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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와 메추라기 -만나 편- 2015.03

은바리라이프 2015. 5. 16. 00:34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14

만나와 메추라기

-만나 편-

 

 

만나와 메추라기

이스라엘 백설들이 엘림을 떠나 시내산을 향해 가다가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쯤에서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하나님의 손에 죽었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온 회중이 광야에서 주려 죽게 됐다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때는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니 출애굽 후 한 달쯤 된 시점이었다. 장정만 60만 명, 200여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달 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가축과 곡식을 다 먹은 탓에 양식이 없다며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이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어 양식으로 삼게 하셨다. 만나와 메추라기 중에서 먼저 만나에 대해 살펴본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

이스라엘의 진 주변에 이슬이 내렸고, 그 이슬이 마른 후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이 생겼는데, 이것이 만나였다. 만나는 깟씨같이 희고 꿀 섞은 과자처럼 단맛이 났다. 그러나 사실 만나는 정확한 이름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고 둥근 물체를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서로 “이것이 무엇이냐?” 하며 물었다. 이때 ‘무엇이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만’에서 만나라는 이름이 비롯됐다. 만나는 만의 헬라식 표기다. 마치 호주 원주민들이 서양인들이 문의한 동물의 이름에 대해 ‘모른다(캥거루)’고 한 대답이 그대로 이름이 된 일과 유사한 상황이다.

그때부터 만나는 이스라엘 40년 광야생활의 주요 양식이 됐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200만에 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만나의 양이 하루에만 4500톤이라고 한다. 6일째에는 갑절인 9000톤이 떨어졌고, 이 일이 40년동안 지속됐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로써 이스라엘이 굶주림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었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이었다. ,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양식이며,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을 가리키는 소품이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진리를 담고 온 하늘의 양식이며 생명의 떡이니 만나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만나는 작고 둥글고 모나지 않은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 말씀은 온전하고 모순이 없다. 만나는 또한 깟씨 같이 희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순전하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편12:6)

만나는 하늘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걸 바르게 알고 먹은 자가 영혼의 구원,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만나는 아침에 이스라엘의 진 주변에 떨어졌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은 바로 우리 가까이 있다. 멀리 있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곁에 있다. 그런데 “만 후?(이게 뭐야?)” 하면서 그것이 뭔지 모르고 먹으면 광야에서 다 죽는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의 시험에서 마귀에게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답하신 것이 이스라엘의 실패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이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것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로 먹이신 것과 같은 일이다. 광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이 하늘의 양식,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을 여전히 만나로 보면서 이 세상의 행복을 주는 분으로 오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의 양식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일상의 행복을 채워주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로 몰아 십자가에 달아 죽였던 것이다.

광야에서 1세대 60만명이 모두 죽는 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떠나간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양식, 그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일이다.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뜻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애굽에서 건져 내어 온 당신의 백성들을 광야에서 굶주리게 하시고 목마르게 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8:2)

하나님이 성도로 하여금 광야 인생을 살게 하신 이유는 낮추시고 시험하기 위함이다. 선악과를 먹고 목이 곧아진 자, 스스로 하나님이 된 자들이 하나님만 참 하나님임을 깨닫고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낮추심이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내가 하나님만을 믿는 자가 맞는가?’를 돌아보게 하고, 날마다 그 시험에 실패하면서 자신의 믿음 없음을 거듭 확인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시험이다. 그 시험은 나의 믿음이 나날이 성장하는 것을 기뻐하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 없음을 깨닫고 나의 불가능을 확인하는 것이 이 시험의 참된 목적이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우리에게 물어보시는 것이다.

광야 인생은 우리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만 절대적으로 믿는 자로 지어져가는 시간이다. 그 설득의 기간이 광야 인생인 것이다. 인생은 업적과 공로를 쌓아서 천국 입장권을 얻어내는 시간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 외모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포함하며, 중심은 마음(레바브)을 뜻한다. 참된 성도는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닫고 절로 무릎을 꿇어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지어져 가며, 그 자체를 복이라고 한다.

 

다가오는 날을 위한 양식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6:11)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한 구절이다. ‘일용할 양식’을 우리는 흔히 우리의 일상에 필요한 어떤 것들로 이해하며 구한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은 성경의 훈노트에 ‘내일의 양식’으로 나와 있고, ‘일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우시오’는 ‘다가오는 날을 위한’이란 의미도 있다. , ‘일용할 양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6일에 함께 얻던 ‘내일의 양식’인 안식일의 양식을 가리킨다. 하늘의 양식, 생명의 말씀은 이 세상의 일상을 위한 양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살이를 위한 것으로 오해하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멸망한 자들과 같은 운명이 되는 것이다.

다가오는 날을 위한 그 양식은 반드시 ‘그 안식의 날’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담고 있다. 만나,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말씀은 이 땅의 행복이 아니라 새 하늘 새 땅으로 다가오는 그 안식의 날을 소망하는 자에게만 참된 생명의 떡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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