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판넨베르크

2. 도그마의 진리

은바리라이프 2018. 1. 9. 19:01

2. 도그마의 진리
교의학은 일반적으로 도그마에 대한 ?학문?, 혹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학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교리가 도그마들이나 도그마와 관계되는가? 
헬라어 “도그마”는 확실한 지식과 달리 주관적인 ?생각?(Meinung)이나, 또한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판결?(Beschluß)을 의미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단어는 신약성서에서도 발견된다. 누가복음 2장1절은 황제 훈령 기록문 17:7과 연관이 있으며, 그 기록문 16:4은 소위 사도 공의회의 판결을 가리킨다. ?판결?, 또는 ?구속력 있는 생각?으로서 도그마라는 단어는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에 의해서 기독교적인 교리 전승에 받아들여졌다. 그는 주님과 사도들의 ?교의들?에 대해서 언급했다(Magn 13,1). 이 경우에 이 언급들은 내용적인 면에서 윤리적 ?지침?이었다. 이것은 여전히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 학파를 창설한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처럼 매우 ?지성적인? 변증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경우였다(leg. 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2세기의 변증학 이래로 도그마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는 주로 ?생각?이라는 의미로, 즉 ?학습으로 인한 생각?으로 확실하게 받아들여졌다. 상이한 철학 학파의 ?교의들?과 상응해서 말이다. 이 단어는 철학 학파를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교리를 성격화하기 위해서 스토아 철학 이후로 통용되었다. 이와 상응해서 타티아노스는 기독교를 유일하게 참된 철학 학파로 이해했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교의들이라고 규정했다. 2세기인 그 당시에 예수의 윤리적 명령에 대한 사유가 전면에 부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그 다음 시대에 즉시 기독교인의 ?윤리?와 달리 신앙 교리와 연결되었다. 이 사실은 이미 오리게네스에게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도그마에 대한 기독교적인 개념이 철학 학파의 학설과 유비적인 관계를 갖는다면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이렇게 생각되어야 한다. 상호 대립적인 철학 학파의 학설에서 볼 수 있는 다층성에 맞서서 이 기독교적 개념이 ?인간에게 근거를 두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에 의해 언급되고 가르침을 받는? 것으로서 제시되었다고 말이다(Athenagoras leg. 11,1). 기독교 신앙은 인간적으로 가르치는 교리와 상관없다는 디오그네투스의 편지에(5, 3) 실제로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기독교 교리를 dogmata theou(하나님의 도그마)라는 특징으로 언급할 수 있었다(Mt Ⅻ,23).
이를 통해서 기독교 교리의 진리 요청이 제기되었으며, 동시에 이런 요청에 대한 결단이 선취되었다. 기독교의 도그마가 참이라면 분명히 인간적으로 학습된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도그마는 인간에 의해서, 교회와 그 교직자들에 의해서 조성되고 선포된다. 따라서 도그마가 인간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지 아닌지, 단순히 인간적인 발견이나 전통이 아니라 신적인 계시의 표현인지 아닌 지의 질문이 제기될 수 있으며,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이로써 도그마 개념과 연관해서 다시금 일반적 형식으로 신학 개념과 연결된, 그리고 플라톤이 시인의 하나님 선포라고 언급한 테오로기아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선 기독교 도그마는 교회 밖의 세계를 향해서 교회의 교리로서 제시되어야하는데, 이 교리는 고대 철학 학파의 회원들이 추구했던 학습된 도그마와 비슷한 방식으로 묶여져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고찰 방식은 기독교인 스스로에 의해서 전수될 수 있었다. 또한 지적인 면에서 겸손할 수 있었다. 이 지적인 겸손은 자기가 생각하는 고유한 교리를 하나님의 진리와 동일한 자리에 정치(定置)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케사레아의 에우세비오스(Euseb von Caesarea) 이후로 채용된 이 언어관용은 ?교회의? 도그마를 언급하고 있는데(hist. eccl. 5,23,2, 또한 6,43,2참조), 여기서 오리게네스와 다른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에 의해서 부각된 도그마의 신적 진리에 대한 요구는 포기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적 진리를 이런 요구의 인간적 담지자와, 또한 기독교인의 일치에 근거해서만 거론하고 있다. 