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땅의 물리세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묵시세계 속으로의 함몰은 반드시 물리세계 속의 것들의 파괴가 전제되는 겁니다. 부수고 다시 세우는 겁니다. 왜? 이 피조물인 인간은, 인간들의 한계가 이 호 코스모스의 세상 속에서 그 진리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아예 없어요. 그래서 성령이 오시는 겁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 껍데기를 벗겨줍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벗기는 것이 육체의 껍데기입니다. 그걸 십자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육체를 십자가에서 도륙당하는 겁니다. 껍데기를 확 벗겨주는 겁니다, 껍데기가 벗겨지고 진리의 영이 드러나는 겁니다. 생명으로.
십자가가 바로 그 원리를 보여준 훌륭한 시청각 교재였던 겁니다.
아람어나 히브리어 19번째 문자 '코프'가 바로 그러한 뜻을 가진 문자입니다. '부수고, 파괴하고 다시 세우다'.
인간들의 문자 안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원리가 들어가 있어요.
그 '파괴'가 너무 자극적, 공격적이다 싶으면 '부정' '부인'으로 바꾸어도 됩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귀에 들리는 것, 내가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은 사실은 실체가 아니고 모형입니다.
내 육신과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내 현실이 아니고, 이것은 무언가를 교훈하기 위한 그림자 같은 것이다,라고 그 실체를 설명하기 위한그릇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아 알게 되면 그걸 '자기 부인'이라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든지 꾹 참고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허벅지 찔러 가며 가는 게 자기 부인이 아니라
그걸 아는 거, 그게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파괴입니다. 그렇게 파괴되어야 다시 세워질 수가 있어요.
그게 십자가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그 십자가가 내 십자가가 되는 겁니다. 아니면 그냥 예수의 십자가에요. 자기 십자가가 아니라니까요.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 지고 와' 하셨어요.
성도의 인생 속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그 물리세계의 파괴가 경험되어야 되는 거고, 그것이 옳다는 게 그 안에서 인정이 되어야 돼요.
'그래, 이렇게 부서지는 게 맞지! 그래야 진짜 가치, 진짜 생명이 뭔지를 내가 알지. 그게 맞지.'
따라서 우리가 바라보고 의존하고 애착을 갖고 있는 이 현상계의 것들이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부정되고 부인되고 말씀의 검에 의해 잘라져 나가고.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쏟아지는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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