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뉴스/문화읽기

재활용품, 예술로 승화하다 <재활용 주식회사>

은바리라이프 2007. 11. 24. 20:49
재활용품, 예술로 승화하다 <재활용 주식회사>
2007-07-04
‘용도를 바꾸거나 가공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폐품, 또는 그 폐품을 사용하여 만든 물품‘. 재활용품의 사전적 정의다. 이런 재활용품들이 당당히 전시회의 오브제로 태어났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서 지난 6월8일부터 시작한 <재활용 주식회사> 가 바로 그것. 이 전시회의 주 재료는 빈 깡통, 폐현수막, 옛날 사진, 로터리식 텔레비전과 폐형광등, 낡은 냉장고, 뚜껑 없는 피아노, 반쯤 쓴 실타래 등. 하지만 이것들이 작가들의 손을 거치면 폐품이 아닌 예술로 승화된다.


우리 일상의 재활용

아르코 미술관의 김미형 큐레이터는 “일반적으로 재활용품은 물건의 생산, 소비, 폐기 과정만을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는 단순히 유형의 물건이나 물질이 아닌 무형의 보이지 않는 가치도 재활용하는 부분을 살려보고자 했다. 일상의 어떤 사물들이 생산되고 그것을 사람들이 활용하고 원래의 기능은 없어졌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하나의 생산물이 되어 소비되는 과정을 작가들이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이렇게 전시를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라는 말로 전시를 소개한다. 기획전 <재활용 주식회사>는 단순히 재활용품을 전시하는 행사가 아니라 작가들의 독특한 아이디어로 재활용품들이 예술작품으로 변신한 모습을 통해 재활용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전시다. 그래서 작가를 선정할 때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직업군을 다양화했다. 또 재생과 순환과 관련이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모아달라고 주문도 했다. 김형미 큐레이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재활용은 끊임없이 세포분열을 하듯이 재생과 소비, 폐기의 연쇄 고리를 갖고 돌아가는 순환의 기능을 말한다.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추구해온 작가들이 있다. 참여 작가들 중엔 미술을 전공한 작가도 있고 음악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작가도 있고 시인도 있다. 결국 우리의 모든 일상의 여러 부분들에 재활용 개념이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재활용 주식회사>

작가들이 미술관에 차린 재활용 주식회사, 독특한 이름에 걸맞게 작가들은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아이디어를 담뿍 담았다. 관람객들이 천원을 내면 GOOD, NICE, BEAUTY, VERY, WONDER 등이 적힌 5가지 작은 상자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돼 있다. 상자는 입장권을 대신한다. 일반 미술관처럼 입장티켓을 구입해 들어가는 것과 다른 분위기다. 입장권을 작은 상자로 대신한 것은 재활용 주식회사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 안에 넣어 가라는 작가들의 암묵의 메시지다. 작은 상자를 받고 들어온 미술관, 주변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제품들로 가득해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진다. 작가들이 미술관에 차린 재활용 주식회사는 어떤 공간일까? 이들은 어떻게 재활용의 순환과 흐름을 보여줄까? 전시공간은 1전시실과 2전시실로 나뉘어져있다.



