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상암동 시대를 대비하라
2004년 국내 미술계는 이른바 ‘비엔날레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를 시작으로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지난 12월 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제3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까지 우리는 세 개의 비엔날레를 지켜봐야 했다. 비엔날레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제 아무리 적은 규모의 비엔날레라고 해도, 10억원을 훌쩍 넘는 예산을 들여, 석 달 이상의 전시 기간 동안 수십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다녀가는 이 전시는 현대미술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실제로 100년 가까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베니스비엔날레의 경우, 이 전시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작가에게 커다란 혜택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우리의 비엔날레를 지켜보는 미술인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다. 아시아 최고·최대의 비엔날레라고 자평하는 광주비엔날레는 규모에 걸맞지 않는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지 못한 지 오래다. 비엔날레라고 보기엔 좀 쑥스러운 작은 규모의 부산비엔날레 역시 ‘광주가 비엔날레를 하니 우리도 한다’는 고집으로 비칠 뿐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첫 삽을 뜬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제법 특색 있는 비엔날레로 여겨지고 있다. 우선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한 미디어 아트의 오늘을 점검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온 국민이 네티즌이 될 정도로 우리 나름의 사이버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지금, 테크놀러지와 예술의 절묘한 만남을 보는 것은 제법 신나는 일이다.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를 주관하는 서울시 역시 이러한 점에서 착안했던 것 같다. 실제로 서울시는 1회 때 무려 9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전시를 치른 바 있다. 그러나 당시 고건 전 국무총리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했을 때 생긴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이었을까? 고건 시장에 이어 서울시를 맡은 이명박 시장은 2002년 제2회에서 이 전시를 유명무실한 행사로 전락시키고야 말았다. 일례로 90억원에 달하던 예산은 형편없는(?) 수준으로 책정됐고, 독립된 전시조직위 역시 서울시립미술관 내 산하 조직으로 흡수되고 말았다.결국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서울시가 시민을 위해 2년마다 한 번씩 벌이는 문화 이벤트 수준에 불과한 행사가 되고 만 것이다.
이런 과거 때문이었을까. 사실 지난 해 열렸던 비엔날레 중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에 기대하는 미술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회에 이어 여전히 적은 예산과 이명박 시장의 장황한 인사말에 기껏 거금을 들여 초청한 세계적인 석학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간단한 인사말조차 듣지 못했던 지난 2회의 개막식을 기억하는 미술인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12월 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제3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를 다녀온 미술인들의 입소문이 비교적 좋아 보인다. 비록 90억원에 달하는 예산(1회, 2000년)도, 장 보드리야르라는 걸출한 사상가의 방문(2회, 2002년)과 같은 이슈는 없지만, 미술계 안팎에서 잘 ‘정돈된’ 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의 주제는 ‘게임/놀이(game/play)’. ‘디지털 호모 루덴스(Digital Homo Rudens)’라는 부제는 오늘날 디지털 문화에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현대미술의 또 다른 상징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전시에 참여한 42명(국내 7명, 해외 35명)의 작가들 역시 전쟁·상업성·몸/접촉·유희 등 4개의 소주제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시 개막 전부터 폐막일(2. 6)까지 곳곳에 배치한 큐레이터 특별 강연, 아티스트 카페, 워크숍, 국제 심포지엄 등 다양한 부대행사는 관객(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인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장소성을 충분히 살렸다는 평이다.
