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트림프(C. Trimp)는 1926년 출생하여 화란 캄펜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화란 캄펜신학교에서 실천신학 교수로 활동했다.
C. 트림프는 「설교학 강의」에서 설교의 주석 부분을 제시한다.
그는 “본문의 주석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여러 가지 편견이 있다. 우리는 이미 본문에 대한 처음의 직관적 인상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사용하는 번역서로 본문을 이해한다. 이 번역서에는 이미 본문의 많은 이해가 들어 있으며 그 속에 주석의 많은 역사가 나타났다. 또한 본문에 대해 우리는 이전에 이미 읽었거나 들은 적이 이다. 또한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우리 시대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단어의 모든 이해는 어떤 문화적 영역 속에 있다. 즉 보는 것과 듣는 것은 자기 시대의 문화의 영향 아래 있다”고 했다(C. 트림프, 설교학 강의, 18-19).
우리가 가진 편견은 주석을 통해 비평적으로 고찰되어야 한다. 이 체계적 주석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종종 깨닫지 못한 요소들을 깨달아야 한다. 그때에 본문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요소들을 내포한다. 또 그 본문이 우리가 겨냥했던 메시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종종 본문에 이끌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주석은 설교 작성의 성패가 달려 있는 작업이다.
C. 트림프는 본문에 접근함에 있어 해석학의 일반적 규칙을 소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첫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C. 트림프, 설교학 강의, 19). 이 믿음의 확산은 말할 것도 없이 본문 선택에서부터 설교까지 전 과정 동안에 결정적 요소이다. 이것이 본문의 취급함에 있어 전적으로 우리의 태도와 취급 방법을 결정한다.
신학적 주석은 본문을 출발점으로 하여 현대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해석학적 규칙을 배제하고 말씀의 문법적 의미를 무시했고 많은 경우 풍유로 격하했다. 즉 문법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것을 영적으로 해석해야 타당하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이 한 번 말씀하셨고 또한 현재 말씀하시는 말씀 즉 성경의 정경성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둘째, 우리가 말할 모든 것은 우리에게 성경 기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더 가까이 가져와야 하는 문법적 주석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다(C. 트림프, 설교학 강의, 20). 중세는 4가지 성경의 의미를 찾았다. 여자적, 풍유적, 도덕적, 신비적인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루터(M. Luther)는 중세의 4가지 의미를 버렸다. 개혁주의적 해석학은 한 본문의 깊은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은 문법적 의미에서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로 처음 말을 하는 자나 기록하는 자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하셨다(C. 트림프, 설교학 강의, 20).
셋째, 우리가 본문의 성경과 성경 각 권의 문학적 장르를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는 역사, 비유, 예언, 환상, 시, 계명 등이 있고 각 장르는 그 장르에 맞는 주석적 규칙을 요구한다.
C. 트림프는 「설교학 강의」에서 원어 성경 사용법을 제시했다. 첫째, 우리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번역된 말로 본문을 읽는다(C. 트림프, 설교학 강의, 21). 이것은 그 자체의 고유한 이미지를 가지도록 한다. 이 외에도 우리는 다른 번역서들을 가지고 있다. 즉 자국어나 외국어로 된 것들이다. 이것들을 놓고 비교함으로 많은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둘째, 원어 성경을 참조하고 문법책과 사전의 도움을 받아 단어의 정확한 문법적 의미를 결정하려고 시도해야 한다(C. 트림프, 설교학 강의, 21). 무엇보다 본문에 나타내는 것을 우리는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는 동안에 본문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에 이미 우리의 주의를 끌기 시작한다. 주석책을 먼저 보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며 그 뜻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은 단 하나의 주석책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 원어 성경을 통해서 성구사전, 병행구절, 핵심 단어, 동일 사상을 찾을 수 있다.
셋째, 문맥으로부터 적절한 주석을 시작하려 해야 한다(C. 트림프, 설교학 강의, 22). 성경 총론에 대한 정보를 모아야 한다. 동기, 주된 사상, 방향, 시대, 성경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낸다.
또 몇몇 주석책을 가지고 본문이 속한 전체적 부분을 공부하여 인접한 직접적 문맥에 친숙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너무 많은 주석책을 잡다하게 늘어놓으면 안된다. 설교자는 세 가지 다른 종류의 주석을 사용한다면 충분하다.
또 중심 단어에 있어 단어나 개념을 다루는 책이나 논문을 찾는다. 여기에는 유명한 성경사전들이 필수적이다. 설교자는 특별한 단어나 개념을 연구한 글에 생각이 없이 따라가면 안된다. 또한 우리는 역사적, 고고학적, 지리적 특징들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그 자체를 해석한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관련된 병행구절을 살피고 인용구는 세밀한 주석적 연구를 해야 한다.
C. 트림프는 「설교학 강의」에서 설교학적 주석이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이 용어는 설교자가 본문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의도하는 관점에서 회중을 보는 것이다(C. 트림프, 설교학 강의, 23). 주석이 결정되고 본문이 말하기 시작하고 우선적으로 주된 사상이 결정되고 주석들을 충분히 보았을 때에 설교자는 아직도 이것이 설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마치 요리를 위해 그 재료가 우리 앞에 있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요리가 아니듯이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그것은 묵상 혹은 설교학적 주석이다(C. 트림프, 설교학 강의, 24). 주석에서 분문의 방법적 연구를 하고, 본문 자체를 다루고, 설교자는 말씀의 봉사자가 될 때에 설교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본문을 소유하고 본문을 다룬다. 그러나 후에는 본문이 우리를 소유하고 다룬다. 설교자는 본문을 의존해야만 설교를 할 수 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성경적 설교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설교자는 설교 본문에 사로잡혀야 한다. 이것이 묵상의 첫 번째 목적인 것이다.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뜻을 깨닫게 하신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설교할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메시지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확신을 가지고 설교할 수 있다. 회중 앞에 올바른 감동을 줄 수 있다. 그것이 없다면 강의나 감동적 이야기에 불과하다. 성경은 단지 객관적 이야기, 설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에서 적용은 매우 중요하다. 적용할 주석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본문의 해석에 그치지 않고 그 해석을 회중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럴 때 회중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며 도전을 받고 그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회중은 현대인들이며 개인적으로 염려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는 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를 맞이하는 자들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교회의 전투에 참여하거나 그 속에 참여하기를 배워야 하고 성도 간에 교통하기를 배워야 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늘 그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들에게 말해야 한다. 그럴 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전달된다. 이런 묵상이 없는 설교는 뜨거움, 확신, 선포 능력이 없는 강의에 불과하다. 그래서 설교자는 이 묵상을 위해 시간을 사용해야 하고 이 메시지 속에 몰입을 해야 한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