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로마서강해

로마서 102 표적이냐 실체냐 (롬9:4-5)

은바리라이프 2013. 12. 21. 10:58

로마서 102 표적이냐 실체냐 




(롬9:4-5)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다음주까지 공부를 해야 오늘 설교가 완벽하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서 그 영적 이스라엘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열심히 피력합니다. 

성경의 독자는 성도입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주고 읽어서 깨달으라고 준게 아닙니다. 당연히 이 이야기도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는 말이예요. 저 민족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민족적 이스라엘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 율법, 예배, 약속, 그리고 (아브라함으로 대표되는) 조상이 있고, 또 육신의 예수도, 그들에게서 나왔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예수님도 유다 지파의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그리스도는 육신의 예수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다 라고 못을 박습니다. 본문을 잘 읽어보시며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예수가 너희에게서 났지만, 그 예수는, 그리스도가 났는데, 육적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아들인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보지 못하면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가 나에게 그리스도(메시아,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한번 생각해보자구요. 지금 바울이 나열한 그것들이 아주 중요한 도구들이고, 배경들임에는 틀림없죠? 

그것들이 없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아들, 언약, 약속, 율법, 조상.. 이런 것 없이 진리를 이해할 수 없죠? 당연히 꼭 필요한 도구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가지고만 있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조상이라는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그 씨, 아들을 설명해 주기 위해 그 조상들이 있는거 아닙니까? 그렇죠? 근데 그 씨가, 그 조상들에 의해, 제대로 설명이 되어지지 않았으니까, 아니, 우리가 못알아먹으니까, 그걸 문자로 펼쳐준게 율법이죠? 그래서 율법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알면, 그 율법은 그냥 풀리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이건 좋은거란 말예요. 그러나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그냥 구원이 되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공부한 내용에 따르면, 바울은 율법이라는 거짓말에 빠져서 하나님과 끊어져있는 이스라엘에게 그 참 말의 진리를 전파해서, "내가 거짓말을 하지않고 참 말을 한다" 합니다. 그 참 말이 진리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내가 참말을 하는데, 나는 너희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 라고 자기의 그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는게 로마서 9장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이 예를 들고 있는 이 민족적 이스라엘은 그러한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한, 하나님과 끊어져있는 어떤 자들로 지금 예가 되고 있는 거잖아요? 모형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단지 이러한 것들을 열심히 행하고, 이러한 배경을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게서 육신의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육신의 예수가 탄생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얘기예요. 여러분들이 그예수를 육신으로 낳았다 라고 해도, 그런 것으로 구원이 되는 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한단 말입니다 지금, 바울이요. 쉽게 말해서 지금, 바울이 나열하고 있는 것들이, 진리로 깨달아지지 못하면, 그런것들은 그저 표적에 불과한 거라는 거예요, 


쎄메이온, 표적. 양자됨, 언약, 율법, 약속, 예배, 조상, 예수 이렇게 눈에 보이게 나타난 영광, 영광, 독사 라는게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의 것이, 눈에 보이게 나타난 걸, 드러난 걸, 독사, 영광이라고 한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그 눈에 보이게 나타난 그 영광, 그것이, 진리라는 내용을 담고 이땅에 세워진 것들이잖아요? 그렇게 내용을 담아서 보이는 그릇으로 주어진 것, 그래서 우리의 눈에 이렇게 보이는 것, 케이마이, 보이는걸, 표적, 쎄메이온, 그래요. 싸인, 씨그널. 

어디를 가리키는거죠? 그것 자체가 가치있는게 아니잖아요? 이정표 자체가 가치있는게 아니잖아요?

심지어 육신으로 오신 예수도, 그리스도의 영으로 받지 못하면, 그 자체로는, 표적, 쎄메이온에 불과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2절 보세요.



(눅2: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예수가 구유로 오신 것이, 표적이다 그래요. 그 예수 안에, 아들, 언약, 약속, 율법, 조상 등의 개념들이, 모두 함유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 모든 것을 함유하고 있는 예수가, 표적으로 주어진거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닌깐요. 여기서 구유라는 말을 잘 이해하셔야 되는데, 히브리 말로 구유라는 단어가, 에부스 라는 말이거든요? 에부스 가 요렇게 쓰는데, 싸멕이 위에서 이렇게 기둥을 내려다보는 거거든요? 고걸 형상화해서 문자로 만든거예요. 기둥은 언약이죠? 눈에 보이는 언약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에부스, 구유라는 것은 이사야서 1장에 보면 나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주시면 그걸 구유라 그래요. 근데 모음은 뭐 필요 없는거니까,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지워버리고 아바스라고 읽어버리면, 요걸 '먹이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구유라는건  먹이통이니까, '하나님의 그 성전이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나타난 구유에 예수가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어 먹이기 위해, 눈에 보이는 언약, 약속으로 준게 뭐예요? 히브리서에 나오잖아요? 예수입니다. 그 예수라는 아기가, 구유에, 구유에도 아니예요, 구유로, 케이마이, 이렇게 돼 있어요, 제시되어 있어요, 보라고 제시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표적이다 그러는거예요 성경이. 보라고(케이마이) 던져주면 우리는 호라오 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유로 오신 예수가 그 내용으로, 하늘의 양식, 진짜 양식으로 보여져야 진리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표적으로 보면 엉뚱한 양식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는 표적입니다? 잘 기억하셔야 돼요 여러분, 그러니까 이건 지금, 그 구유와 아기 예수가 하나가 되어 있는 그런 형국을 그리고 있는 거에요. 그래놓고 뭐라고 그러냐면, 그게 보이지 않는 그 하늘의 영광, 독사, 나타난거야, 하나님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그 하늘이 뭔지를 설명해 주기 위해 나타낸게 독사잖아요? 그래서 그걸, 하늘에는, 하늘의 영광이라고 하고, 그게 땅에, 에이레네, 평화를 가져다 주는거 아니겠니?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구유와, 구유로 온 그 예수를 보고, 하늘에는 영광, 땅에 평화 라고 이야기 하는거예요.


예수는 아들을 주어서 아들을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과 그 약속을 눈에 보이는 형상에 담고 온 표적입니다.

그런데 그 표적이신 예수를, 내용으로 보지 못하고, 그 예수의 기능이나, 능력이나, 그분의 행한 일이나, 말 등을 그냥 표피적으로 받아버리면 그게 표적으로 예수를 받는거고, '야 예수님이 중풍병자도 살렸대, 혈루증 환자도 응? 살려냈대. 죽은자도, 나사로도 무덤에서 끄집어냈대. 물 위를 걸으셨대. '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대, 심지어 이거까지. 이런 식으로, 표피적으로  예수를 보면 성경은 그걸 악, 간음이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여러분을 구원해주냐구요?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구원하셨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까? 진짜? 그게 여러분을 용서하나요? 정말? 마태복음 16장 1절 보세요



(마16: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이 천기가, 프로소포모 우라노스 예요. 하늘의 그 나타난것, 프로소폰, 파님, 보이지 않는 것이 이렇게 나타난걸 프로소폰이라 한다 그랬죠? 그걸 천기라고 이렇게 번역해 논거예요? 그 하늘의 외적인 그 모습, 나타난 그거, 율법이죠? 그건 분별한다고 하면서 너희가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가 없느냐? 카이로스(시대, 때)가 담고 있는 그 내용으로서의 그 표적은 너희가 모르는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야 저녁에 하늘이 붉은게 그거 얘기할라구 하는거니? 아침에 하늘이 붉은게 그거 얘기할라구 하는거야? 그렇게 어떻게 껍데기는 잘보고, 너희들이 편한대로 다 해석해서 가지면서, 왜 그 시대의 표적으로 그걸 못보냐? 이런 말이예요. 그래놓고 나에게 하늘의 표적을 보여달라구? 내가 지금까지 보여준게 전부 그걸 내용으로 담아준건데, 또 무슨 표적을 보여달라 그러냐? 이러는거죠?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째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천기, 프로소폰 호 우라노스, 그 하늘의 껍데기만 보는 것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이다. 

누룩은 절대 제물에 섞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섞음, 변질의 대명사가 꿀과 누룩입니다.

바울이 육적인 이스라엘을 예로 들면서 하늘의 프로소폰을 그냥 껍데기로 보면 그것이 율법이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인 거고, 그들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자들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지금,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그걸 표적으로 보고, 표적으로만 보고, 그리고 주님께 와서, 아 그거 되게 배불르든데요? 굉장히 맛나던데요? 그때 당시에 일용직 노동자는요, 하루에 열심히 노동을 하며는, 한 데나리온 받았어요. 이게 하루 빵값이예요. 근데 예수님이, 예수님을 쫓는 이들을 무상으로 계속 먹여줬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쫓아오죠. 하루 죙일 나가서 일해봐야 , 떡 하나 살 수 있는데, 예수님이 주니까 당연히 와가, 오더니, 그거 참 멋진 능력이다 이거예요. 그런 기능을 가진 당신 우리의 왕이 돼달래는거죠. 그리고 그런류의 표적을 자꾸 보여달라고 하니까 주님이 뭐라 그러시냐 하면, 너희는 표적을 호라오 하지 못하고, 그냥 표적을 옵타노마이 에이도 하고는, 나에게, 그런 표적을 보여달라고 찾아오는구나. 너희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걸 내용으로 봐야지, 어떻게 너희는 그것을 그냥 표적으로만 보냐는 거예요. 그러면서 주님이 그러죠? 떡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그 표적은, 진짜 하늘의 양식은 그 떡 이야기를 하는 거다. 근데 너희들도 또 세상의 떡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내가 언제 그 떡 가져오라 그랬니? 왜 떡 가져왔냐 안가져왔냐 그거갖고 왜 싸우고 있어? 그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누룩이라는거야 라고 이야기하는거죠. 누룩은 뭐예요? 섞임과 혼합, 변질, 왜곡의 대명사죠? 그래서 하나님이 만나 주셨을 때, 이스라엘이, 꿀섞인 과자네? 그러는거예요. 자기들끼리 이름을 붙여버린 거에요. 주님은 진주로 줬는데. 그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예요. 그렇게 표적으로만 봐버리면, 모든걸, 껍데기로만 봐버리면, 그들이 바로, 하나님과 끊어져있는 육적 이스라엘의 그모습이라는 거예요. 너희들이 율법, 성전, 제사 이걸 표적으로만 보고, 그것만 열심히 행하고 있지 않느냐?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지금부터, 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장황하게 나열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의 끊어짐이라는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보자구요.