물론 전시를 비롯해 문화 현상을 바라보는 눈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이른바 ‘취향’이라는 것부터 ‘이데올로기’까지 다양한 패러다임이 작용한다. 따라서 이번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산을 감안할 때, 이 정도 결과는 대견해 보인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서울시 관료조직을 상대로 별 무리 없이 전시팀을 끌고 온 총감독의 노고 역시 박수를 받을 만하다. 게임 아트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틸만 바움개르텔)하고, 전시 공간을 디자인(한스 D. 크리스트)하는 등 네 명으로 이루어진 해외 큐레이터들 사이의 역할분담도 잘 이루어졌다는 평가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게임/놀이’)가 이른바 ‘게임 아트’라는 하나의 새로운 장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행운이었다. 그 동안 우리가 목격해 온 비엔날레는 거창한 인문학적 주제를 정한 후, 오히려 그것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관객들에게 ‘게임(아트)’이라는 분명한 키워드를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딜레마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중략)
이번 비엔날레의 성과 중 하나는 이번 비엔날레를 이끈 전시팀이 다음 비엔날레에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엔날레가 폐막하기 무섭게 총감독을 비롯, 전시팀이 해체되었던 국내 미술계 풍토에 비춰 이는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시팀 역시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이번 전시가 끝나는대로 바로 워크숍을 통해 다음 전시를 준비하겠다는 각오는 이를 잘 보여준다. 옳은 일이다. 그 동안 우리 비엔날레는 전시를 준비하기보다, 전시 총감독 자리를 놓고 자리싸움을 하기에 바빴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제발 전시가 끝난 후 1년을 허송세월하는 비엔날레가 아닌, 2년 내내 주제를 연구하고, 전시를 준비하는 비엔날레를 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비엔날레의 호스트 격인 서울시 역시 2000년 비엔날레를 처음으로 개최하며 ‘상암동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로 상징되는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원래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서울시가 동북아 중심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장대한 계획 중 하나였다). 미술계 역시 서울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를 위한 전용 전시관이 상암동에 조속히 세워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술계보다 뒤늦게 상암동 디지털 미디어 시티의 가능성을 알게 된 영화계가 이미 CJ엔터테인먼트, 싸이더스 등 굴지의 영화 제작·배급사를 필두로 상암동에 터를 닦은 사실을 그저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한 건, 비록 적은 예산으로 생색을 내는 데 그치고 있지만 서울시에게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미술인의 힘을 빌려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문화 행사라는 것이다. 서울시로선 이 비엔날레를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가 상암동 시대를 제대로 맞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테크놀러지와 예술을 하나로 묶으려는 서울시의 야망이 열매를 맺는 지름길일 것이다.
| 윤동희 기자
posted by 윤동희기자 at am 1:45
[윤기자의 아트 인사이드]
2004년 국내 미술계는 이른바 ‘비엔날레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를 시작으로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지난 12월 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제3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까지 우리는 세 개의 비엔날레를 지켜봐야 했다. 비엔날레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제 아무리 적은 규모의 비엔날레라고 해도, 10억원을 훌쩍 넘는 예산을 들여, 석 달 이상의 전시 기간 동안 수십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다녀가는 이 전시는 현대미술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실제로 100년 가까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베니스비엔날레의 경우, 이 전시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작가에게 커다란 혜택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우리의 비엔날레를 지켜보는 미술인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다. 아시아 최고·최대의 비엔날레라고 자평하는 광주비엔날레는 규모에 걸맞지 않는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지 못한 지 오래다. 비엔날레라고 보기엔 좀 쑥스러운 작은 규모의 부산비엔날레 역시 ‘광주가 비엔날레를 하니 우리도 한다’는 고집으로 비칠 뿐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첫 삽을 뜬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제법 특색 있는 비엔날레로 여겨지고 있다. 우선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한 미디어 아트의 오늘을 점검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온 국민이 네티즌이 될 정도로 우리 나름의 사이버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지금, 테크놀러지와 예술의 절묘한 만남을 보는 것은 제법 신나는 일이다.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를 주관하는 서울시 역시 이러한 점에서 착안했던 것 같다. 실제로 서울시는 1회 때 무려 9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전시를 치른 바 있다. 그러나 당시 고건 전 국무총리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했을 때 생긴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이었을까? 고건 시장에 이어 서울시를 맡은 이명박 시장은 2002년 제2회에서 이 전시를 유명무실한 행사로 전락시키고야 말았다. 일례로 90억원에 달하던 예산은 형편없는(?) 수준으로 책정됐고, 독립된 전시조직위 역시 서울시립미술관 내 산하 조직으로 흡수되고 말았다.결국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서울시가 시민을 위해 2년마다 한 번씩 벌이는 문화 이벤트 수준에 불과한 행사가 되고 만 것이다.
