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다니엘서와 종말사상
제1장, 다니엘의 예언과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예수님의 종말론적 교훈
(마24:1-51; 25:1-46)
1.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
우리는 구약성경 다니엘서를 살펴 묵상하기에 앞서 그에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니엘서는 사건 발생순서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 아니라 종말에 연관된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예언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과 그것의 파괴에 관한 언급과 더불어 종말론적 예언을 하시면서 구약시대의 다니엘을 특별히 언급하고 계신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집’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솔로몬에 의해 건립된 첫 성전은 BC586년 신바벨론 제국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나중 페르시아 제국의 관용정책으로 인해 가나안 땅 고토(古土)로 귀환한 유대인들이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하고 성전을 재건했으나 그 수난의 역사는 끊어지지 않았다.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왕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화려한 모습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중이었다. 헤롯은 BC19년 성전을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 짓기 시작했는데 대다수 유대인들은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처음에는 그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예루살렘 성전 건물이 다시 지어지고 수리가 된 것은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작업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비록 헤롯왕과 유대인들이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부지중에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 가운데 그 일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그 성전을 중심으로 복음사역을 전개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날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과 자신의 몸에 연관된 특별한 교훈을 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거룩한 성전에 비유하시며 자신이 성전보다 크다는 사실을 언급하셨던 것이다(마12:5).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향해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고 힐난하시면서 그렇게 하면 자기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겠노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마26:61)
물론 이 말은 예루살렘 성전을 빗대어 예수님 자신의 몸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그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시게 될 사실을 언급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에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마저도 그가 부활하신 후에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위의 말씀 가운데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이해해야만 할 내용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몸과 동일시되고 있는 성전을 헐게 되는 주체가 배도한 유대인들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헤롯왕이 지은 돌 성전이 유대인들이 아니라 로마인들에 의해 파괴된다는 사실과 비교해 이해해야만 한다.
예수님으로부터 그런 말씀을 가까이서 들은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볼 때 무언가 더 깊이 깨달아야만 할 내용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본질적인 의미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24:1,2)
과거 구약시대의 역사 가운데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파괴 사건은 당시 모든 유대인들에게 매우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성전파괴를 앞두고 예레미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이 그에 대한 예언을 했지만 배도에 빠진 유대인들은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나 배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성전파괴로 이어졌다.
이는 당시 대다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을 때 그들의 소망은 완전히 끊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였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성전의 본질적인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마태복음 24장에서 말하는 성전파괴 역시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악한 자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임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본질적인 유익을 가져왔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성전은 때가 되어 구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됨으로써 그 역할을 완성해야만 했다.
2. 예수님의 ‘다니엘’ 인용
(1) 예루살렘 성전파괴와 종말에 대한 관심과 교훈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성전파괴에 대한 예언과 더불어 특별히 다니엘을 언급하신 것(마24:15)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는 그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파괴되기에 앞서 이방지역인 바벨론 왕국에 포로로 잡혀간 인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강제적인 바벨론 이거(移居)는 예루살렘 성전파괴와 더불어 유다왕국의 패망이 눈앞에 임한 사실을 예고해주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사실을 예언하시면서, 솔로몬이 건립한 첫 성전의 파괴를 앞둔 시점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 가운데 있었던 다니엘을 인용하여 언급하셨다. 예수님은 다니엘의 예언을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기초로 하여 성전파괴에 관한 특별한 예언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다니엘과 그의 예언은 배도한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의 바벨론 왕국의 포로가 된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된 사실을 말해준다. 다니엘의 삶과 예언은 전체적으로 예루살렘 성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예언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의미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성전파괴를 앞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미 그에 대한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계셨다. 