바울은 8장 말미에서, 아들이 된 자들은 절대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무엇으로도 끊어질 수 없다,라고 단언을 해버리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빨리 나타나서 우리를 진리로 좀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탄식하며 기다린다 그랬잖아요? 왜?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되어 선이 되니까, 라고 설명까지 해줘요. 그리고는 9장으로 넘어와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 있는, 구원이 필요한 어떤 이들을 지금 이스라엘로 등장시키고 있는 거예요. 아들이라고 자처하면서 여전히 이런 자들은 아들 아니다, 이런 이야기 하는거에요 지금.


그들이 바로 율법과 희생제사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애를 쓰고 있었던 육적 이스라엘 아닙니까? 바울이 9장과 10장에서, 그 설명용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그 율법주의에 빠진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은 이 유한 존재들의 절망적 실존, 한계임과 동시에 성도들의 옛 모습이며, 진리를 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율법이라는 배설물, 찌꺼기를 아우르는 아주 적당한 모형이 육적 이스라엘입니다. 율법으로 의에 이르겠다고 하는 이스라엘과 같은 자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반드시 끊어진다 라는 경고를 육적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서 교회에게 던지고 있는 거에요. 너희가 무슨 아들이냐는 거에요. (9, 10장에서) 우리가 그런 상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온전한 이스라엘로 만들어 내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바울이 율법주의에 빠져있던 갈라디아 교회에게 아주 원색적으로 꾸지람을 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서신서는 대부분, 그 복음, 넷 으로 주어진 그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주의나 인본주의로 자꾸 회귀할려고 하는, 그렇게 그냥 퇴보할려고 하는 그 초대교회들에게 사도들이 절절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보낸 편지들 아닙니까? 



갈라디아서 5장 4절

(갈5: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갈라디아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이게 '카탈게오 아포 호 크리스토스'거든요? 카달게오는 끊어져서 완전히 멸망하다, 부정적 끊어짐이죠. 로마서 9장의 '내가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서'는 그냥 '아포 호 크리스토스' 거든요? 그냥 프롬 이예요. 그리스도로부터. 근데 앞에 카탈게오가 이렇게 붙어 버리면, 이거는 진짜 완전히 끊어져서 망하는 부정적인 끊어짐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어떤 자들이 끊어진다 그래요?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 그들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며 반드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다 라는 거에요. 그들은 은혜로부터도 떨어진 자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들, 다시 말해서, 육적 예수(아들, 언약, 약속, 율법)를 표적으로 보고 땅의 음식, 땅의 먹이, 나의 이 육적 자아의 가치를 높여주고, 그리고 이 육적 자아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로, 그렇게 표적으로 예수를 봐버리면, 그리고 그 예수를, 당연히 그예수가 나에게 그런걸 주었다고 하니까, 섬기고, 숭앙하게 되겠죠?

그렇게되면, 그들이 바로,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망하는 자들이라는 거에요. 그들은 진리가 아닌거니까.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르는거에요 지금.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아들, 약속, 언약, 율법, 그 육신의 예수를 도대체 어떻게 가져야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짐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제가 지난주에, 야곱의 그 얍복강 이후의 삶, 즉 이스라엘로서의 그 삶은 요셉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그 요셉의 삶을 유다라는 안경으로 봐야하는 것이라 그랬죠? 그래서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하고는 요셉의 이야기를 풀잖아요? 이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잖아요? 그 이스라엘의 삶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그삶을 요셉으로 설명해 준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라는건, 그 율법, 그 자기를 헌신하여 자기의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마련할려고 하는 그 열심, 그게 율법이고 야곱입니다. 그것이 '실족시키는 자', 강도입니다. 그가 하나님에게 환도뼈를 가격당하여 그 율법을, 말씀을 마음으로 갖게 되었을 때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 삶을 요셉이 설명해주기에,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밖에서 나타나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단 한 줄도 없어요. 이미 그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가진 자, 진리를 마음에 가진 상태의 삶을 연기하고 있는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지금 그 역할로 살고있는 거란 말에요, 지금 요셉이. 근데 그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 사이에 유다의 이야기,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끼워 넣는건, 바로 이 유다라는 안경을 갖고 요셉을 보라는겁니다. 그럼 요셉은 이스라엘이고, 유다도 이스라엘이네요. 

 

그 유다와 이스라엘이 같은 내용을 담고 이땅에서 아나데마의 삶을 살다간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유다와 이스라엘 요셉의 삶을 그냥 하나로 묶어서 성경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거에요. 그들은 뭘 갖고 있어야 된다? 표적을 갖고 있어야 된다 그래요. 보증, 표를 갖고 있어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말입니다. 남 유다나 북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이 남북으로 이렇게 갈라졌을 때, 이름을 남 유다, 북 이스라엘로 이렇게 지은 거는, 그냥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졌다 이렇게, 그런 말이예요. 유다가 둘로 갈라졌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유대인, 이스라엘인, 유대, 이스라엘, 막 혼용해서 쓴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 유다의 후손으로, 아들이신 메시야가 오셔야 되는거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야곱의 아들이, 르우 벤으로 시작하여, 벤 야민으로 끝나는 거에요. 벤이 아들이니까. 르우 벤, 아들이 여기 있다 보라, 아들이다, 아들의 시작. 벤 야민, 오른 손의 아들, 완성된 아들. 이런 뜻인 거에요. 그리고 열 둘을 아들로, 성경에서 계속 쓰잖아요? 열둘, 아들. 그러니까 유다도, 아들을 낳아야 하고, 씨를 가져야 되고, 이스라엘도? 아들을 가져야 돼요. 그래야 그 씨, 그 아들에 의해 그들이 살아나요. 유다에게서 실로가 온다고 했습니다. 근데 그 아들은, 표적으로만 갖고 있으면 안되고 진리로 해석된 표적이어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유다가 표적을 갖고 있는거고, 그 이야기가, 요셉이 말씀을 갖고 있는 자로, 양식을 관장하잖아요? 말씀을 갖고 있는 자로, 표를, 인을 갖고 있는 자로, 성경에 등장하는 거란 말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나 같은 거니까. 그 개념을 끌어들여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과 10장에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끌어다가, 영적 이스라엘, 씨를 가진 어떤 이들을 설명하는 거에요. 어떤 이들은 그걸 엉터리 씨로 갖고있더라는거. 그래서 그들이 갖고있던 수많은 표적들을 등장시키면서, 그게 그거냐? 그건 내용으로 이해되어져야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끊어짐의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자 이건 우리의 이야기라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영적 이스라엘은 우리니까. 그래서 유다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이스라엘의 아들은, 요셉이라는 아들로 축약이 되어서, 그 자손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건져내는 거에요.


생각해보세요. 유다는 메시야를 낳아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죠? 그는 그 아들에 의해 구원을 받습니다. 창세기 49장의 실로가 메시야거든요. 유다의 씨로 실로가 온다, 그래야 유다가 살아난다 말입니다. 근데 유다는 그 자손의 중요성을 잘 몰라요. 그래서 그 세째에게, 며느리를 주질 않아요. 아들이 없는데도 나몰라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 유다나 나중에 예수 팔아 먹은 가롯 유다와 똑같은 자들입니다. 


며느리를 세째에게 줘야 자손이 생깁니다. 그 자손이 없으면 자기도 죽습니다. 멸망이란 말예요. 그 메시아를 (우리가)낳아야 합니다. 낳지 못하면 죽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이, 주님이, 땅의 창녀, 부정한 자, 율법(간음한 자), 음란한 여자, 성경에서 간음하는 여자는 항상 뭘 의미한다 그랬죠? 내 남편을 그리스도, 진리로 갖지 않고 율법으로 가져 나와 연합시키면 그걸 간음한다, 그러잖아요? 성경이 율법과 간음하는 자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율법으로 오셨다는건 뭐예요? 그분이 간음하는 여자, 창녀가 되어 이땅에 오셨다는 거에요. 오시더니, 그 씨와, 그 씨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어떤 이에게, 그래서 죽어야하는 어떤 이에게 가서, 그에게 인과 지팡이를 받아내고는, 씨를 만들어버리는거에요. 그 여자가. 이 유다는, 뭔지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고, 그냥.


