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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부는 역사소설 신드롬

은바리라이프 2007. 11. 24. 20:47
한국에 부는 역사소설 신드롬
2007-08-22
소설 <남한산성> 의 작가 김훈씨가 소설의 배경이 된 남한산성에서 독자들과 만남을 갖고 있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임금이 청의 대군을 피해 피란을 갔던 장소. 독자들은 370 년 전 역사의 무대이자 소설 속 배경이 됐던 현장을 직접 가봄으로써 역사의 숨결을 보다 진하게 느끼고 있다. 청의 군대에 둘러싸여 임금과 백성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 쳤을지 성벽과 주위를 둘러보며 과거를 상상해본다.


소설 남한산성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남한산성 안에서 갇혀 지내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은 “병자호란 때 거의 교전을 못하고 남한산성 안으로 피란을 갔다. 조선의 지식인 사대부가 다 그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 성안에는 원래부터 살고 있던 성 안 원주민이 있었다. 그들은 적에게 포위되어서 47일간 버티다가 결국은 성문을 열고 나와서 투항을 했다. 소설은 고립무원의 성에서 47일 동안 고뇌는 무엇이고 희망은 무엇이고 우리의 진로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지경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영위했나를 써놓은 소설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1636년 겨울,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눈보라를 헤치고 한양으로 진격해왔다. 정묘호란을 겪은 지 불과 9년만의 일, 아무런 방비를 갖추지 못한 조선은 정묘호란 때처럼 강화도로 파천하려 했으나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 47일을 버티고 난 후 결국 남한산성의 문이 열리고 왕은 오랑캐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세 번의 절을 올리고 아홉 번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 47일간의 모질었던 역사의 기록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재구성한 소설이 <남한산성>이다. <남한산성>은 출간 4개월 만에 판매부수 25만부를 넘기며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미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칼의 노래>와 가야시대의 악사 우륵의 삶을 중심으로 한 <현의 노래>로 역사와 문학을 결합시키며 대중에게 인정받은 소설가 김훈. 그는 이번 남한산성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서 남한산성에 가서 놀았다. 가서 성 안 구석구석을 보았다. 3-4년 전의 일인데 그때는 성벽이 보수되지 않아서 허물어져버린 옛 싸움터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그런 흔적들을 들여다보며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억눌림, 답답함, 분노를 느꼈다. 그것은 참 아주 고통스러운 체험이었다. 그 날 이후 남한산성에 자꾸만 가고 다음날도 가고 다음날도 가고 그랬다. 이런 느낌이 나를 결국 들들 볶아서 또 한 권의 소설을 써야만 하는 고통을 안겨주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확실했다. 그 느낌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그 후 김훈은 3년의 세월을 ‘남한산성’ 쓰는 일에 매달렸다.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억눌림, 답답함과 분노를 그리고 370여 년 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일 중 하나를 왜 다시 꺼내려고 했던 것일까? 작가는 말한다.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의 연속이라고 치욕을 기억하고 상처를 부활시키고 나면 지금 내가 어렵다고 느낀 현실에 대한 돌파구가 해결책이 찾아질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역사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내려가지만 현 시대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투영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관심과 사명은 역사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더라도 거기에 어떤 지금의 현실과 관련되어서 새로운 의미나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서 어떤 당대현실에 대한 의무를 반추하고 싶은 독자의 소망이 있다고 본다. 그야말로 지나가는 시대의 얘기일 뿐이면 현대독자가 열광적으로 찾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 삶에 여전히 유효한 메세지가 들어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남한산성과 병자호란

남한산성이 청나라 군대에게 완전히 포위되어서 나라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이런 가운데 대의명분을 놓고 주전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김상헌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서라도 결사항쟁을 고집하지만 최명길은 치욕스러워도 일단 살고보자며 투항을 주장한다.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치욕이 기다리는 넓은 세상을 향해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 것이었다. 김상헌의 생각은 달랐다. 시간은 흘러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환란의 시간은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다시 맑게 피어나고 있으므로, 끝없이 새로워지는 시간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었다. 모든 시간은 새벽이었다. 그 새벽의 시간은 더럽혀질 수 없고, 다가오는 그것들 앞에서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둘 사이에서 인조는 번민을 거듭한다. 작가 김훈은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대의명분을 놓고 고민하는 상황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따금씩 찾아온다. 이런 해답을 늘 고민했던 현대인들은, 남한산성에 그래서 더 끌리는 게 아닐까? 소설 <남한산성>의 한 독자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소설은 과거를 통해 현재에 대한 교훈을 삼을 수 있으니 일반소설보다 더 재미있다. 살아가는데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가 많은데 남한산성을 통해 도움을 많이 받는다.” 또한 도서평론가 권태현씨는 “김훈씨의 <남한산성>이 이렇게 우리시대에 독서시장을 주도하고 큰 반응을 얻는 것은 우리시대가 지금 특히, 기성세대인 그리고 그중에서 남자들이 명분과 실리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본다. 그 부분이 소설에 나오는 상황과 맞물려서 공감하는 폭이 훨씬 더 커졌다. 그리고 또 끊임없이 그 문제에 대해서 해결점을 찾으려는 관심이 이 소설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한다.