결국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를 뒤로 하고 이방지역으로 강제로 사로잡혀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거룩한 집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마치 훌륭한 신앙인의 사고인 양 착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는 이방인들에 의한 성전파괴와 더불어 패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은 물론 그의 제자들도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가 과거의 역사 가운데 임했던 사실로 인해, 다시 세워진 성전 역시 파괴될 수 있음을 깨달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파괴가 세상의 종말에 연관됨을 언급하며 주님의 임하심과 징조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제자들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에 일어나게 될 사실에 대한 예언을 하셨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24:3);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마24:14-16)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다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일반 유대인들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상당히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로마 제국의 압제 가운데 있던 유대인들이 총력을 기울여 건축한 성전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파괴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다는 식의 표현은 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해지도록 한 중대한 죄목 가운데 하나는 그가 예루살렘 성전과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전파괴에 대한 그 예언의 말씀을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소유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그 일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 그리고 그 징조는 어떠한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제자들은 그 놀라운 일이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경륜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이라고 한 말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소 차이날 것으로 여겨진다. 즉 당시는 아직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재림이 아니라 최종적인 심판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여기서 우리는 이와 연관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가 하나님의 최종심판에 대한 신호탄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질문을 바탕으로 하여 성전파괴와 더불어 임하게 되는 종말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울여 이해해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 거룩한 성전이 악한 자들에 의해 심각한 모독을 당하게 될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라고 하신 말씀은 역사적 과거와 연결된 현재와 종말론적 미래에 관한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그 역사적 사건이 과거에 있었던 다니엘의 ‘미운 물건’에 연관된 예언이지만 시간상 미래시제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 가운데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let the reader understand) 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하게 선 것’이란 말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신 이후 언제 구체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목격했는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 이방 왕국의 유력한 지위에 앉아있던 다니엘은 거룩한 성전에 세워지게 될 ‘미운 물건’에 대한 예언을 했다(단9:27; 11:31; 12:11).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한 예언이,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믿음의 선배들에 의해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 안에 참람한 자기의 우상을 세웠던 셀류키드(Selucid) 왕조의 안티오쿠스(Antiochus) 4세에 의해 이미 성취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동시에 다니엘서에는 ‘미운물건’에 관한 내용이 메시아의 때와 더불어 거룩한 곳에 세워지게 될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칠십 이레’와 연관되는 예언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멸망의 가증한 것’과 ‘미운 물건’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재건한 성전에 세워진 ‘에피파네스의 신상’과 메시아의 도래시기에 거룩한 성전에 세워지게 되는 종말론적인 것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다.
헬라제국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이 죽은 뒤에 세워진 셀류쿠스 왕국의 안티오쿠스 4세는 예루살렘 성전을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그는 자신을 제우스신의 현현이라 주장하며 스스로 신적 의미를 지닌 에피파네스(Epiphanes)라 칭했다. 그는 거룩한 성전 안에 제우스를 상징하는 자신의 동상을 세우는가 하면 성전을 모독할 목적으로 유대인들이 부정한 동물로 여기는 돼지를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기도 했다.
그 결과 발생한 유대인들의 강한 저항으로 인해 마카비 전쟁(BC167-142)이 발발했으며, 승리를 쟁취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금 수리하게 된다. 그로 인해 수전절(修殿節)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구속사적 의미를 지니는 이스라엘 민족의 절기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수전절을 지킨 것을 보아 그 의미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요10:22).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니엘이 예언한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언급을 통해, 실제적인 돌 성전에 연관된 의미를 기억하는 동시에, 영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교회가 깨달아야 할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그전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묘사했던 사실을 기억한다(요2:19). 예수님께서는 헤롯이 지은 성전에 대한 모독을 언급하시면서, 동시에 참된 성전인 자신의 몸을 모독하며 더럽히는 유대인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가운데 담겨있는 다중의미(multi-meanings)에 대한 이해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악한 유대인들이 감히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능멸하며 심하게 모독한 사실과 직접 연관된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행하는 죄악에 비유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연관된 예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되어 나중에 설립될 교회와도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심판의 날이 가까워지면 교회 가운데 하나님을 능욕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들어와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능멸하게 된다. 성도들은 그로 인해 심한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돌로 지어진 예루살렘 성전의 실제적인 파괴를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과 로마제국에 의한 성전파괴 사이의 사십년의 기간은 구속사적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AD30년 경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몸은 AD70년 경 발생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필연적으로 불러오게 된다.
그 두 사건은 구약시대에 예언되었던 모든 예언들이 성취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두고 악한 세상은 심하게 발악할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에 달린 사건과 헤롯이 건축한 성전이 최종적으로 파괴된 사건은, 솔로몬이 건축한 첫 번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당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 안에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미운 물건’(단11:31) 곧 ‘멸망의 가증한 것’(마24:15)이 세워진 후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기억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발생하게 될 자신의 십자가 사역과 돌로 지어진 성전 파괴에 관한 예언을 하시면서, 첫 번째 성전파괴와 더불어 역사에 연관된 총체적인 교훈을 주고 계신다. 이는 성전의 본질적인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헤롯 성전의 파괴로 말미암아 도래하게 될 새로운 질서가 동시에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 가운데는 또한 배도한 인간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과 자기 자녀들에 대한 구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서의 말씀을 인용하며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언하셨다.