이로써 진리 요구는 포기되지 않고 개방된다. 교회가 이런 요구의 보증인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담지자로서 등장하는 한에서 반드시 그렇다. 우선 에우세비오스가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데, 그는 도그마를 말할 때 내용적으로 공의회의 판결을,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과 같은 그 외의 일반적 신앙론을 생각한다(hist. eccl. 3,26,4). 그것을 뛰어넘어 이제 도그마를 교회 법에 (그리고 제국 법에) 의존시켜 보려는 작업이 일종의 숙명적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런데 그 발걸음의 진리는 별로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러한 확립을 통해서 교회가 행정적으로 교리를 선포해나가는 수용과정은 종결되고 조용해졌다. 이런 경향은 이미 4세기에 자리를 잡았다. 칼케톤 공의회(451)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형성된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훈령이 선포된 545년에 그것은 정점에 달했다. 즉 네 번의 공의회에서 형성된 도그마타(dogmata)는 성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권위가 부여된다고 선포되었다. 공의회 문서와 성서의 등급적 차이를 균등하게 한다는 이 사실은 일단 별개로 하고, 또한 5세기의 공의회와 4세기의 공의회 사이에는 분명히 등급적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별개로 하고, 네 번에 걸친 공의회의 정통을 고수한다는 황제의 신학적 판단에 동의하는 사람은 진리에 대한 질문을 법으로 확정하려는 시도를 근본적인 방향상실이라고 판단해야만 할 것이다. 법적인 확립을 통해서, 또한 국가적 힘의 수단을 통해서 강요할 수 있다고 보고 그렇게 시도하는 근거는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하나님 계시의 종말론적 진리를 바로 그런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양식으로 견인해낼 수 있다고 여긴다는 데에 있다. 교리의 독단론(Dogmatismus)을 법적인 확립과 국가적 강제에 연결시키는 것은 기독교 역사에서, 특히 서구 기독교에서 근대에 돌입할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일종의 숙명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이런 결과로 도그마 개념이 악평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도그마와 신앙의 강요는 동일한 게 아니다. 신앙의 강요는 도그마의 진리에 대한 논쟁을 결정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것은 원래 혐오적인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목표에도 적합하지 않은 수단이다. 
신앙의 강요는 도그마의 진리에 동의하라고 다그침으로써 그 진리 자체를 확정하려는 시도다. 동의는 진리라는 특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판단해야만 진리의 보편성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의 이러한 조화가 신앙의 강요를 통해서 수행될 때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강요에서 자유로운 동의만이 진리의 준거로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벵쌍(Vinzenz von Lerin)은 434년 자신의 저서 Commonitorium pro catholicae fidei antiquitate et universitate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제를 제시할 수 있었다. 보편적 교리인 그것을, 즉 전체 교회의 도그마인 그것을 확립하려면 모든 곳에서 모든 이들에 의해서 믿을 만한 것으로 제시되어야만 한다(curandum est, ut id teneamus quod ubique, quod semper, quod ab omnibus creditum est, Kap. 2, 5). 이 경우에 벵쌍은 도그마의 정체성이 그것의 공식화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실질적 내용에 달려 있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공식화에는 발전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분명하다면 새로운 공식화가 신앙 내용의 정체성을 보증하는지 아닌지 논쟁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교도들의 여러 인간적 생각에 맞서 벵쌍주의자가 신적인 도그마를 확립하기 위해서 제시한 동의 준거는 아주 손쉽게 적용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앙의 공식화가 변화하는데도 불구하고 신앙적 내용의 정체성이 인정받으려면 다시 한 번 시험과 결정의 다른 법정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16세기 