제가 지난주에는, 이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죽어야할 부정한 다말이 나중에 그 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묻는 그 씨의 주인에게, 그 씨의 주인의 인과 지팡이를 내놓아야 산다 그랬죠? 그 이야기나 지금 다말을 우리를 살리러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설명하는 거나 똑같은 이야기예요. 그 여자에게 유다는 뭘 내놓아야 되냐 하면, 염소를 주면 안돼요. 근데, 유다가 자기가 뭘 알아서 염소를 안준게 아니라 이쪽에서 안받아버립니다. 희생제물, 희생제사, 율법은 안받아버리고, 인과 지팡이만 뺏어버리는 거예요. 넌 내꺼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씨가 생기자 유다가 어떤 존재인지 폭로가 돼요. 그 씨가 생기지 않았을 땐 잘 감추고 있어서 몰랐죠. 씨가 생기자 어떤 일이 폭로가 되냐면, 마누라가 죽은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창녀와 잠을 잔 유다가 폭로되는 거에요. 당시의 율법으로는 맞아 죽어야 되는 거에요, 돌에 맞아. 다말이 입만 뻥끗하면 유다는 죽는겁니다 거기에서, 다말이 문제가 아니라. 죽어야할 그가, 씨를 가진 그 여자가, 자기가 그 모든, 그 더럽고, 추악한 세상의 평가를 다 자기가 뒤집어 써버리고, 입 뻥끗하지 않고, 유다에게만 인과 지팡이, 이게 당신꺼죠? 라고 이야기 한다음에,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거에요. 그때 유다가, 그게 의다 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니가 의롭다 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고 싶은건 그겁니다. 유다는, 그리고 다말, 살아야 하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는, 반드시 그 표, 그 인과 지팡이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라는 이야기예요. 그게 요셉의 이야기였고. 그러면 사는 거예요.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이라는 아들에 의해 죽음을 모면하죠? 요셉은 무죄한 아들이었어요. 다른 형제들의 그 죄와 어두움을 고발하는 아들이었죠? 고자질을 잘하는 얍삽한 인간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다른 이들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그게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그게 말씀이잖아요? 말씀이 떨어지면, 어두움과 그 죄가 막 폭로됩니다. 그게 요셉의 역할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폭로하는 그 형제는, 죽여야죠. 그래서 형제들이 죽일려고 구덩이에 넣었는데, 유다가 팔자, 죽이지는 말자 그래서 팔아요. 어디로 갑니까? 애굽으로 갑니다. 애굽이 어딥니까? 무죄한 자가, 애굽으로 가서 애굽의 감옥으로 들어가요. 요한계시록에서 '애굽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예루살렘? 율법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리로, 죄인이 되어 간다니깐요. 무죄한 아들이.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살아 그 땅의 식량을 관장하는 유일한 존재, 그안에 양식을 가진 자로 그 아비를, 이스라엘을 살려내는 거에요. 야곱이 이스라엘이니까.


그러니까 유다나 이스라엘이나 반드시 그 씨를 갖고 있어야 돼요. 표로, 보증으로 꼭 갖고 있어야 돼요. 그런데, 내용으로 갖고 있어야 돼요. 그냥 껍데기 표로 갖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게 나를 살리는 씨, 나를 살리는 아들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유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그 아들을 씨로 가져야 살 수 있어요. 그 아들은? 그리스도의 영, 즉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영은 눈에 보이는게 아니죠? 그러면 반드시 그 영을 담는 그릇이 필요해요. 그 진리를 담고 이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그 영의 그릇이 육신적 예수였어요. 제가 지난주에, 유다는 반드시 도장과 지팡이를 표로, 보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랬죠? 다말이 유다고, 유다가 다말이니까. 중요한건 그 표입니다. 그 표는 쟈칼입니다. 쟈칼 이란 단어도 표 예요. 쟈칼은 반드시 네케바라는 여자, 그릇으로 들어가서 하나가 돼야 된다 그랬죠? 그런데 그 쟈칼 이란 단어가 무슨 뜻도 있냐면, 남자가 되다, 아들이 되라 라는 뜻도 있어요. 그 표가 여자 안으로 들어가면, 그 여자가 아들이 됩니다. 그게 구원의 메카니즘인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것을 하 아담, 사람이라 그래요. 성경에 나오잖아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는데, 쟈칼과 네케바 로 만들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말입니다. 그래놓고 그거를 사람, 하 아담 그래요.


사람이 어디에서 나오죠? 땅에서. 땅이 아다맙니다. 근데 이 아다마 가 뭐냐하면, 요거만 지워버리면 아담이죠? 자 아담을 어떻게 만드냐 하면, 요 말로 만들어요.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리를, 말하는거, 이게 문자의 의미거든요?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리를 말하면 그걸 아다마 라 그래요. 이걸 성경이 그냥 땅 이렇게 번역을 해놨는데, 뭐 오케이 괜찮아요. 자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리, 그 말씀으로 하나님은 하 아담, 사람, 당신의 백성을 만드시겠다는 거에요.


이 땅에서 아담이 만들어 집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리'인데, 이 아담만 되면 됩니까? 아담이 어디서는 굉장히 저주받을 인물로도 나타나고, 어디서는 '우리는 그 아담이 되어야지' 이렇게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말이에요. 그러면 한번 보잔 말이에요. 모든 인간들이 아담이에요. 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을 담아 창조했어요. 그 어느것도 말씀으로 창조되지 않은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말씀을 담고 있어요. 그 말씀은 진리란 말입니다.


그걸 모르고 말하는걸 거짓말이라 그러지, 모든 인간들은 다 진리를 살고, 진리를 행하고, 진리를 먹고, 이렇게 살아요. 그걸 우리가 진리로 못보아서 그러는거지. 하나님이 구별하신 그 진리를 제대로 깨닫고, '아 그거지'라고 내 안에 말로 갖고 있으면, 그걸 하 아담 이라 그래요. 그럼 요걸 요 뒤로 갖다 붙이면, 그게 아다마 네요? 그래서 성경에는, 그냥 이 사람이 아니라 '하 아담의 하 벤'. '그 사람의 그 아들'이라는 말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에요. 신약 성경에도 '호 휘어스 호 안트로포스', '그 사람의 그 아들'이라 그래요. 항상 관사를 붙입니다. 


이렇게 그 말을 진리로 가진 그 인자들의 라인, 제가 여기서 이렇게 설명했더니 어떤 이들이 또 그 말을 가지면 그렇게 아들 아들 아들 아들 아들들이 되는 거에요. 아담의 아들은 셋이 되는거고, 셋의 아들은 노아, 노아의 아들은 셈. 이렇게 아르박삿... 나아가는 거죠. 그 아들 아들 아들. 그걸 인자 라 그래요. 그,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인 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진리를 설명하는 그건 이땅에 그 실체로 내려올 수는 없으므로 하나님이 아래의 것으로, 말로, 소리로, 혹은 형태로, 이렇게 우리에게 펼쳐서 보여주십니다. 그걸 아파르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전을 말하기 시작하는 하나님'이란 뜻이에요.  그리고는 이걸 티끌이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전을 말하기 시작하시는 하나님, 그 눈에 보이는 것으로 뭘 줬어요? 성전, 율법, 예수, 세상,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잖아요? 


그런데, 그건 뭘 만들기 위하는 거라구요? 이 진리를 가진 그 아담, 하 아담. 그걸 만들기 위함이란 말예요. 그래서 준게 이거란 말예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걸 그냥 표적으로 봐 버리면 티끌, 모래가 됩니다. 성경에서 '내가 너희들에게 비를 티끌로 내릴꺼야, 모래로 내릴꺼야, 너희를 바다에 모래로 만들어 버릴꺼야' 할때 쓰이는게 이 아파르입니다.


그래서 '땅에서 티끌을 모아 사람을 만들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거에요. 우리는 그걸 내용으로 알아야지, '땅에서 티끌을 이렇게 모아서 물을 부어서 반죽을 하고 구워서 이렇게 만들어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게 맞다'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그 유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그걸 씨, 진리로, 아들로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 아들이, 그 진리가 나를 살리는 겁니다. 그래서 광야, 이스라엘의 광야(스데반이 그 광야를 교회라고 했습니다.) 행진의 그 중심이 누구였어요? 어느 지파? 민수기 2장, 유다 지파였단 말예요. 그 유다 지파가 깃발을 들고, 그 깃발을 중심으로, 남, 동, 서, 쭉 이렇게 다른 지파들이 포진을 하고, 거기에 성막이 세워지는 거에요. "움직여!", 그러면 또 그대로 움직이는 거에요. 유다 지파가 중심이 되어서. 


그들이 깃발을 들고 있는데, 그 깃발이라는 단어가 표적. 표에요. 들고 있는 이게 뭔지, 이 표적이 뭔지를 알면 사는 거고, 모르면 죽는 거에요. 누가? 유다가, 이스라엘이. 유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냐면, 성전을, 펼치다, 뻗다. 이런 뜻이에요. 성전을 설명하고, 뻗쳐내는거, 그게 유다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라 말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지파에서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와야 됩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그 성전의 완성이었어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이는 성전을 줬더니 말을 못하니까 사람들이 오해해서 성전에서 제사만 드리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말하는 성전으로 보냈어요. 그래서 주님이 '내가 성전이다'라고 이야기 했단 말입니다. 그러나, 파괴되어야 할 성전이라 그랬어요. 그러면 내가 세번째 걸로 세운다 그랬습니다. 그걸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너희가 성령을 품고 있느니 너희가 세번째 성전이다, 했습니다. 우리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게 완성 성전이에요. 내 안에 그 예수 있으니까, 파괴되어 새것으로 살아난 그분이 내 안에 있으니까 내가 성전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유다 지파는 그 깃발을 갖고 바로 그 씨, 살아난 그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유다, 아들, 이스라엘이 그러기 위해서 그 표적은 반드시 깨져야죠.