역사소설의 붐

김훈의 <남한산성> 외에도 현재 서점가에는 역사소설 붐이 일고 있다. 작가 신경숙이 6년 만에 ‘리진’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궁녀를 부활시켜 <리진> 이라는 역사소설을 펴냈고 김홍신의 <대발해>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있다. 교보문고 문학파트 박유미씨는 “역사소설에 최근 베스트셀러가 많다. 거의 베스트 10위 안에는 역사소설이 반 정도는 들어가 있다. 예를 들면 김훈의 <남한산성>, 김홍신의 <대발해>, 신경숙의 <리진> 등이다. <남한산성>이 나오고 나서는 이미 출간된 <칼의 노래>, <현의 노래>도 많이 찾고 있다. 우선 작가들이 역량이 있는 탄탄한 작가들이고 특히 김훈의 <남한산성>은 많은 연령대가 보기에 좋은 주제를 갖고 있어서 선물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전한다.

소설가 김훈의 <남한산성>이 치욕의 역사를 통해 현시대에 교훈을 주고 있다면 김홍신의 <대발해>는 TV 드라마 덕분에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역사소설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 7세기 한때 세계최강국이었던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게 패하면서 고구려민은 나라 없이 유민이 되어 떠도는데 암울한 상황 속에 한 명의 고구려 청년이 다시 재기를 꿈꾼다. 그의 이름은 바로 대조영이다. 그는 흩어진 군대를 모으고, 투쟁을 통해 고구려의 정통성을 잇는 새 나라를 건설한다. 이름하여 발해. “대조영”은 1300여 년 전 고구려 패망 이후 발해가 건국되기까지의 과정을 시원하고 통쾌하게 그려냄으로써 전국 시청률 30%를 웃도는 등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사극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발해와 관련된 소설을 찾는 독자들도 생기고 있다. 역사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사극을 통해서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대중들은 그 시대를 좀 더 깊이 있게 경험하고 싶어진다. 이런 욕망이 역사소설을 찾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내가 대조영이 되서 발해건국의 주역이 됐다는 상상을 해본다. 나라면 발해를 어떻게 이끌어 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하게 된다. 이런 재미가 역사소설에는 있는 것이다.



역사는 기록, 소설은 소설일 뿐

아주 오래된 역사를 들춰낸 책이고 드라마지만 대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불과 10여 년 차이 나는 세대 간에도 이질감이 있는데 대중들은 과거의 얘기에 공감한다. 권태현 도서평론가는 “과거 속에 현재가 있고 그러면서 동시에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다른 형태로 혹은 약간 변형된 형태로 계속 과거는 이어져오고 있는 거다. 그런 부분에서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는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역사물이 소설로 다루어져 감동적 작품으로 형상화되었을 때는 지혜와 지식 얻는 것 뿐 아니라 자기 삶의 문제를 깊이 폭넓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다.”

역사는 이미 주어진 끝난 상황이다. 돌이켜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들은 소설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역사에 드러나지 않았던 새 인물을 등장시키고 메시지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잊혀진 역사에 대해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순기능의 역할도 한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는 기록이고 역사소설은 글자 그대로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 김훈의 이야기는 새겨들을 만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남한산성을 FTA와 관련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외세나 열강의 문제와 관련짓기도 한다. 그것은 매우 위태로운 독법이다. 다만 역사와 시대의 고통이라는 본질이 뭔지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했으면 한다. 내 소설 속에는 민족주의 열정이나 애국적 열정은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 고통스러운 시대 속에서 그것을 통과해나가는 개인의 고통과 슬픔이 강조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