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역사서

다윗 솔로몬 밧세바 우리야

은바리라이프 2018. 10. 10. 11:22

바울은 그것을 복음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은 끊임없이, 죄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역사 속의 다윗의 왕국을 허무시고 다윗조차 삭제시켜 버립니다. 그러니까 다윗 왕국은 역사 속에 회복되어야 할 왕국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기능적 역할을 마치고 사라져야 할 왕국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역사 속의 다윗 왕과 그 다윗 왕처럼 되고 싶어 하는 역사 속의 수많은 다윗 왕들을 기각시키고 다윗 왕이 모형하고 있던 진짜 하늘의 왕이신 예수를 부각시킵니다.

우리가 전에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를 공부하면서 성경이 일부러 그 족보에서 다윗을 빼 버리는 것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성경이 일부러 예수님의 족보를 14, 14, 14라는 숫자로 나누어 버리지요? 그것은 다윗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알파벳을 다 합한 숫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신약 성경이 이 족보는 너희들이 그렇게 기다리는 다윗에 관한 족보다라고 선언을 하고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다윗이 등장하는 중간의 14는 잘 세어보면 15여야 맞는데 성경이 어거지로 14라고 우기고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왜 15를 굳이 14라고 하는지에 관해 설명을 해 주는 부분이 밧세바의 호칭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어미 밧세바는 분명 다윗의 아내로 표기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아비가 다윗이니까요. 그런데 성경은 밧세바를 우리야의 아내라고 기록을 하고, 우리야의 아내가 솔로몬을 낳았다고 함으로 해서 솔로몬의 아비를 우리야로 끼워 넣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다윗이 족보에서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인간들이 기다리는 그 다윗 왕국의 왕이 예수의 족보에서 빠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솔로몬이라는 사람의 기능적 역할에 관해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그 이름 자체가 샬롬입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하 7장의 다윗의 언약을 보면 마치 솔로몬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삼하7:12~14)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보시다시피 솔로몬은 14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에 의해 맞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위만 영원합니다. 다른 모든 세상의 왕들은 제한적 왕의 삶을 살다가 결국 멸망으로 떨어지게 되지만 예수라는 왕만 영원한 왕위에 앉으실 분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고 상징적인 언약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의 솔로몬의 왕위는 그의 아들 대에서 둘로 갈라지고 얼마 있다가 둘 다 멸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솔로몬이 어떻게 출생을 하게 되지요? 우리야라는 장수, 하나님의 성전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전쟁을 치르던 무죄한 장수가 죽어서 태어난 자식입니다. 우리야가 죽지 않으면 솔로몬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우리야의 죽음은 솔로몬을 존재케 하는 죽음이었을 뿐 아니라 다윗을 살리는 죽음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 우리야가 대신 죽은 형국입니다. 우리야가 살아있을 때 다윗의 죄가 폭로되면 다윗은 왕으로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스라엘 왕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야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죄가 감추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야는 결과적으로 죄인인 다윗을 살리기 위해, 그의 죄를 감추어주기 위해 대신 죽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야의 역할을 부연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인물이 또 한 사람 나오는데 그 이가 사무엘하 12장에 나옵니다.

(삼하12:13-14)

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와 통간을 하여 낳은 첫째 아이가 다윗 때문에 죽습니다. 13절을 보시면 다윗에게 하나님의 용서가 선포됩니다. 여호와가 다윗의 죄를 사했기 때문에 다윗은 죽지 않을 거라고 나단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다윗대신에 다윗이 낳은 아이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시면 다윗의 아이가 죽는 이유가 나오지요? 뭡니까? ‘여호와의 원수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다윗 왕입니다. 마귀의 실체 다윗을 통해 나타난 것이니까요. 그러한 여호와의 원수 다윗 왕 때문에 다윗 왕이 낳아놓은 죄의 산물이 죽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그렇게 우리의 죄가 되셔서 죽으시는 예수의 모습을 기능적으로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야가 하늘의 장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존재의 모형이라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 번째 아이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시고 죽으시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야와 그 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이며 기능적인 인물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 군대의 장수 우리야와 자신의 죄의 산물인 아기가 죽음으로 자기 자신이 살게 된다는 그 십자가 복음을 다윗이 이해했습니다.

(51:7-8)

7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 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주세요.’라고 징징대던 다윗이 자신의 용서의 근거를 주께서 꺾으신 뼈로 대고 있습니다. 자기대신에 주님이 꺾으신 뼈가 있는데 그로 인해 자신이 용서받고 살아나게 된 것임을 그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이 꺾으신 뼈인 우리야, 그리고 그 우리야 장군의 역할을 설명해 주고 있는 첫째 아이, 그 꺾어진 뼈들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다윗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다윗이 용서받고 살아났다는 것을 입증하는 인물이 다윗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솔로몬인 것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라인에서 탈락되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는 인물인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로 죽게 되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아이가 솔로몬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태어났다는 것은 죽어야 할 다윗이 살아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인 다윗은 하나님께서 꺾으신 뼈 안에서 함께 꺾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둘째 다윗으로 부활을 하는 형국인 것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용서받은 다윗인 것이고, 죽어야 할 다윗이 어떻게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었는가를 온 몸으로 증거 하는 증거물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하자면, 솔로몬은 꺾으신 뼈 안에서 죽고,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한 하나님의 아들 역할로 이 세상에 온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의 진짜 맏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솔로몬을 예수의 모형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왕의 상징인 다윗은 죽고, 그 다윗 대신에 하나님이 세우시는 진짜 하늘의 왕인 예수가 솔로몬 안에서 등장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솔로몬을 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이고 그에게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따로 주시는 것입니다.

(삼하12:24~25)

24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 이더라

솔로몬은 평강의 왕으로 오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용서받고 구원받게 될 하나님의 교회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 ‘샬롬의 이름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는 여디디야인 것입니다. 그 이름은 여기에 딱 한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지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바로 그것이 여디디야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입니다. 솔로몬이 바로 그 예수의 역할로 이 세상에 왔던 인물인 것입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다윗이라는 죄인의 존재를 부정해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가 된 새로운 아들을 모형 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예수란 말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서 다윗이 빠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이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그 자신은 죄로 인해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로 인해 새로운 옷을 입고 탄생한 존재가 솔로몬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아비가 우리야로 기록이 되는 것이고 그 솔로몬 앞에서 다윗이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확하게 14대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야는 이미 죽어버린 존재니까요. 그는 육적 자손을 잉태하고 출산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영적 아들을 낳은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에서 다윗이 근사하게 14, 14, 14로 등장했다가 살짝 사라져 버리고 맨 나중에 예수만 오롯이 남는 것입니다.

보세요.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다윗 왕과 같은 힘 있는 메시야가 삭제가 되고 구유에 오신, 꺾어지는 뼈, 예수만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의 왕인 다윗이 아니라 세상의 종으로 오신 예수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 아들에 의해 우리의 왕의 추구, 용사의 추구가 꺾이고 새로운 몸으로, 하나님 절대 의존자로 새롭게 창조가 되는 것이 복음임을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