쉽게 말할게요. 유다는 표, 깃발을 진리로 보면 살고, 표적으로 보면 죽습니다. 그래서 유다지파에서 예수라는 표적이 나오는 거에요. 그 표적을 가진 유다가, 그 예수를 표적으로 보면 죽는거고, 그것을 진리로 깨달아 알면, 그들이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거란 말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표적으로 본 겁니다. 표적이라는 그 단어를 히브리어에서 찾으면 오트 라는 단언데요, 그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보세요. 



출애굽기 12장 13절

(출12:13)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뭐가? 피가.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 될 거래요.)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자 이스라엘을 살리는 표적, (유다가 가진 깃발과 같은 말입니다.) 표적이 뭐에요? 피에요 피. 그 표적을 진리로 가지고 있는 이들이 심판을 모면한다 그럽니다. 그 피는 물, 물은 성령이니까요. 요한일서 5장 8절에서 그 셋은 하나라 합니다. 그러니까 그 피를 진리로, 성령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을 내가 넘어가 살려 내겠다는 것, 이게 약속입니다.



출애굽기 13장 15절

(출13:15-16)15 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16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이게 표적이에요. 근데 뭘 표적으로 삼아요? 죽어야할 장자가, 하나님이 죽인 장자에 의해 살아난다 라는걸 니들의 표적으로 갖고 있으래요. 그게 복음 아닙니까?

자, 그것이 유다가 갖고 있는 깃발이에요. 이렇게 유다, 즉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표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으로 해석이 돼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인과 지팡이가 같이 등장하는 거에요. 항상 가르침을 의미하니까. 우리에게 가르친다 잖아요? 그 우리에게 보증으로 오신 그 파라클레토스, 그 보혜사 성령이 보증으로 와서 우리를 가르치겠다 그래요. 그렇죠?


자 그런데, 그 표, 표적을 갖고 있는 유다가 몇 번째 아들이죠? 네 번째 아들이에요. 넷이라는 아들 이란 뜻이에요. 그때 당시에는 뭐 생선장수한테 가서 네 마리 주세요 라고 할때도 매듭을 네 개 이렇게 만들어서 '이거 ' 이랬는데, 무슨 네 번째가 뭐고 다섯 번째가 뭐겠어요? 넷 이라는 아들, 이런 뜻이란 말입니다. 아라비아 숫자도 없었구. 

이 표적이라는 단어가 제일 처음 등장하는 곳이 창세기 1장의 넷이라는 날이예요. 네 번째 날. 창세기 1장 14절 보세요.



(창1:14)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이게 네 번째 날이거든요? 레비, 레비 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께서 성전을 아랫것으로 보여준다는 뜻이에요. 그것을 가져다 이루어야 돼. 완성을 해야된다 뜻이에요.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라고 돼있죠? 이게 완성돼야 된다 라는 거에요. 넷이라는게, 눈에 보여준 그것이, 완성이 되어야 돼. 무엇에 의해? 광명에 의해. 마오르 가 그래서, 네 번째 날에 나오는 거에요.


이 마오르 라는 이 단어는 오르 라는 말이 빛이잖아요? 히브리어는 맴 이 붙어버리면 이게, 장소나 어떤 기명이나 기구가 된다 그랬죠? 그럼 빛이 비추는 장소, 빛이 비추는 어떤 것이란 말에요. 이게 마오르 그래서 이걸 성경이 그냥 광명 이라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는 태양이나, 달이나, 별이나 이런 걸로 이거를 이해하고 있는거죠? 근데 이거는 그게 아니라, 오르, 창세기 1장 첫째 날에 그 빛, 그것이 비추어지는 어떤 것, 어떤 곳, 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왜? 창세기 넷째 날은 첫째 날과 짝이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빛이 어디에서 비춰지는지가 등장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 빛에, 비춰지는 빛에 의해서, 징조와 일자와 사시와 연한이 성취된다 라는거야, 이게 넷이죠? 넷이라는 단어가 레비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아래 것으로 말하기 시작하다'는 의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말하면 안 보이는 것으로 내 마음에 받아 가지면 됩니다. 그걸 성취, 완성이라고 하고, 넷이라고 합니다. 징조 사시 일자 연한이 넷으로 완성이 돼야 그게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인 겁니다.


그런데 빛이라는거, 마오르 라는게 뭐냐 하면, 요 맴이 진리잖아요? 빛을 진리로 주게 되면, 그 넷이라는게 이렇게 성취가 되는데, 그게 뭔지를 시작을 하는데, 첫 단어가 오트, 징조, 표, 표적, 표징이란 뜻이에요. 


자 하나님께서 하늘의 궁창에다가 광명을 두신다 그러죠? 궁창은 라키야 라는 단어라 그랬습니다. 라키야는 금을 얇게 펴서, 펼쳐서 덮다 라는 뜻이고, 이걸 우리말로 궁창이라고 번역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걸 어디다 만들으라 그러냐 하면, 가운데, 위의 물과 아랫물, 하늘과 땅의 가운데에다가 궁창을 만들으라 그래요. 가운데라는 단어는 타베크라 그랬죠? 완성과 아래의 것이 와우 라는 그 문자가 노를 저어서 서로 이렇게 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타베크, 가운데 라는 뜻이 뭐냐 하면, 이렇게 아래것과 우에것, 좌에 것과 우에 것이 요렇게요렇게 노를 저어 가서, 가운데서 이렇게 만나는 지점 있죠? 우에것과 아래것의 교집합, 요걸 타베크 라 그래요. 


그럼 그게 뭐에요? 우에것과 아래것의 교집합으로 우리 에게 주어서, 아래것으로 우에것을 알게 만드는 그게, 율법, 성전, 예수, 세상 이런것들이잖아요? 거기에 라키야 를 만들으라는건, 성전을 그런 용도로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는 뜻이잖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거기에 마오르를, 하나님이 광명을 두시겠다는 거에요. 


이 마오르 가 나중에, 율법서에서는 뭐라고 쓰이냐 하면, 성소 안에 등대 있죠? 이게 전부 마오르란 말에요. 성소를 비추어서, 성전이 무언지를 설명해주는 그 역할을 하는 그거를, 그 등대를, 그게 또 일/곱/ 등대죠? 우리 수요일날 배웠어요? 그건 일곱 말, 일곱 영, 일곱 눈, 다 똑같은 말이잖아요? 그것이, 성전이 뭔지를 이렇게 설명해주면, 그거를 마오르 라 그래요. 


그러면 그 마오르 에 의해서 무엇이 이루어 지냐하면, 표적, 징조, 사시, 모예뜨, 일자, 욤, 연한, 샤네 가 완성이 된다라는 거에요. 그럼, 요게 뭔지를 알면, 그 넷, 유다라는 넷, 넷이라는 유다가 가지고 있는 그 표가 어떻게 완성이 돼야 그를 살리는 것이 될 수 있는지를 알 꺼 아닙니까? 이렇게 쉽게 설명을 하는데도?


그러니까 성경은 광명, 그 마오르라는걸, 하늘의 태양이나 달 정도를 설명하는 용도로 쓰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진리를 담은 성전과 연결을 시켜서 지금 우리에게 그 진리를 설명해 주기 위해서 마오르 라고 지금 기록을 하고 있는거란 말입니다.


자 여기에서, 징조 라고 번역이 된 그 오트 라는 단어가, 표적, 이적, 표, 깃발, 증거, 표징 이런 의미의 단어라 그랬죠? 그러이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성전이나 이 호코스모스의 세상이나 율법이나 성경이나 예수나 그리고 행하신 기적이나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전부 뭐라는 거에요? 표적이라는 거에요. 그 자체로는 그릇이라는 거에요. 그건 반드시 내용으로 우리에게 들려지고 읽혀져, 내 마음이 돼야 되는거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으로 복음을 넷으로 설명해준 다음에 내려가셔서 기적 행하시죠? 그게 뭐에요? 내가 조금 아까 이야기해준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너희들이 그걸 못알아먹으니까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설명해 줄게. 이걸 봐 라고 준거란 말에요.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귀신 쫓아내고 병 고치고 무덤에서 사람 살려내고... 이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살려놔 봐야 또 병들고 또 죽어요. 아니 이세상에서 쪼끔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그게 무슨 복이겠습니까? 그게 진짜 목적이었다면 그냥 하나님이 무얼 하나하나 쫓아다니면서 만져서 구하구 그래요? 그냥 말하지. 다 나아라. 그리구 다시는 질병아 없어라. 그러면 되지. 그게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그런 표적들을 그냥 표적으로 봐버리고 그걸 목적으루 삼는 이들이 있어요.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는데 쫓아다니고, 병고치는데 쫓아다니고, 이러고들 앉아 있는거에요. 한국에 내로라 하는 그 대형교회 장로들이 그러구 돌아다니고 있다니까요 지금? 거기 가서 전부 머리 디밀고 앉아 있는거에요 지금. 그걸 묵인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가망이 있습니까? 큰 교회 장로들이고, 그리고, 뭐 사회적으로 굉장히 성공한 사람들이라 그냥 쫄아서 아무말도 못하는거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그 장소를 빌려주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고?