이래로 신학적으로 벵쌍과 연결되어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주교들과 교황이 갖고 있는 교회의 가르치는 권위에 근거해서 동의 준거를 보충했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주교들의 결합체나 교황이 자신들의 기능이라는 점에서만 전체 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면 자신들의 교권에 기대어서 신앙 동의를 구하려는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이로 인해서 주교들과 교황의 교리 권위는 오랫동안 교회의 교권을 통해서 도그마의 진리를 권위적으로 보증하려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에도 여전히 피데이 도그마타(fidei dogmata, DS 3017)라는 표현이 구속력을 갖는 교회의 교리로 등장한다. 즉 그 교회의 교리가 하나님에 의해서 믿도록 계시되었다고 말이다(DS 3011: … tamquam divinitus revelata credenda proponuntur). 행정적 교리 진술이 실제로 신자 전체에게 교리 동의로 존속되기 위한 준거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그 교리 동의는 교회의 교직자들에 의해서 공식화되도록 요구되는데, 이런 것과 별로 연관이 없다. 이런 점에서 동방교회의 신학과는 다르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수용에 완전히 의존된 것만은 아니었다.왜냐하면 교황이 자신의 직무에 의지해서(ex cathedra) 전체 교회의 이름으로 이루어놓은 교리 진술이 교회의 동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ex sese, non autem ex consensu Ecclesiae) 정당하며 영원불변 하다는 공의회의 유명한 명제(DS 3074)가 다음과 같이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런 진술은 다른 법정을 통해서 결코 형식적으로 확증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이런 진술을 수용하는 사실적인 과정이 이런 진술로 하여금 교회생활과 신앙 의식에 자리를 잡도록 결정할 것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유보되어 있었다. 
물론 실제로 존속하고 있는 교회의 동의도 역시 (소요된 시간에 대해서나, 혹은 시간을 초월하는 연속성에서) 이미 자기 자체로만 신앙론의 진리에 충분한 준거가 될 수는 없다. 도그마의 진리에 대한 동의 이론은 진리 일반의 단순한 동의 이론이 갖는 취약성을 보강한다. 동의는 진리의 보편성을 확보하는 표현과 징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단체, 공동체, 그 문화에 속한 회원들에게만 해당되는 단순 협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예컨대 지구의 위치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주장이 불가침의 진리로 통용되었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표상이 근대 초기에 단순한 협정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증명될 때까지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종교 개혁의 세기와 17세기 초 모든 논쟁적 종교 정당들에게서 종교의 단일성이 사회의 단일성을 위해서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나중에는 이런 이해가 단순히 협정적인 논증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협정적인 기초논증은 결코 의사교환을 강압적으로 제한시킬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기초 논증에 대한 질문에서 필요할 수도 있는 도전의 부족과 인간의 안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광범위하고 대단히 보편적인 동의를 얻는 경우에도 역시 이 동의는 여전히 진리를 나타내는 데에 충분한 준거가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표상 형식과 논증이 아주 심원한 깊이에서 인간 본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비록 진리에 상응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거의 의심을 받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기에는 제거되기 어려운 전체 집단의 편견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집단의 유전적 조화에 착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은 모든 개인의 동의를 통해서도 역시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서구 중세기 기독교적 기초 논증의 명백성은 그렇게 높은 수준에서 자명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기독교인의 동의가 충분한 진리 준거에 도달되지 못하면 못할수록 기독교인의 전(全)세계적 동의가 다른 방향에서 의미를 획득하고 추구된다. 
