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칼럼&공부

[스크랩] 금식에 관하여

은바리라이프 2015. 5. 15. 14:16

금식에 관하여

 

1.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금식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을 줄로 안다. 금식은 사실 기독교 안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사회 일반에서 자주 있는 일들로서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수단의 한 방법으로 활용되는 것이 바로 금식이다. 그만큼 금식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금식은 유명하다. 이처럼 자기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지만 성경에서 뜻하는 금식은 이와 전혀 그 내용이 다르다.

 

 

2. 그런데 이따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금식도 바로 이와 같이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금식으로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입학 시즌이 되면 금식 기도가 유행을 하다시피 하고 있다. 어디 교회뿐이랴.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가 그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금식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3.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을 성경을 통해 먼저 알아보자.

8:19 만군(萬軍)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금식(禁食)과 오월의 금식(禁食)과 칠월의 금식(禁食)이 변(變) 하여 유다 족속(族屬)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喜樂)의 절기(節期)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眞實)과 화평(和平)을 사랑할지니라.

 

 

4. 지금 인용한 말씀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하 25장과 렘 39장, 렘 52장을 읽어보아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바벨론의 침공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벨론 군대들이 성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있었기에 성내에는 먹을 것이 모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을 때에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성벽을 헐고 나가서라도 먹을 것을 구하려고 했었다. 물론 왕은 피신하려 했을 것이고 말이다. 이렇기에 성내의 사람들은 당연히 금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5.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와 같은 유래로 인하여 유다와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점으로 하여 금식을 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금식은 자의적이거나 아니면 자기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금식이 아니라 나라와 성전의 멸망을 인한 금식이었던 것이다. 어찌 면 필연적인 금식이 된 것이다. 그들에게 주신 절기 이외에 그들의 연중행사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의 금식을 한탄하고 계시다. 이들의 금식을 하나님께서 한탄하시고 책망하신 이유는 금식을 그들의 오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6. 오락이라고 하면 우리가 얼른 생각하기를 먹고 마시고 춤추는 일을 생각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마치 오늘날의 음주 가무 형식 말이다. 그러나 이런 오락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참고로 오락이라는 히브리어의 원어 즉 본뜻을 알아보자. 히브리어로 오락이라는 말은 헤페츠로 그 뜻은 기쁨이란 본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자기의 소원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금식을 오락이라고 하신 뜻은 자기들의 소원을 인하여 금식을 한다는 뜻이다. 이런 금식은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말이다.

 

7.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금식을 금하라고 하신다. 오히려 매여 있는 결박에서 풀어주라고, 그 멍에를 끌러 주리고 하신다.(사 58:6) 그러면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박과 멍에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신약에서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신 것들을 상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바리새인들의 유전이 그 바탕일 것이라는 예측이 충분하다. 그 이유는 금식을 주님은 전혀 다른 뜻으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금식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전해지고 받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8.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는데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칫집에서 금식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계신다.(9:15) 그러면서 신랑을 빼앗기게 되면 금식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요 6장에서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인 생명수를 뜻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사 58장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은 그 결박과 멍에를 풀러 주는 것이라고 하셨으니 이사야의 입으로 말씀하신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특히 이러한 상황들은 에례미야 선지자 때로 들어오면 더욱 그러하다.

 

9. 물론 이사야 선지자 때에도 말씀을 상고해 보면 다음의 말씀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29:13 ()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百姓)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尊敬) 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敬畏) 함은 사람의 계명(誡命)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처럼 사람의 교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였으니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제사장들의 입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을 리가 만무하였을 것이다. 호세아의 말씀을 보라. 제사장들이 나의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그들을 버려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다.

 

 

10. 호 4:6

내 백성(百姓)이 지식(知識)이 없으므로 망(亡) 하는도다 네가 지식(知識)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祭司長)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子女)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러면 제사장의 임무는 무엇인가? 역시 말씀으로 이를 확인해 보자. 2:7 대저 제사장(祭司長)의 입술은 지식(知識)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律法)을 구(求) 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祭司長)은 만군(萬軍)의 여호와의 사자(使者)가 됨이라고 하신다. 그러니까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식을 주의 백성에게 전해야 한다고 하고 계신다.