그건 전부 표적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걸 통하여 주님이 그 죄의 증상, 사망의 그 증상들을 어떻게, 완전하게, 우리와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를, 우리가 배우는거지, 그건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거란 말에요. 그걸 표적으로, 껍데기로 보면, 그걸 성경이 어/두/움/ 이라 그래요. 어두움.


지금 이 넷째날이 창세기 첫째날과 짝이라는건 여러분이 다 아실 거예요? 첫째 날은 넷째 날과 짝, 둘쨋날은 다섯쨋날과 짝, 셋쨋날을 여섯째 날과 짝, 이게 완료가 되면 일곱이라는게 되고, 그 일곱을 마음으로 가지면 팔, 여덟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덟의 날에 살아나시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그래요. 그건 빛과 어두움을 하나님이 이거는 검게, 이거는 환하게, 이렇게 만들었다, 이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앞에서 어두움이 뭔지를 2절에서 설명해주고 시작하세요.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흑암은 깊음의 이름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이야 하면, 하나님이 '흑암(어두움, 푸쉐크)은 깊음의 파님, 깊음의 이름이라고 하자' 이렇게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밑에서 이 깊음이 모인 물이고, 그것을 바다(얌)이라고 할게, 하십니다. 그러면 이 아래에, 그 위에 샴마임, 하늘, 그게 뭐라 그랬어요? '거기에 물이 있다'라 그랬죠? 쉠이 명사로 쓰면 이름이지만 형용부사로 쓰면 거기란 뜻이니 거기에 물이 있는 곳을 하늘이라 그래요. 그 물이 진리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 물론 상징적이지만, 아래의 물로 우리에게 준 것, 눈에 보이게 준 걸 바다라고 하고, 아래의 물이라고 한단 말에요. 


그걸 우리가 잠시 이름을 '호쉐크, 어두움이라고 하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그러니까 어두움이 나쁜 거에요? 그게 없이 어떻게 그 위의 물을 아냐구요? 그걸 직접 줄 수 없어서, 우리가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게 유한 존재의 절망적 한계란 말에요.) 아래의 물이라는 것을 주어 위의 물을 설명하십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준 아래의 것을 어두움이라고 하는데, 그게 나쁜거냐구요? 그걸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아래의 것으로 그냥 봐버리면 이게 어두움이고 이게 죄요 이게 악이지만, 이 어두움으로 그 위의 것을 알아버리면, 이 어두움은 즉시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게 되는 것이고, 그것 그건 내눈에 보이는 똑같은 그것이지만 나에게는 빛이라 말입니다.


그때 그죄가 그악이 그율법이 나에게, 나와 무관한 것이 되고, 그걸 용/서/라고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그 어두움이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을 올바로 깨달아 알면 그것이 바로 빛, 오르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의 이름을 뭐라 그랬어요? 빛을 낮이라 이름하시고, 낮이라 칭하시고 이렇게 되어있는데, 낮이 날 입니다. 욤. 그 빛을 욤 이라고 하자. 근데 욤 이라는 단어가 뜻이 뭐냐 하면, 진리를 주다 라는 뜻이예요. 그러니까 아래의 것, 그 어두움 이것들을 갖고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이죠?' 하고 알게 되면, 그것을 하나님이 '낮' '날'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어두움은 '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밤' '라일' 이란 단어 자체도, 가르치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밤, 어두움을 우리에게 뭔갈 가르치기 위해 주었어요. 그러면 배우면 돼요. 그러면 그걸 낮, 날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역사라는 날들은 우리에게 진리를 주기 위해 이렇게 흐르고 있는 거에요. 이 '날'이라는 의미가 그런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세상에서, 바로 그 진리를 알고 가면 되는거에요. 그게 날들의 역사의 목적이라니까요.

주님은 어두움이라는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율법으로 오셨으니까 어두움으로 오신거죠? 그러나 빛이라는 내용을 담고 왔어요. 그리고는 "내가 진리다"라고 말씀했단 말에요. "내 안에 있는 그 빛이 진리다"라고 이야기했다 말입니다. 근데 세상은 그 어두움을 통해서 빛을 깨달을 수가 없었어요. 그게 유한자의 한계인거예요. 그렇게 깨달아 알면 그게 '낮'이거든요? 


그러나 주님이 이땅에 왔을 때 전부 어두움이었다 그래요 요한복음 1장에. 아무도 못봤다는 거에요. 그 빛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어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눈이 멀어 그냥 어두움을 살고 있었다 말입니다. 모든 존재가. 그래서 표적으로 오신 예수가 그냥 표적으로 인식이 된 후에 죽임을 당해 버렸어요. 그 표적 안에 담겨 있는 빛을 봐야 되는데. 주님이 그러는거에요. '내가 빛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있는 동안이 낮이다' 하셨어요. "낮이 열두시가 아니냐" 그랬죠? 내가 있는 그시간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이런 말이에요, 엄밀히 보면. "이 시간 동안, 내가 있는 기간 동안 너희들은 열 둘이 돼야지. 낮의 사람이 돼야지. 아들이 되어야지." 이런 말이에요.


그러나, 너희들은 이제 나를 못볼꺼야. 그러면 이 어두움인 세상에 빛이 잠깐 왔다가 사라졌네? 그럼 빛은 있어요 없어요? 사라진거에요. 여긴 그대로 또 어두움이라닌깐요. 근데 그때 주님이 뭐라 그러냐 하면, "내가 사라지면 이제 심판이 오는데, 어떤 자들이 심판을 받을지 아니? 그 빛이 너희 안에 없으면, 너희는 심판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빛으로 오신 그분을 아무도 못알아 봤어요. 다 어두움이니까. 그러니까 그 빛이 너희 안으로 뚫고 들어가 버리겠대요. 그거 없는 자는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다 죽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죽음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 빛을 갖고 있는 이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사는 자들이에요 그게. 그래서 주님이 너희가 세상의 빛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죽어버린 그 표적을 '쟈칼' 로, '인과 지팡이'로 '가르침'으로 '보증'으로 '성령'으로 당신의 백성들 안으로 인트루젼, 뚤고 들어가게 만들어 버린 거에요. 심어버리는 거에요. 은혜로. 선물로. 그게 성령이에요.


그렇게 표적은 반드시 진리로 완성이 돼야 돼요. '오르' 빛, 오르 로 시작한 그 빛은 '오트'로 완성이 돼야 돼요. 오르 가 이게 빛이 있으라 에서 빛이 오르 잖아요? 그리고 표적이 뭐냐 하면, 오트 예요. 똑같은 단어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가 빛이라면, 표적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완성하신다 는 거에요. 어떻게? 그 표적에 내용을 이제 너희에게 주어서 너희들을 완성하실꺼라는 거에요. 근데 뭘루 시작하냐 하면 인제 표적 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징조 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그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이요 율법이요 예수요 성전이요 세상이요 인간이요 이런 것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징조부터 이제 시작이 되는 거에요.


그렇게 표적은 진리로 완성이 되지 못하면 멸망시키는 양식이 됩니다. 그 구유의 아기가 먹이다, 양식, 이런 말이라 그랬잖아요.  주님은 우리에게 양식으로왔다 그랬잖아요? 내가 하늘의 양식이다, 하늘의 떡이야 그랬으니까. 그것이 진리로 깨달아지지 못하고 표적으로 보아져서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되면 그게 우리를 멸망시키는 양식이 되는거에요. 보세요 요한복음 6장 26절 역시 오병이어의 기적 다음에 일어나는 일이죠



(요6:26-27)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이게 호라오 예요. 표적을 너희가 호라오 하지 못하고 표적을 표적으로만 보았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떡으로 먹고, 배만 불리고, 그것으로 '야 우리의 배를 이렇게 부르게 해주는 이가 있어?' 하고 나를 찾아 왔다 라는 거에요. 나의 육적 가치나 육적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섬김의 대상 이게 가짜 하나님이에요 여러분. 27절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호 불러시스 아폴루미'  가 뭐냐 하면, 이게 멸망시키는 양식 이라는 거에요. 너희가 내가 하는 어떤 기적이나 말이나 심지어 나까지도 이런 것을 그냥 표피로만 봐버리면, 그게 멸망시키는 양식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을 해. 너희들을 멸망시키는 양식은 열심히 너희들이 율법 행하고 제사 지내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겠다고 하는 그 일 아니니? 그게 멸망시키는 양식인데, 그런 일 하지마.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해. 근데 그양식은 누가 준대요? 인자. 하 아담 하 벤. 호 휘어스 호 안트로포스. 인자, 그사람의 그아들이 그거 준대요. 말씀으로 주는거죠? 이거는. 인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치신 자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인이 뭐라 그랬어요? 성령 이라 그랬잖아요? 보증 이라 그랬잖아요? 그들이 너희에게 줘.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러나 그 다음에는? 수많은 그하나님의 그 아들들, 그 사람의 그 아들들이 나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역할들을 이렇게 하는거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에게 약속의 후손인 이삭을 주시면서,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죠? 그리고는 이것이 표적이다 그랬습니다? 창세기 17장 11절 보세요


(창17:11)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양피를 베는게 할례죠? 그거는 인간의 생명의 근원, 생명의 씨를 아예 차단해 버리는 거에요. 죽음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할례를 표적이라 그래요. 그런데 언약을 담은 표적이래요. 어떤 언약입니까? 약속의 자손이 낳은지 팔일 만에 할례 하죠? 아들만 합니다. 아들은 팔의 날에 그의 육, 육의 그생명을 완전하게 부정당하는 자다. 이런 말이에요. 그걸 할례 라그래요. 언약의 표적 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왜 아들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팔의 날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그건 제가 다음주에 설명해 드릴께요. 너무 기니까.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 후에도 표적을 주세요? 보세요 창세기 9장 13절


(창9: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무지개는? 일곱 색깔이죠? 칠입니다. 일곱을 너희에게 언약으로 준다. 이게 뭐냐 하면,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라고 돼 있는데, 이게 표적이예요. 역시.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이게 표적이다 라고 일곱을 줘요. 그리고는 그 일곱을 안 자들을 방주에서 나온 자들이죠? 그들을 여덟 이라 그래요 베드로전서에 보며는. 여덟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 그렇게 일곱을 알아, 그 언약의 내용이 뭔지를 알아, 여덟이 되는게 뭔지도 다음주에 설명해 드릴께요 제가.