☆ 1전시실

김형미 큐레이터는 “1전시실은 기존에 이미 용도 폐기되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사물과 개념들을 작가가 다시 재활용한 작품들이다. 박용석씨는 철거지역을 가서 더 이상 쓸모없는 전등과 형광등을 재활용하여 바닥에 깔고 사라져가는 빛이라고 제목을 정했다. 철거지역에선 더 이상 의미가 없지만 미술관에 들어와서 작가를 통해 새롭게 창조되고 관객들은 감흥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박용석 작가가 철거지역에서 수거한 400여개의 폐형광등 설치작업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철거지역은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버려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형광등도 그렇다. 쓸모없다고 일부러 깨뜨리는 형광등, 그러나 박용석 작가는 형광등을 바닥에 촘촘히 늘어놓고 하나하나 전선을 연결해 불을 넣었다. 아직 쓸만한 것, 수명이 다해 깜빡거리는 것, 벌겋게 달아오른 것, 아예 켜지지 않는 것 등등 제각기 사라진 집의 사연과 자신의 유통기한을 온몸으로 발언한다. 이렇듯 형광등은 작가의 아이디어와 손길을 통해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됐다. 이번에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을 통해서 버려진 천들이 실크로드 지역에 새롭게 쓰인 현장으로 가보자. 이것은 실제로 벌어진 얘기다. 뭔가를 알리거나 찾을 때 광고용으로 쓰는 현수막, 일정기간이 지나면 쓸모없어 버리게 되는 폐현수막의 재탄생이다.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비디오의 한 장면, 바로 현수막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외국인들의 모습이다. 작품의 제목은 정재철 작가의 <실크로드 프로젝트 >. 작가는 폐현수막을 세탁해 중국,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을 여행하며 그 곳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마음대로 활용해보도록 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작가는 놀라운 재활용을 발견한다. 우리에게는 단 한번 사용하고 바로 불태워지는 현수막이 식탁보로, 커튼으로, 옷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줬던 이 작품은 폐품이 멋지게 재활용되는 순간을 담았다. 이 외에도 의류공장에서 쓰고 남은 색색의 실타래를 벽에 촘촘히 박힌 못에 끼워 넣어 설치작품을 만든 홍경택 작가의 <코쿤> 도 눈에 들어온다. 원래 홍경택은 캔버스 회화로 유명한 작가다. <코쿤>은 마치 홍경택의 회화작업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번 작품은 홍경택의 첫 번째 설치작품이다. 예술작품으로 변한 재활용품을 보면서 관람객들은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 2전시실

이번에는 2 전시실로 가본다. 이 곳의 공간은 높이 140센티미터의 담장으로 구획이 나눠진다. 오래전 집집마다 담장이 낮아서 담을 사이로 소통하는 열린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던 점에서 착안, 아이디어가 서로 교류하며 섞이는 형태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2 전시실의 컨셉은 이미 폐기된 사물보다는 용도를 바꾼 것들 위주로 전시됐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미술관 라운지, 이 곳엔 장롱과 테이블, 의자 등이 놓여 있다. 하지만 원래 모양 그대로 놓여진 것은 하나도 없다. 장롱은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옆으로 뉘어져 있고 책꽂이도 뒤집어져 있다. 이미경 작가는 자신이 사용하는 작업실 가구를 재활용 주식회사 공간에 옮겨 놓았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가구들을 이용해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다가 쉴 수도 있는 휴게실을 만들었다. 휴게공간을 지나 담장을 따라 걷다보면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소리가 난다. 작품 이름은 ‘스트링 리액션’ 작곡을 전공한 음악가 이윤경 의 설치작품이다. 작가는 피아노를 연주자의 전유물이 아닌, 관객들과 함께 소리를 만들어가는 도구로 재활용했다. 그랜드 피아노 뚜껑을 열고, 피아노 줄, 가야금, 첼로 등 현악기 줄들을 천정에 매달았다. 그리고 센서를 설치하여 관객들이 움직일 때마다 줄이 흔들리고 소리를 만든다. 관객은 자신의 움직임이 음악으로 재생산되는 상황을 현장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윤경 작가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칠 때 객석에서는 감탄하며 그저 감상의 차원에서 그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청중들이 직접 열린 공간 안으로 들어와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소리의 조합으로 자기 음악을 만들어 내는 거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눈으로 보기만 한다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비주얼한 작품에 불과하다. 직접 참여하는 음악이라는 점이 포인트다.”라고 말한다.



의미 있는 재활용의 확산

재활용 주식회사는 참여한 작가와 관람객 모두에게 재활용의 의미, 재활용도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윤경 작가는 재활용 문화가 확산된다면 사람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며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시회를 다 보고 나면 관객들은 입구에서 받았던 상자에 전시장을 돌면서 얻은 아이디어를 채운다. 설사 전체를 돌 때까지 빈 상자인 채일지라도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자신이 미술품 속을 지나왔음을 깨달으면서 상자가 묵직해지는 경험을 하리라. 더불어 작가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천진한 감성이 침투하면서 일상에 메마른 자신이 촉촉하게 재충전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작품과 교류한 경험이 또 다른 아이디어가 되어 재유통되는 것, 그것이 ‘재활용 주식회사’의 바람이다.
 
텍스트 크게보기 텍스트 작게보기   인쇄하기 목록보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