동의의 관점은 교회론에 대한 종교개혁의 이해에서도 역시 몹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조(CA7)에 따르면 consentire de doctrina evangelii et de administratione sacramentorum(복음의 도그마와 예전 집행에 대한 동의)라는 명제는 교회의 단일성을 위한 필연적인 총괄개념이다. 루터에 따르면 이러한 교리 동의는 공동의 신앙고백에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교회의 신앙고백은 교회 일치의 토대가 되는 교리 동의에 대한 표현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앙고백에 대한 루터의 이해에서 볼 때 여러 개혁 교회의 신앙고백의 기능에서 일어났듯이 지역 교회를 재편하기 위한 토대로서의 지역적 동의만이 핵심은 아니다. 루터의 신앙고백은 일관해서 복음의 교리와 예전 집례에 대한 전체 교회의 동의를 목표로 한다. 따라서 성서에만 관계되는 게 아니라 고대 교회의 교리와의 조화에도, 특히 니케아 신조와 콘스탄티노플 신조와의(CA1) 조화에도 관계된다. 교리의 진리를 가늠하는 준거로서 동의는 이런 것으로서만이 아니라 복음적 가르침과의 조화이기도 하다. 교회의 교리에 대한 동의는 우선적으로 consensus de doctrina evangelii(복음의 도그마에 대한 동의)로서 무게를 갖는다. 복음과 말씀에 대한 소명으로 동의 사상의 주변 상황이 근본적으로 극복될 수 있는지 아닌지 질문할 수 있다. 신약성서의 증언과 일치한다는 것은 물론 이 말씀 안에서 표현되는 원시 교회의 교리, 그리고 선포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성서 증언과의 일치는 동의 사상이라는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말하자면 교회의 전승에 대한 동의를 앞서서 제기하는 준거로서 처음부터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벵쌍의 동의 개념은 우선 사도의 선포에서 교회 교리 전통의 근원과 일치하는 데에 그 무게가 있다. 이런 교리 전통이 신약성서에는 은폐되어 있었다. 콘센수스 데 독트리나 에방겔리라는 루터의 기초 구상은 바로 이 점에서 분명히 무언가 다른 관점을, 즉 교회의 복음과 성서에 앞서 주어진 하나님 말씀의 규범적 기능을 제시한다고 보아야 한다. 성서와 교회에 대칭적인 것이,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말씀에 증거된 교회의 교리와 신앙고백에 대칭적인 것이 종교개혁 신학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즉 교회의 신앙고백은 결코 신앙의 새로운 항목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말씀에 증거된 복음에 대한 신앙만을 고백한다(Luther WA 30/2, 420).
교회 교리에 대한 종교 개혁적 이해는 결코 단순히 동의를 확보하려는 이론적 성격이라고 할 수 없다. 복음과 교회의 대칭적 명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전제한다. 첫째로 복음은 신약성서에 있는 원시 기독교의 증언과 구별될 수 있다. 즉 복음이 그 증언들보다 단지 앞서 주어진 것만은 아니다. 둘째로 내용적인 면에서 일치하는 복음은 신약성서 기자들의 상이한 신학적 전망과 대칭적인데, 신약성서에서 이런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전제는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양자는 가톨릭교회에 의해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 경우 오늘의 가톨릭교회는 무엇보다도 ?말씀의 신학적 단일성?이라는 전제에 집중하는데, 이 전제는 종교개혁이 전제한 것처럼 성서 말씀 자체에서 어떤 부가적 요소를 제공하지 못하면 부각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의 단일성은 오히려 ?이해와 해석의 영에서만 최종적으로 현실화?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주석에서 개개 신학자의 사적인 판단이 권위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지, 아니면 차라리 이 판단이 교리 문제를 완전히 대표하고 있는 교회에게 주어져 있는지, 이를 통해서 (교회의) 동의에 최종적인 권위가 기능하고 있는지 말이다.
말씀의 단일성이 그 중심적 사태에 관해서 주석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만 모색되고 발견될 수 있다는 논리가 용인되어야 할 것이다. 말씀의 ?실질?은 무언가 주석 없이는, 그리고 이것과 연결된 해석학적 전망의 상관성 없이는 획득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일반적이며 해석학적인 근본 명제는 유지될 수 있다. 즉 모든 해석학적 특성이 우선적으로 해석 행위의 시초에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되어야할 텍스트의 실질이 해석자에게 이미 주어진 것으로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 없이 해석자가 본문과 맺고 있는 결합은 시인들의 그런 자유와 더 이상 구별될 수 없을지 모른다. 언어를 통해서 본문의 저자가 의도하는 것으로서 드러난 본문의 실질은 주석의 표준이어야만 한다. 