그렇게 표적이라는건, 하나님의 그 언약, 그 약속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오트 라는거 다음에 사시, 모예드 라는 단어가 이렇게 이어지는 거에요. 이건 순서에요. 하나님이 마오르 라는걸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비추는,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표적, 오트, 그 표적을, 반드시 어떤 것으로 완성을 해 내실 꺼예요. 그런데 오트 를 주고서는,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알수 없어요. 


어떻게 알아요 그걸로?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제 모예드 라는걸 주시는데 그게 뭐냐면, 여기는 사시 라고 되어 있지만, 이것이, 모 라는 단어도 역시 맴이라는 그 문자와, 야드 라는 단어의 조합이에요. 야드 라는 단어가 에덴 이라는 단어와 맥을 같이하는 단어거든요? 이게 정하다, 정한 때, 모예드가? 그러니까 정한 때 약속하다, 언약, 약혼하다 이런 말이에요 이게. 


절기 , 정한때, 약혼하다, 언약하다, 정하다, 자 이런 의미를 품고있는 그 사시라는, 모예드 라는 단어가 왜 여기에 등장하는지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그 언약의 마지막 그 목적이 뭡니까? 쟈칼이신 하나님과, 말씀이신 그분과, 네케브에 불과한 우리가 혼인의 완성이잖아요? 그게 연합이죠? 이게 목적이죠? 언약의 목적이. 그래서 약혼하다, 그 약혼은 반드시 이루어질 약혼이에요. 혼인으로 완성되는 약혼. 그건 하나님이 정하신 거란 말예요. 그리고 그단어는 기쁨이란 뜻도 있어요. 그게 기쁨이고 그런거에요.


하나님은 그 혼인의 약속을 그 사시(모예드)라는 약속을 , 언약을 절기라는 걸로 주세요. 절기는 사계절이라고 해도 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넷이죠?, 이스라엘의 절기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수장절 초막절? 이렇게 넷으로 우리가 , 우리에게 주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뭐에요?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고, 거두고, 하얗게, 아주 순결하게 깨끗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거에요. 그걸 보라고 사계절 준거에요. 


유월절날, 로마서 7장에, 죽어야할 첫 남편이 죽죠? 그게 어린 양이잖아요. 

그리고 무교절에 교회, 광야에 누룩 들어가지 않는 떡이 하늘 양식으로 쏟아집니다. 그게 교회예요. 말씀이 떨어지는거죠. 

오순절날, 새 남편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는거죠? 

그러면 수장절, 추수가 된 알곡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수장. 영원히 사는거죠. 이게 절기가 가진 의미잖아요? 


자 언약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 진리를, 표적으로 주세요, 오트로 주시는데, 뭔지 몰라? 그래? 그러면 내가 그걸 절기로 풀어서, 그 언약, 혼인이 뭔지를, 풀어서 줄께 라고 모예드로 줘버려요. 그러나 그 절기나, 그 표적, 모든건 아직도 다 이 아래꺼잖아요? 어두움의 것이란 말에요 그거는. 근데 그걸로, 그게 뭔지를 알아버렸으면 그게 뭐예요? 징조, 사시, 그담에 뭐예요? 일자 죠? 


그 일자가 욤이예요 욤. 진리를 주다. 그게, 그 표적이, 어두움, 그 아래의 것이, 그 오트와 모예드가 나에게 어두움으로 주어졌지만, 그게 뭔지를 내가 이제 알았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알았을 때, 그걸 욤, 진리를 받은 자가 그진리를 넘겨줄 수 있으면 그걸 일자 라 그래요. 일자가 뭐예요? 난, 하여튼 일자. 욤이에요 그게. 순서라닌깐요? 그렇게 되면, 어두움과, 오트와 모예드 그거는, 이 육신을 입고 있는한, 그거에서 살아야 되니까, 이땅에서 발 들고 살 수 있는 사람 어디있어요? 아래 것으로, 이 어두움을 입고 산다구요. 그러이까 이게 크로노스의 삶을 우리가 사는거죠? 그런데 그걸 알아서, 이렇게 진리로 내가 갖고 있어요. 그러면 나는 크로노스의 삶을 살면서 카이로스를 같이 사는 거에요. 고렇게 양자를 같이 살 때 요게 짝으로 사는거, 그것두 살고, 이것도 사는거. 어두움을 살 수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 빛을 가지고 사는 그 걸 솨네, 연한이라 그래요. 연한은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또. 국어사전 찾어두 안나와. 연한이라 그래요.


그러이까 이거는 표적부터 시작해서 연한,솨네로 완성이 되어져 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그게 넷 이라는 거에요. 유다라는 넷 의 아들이, 그렇게 표적을 갖고 시작하여, 솨네로 완성을 하면, 그게 영적 이스라엘이다 라는걸 확실히 알고, 바울은 그것들을, 표적들을, 전부 이렇게 나열한 다음에, 이걸 니들이 그냥 갖고 있는다고? 너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8장에서 말하는 끊어지지 않음이라는건, 이런걸 가졌다고, 이루어지는게 아니란다 를 설명해주는거란 말이에요. 


근데 어떻게 이거를 육적 이스라엘, 민족적 이스라엘 이야기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냐구요? 창세기부터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 성경은. 그럼 요즘 뭐 세대주의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자꾸 저에게 메일을 그냥 수십통씩 보내가지고 외국 학자들의 무슨 뭐 논문도 보내주구 이메일로 말이죠. 그거 아니라구 세대주의가 맞다고. 민족적 이스라엘이 곧 다 구원받을 거라구? 가르칠라그래요. 주변사람들에 전해주세요. 그거다 스팸메일 처리해놨으까, 보내두 안읽는다구. 그런 시간두 없어요. 뭘 그걸 읽고 앉아있어? 신학교때, 다 공부한거.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성도의 이야기만이예요. 하나님의 아들들의 이야기만 한다 말입니다. 그렇게 그 절기, 그것을, 그것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혼인에 이야기를 이 크로노스의 역사를 통하여 그 혼인의 이야기,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 동안에 그 하나님과 잘 화해하여, 결혼하시면 되는거예요.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바울이 중매쟁이 라고 부르는거죠. 내가 너희를 하나님 앞에 훌륭한 아내로 중매한다 결혼시키겠다는거죠.


근데 중매쟁이가 소개하는 남편의 스펙이 영 말이 아녜요 지금. 이사야서 53장 보세요. 보기에 연한 순같고, 볼품도 없고, 건강하지도 않아. 툭치면 넘어질것 같애. 얼마나 못생겼으면 보자마자 얼굴을 돌린다 그래요. 그 흔한 대학도 안나왔어. 예루살렘에 정규대학, 4년제 정규대학이 두개나 있었습니다. 전문대는 뭐 수도 없이 많았고. 근데 무학이야. 머리 둘 곳도 없어. 아부지가 누군지도 몰라. 동생들은 또 왜이렇게 맣어? 거기다가 그를 남편으로 맞는즉시 나의 육이 그앞에서 부정이 돼야돼. 누가 이런 남편을 택합니까? 근데 어떤 정신나간 이들이 그이를 내 신랑으로 받아들이드라는 것입니다. 그 신랑 앞에서 나의 그 원함, 육적 원함과 내 육신이 그렇게 부정당하는게 맞지 라고 하며 그남편을 신랑으로 꼭붙들드라는 거에요.


