인장이 찍힌 곳이 하얗게 변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책 첫 장에도 도서관 인장이나 증정본이라는 도장을 볼 수 있다. 이 역시 도저히 ‘못 참겠다’면, 그 뒤에 필요 없는 종이를 데고 칫솔에 살짝 유한락스를 묻혀 문질러 주면 된다. 종이를 대는 이유는 뒷장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헌책방의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면 책이 삐까뻔쩍한 데, 한 부분만 누럴 때가 있다. 이런 자국은 주로 스카치테이프를 오래 붙여 놓아서 생긴다. 안은 한번 펴보지도 않아서 새 책인데, 겉에 그 누런 자국 때문에 살까 말까 망설이게 될 때 이만한 게 없다. ‘욕실용 홈스타’를 사용해서 닦아주면 오래돼서 절대 지워질 것 같지 않은 누런 때가 가신다. 홈스타는 책 전반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세제 자체에 돌가루 같은 게 있는지라 책이 긁힐 수 있으니 누런 부분만 살짝 닦아야 한다.

‘사포’ 흔히 ‘빼빠’라고 하는 것을 이용해서 종이를 조금 갉아낼 수도 있다. 책 위아래의 먼지를 털어 낼 때 쓰는 게 좋다. 글씨까지 지우려고 하다간 책이 망가지기 십상이니, 어지간하면 먼지만 털어낼 요량이어야 한다. 잘 못하면 책 전체가 뚱뚱해지고 보기 싫어질 수 있으니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즐기면서 천천히 하기를 권한다.

두 가지를 준비한다. 알이 고운 것과 중간 정도의 사포를 산다. 먼지가 10년쯤 묶은 외서 하드커버에 아주 적격이다. 하드커버는 절단기로도 어쩔 수 없는데 사포를 이용하면 종이의 원래 색깔을 찾아준다. 한 번에 책 전체를 잡고 문지르면 책이 붕 뜰 수 있으니 30장 정도를 묶음으로 사포 질을 하는 게 좋다.

오래 전 책을 사러 가는 게 아니라 자르자며 홍제동의 헌책방을 줄기차게 들락거리곤 했다. 책을 자른다니 뭐 하는 짓이야 하겠지만, 잘 자르면 바로 새책이 된다. 그 홍제동 헌책방에서는 결국 그 절단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다며 선물로 줬다. 그 무거운 걸 배달까지 해줬다. 다시 한 번 감사를. 탐난다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학 근처의 제본소를 눈치껏 이용할 수 있다.

절단기는 누가 쓰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는데 열심히 하다 보면 실뜨기하듯 책을 깎아 낼 수 있다. 정신집중하고 수양을 오래해야지 가능한 일이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자랑은 아니지 싶다. 책장에 묻은 오래 묶은 남모르는 자국, 누가 자기 거 아니랄까 봐 ‘94211-005 뭐시기’ 하며 이름과 학번을 매직으로 써 놓은 책에 최고의 효과를 보일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아이언퀼이 책보다 오래 남는 구조물은 없다고 했는데, 다른 의미로 헛나발을 불면 이것도 책을 애지중지해야 가능한 일이다.

끝으로 이런 비스름한 글을 한번이라도 본 분들을 위한 변명이다. 자기 글을 표절할 수 없다면 대체 누구 글을 표절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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