이 경우에 협의적인 면에서 주석 작업은, 즉 저자의 실질적 의도를 밝혀내는 작업은 해석자의 실질에 대한 이해와 완전히 분리되는 게 아니다. 해석자의 실질적 이해와 텍스트의 실질적 진술의 역사적 차이가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만 세세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이 아무리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이 양자는 그렇게 간단히 한 묶음으로 정립될 수 없다. 텍스트와 해석자 사이의 모든 차이가 해석되어야 할 텍스트 내부에서 발생하는 경우에 해석자에게 인식될 수 있는, 또한 그의 세계이해와 연관되는 실질이 관건이라는 점을 전제하지 않으면 어떤 이해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도 역시 실질의 단일성이 해석자에게 리얼리티라는 점에서 그것이 해석자의 정신에서만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은 옳다. 그러나 이로써 실질이 완전히 해석자의 자유 선택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역시 타당하다. 동시에 여기서 개개인의 사적인 판단이 핵심인지 아닌지, 혹은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교회 행정당국이 핵심인지 아닌지의 문제도 역시 그렇다. 오히려 개인적이든지 공적이든지 모든 해석은 실질의 진리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갖고 있다. 어떤 해석자도 실질의 진리를 결정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진리는 해석에 대한 논의 과정을 통해서 결정된다. 
실질(Sache)의 진리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타당성을 획득하는가? 말씀의 실질은, 즉 신약성서의 상이한 말씀에서 그 상이성과 상관없이 유지되는 그 공동의 실질은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즉 신약성서 기자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나사렛 예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를 증언하고 있다고 말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가 교회와 모든 개개 기독교인의 신앙적 대상으로 증언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나사렛 예수와 그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에 맞닿아 있었다. 이것은 바로 기독교의 신앙고백과 도그마의 내용이다. 이런 한에서 신앙고백과 도그마는 사실상 말씀의 중심을 요약한 것이다. 이런 핵심만 있으면 말씀의 실질은 기독교 신앙의 대상으로서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이 실질은 모든 핵심적인 진술을 통해서 잠정적으로만 특징을 드러낸다. 말씀이 부단히 번역되기만 한다면 이 실질의 윤곽은 여전히 종결되지 않는다. 그 인식은 늘 강물과 같다. 이것은 말씀과 기독교 신앙의 실질이 갖는 특징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데서만이 아니라 또한 이것과 연결된 진리에 대한 질문에도 해당된다. 이 질문은 나사렛 예수 안에 나타난, 즉 말씀으로 증언된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것이다. 그 행위의 내용이라는 관점만이 아니라 그 진리라는 관계에서도 역시 도그마는 칼 바르트가 말한 바와 같이 일종의 ?종말론적인 개념?이다.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날 최종적인 하나님의 계시는 나사렛 예수에게서 일어난 하나님의 행위가 갖는 내용과 진리에 대한 최종적인 인식을 야기할 것이다. 역사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최종적 가르침이라는 권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 안에 일어난 이런 하나님의 행위말고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에 대한 인식이 전혀 가능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즉 하나님이 역사적 행위로서 자기를 인식하도록 할 것이라는, 그러나 여전히 논쟁적인 전제 밑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인식은 시간과 역사가 계속하는 한, 그리고 이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에 대한 성서 증언의 해석이 계속되는 한 여전히 잠정적이다. 
도그마의 내용과 진리는 교회의 동의에 토대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선 말씀의 실질에 대한 인식이 그것의 동의를 야기한다. 이 경우에 인식의 공유는 물론 실질의 간(間)주관적 정체성을 확증하게 한다. 그러나 동의는 늘 거듭해서 갱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의 해석은 말씀의 실질에 담긴 특성과 진리라는 관점에서 지속되기 때문이다. 신학의 공식화에서처럼 교회의 신앙고백에 대한 교의학적 공식에서 그 내용을 잠정적으로 옮겨 적는 것은 늘 거듭해서 시험받아야 한다. 이 시험은 교회의 신앙고백과 도그마에 대한 주장을 타당하게 하는 실질의 진리와 마찬가지로 그 특성을 규정하는 것과 연관된다. 이런 시험은 동시에 도그마를 해석한다. 왜냐하면 도그마로 하여금 말씀의 중심적 실질 사태를 집약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로 해석하려는 요구에 응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루어지는 도그마의 해석과 시험은 교의학의 과업이다. 교의학은 도그마의 진리에 대해서 질문한다. 그 다음에 교회의 도그마가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고 있는지, 또한 하나님의 도그마 자체를 말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그래서 교의학은 도그마를 해석함으로써 이런 질문을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