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용 관습의 맹점(盲點)들 |
지빌레 크래머(Sybille Krämer) <Medien, Computer, Realität> 중에서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인식하고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미디어의 도움을 통해 얘기되고 알려지고 논의된 것들이다(Assmann, 1990). 이런 관점은 한 움직임의 토대가 되는데, 그것은 오래 전부터 인문학자들이 몰두하고 또 대개는 감탄하던 부분들이다. 옛 언어학(Philologien)에 관한 언어학자들은 구어성(Müntlichkeit)과 기록성(Schriftlichkeit)의 차이에 대하여 언급한다. 문헌학자들은 문학의 제작조건으로써의 기록 시스템과 기술미디어를 들고 나온다(Kittler 1987).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물질성(Materialität)에 몰두하고 있다 (Pfeiffer 1988). 철학자들은 문자, 형이상학과 인식론의 상호 관계성에 대해 묻고 있다(Derrida 1974). 즉, '언어적 용법'이라는 것이 어떻게 언어적 지향을 통해서 지각현상의 우월성을 분리시켰는지, 또 이런 언어라는 주제는 스스로 미디어적인 중심점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다양한 관점에서 미디어 관련 연구들은 하나의 공통적인 정의(定意)를 결정(結晶)하고 있다. 즉, 미디어가 단지 전달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어떻게든 전달되는 내용과 스스로 여러 면에서 관계하고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래서, 미디어는 단지 일반적으로 의미와 함께 산출된다는 한도 안에서, 또한 의미를 전달하는 힘뿐만 아니라, 흥미있는 사물로서 정신과학적이고 문화학적인 작업으로 변이(變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디어가 단지 의미의 수단만이 아니라 의미의 샘이라는, 이러한 접근은 한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러한 접근은 미디어와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 위에 정반대의 모습으로 놓여있다. 즉, 우리는 공기의 진동을 듣는다기 보다는 종 소리를 듣고 있으며, 문자를 읽는다기 보다는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 속에서 목소리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의견과 신념을 나누고 있고, 또 영화는 스크린에 투사되고 있다는 것을 잊게끔 한다. 미디어는 창문의 유리들처럼 작용한다. 그것들은 더 투명하게 유지될 수록, 또 우리의 집중(Aufmerksam-keit)의 경계선 그 아래에 드러나지 않게 머물 수록 자신들의 의무에 더 충실해질 수 있다. 때로는 방해를 받거나 미디어로의 부드러운 접근이 거의 실패할 때도 있지만, 오직 도취된 무아경 속에서만 미디어는 스스로 기억의 영역으로 움직여 다가간다. 그 굴절되지 않은 메시지들은 다른 한편으로 미디어 자체를 보이지 않게도 만든다(이미 McLuhan이 1970년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미디어의 존재 방식으로서의 각 미디어의 내용이란 것은 눈 앞에서 장님을 만든다). 미디어 -- 이렇게 우리가 실생활에서 미디어와 관련된 문화적인 공식을 규명할 수 있을 때에 -- 는 이용 관습에 있어서 맹점(盲點)들을 내재하고 있다(이것은 Aleida Assmann이 1988년 주장한, 문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성과 의미론적 능력사이의 관계에 대한 상징-방법상의 통찰을 미디어 이론으로 만든 것이다. 그녀는 1951년에 나온 Susanne Langer의 주장 '무의하고 보편적인 상징일수록 그 의미론적 함유력은 강해진다. 작은 소음들이 개념들을 위한 이상적인 전달자이며 그래서 그것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의미보다 더 많은 것을 주지 않는다'에 주석을 붙인 것이다). 그 공식이 아직 완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하나의 껍질 밖으로 나오는 투시적인 시각 앞에 미디어가 놓여 있다는 점에서, 또한 읽히거나 주목되거나 보여질 때에, 미디어의 표면 안으로 응시된 시선이 들어서는 바로 그곳에서 일어나는 병리현상이 그 결과들을 의미하는 경우가적지 않다 (Assmann이 이에 대해 1988년에, '읽기'와 '응시'의 차이점에 대해 중요한 관점들을 발견했다). 미디어를 권위 있는 주제로 다루고, 그리고 일상적인 해석 행위를 통한 주석을 가지고서 미디어 스스로가 실종되도록 진행되는 현재의 논쟁들에서 중요한 점은, 그것이 주목할 만한 반론들 안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번역 2001 © 오창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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