그것을 배우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허락하신 거에요. 하나님 나라는 있지 않다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그결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가 그거 배우라고 허락한거라니깐요. 여기서 여러분끼리 마음 맞춰서 행복한 천국의 작은 모형을 이루라고, 행복하게 살으라고, 그렇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준게 아니에요. 그게 목적이 되면 여러분은 절대 행복할 수가 없어요. 이 인간의 이 욕심이라는게 끝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배우자를 찾습니까? 이 청년들, 배우자 기도, 기도 제목들 한번 다 꺼내 보세요. 예수와 정 반대의 스펙들을 다 원하고 있어요. 웬만하면 많이 배워야돼. 그러니까 그냥 목사들도 전부 디민, 뭐 닥털 오브 미니스트리, 미니스트, 목회학박사가 왜필요해요? 나는 그거 받은 사람의 90프로 이상은 전부 사기꾼이라고 봐. (ㅎㅎㅎㅎ) 돈디밀면 다주는거. 많이 배워야돼, 돈많아야돼, 잘생겨야돼, 키커야돼, 될수있으면 시댁식구는 적어야돼, (ㅎㅎㅎㅎㅎ) ㅎㅎㅎ. 그앞에서 내가 부정되는게 아니라, 그이가 나의 앞에서 부정돼야돼 ㅎ. (ㅎㅎ) 전부 반대야. 그래놓고, 나는 진리를 알아요 이러고 앉아 있대니까요. 예수를, 예수라는 남편이 그렇게 좋다매요? 그런데 이 역사속에서의 배우자는 왜 정 반대의 사람들을 요구하고 있냐구요?


자 아무튼 고대의 혼인은, 아이가 태어나야 비로소 완성이 됩니다. 혼인의 절차가,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장인 장모가 있는 장가로 와야 돼요. 그래서 장가 간다 그러는 거에요. 남편이 혼자 와요. 언제 오냐하면, 밤에 와요. 그리고 칠일 동안, 칠의 날 동안, 밤에 잔치를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집으로 가는게 아니라 그 장가에서 살아야 돼요. 언제까지? 아이를,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첫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가 있는 시집으로 가서 거기서 영원히 사는거에요. 이게 혼인의 완성이거든요? 그러니까 이땅에서 여러분은 이 역사, '날' 이라는 이 시간을 통하여, 바로 그 혼인을 완성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반드시 아들을 가져야, 씨를 가져야 돼요, 내안에. 그 진리를 마음으로 가져야 사는 거에요. 그래야 혼인이 완성되는 거에요. 그게 '모에드' 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진리로 그렇게 씨로 왔을 때 이게 날이고 욤이고, 그렇게 해서 위에 삶과 아래에 삶을 동시에 사는, 이 세상의, 세상의 빛이 된 이들의 삶을 소ㅑ네, 완성이라고 하는거에요. 양자를 다 사는 이들의 삶.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표적으로 주신, 그 열의, 그 율법, 열의 율법을 넷으로 주는 거에요. 그리고는, 에스카 톨로스 코드란테스, 넷의 마지막을 반드시 완성해, 그러면 정사각형이 되겠죠? 성전을 위에서 보면 정사각형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그성전 거룩한성 새 예루살렘을 정사각형 정육면체로 묘사를 하잖아요? 그게 넷이예요. 넷의 의미가 그거래니깐요?


자 그렇게 해서, 그 말씀을, 그 오트 를 갖고, 그 하나님의 완성, 그걸로 우리가 이제 진리로 완성해버려, 그러면 그게 무트 가 돼죠? 그게 죽음이예요.

오트 표적을, 우리가 무트, 진리로 완성을 해버리면, 그걸 육의 죽음, 이라고 한다니까요? 인간 육신의 모든 가능성이 부정돼버리는 거에요. 그걸 완성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근데 그 표적의 총화가 바로 예수라 그랬죠? 언약이고, 약속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조상들을 통하여 설명이 된, 아들이예요. 그 아들은 율법으로도 설명이 됐고, 성전으로도 설명이 됐어요. 그래서 이 성전이 나다 라고 이야기 하신거고, 그성경에 나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한거예요. 예수란 말이에요. 그렇게 진리라는 씨를 설명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들이, 전부 진리 앞에서 깨져야 할 표적이요 그릇들이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깨져야할 표적들만 붙들고는, 우리가 선민이다, 라고 너스레를 떨고 있드라는 것입니다. 그걸 지적하는 거에요. 그건 우리의 이야기잖아요 우리의 이야기. 오늘날에도 그렇게 엉터리로 예수를 믿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저마다 예배를 한다고 하고, 저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저마다 찬송을 하고, 저마다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합니다. 약속을 이야기하고 언약을 이야기하고 조상들의 이야기를 해요. 뭐 요즘은 그것도 힘들다고 그런 어려운 조직신학적 얘기는 하지말자 그래서 그런 얘기도 안해요. 그냥 신문 얘기만 해.


근데 전부 껍데기로만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를 섬기고, 표적으로서의 예수를 섬기고, 그 예수가 하신 일만 칭송하고 있는 거에요.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놓고, 십자가에 매달아논 다음에, 열심히 그 예수만 섬기고 있어요. 그게 죽은 것 같았으나 다시 산 짐승으로서의 예수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세상 임금으로 죽을꺼야 그게 십자가란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이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그이가 세상 임금이지 뭐예요? 우리는 그냥 국어사전 개념으로 이해를 하니까 자꾸 나의 상식으로만 이해를 하니까 세상 임금, 사탄 이렇게 알고 있는 거에요. 뱀? 마귀. 이렇게. 그분이 세상 임금으로 죽어야 세상에서 임금 되고 싶어하는 우리가 그 안에서 죽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거 아닙니까? 근데 주님은 뭐라 그랬냐 하면, 세상 임금으로 내가 죽을건데, 세상 임금이 곧 또다시 온대요. 무슨 말이에요 이게요? 내가 죽으면 이제 마귀가 다시 활개를 치고 온다는 뜻입니까? 아니오. 어떤 이들이 세상 임금으로 죽은 나를 다시 살려 자기들의 유익에 써먹을 거라는거에요. 열심히 섬기면서.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면, 그는 나와 아무 상관 없느니라.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 없는 예수를, 그 표적으로서의 예수, 그걸 율법으로, 성전으로, 여전히 섬기고 있다닌깐요. 아니 여러분, 옛날에는요, 죽은 시체는 부정하다 해서 절대 못만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장사를 아리마데 요셉이 하는거에요. 왜? 아니 예수님의 식구가 없었습니까? 아니 살면서 속망 썩여갖고 다 도망간건가요 그냥? 아유 저거그냥 장례도 치르기싫어 이렇게? 왜 가족들은 어디가고 아리마데 요셉이 장사를 시켜요? 요셉이라는 이름은 예수의 아버지의 이름이예요. 사람이 죽은 예수를 만지면 안되기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장사해야 된다 라는 의미에서 그가 굴에다가 갖다 쳐 넣는겁니다. 그 굴이 어떤 굴이냐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묻혔던 그리고 그 이후에 인자의 라인이 다 묻혔던 막벨라 굴 이라는 의미란 말예요. 그게 뭐에요? 양 우리, 양 우리는 늘 성전이에요. 성전에, 율법의 성전에 예수가 율법으로 묻혔으면, 다시는 만져도 안되고, 가도 안되는거에요. 그래서 옛날에는 평토장, 무덤을 봉분을 세우지 않고 평토장을 해놨어요. 부정한 거니까. 근데 혹시 자기들이 그거 밟을지도 몰라서 고자리에 이렇게 회를 칠해 놨다구. 안 밟을라구. 그런 율법적 노력과 시도를 주님이 회칠한 무덤 이라고 한거에요. 그런걸로 하나님이 기뻐할거 같냐는거죠. 


근데 우리는 그 죽은 예수를 살려놓고 열심히 거기 가갖구 그, 이, 예배당을 성전화시켜놓고 여기서 희생제사 를 드리고 있는 거에요. 그분은 그리스도로 살아서 내 안에 생명으로 들어왔는데, 내 밖에 걸어놓고 내 소원을, 나의 인간으로서의 이 욕망 성취를, 나의 가치 상승을, 위해서 열심히 빌고있는거라닌깐요. 그러이까 전부 이 예배던 뭐던 주인공은 나여야 돼. 내가 은혜 안받으면 안되고, 나를 감동시켜주지 못하는 찬양팀은 창양팀두 아냐. 오늘 예배 분위기가 왜이래? 뭘 왜그래 당신땜에 그래요.

그러이까 그진리를 설명해 주는게 못내 다 불편한 거에요. 하는 사람도 그렇고 듣는 사람도 그렇고. 


제가어저께 기독교티비를 우연히 보게되어서, 설교를한편 들었는데, 한국에선뭐 내로라하는 유명한목사님이예요. 한국교회의뭐 사상가를 자처하는분이죠. 개혁의 리더? 뭐이러면서. 30분간 딱 깔끔하게 설교를 끝내시두만요. 근데, 성경 한구절 읽어놓구, 성경에 대해서 설명하는, 꼴을 못봤어요. 아니, 제가, 끝날때까지, 딱 한번만, 어디든 좋으니까 성경을, 인용해서 그걸 설명좀 해줬으면. 나중에는 그냥, 예화도, 예화로라도, 한절만 좀 얘기해줬으면 했는데, 끝까지 성경은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고, 자기가 집회를 다니면서 너무너무 피곤하고 고단한데, 죽을것 같앴는데 하나님이, 잠을 허락하셔서, 잠을 자다, 자고 일어났더니 피로가 다 풀렸대.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잠이라는걸 마련해서, 우리를 회복시키길 원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회복의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그러구는 끝났어. 다 듣구 나갖구, 그러니까 피곤할땐 자라는거야? 뭐. (ㅎㅎㅎㅎㅎ)교회에 와서 그얘길 들어야 되냐구요?