 

11. 그러나 제사장들은 어떠했는지를 주님 때의 바리새인들을 들여다보자. 주님께서 지적하신 말씀이다.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自己)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다시 구약의 말씀을 찾아보자. 45: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의 치르자(治理者)들 아 너희에게 족하니라. 너희는 강포(强暴)와 겁탈(劫奪)을 제(除) 하여 버리고 공평(公平)과 공의(公義)를 행(行) 하여 내 백성(百姓)에게 토색(討索) 함을 그칠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2. 45:10 너희는 공평(公平) 한 저울과 공평(公平) 한 에바와 공평(公平) 한 밧을 쓸지니라는 말씀을 보면 당시 제사장들이 헌물의 잣대를 임으로 정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 58:6의 말씀은 당시의 제사장들과 치리 자들의 횡포를 잘 엿볼 수가 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결박을 풀어주라고 하실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말라기부터 영적 흑암기라고 하는 400여 년 동안을 계속하여 주님 때까지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전 율법 고르반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을 범하게 한다고 하셨다. 하기야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의 처 이세벨은 궤계를 꾸며 그를 비류들의 손에 죽게 하고 결국 포도원을 차지하지 않았던가!

 

13. 지금까지 알아본 것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들의 금식이요, 결박이요, 멍에였다면 이제 신약과 지금 우리 믿음 안에서의 결박과 금식을 알아보자.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금식이 있는데 그 금식은 바로 아담과 하와의 에덴에서 쫓겨남이다. 여기서부터는 하나님의 생기의 호흡이 끊어진 상태로 이는 곧 금식이다.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인 것이다. 이로 보건대 금식은 이미 창세 이후로 에덴 밖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즉 에덴 밖이 금식인 것이다. 그래서 이같이 금식하는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을 택하고 그 후손들에게 법을 주셨으니 이는 금식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시작된 일다.

 

 

1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온전히 알지 못하였고, 깨닫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를 자기들에게 죄를 더한 것쯤으로 생각했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의 로마서 말씀처럼 율법을 인하여 죄를 더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이 세상에 오셨고 내가 그 생명의 떡으로 왔노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리라고 하신 것이다. 조상들은 광야의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나의 피와 살을 먹으면 죽지 않고 영생하리라고 했다. 이제 금식하던 자들에게 금식이 풀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생명의 떡인 주를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처럼 그들은 금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곧 십자가의 죽음이다.

 

15. 지금까지 살펴 본 바로 정리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의 먹거리를 금식했다면 이제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신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금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미 아모스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해 놓으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과 기갈인 것이다.(8:11) 이미 요 4장에서는 예수님이 생수라고 증거하시지 않았는가? 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신랑을 빼앗기면 금식할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면 지금도 금식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음을 알아야 한다.

 

 

 

16.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한다면 아직도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은 금식하고 있는 것이다. 신랑인 예수가 없다는 증거가 되니까 말이다. 신랑인 예수가 없는데 어찌 그 피와 살을 먹고 마실 수 있으며, 이러한 자들이 어찌 기근과 기갈의 상태가 아닌가?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금식을 깨달았으면 자기의 오락 즉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금식하지 말고 신랑 되신 예수님이 빨리 오시기를 염원하는 금식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도 들으시지도 않는 자기의 뜻으로 하는 억지의 금식으로 배만 고플 뿐이다.

 

17. 이제 주님이 속히 오셔서 생명의 양식을 풍성히 먹고 마시며 이로써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금식 기도를 한다면 독자에게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응답이 속히 이루어질 것이다.

8:19 만군(萬軍)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禁食)과 오월의 금식(禁食)과 칠월의 금식(禁食)이 변(變) 하여 유다 족속(族屬)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喜樂)절기(節期)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眞實)과 화평(和平)을 사랑할지니라 함과 같이 또 마 6장의 기도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항상 잊지 말고 구해보라.

 

 

18. 금식 기도가 아니라 이렇게 기도만 해도 속히 주님이 오셔서 풍성한 양식을 주시리라.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결코 양식이 없다. 먹고 마신다 할지라도 자기 생각일 뿐이다. 영생의 양식은 오로지 주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의 바울의 고백과 같다.

 

 

 

 

19.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熱心)으로 너희를 위(爲) 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淨潔) 한 처녀(處女)로 한 남편(男便)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 함이로다 함과 같다. 어떠한가? 이제 당신의 금식을 금식할 때가 이르지 않았는가?

 

 

 

 

출처 : 이 태수
글쓴이 : 골똘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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