(2) 성전파괴에 따른 약속의 성취와 환난,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께서 로마제국을 통해 친히 관여하신 ‘거룩한 성전’의 파괴는 세상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선포하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그것이 상징하는 본질적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그 그림자가 되는 건축물인 성전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다. 실체적인 성전인 예수님의 육신의 죽음은 궁극적인 승리를 나타내고 있으며, 돌로 지어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도 역시 그와 연관된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 건축물이 건재할 때 예수님께서는 친히 그 성전을 청결케 하셨다. 배도한 유대인들이 더럽힌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후 거룩한 자신의 몸을 그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화목제물로 드리셨다. 이는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림자였던 돌로 된 성전의 진정한 의미를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파괴되는 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약속의 성취를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위해 특별히 택하신 여러 성도들을 통해 오랜 세월동안 메시아 예언을 해오셨다. 이는 또한 다른 일시적인 갈등과 심각한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성전파괴로 인한 하나님의 승리선포에 대해, 세상을 장악하고 있던 사탄의 세력이 마냥 침묵하고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천하를 호령하는 최종적인 승리가 즉시 완성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엄청난 환난이 닥치게 된다. 이는 일반적인 경우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성전파괴를 앞뒤로 하여 동반되는 환난은 남은 자의 구원과 선악의 분리를 위한 것이다. 그 환난은 과거의 인간 역사 가운데 볼 수 없었던 엄청난 내용과 규모로서 난리와 전쟁, 기근, 지진 등을 동반하게 된다. 이는 성도들을 환난에 빠뜨릴 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혼란이 야기되리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그 환난은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몸된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을 신앙적으로 심하게 어지럽히며 혼란케 한다. 그 때가 되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한 적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여기저기 등장해 활발한 종교 활동을 펼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게 되면 순진하고 무지한 성도들은 그에 미혹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런 거짓 종교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엄청난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신앙이 어린 교인들은, 저들이 마치 참된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인 양 속아 넘어가기 쉽다. 어리석은 자들은 말씀의 본질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종교적인 현상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전 파괴와 더불어 앞으로 그런 끔찍한 일이 발생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마24:21-28)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일거에 이루어지는 승리를 기대하던 제자들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의외의 교훈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전파괴와 연관되어 그런 시대가 반드시 도래 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언급하셨다. 물론 그 내용들은 최종적인 하나님의 승리를 앞둔 시점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하게 될 사건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끝까지 인내하며 그 환난을 이겨내야 한다. 끝까지 견디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천국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증거된다. 인간들은 저들의 방법으로 온갖 악을 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놀라운 경륜을 통해 창세전에 택하신 자녀들을 빠짐없이 불러내시는 것이다. 이는 물론 평온한 가운데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 때가 이르게 되면 악한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위해 종교적인 세력을 규합하고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교회와 성도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그들과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저들을 멀리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런 형편에 다다르게 되면 세상에서 소유한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산으로 도망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이는 피난에 대한 언질과 더불어 세상에 속한 악한 자들과 어떠한 신앙적인 타협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어리석은 자들의 종교적 구미(口味)에 맞는 실천적 행위와 더불어 엄청난 기적들을 행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거짓 종교인들은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일이라도 되는 양 선전하며, 무지한 교인들은 그들의 거짓 가르침에 따라 그곳으로 몰려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영육간에 병행되는 성도들의 환난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환난과 더불어 임하게 될 궁극적인 심판에 관해 말씀하셨다. 그것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뿐 아니라 우주적인 사건이 된다. 즉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던 피조세계에 대한 심판과 연관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최종적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29-31)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이 머잖아 발생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 때는 마치 노아시대의 홍수심판처럼 사람들이 전혀 예기하지 않은 때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종말을 앞둔 하나님의 우주적인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 죄에 빠진 인간들은 웅장한 승리의 나팔소리와 함께 임하는 엄위하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저들의 종말은 이를 갈며 울게 되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을 동반하게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에게는 그것이 도리어 감사한 일이다. 세상으로부터의 환난과 심판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 중에 살아가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완성되는 것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환난을 견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원한 영광과 환희가 궁극적인 소망이 된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파괴 사건과 종말에 관한 예언을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세 개의 비유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이다. 이 비유들은 한결같이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닌다.
열 처녀 비유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연관되는 하나님의 심판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신다. 성도들은 잠시도 시대를 방관해서는 안되며,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에게는 예기치 못한 급작스런 일이 닥쳐 당황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교훈이다. 따라서 열 처녀 비유의 주제는,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는 말씀이다.
그리고 달란트 비유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민감하게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일상적인 성실한 삶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교훈을 주고 계신다.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의 성실한 성도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종말의 때에 행해지는 게으르고 나태한 행동은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불신자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이다. 이 비유의 주제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5:30)는 말씀에 나타나고 있다.
