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음향미술(Sound Art)는 음악이 아니다? Bernd Schulz, 독일 미술신문(Kunstzeitung) Nr.41 2000년 1월 호에서 음악과 미술의 영역 사이에서 설치미술의 한 형식으로 발전해 온 음향미술은, 그 와중에 하나의 튼튼한 전시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그림이 걸릴 만한 벽을 장식할 만한 것이 못되기 때문에 다분히 경제적인 이유로 전시자들이 꺼리는, 그래서 미술 시장에서 주변적인 역할만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되짚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음악 영역에서도 그런 혼성적인 예술형태에 대해서는 커다란 제한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만코프(Klauss Steffen Mahnkopf)라는 작곡가 겸 음악 평론가는, 기존의 음악에 대해 음악문화와 음향미술로 매섭게 대항했던 존 케이지(John Cage)의 업적에 대해 쓴 한 권의 책에서 그 한계를 분명히 했다. 즉, 오브젝트로서의 소리나는 것은, 오히려 음악과의 사이에서 관계 밖에 놓인 다는 것이다. 일상 생활의 소음과 음악적 소리의 동격화에 대한 그의 과격한 컨셉에 대해 예술적 발전에 어떤 공로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존 케이지의 행위에 대해서는, 그의 죽음으로부터 7년이 지나서도 논란이 많고 어느 정도 명백해지려면 일정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확실히 존 케이지는 전부터 제한되었던 음악과 미술 사이의 중재를 촉진함으로써 서양 음악의 전통을 파기하였다. 그 음색들을 복합적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소리들은, 그에게 포괄적으로 수용되었고 20세기의 음악적 전통을 바꿔 놓았다. 또한 케이지가 예술과 삶 사이를 냉정하면서도 유머있게 연결시켰을 때에, 그에 앞서 1948년 파리에서 피에르 쉐퍼(Pierre Schaeffer)에 의해 발전되었던 musique concrète로의 회복과 그리고 50년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을 통해 음색의 분석과 혼합을 위한 기본 바탕이 마련된 전자음악을, 과거의 전통과 실제 속에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침묵의 컨셉으로 많은 음향 미술가들에게 선구자로서 영감을 준 바 크다. 특별히 이것은 캐나다의 작곡가이자 음향미술가인 로빈 민라드(Robin Minrad)에게서 분명해질 것이다. 대도시의 부정적인 음향효과의 경험이 각인된 민라드는, 음악가가 간과하는 사실에 대해서 미리 경고했다: 즉, 청각의 인지 능력은, 단지 우리의 청각 생리작용이 아니라 그에 앞서 우리의 일상의 소리들의 연속에 내맡겨졌다는 것이다. 음향 미술가들에게 그것은, 더 이상 중립적 청각조건이 지배되는 하나의 공간을 위한 음악적 구조의 구성이 아니라, 대신 대기와 물리적 요소들까지 포함시켜야 하는 음향 공간으로부터의 제시가 되어야 한다. 함께 적용되어야 할 그 방법은, 존 케이지로부터 극단적인 대안이 제시된 셈이다. 케이지는 사용될 수 있는 소리들과 사용될 수 없는 소리들을 구분짓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구분 문제는, 그들이 그들만의 경험적 방법의 성과를 미학적으로 콘트롤되도록 내맡길 때에 결국 음향 미술가들에게는 계속 숙제로 남을 것이다. |
'GG뉴스 > 문화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전/ 미디어 아트 (0) | 2007.11.12 |
---|---|
편재하는 미술관 (0) | 2007.11.12 |
디지털 총체예술 -- 선언 (0) | 2007.11.12 |
미디어화(Mediatisierung)에 대하여 (0) | 2007.11.12 |
미디어 이용 관습의 맹점(盲點)들 (0) | 2007.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