회복의 하나님? 이게 비상교지 뭐예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셨대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회복시키기 원하신대요. 그러니까 회복하세요. 더웁게 가세요. 배부르게 가세요. 야고보가 말한 그거 피상교와 뭐가 달라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성경으로 설명을 해줘야죠. 어떻게 회복이 되는지 설명을 해줘야죠. 잠만 자면 되는거에요? 그냥 하나님이 잠이라는걸 만들어주셔서 그렇게 감사해요? 그걸 깨달아야 되냐구 우리가요? 근데 수천명 수만 명이 앉아갖구 아니 한국교회 지성들은 거기 다 가 있다매? 근데 아멘아멘 하고 앉았어요 거기서. 날 회복시켜 준다 그러니까. 그러이까 얼마나 형식적이예요 이게? 하나님이 회복시키기를 원하세요. 그런다고 내가 회복이 돼요? 아무 의미도 없이 굿모닝? 굿에프터눈 이거나 뭐가 달라요? 뭘 굿모닝이야 언제봤다구. (ㅎㅎㅎ) 아무나 보고 안녕하세요? 


안녕이 뭐에요? 평안 에이레네 뜻이에요. 진리를 모르는 이는 절대 그 평안 못 갖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녕못하죠? 내가 그 안녕이 뭔지 설명해 줄까요? 안녕하게 해드릴까요? 이렇게 인사를 해야 되는거 아니예요 원래? 근데 아무나보고 안녕하세요? 진리를 모르는 이들이 어떻게 안녕하겠냐구요? 아무나 만나면 뭐 기도하고 있어요. 


아 나 노회같은데 왜안가냐 하면, 무조건 만나면 할렐루야 이러더니, (ㅎㅎㅎㅎㅎㅎㅎ) 아그게 무슨 인사예요? 하나님 을 찬송하라. 내삶이 지금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데 할레루야 시작해서 지금말이죠, 목사님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어요. 뭘? 왜 날위해 기도해? ㅎㅎ 잘살고 있는데 ㅎ. 그거랑 뭐가 달라요? 그냥 버릇이 되갖구. 여기서도 구원받으세요 회복하세요 안심하세요 평안하세요 그리고 성경말씀은 한 마디도 안해. 근데 그게 편한가봐 서로. 너무 화기애애해요. 어우 부러워 ㅎ. 그런 분위기.


그렇게 표적으로서의 예수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질 가짜 이스라엘인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한게 이삭 그 아들이었습니까? 아니예요. 그럼 여기서 애 못난 사람들은 다 기도해서 애 받아야죠. 그 애 허락한게 아니라, 씨를 주겠다고 했더니, 표적에 담고 있는 그씨를 주겠다고 했더니, 아브라함이 이해를 못하니까, 아들주겠다는 얘긴가? 그랬더니 그 아들에게 그 씨를 진리로 담아서 아버지잖아요 그건? 아버지를 담아서 아들 안에 담아, 이걸로 아버지, 그 씨를 깨달아 알아라 라구 준거잖아요? 아브라함이 그 이삭, 약속의 후손, 그 씨를 통하여 그진리가 뭔지를 깨닫고 브엘셰바를 팍 찍은 다음에 진리를 알아요. 


이게 일곱 우물이지. 이것이 진리지 라고 알자, 하나님이, 그러며는 이제 이건 필요없잖아, 이건 갖다가 파괴해라 그러는거에요. 내가 너에게 준 아버지를 담은 그 아들은 파괴해라 그래야 그게 니 안에 아버지로 들거갈게 아니냐는거죠. 이삭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래서 모형으로만 보여주는 거에요. 그게 어떤 거냐면, 이렇게 준비된 어린양이, 내가 준비한 양이, 죽어야할 자 대신에 대신 죽는게 그이야기 였으니까, 이제는 그 이삭이 이야기하고 있는 모형으로서의 그 그릇은 필요 없잖아 라고 이야기 한거잖아요? 그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삭이라는 아들을 내아들로 주었잖아요? 그러면 이제 더이상 백세에 주신 그냥 후 불면 날아갈까 금이야 옥이야 나의 섬김의 대상이 된 아들이 아니라, 그 아들이 담고 있는 더 귀한 그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얘는 나에게 섬김의 대상이 안되는 거에요 이제는. 그 아버질 내가 알았으니까. 마찬가지요. 우리에게 그 씨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 아버지를, 진리를 담아 아들을 보내셨어요 이땅에. 누구예요? 예수. 그래서 예수가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라고 얘기한거에요. 내가 그아들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예수를 통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그 아버지를 알았잖아요? 진리를, 복음을, 알아 들었단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예수는? 역할을 다한것 아닙니까? 다시 살아나서 여기에 매달려 있으면 안된다닌깐요? 그러면 그거는 파괴돼야 되는거에요. 어디서? 모리아산에서. 거기가 예루살렘 아닙니까? 왜? 이제 그건 하나님이 나에게 그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 아들 안에 담아 나에게 허락하신 내아들이 되는거에요. 내아들이 되면, 그아들은 섬김의 대상이 되면 안되는거죠? 누가 아들을 섬깁니까? 하 요즘같이 그냥 뭣땜에 사는지 모르는 인간들이 전부 그 자식에 묶여가지구 꽁꽁 묶여갖구 그게 자기 생명이야 다들 보면. 그러니까 이렇게 설명을 해도 모르는 거에요. 그생명이지? 이렇게. 아이 검을 주러 왔다 라고 하신 주님이, 제일 먼저 끊어낸게 그관계라닌깐요? 그걸 내가 너에게, 니가 그렇게 우상으로 삼으라고 너에게 허락한거냐? 하나님이 그런거라 말입니다. 


예전에 우리 선배 아들이 중학교때 사고로 죽었는데, 이선배가요, 소파에 앉아갖구 일어나질 않는데, 똥오줌을 거기다가 다 싸면서, 너무 낙망이 돼갖구, 놔두면 그냥 죽겠더라구요 거기서. 그게 내 생명이었으니까. 


하나님은 그러라고 아들 준거 아니예요. 거기에서 그거 안에 담겨있는 더귀한 그 아버지를 깨달으라구. 그러면, 그아버지를 이제 깨달았으면, 그예수는 이제 내 마음 안으로 빛으로 들어와야 되는거에요. 그리고 이제 나는 그걸 아다마, 하 아담의 소리로 전해줘야 하는 자란 말이에요 나는. 여전히 그냥 열심히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서 나의 육신적인 어떤 것을 채우고, 편안하게, 나를 편안하게 해주시고, 잠을 주어서 피곤을 회복시켜주고, 이게 아니라.

그러니까, 당연히, 그예수는 우리의 섬김의 대상으로 남아있으면 안되는거에요. 그러면 여전히 표적 이란말입니다. 그 표적은 멸망의 양식이란 말에요.


이렇게 예수를 포함한 모든 표적들은 진리라는 내용으로 해석이 되어서, 마음 속으로 들어와야 되는거에요.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소리도 없고 언어도 없어. 그러나 뜻은 통해. 그게 진리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거에요. 제가 지금 말로. 언어로,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복음이 전해지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뜻으로 통하는 거에요. 그걸 이심전심이라 그래요. 진짜 이심전심은 그거에요. 그러이까 이렇게 말로, 언어로 전하고 있는데, 어떤 이들이 이 마음을 자기가 가지가면? 그게 성령이 계시다는 유일한 증거지 뭐예요? 여기서 찬송이 터지는거지, 무슨 뭐 내가 뭐 대단한 경험을 하고 기적을 체험하고 은이빨이 금이빨로 바뀌고, 부러졌던 팔이 붙구, 그게 나를 살립니까? 시편 19편 1절 보세요



(시19:1-4)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당연하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당연하죠.)


2 날은 날에게 (날이 욤입니다. 낮, 날. 빛은? 날은 날에게, 레마. 말하고.)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해줘요. 전부 그냥 지식만 이렇게 (ㅎㅎㅎ) 날은 날에게 말을 해준다는게, 그걸 말로 듣는이가 별로 없으니까, 다 지식으로 갖구 잘난척들 하는거죠.)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이게 진리예요. 그래서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난 자는, 거듭남을 설명하면서, 성령으로 난 자는 소리는 듣는데, 그게 어디서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 근데 흔적이 남는단다. 성령으로 난 자들은 다 그래. 이렇게 이야기 한거에요. 제가 말을 잘해서 여러분이 잘 알아듣는 게 아니라닌깐요. 


날때부터 소경인자, 하 누가 나를 고쳤는지 난 모르겠어요. 본적이 없는데. 중요한건 내가 보인다는 거에요. 그렇게 통하는 거에요 그냥. 그게 진리라니까요? 그러니까 반드시 표적은 깨지고 내용이 우리 안으로 들어 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이 생, 하늘의, 그, 생명수, 그 진리의 물이 이렇게 흘러가게 통하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에요. 근데, 주님은 그 성령을 배, 코일리아가 성전이거든요? 배에서 흐르는 생수라고 하죠? 성경의 어디에 넷으로 흐르는 생수 이야기가 나오는 데가 있어요. 근데 거기에 이름이 모예드의 그 에덴 입니다. 그러면 에덴에서 발원하여 넷으로 흐르는 강 이야기도 그이야기겠죠? 다음주에 하겠습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이런 많은 아래의 표적들을 주시고그것으로 진리를 깨달아알라고 말씀하셨음에도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그 표적에 머물며하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른그들처럼 예수를 믿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하나님 진리를 알게하시고그로 말미암아 터져버리는 그 자유가 우리 서머나교회를 가득 채우게 하여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