또한 양과 염소의 비유에는, 마지막 심판을 통해 최종적인 영구한 분리가 이루어진다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양들을 거룩한 자기편에 모아 자기와 함께 영원한 천국에서 살도록 하지만, 염소들은 영원한 멸망에 빠뜨리게 된다. 이는 또한 동일한 기독교의 이름 아래 있지만 알곡과 쭉정이가 영원히 분리되리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 비유의 주제는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25:46)는 말씀에 집약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 세 가지 비유는 한결같이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다. 말세의 고통당하는 때가 이르면 세상 전체가 혼란스럽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신앙이 어린 성도들은 참된 가치관을 확립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와 성도들은 항상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3. 다니엘서를 배경으로 하여 설명되는 종말론적 교훈
다니엘서는 구약시대에 예언된 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예언은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인 순서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기록하고 있다. 신약시대의 교회가 다니엘서를 읽을 때, 다니엘서 내부의 사건발생 순서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와 더불어 전체적인 보편 역사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는 다니엘서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성전파괴에 연관된 예수님의 종말에 관한 교훈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전파괴와 연관된 교훈을 주시면서 특별히 다니엘의 예언을 언급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다니엘서는 다윗 왕국의 패망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니엘은 그 시기의 전후에, 약속의 땅인 가나안 본토를 떠나 이방지역에 살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했다. BC605년 유다 왕 여호야김왕 재임시 이스라엘 백성이 첫 번째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 나이어린 다니엘도 그 무리 가운데 섞여 있었다. 그는 유대의 왕족 혹은 귀족 출신으로서, 약 60여 년 간 바벨론 왕국에서 세 번째 서열의 고위 공직자와 메대 왕국의 총리로 재직했던 걸출한 인물이었다(단1:3,6; 5:29; 6:1-2).
성경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다니엘은 솔로몬이 건립한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 왕국인 신바벨론 제국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역사적으로 직접 경험했던 인물이다. 그 가운데 다니엘은 70이레에 관한 예언을 하고 있다. 다니엘서의 70이레는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에 직접 연관되며 동시에 예루살렘 성전에 관련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조심스럽게 되새겨 볼 수 있는 사실은 다니엘서를 주의 깊게 읽은 구약시대의 성도들 가운데는 인간의 옷을 입은 메시아인 예수님의 사역의 시기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란 사실이다. 즉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때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오심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었을 것이란 의미이다.
아기 예수께서 출생하셨을 때 베들레헴을 방문했던 동방박사들을 비롯한 서기관들은 주님의 때를 어느 정도 알고 기다리던 성도들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그들이 정확한 시기를 예측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을지라도 대략적인 시기는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니엘서를 비롯한 구약성경을 올바르게 깨달아 믿는 자들에게는 그 비밀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자신의 몸을 염두에 두고, 헤롯왕이 건립을 시작한 돌 성전의 파괴와 더불어 종말에 관한 언급을 한 것은 다니엘서의 내용이 역시 그와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시대를 분별하도록 요구하셨다.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게 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는 것이 성도의 참된 지혜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혀 생각지 못하는 때에 인자(人子)가 임하겠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도적을 지키는 사람처럼 항상 깨어 경성해 있어야 한다.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이를 예수님의 재림과 연관지어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의 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것’을 끌어들여 모독한 것처럼 그의 몸된 거룩한 교회 가운데 멸망의 가증스런 것이 들어오고 마지막 심판 날이 가까워지게 되면 일반적인 상식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서의 예언을 원근통시적(遠近通視的)인 관점에서 구속사와 인간 보편역사를 염두에 두고 그 의미를 알아가야 한다. 즉 [다니엘 - 바벨론 포로 - 예루살렘 성전 파괴(BC586년; 왕국 멸망) -페르시아로부터 귀환(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 성전과 성벽 재건 - 헬라제국 - 성전모독(멸망의 가증한 것) - 마카비 전쟁 - 수전절 - 로마제국 - 헤롯 성전 - 예수 그리스도(참 성전; 탄생과 십자가 사역) -헤롯 성전 파괴(AD70년) - 보편교회와 천년왕국(종말; 환난)]에 이어지는 역사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다니엘서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서를 읽고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종말에 관한 교훈을 동시에 기억해야만 한다. 그 중심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소유한 진정한 의미와 더불어 돌로 지어진 성전 건물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의 파괴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이미 성취된 구약시대 다니엘의 예언을 염두에 두고 다니엘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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