이런 과거 때문이었을까. 사실 지난 해 열렸던 비엔날레 중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에 기대하는 미술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회에 이어 여전히 적은 예산과 이명박 시장의 장황한 인사말에 기껏 거금을 들여 초청한 세계적인 석학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간단한 인사말조차 듣지 못했던 지난 2회의 개막식을 기억하는 미술인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12월 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제3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를 다녀온 미술인들의 입소문이 비교적 좋아 보인다. 비록 90억원에 달하는 예산(1회, 2000년)도, 장 보드리야르라는 걸출한 사상가의 방문(2회, 2002년)과 같은 이슈는 없지만, 미술계 안팎에서 잘 ‘정돈된’ 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의 주제는 ‘게임/놀이(game/play)’. ‘디지털 호모 루덴스(Digital Homo Rudens)’라는 부제는 오늘날 디지털 문화에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현대미술의 또 다른 상징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전시에 참여한 42명(국내 7명, 해외 35명)의 작가들 역시 전쟁·상업성·몸/접촉·유희 등 4개의 소주제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시 개막 전부터 폐막일(2. 6)까지 곳곳에 배치한 큐레이터 특별 강연, 아티스트 카페, 워크숍, 국제 심포지엄 등 다양한 부대행사는 관객(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인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장소성을 충분히 살렸다는 평이다.
물론 전시를 비롯해 문화 현상을 바라보는 눈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이른바 ‘취향’이라는 것부터 ‘이데올로기’까지 다양한 패러다임이 작용한다. 따라서 이번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산을 감안할 때, 이 정도 결과는 대견해 보인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서울시 관료조직을 상대로 별 무리 없이 전시팀을 끌고 온 총감독의 노고 역시 박수를 받을 만하다. 게임 아트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틸만 바움개르텔)하고, 전시 공간을 디자인(한스 D. 크리스트)하는 등 네 명으로 이루어진 해외 큐레이터들 사이의 역할분담도 잘 이루어졌다는 평가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게임/놀이’)가 이른바 ‘게임 아트’라는 하나의 새로운 장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행운이었다. 그 동안 우리가 목격해 온 비엔날레는 거창한 인문학적 주제를 정한 후, 오히려 그것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관객들에게 ‘게임(아트)’이라는 분명한 키워드를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딜레마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중략)
이번 비엔날레의 성과 중 하나는 이번 비엔날레를 이끈 전시팀이 다음 비엔날레에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엔날레가 폐막하기 무섭게 총감독을 비롯, 전시팀이 해체되었던 국내 미술계 풍토에 비춰 이는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시팀 역시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이번 전시가 끝나는대로 바로 워크숍을 통해 다음 전시를 준비하겠다는 각오는 이를 잘 보여준다. 옳은 일이다. 그 동안 우리 비엔날레는 전시를 준비하기보다, 전시 총감독 자리를 놓고 자리싸움을 하기에 바빴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제발 전시가 끝난 후 1년을 허송세월하는 비엔날레가 아닌, 2년 내내 주제를 연구하고, 전시를 준비하는 비엔날레를 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비엔날레의 호스트 격인 서울시 역시 2000년 비엔날레를 처음으로 개최하며 ‘상암동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로 상징되는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원래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서울시가 동북아 중심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장대한 계획 중 하나였다). 미술계 역시 서울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를 위한 전용 전시관이 상암동에 조속히 세워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술계보다 뒤늦게 상암동 디지털 미디어 시티의 가능성을 알게 된 영화계가 이미 CJ엔터테인먼트, 싸이더스 등 굴지의 영화 제작·배급사를 필두로 상암동에 터를 닦은 사실을 그저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한 건, 비록 적은 예산으로 생색을 내는 데 그치고 있지만 서울시에게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미술인의 힘을 빌려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문화 행사라는 것이다. 서울시로선 이 비엔날레를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가 상암동 시대를 제대로 맞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테크놀러지와 예술을 하나로 묶으려는 서울시의 야망이 열매를 맺는 지름길일 것이다.
| 윤동희 기자
posted by 윤동희기자 at am 1:45
[윤기자의 아트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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