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재 '이영재의 토라로 세상 읽기'는 창세기 14장을 주석한 내용과 전쟁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원고 분량이 많아 필자와의 상의하에 3주에 걸쳐 나누어 싣습니다. - 편집자 주 

들어가는 말

한반도에 전운이 감돈다고들 불안해들 한다. 교회도 전쟁이 나면 어떡하나 염려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고 하니 더욱 불안하다. 차제에 성경에 나오는 전쟁기를 좀 살펴보면서 우리네 상황에서 교회가 어떤 신앙의 자세를 취하여야 할지 한번 생각해 보자. 성경에서 최초로 보도하는 전쟁은 창세기 14장에 나온다. 아브람을 통하여 수행하신 야훼의 거룩한 전쟁이 그 중심되는 주제다.

창세기 13장은 아브람과 롯이 헤어지는 장면을 다룬다. 롯은 삼촌 아브람을 떠나 여러 도성들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소돔이라는 도성으로 들어가서 정착하게 되었다. 창세기 14장은 소돔성에 거류하게 된 롯이 그 도성에서 전란의 화를 입는 장면을 보도한다. 여기서는 창세기 14장을 자세히 읽어 보도록 한다.

I. 문명사와 전쟁

도성의 역사를 다른 말로 하면 문명사라고도 부른다. 최초의 도성은 가인이 건설한 에녹성이었다(창 4:17). 도성이란 히브리어 '이르'는 영역본에서 대체로 city라고 번역한다. 문명사란 도시의 역사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성경은 창세기 4장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줄곧 도시의 역사를 제시하고 반성하고 있다. 가인이 세운 에녹 도성은 네피림과 같은 거인들에 의해서 발전되었다(창 6:1~4). 그러나 그 폭력성으로 인해서 영웅들이 세운 모든 도성은 심판을 받았다. 노아 시대에 대홍수의 심판으로 인하여 파멸하고 말았다(창6~9장).

그러나 노아의 둘째 아들 함과 그 후예들이 도성들을 건설함으로써 다시 문명사가 재개되었다. 이것이 창세기 10장의 이야기다. 창세기 10장의 문명사는 창세기 11장의 바벨도성 이야기에서 압축적으로 정리되고 있다. 아시리아의 제국들을 세운 니느웨 도성과 크고 작은 도시들이 난립하여 고대 중근동과 이집트의 제국을 구성하였다. 국가가 출현하였고(창 10:10), 가나안에는 열 개 부족들이 저마다 강력한 도시국가들을 건설하고 있었다.

폭력을 본질로 하는 여러 도성들에는 왕들이 지배자로 통치하고 있었다. 왕들은 서로 갈라져서 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고대사회의 도성들은 삼삼오오 연맹체를 구성하여 서로 대결하고 있었다. 연맹체의 맹주가 있었고 그 맹주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국가들이 단결함으로써 각각 도성은 안보를 확보하였다. 동맹체제에 종속된 도성들은 맹주와 종주권 조약을 맺고 일정한 공물을 정기적으로 맹주에게 바쳐야 했다. 맹주의 종주권에 반발하여 종종 반란이 일어나곤 했는데 롯이 사는 도성 소돔의 왕이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도성들의 왕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기존의 맹주였던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동맹군이 지배하고 있는 기존의 체제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이로써 소돔 도성은 전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문명사에서 전쟁은 필연이었다. 문명사가 출범한 이래 도시들 내지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한 번도 중단된 해가 없었다고 한다. 국가는 전쟁을 먹고 사는 체제다.

II. 성서 비평학의 문제

반시터즈(John Van Seters)라는 학자는 창세기 14장의 본문이 BC 1500년만큼이나 오래된 본문이 아니라 BC 8세기 무렵의 가나안의 사회상을 반영해 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또한 하나님을 야훼라고 부르는 오경 저자(J)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와 거의 동시대 인물로서 오경은 헬레니즘 고전시대 곧 포로기에 처음 생겨났다고 주장하였다. 포로기 내지는 포로기 이후 시대를 살았던 오경 저자는 소돔 전쟁기를 아브라함의 시대에 발발한 사건으로 보도하면서 그 역사적 자료들을 분열 왕국 시대의 역사 자료에서 뽑아 온 것으로 보인다.

성서 비평학은 성서 저자의 역사를 객관화하여 재구성한다. 성서 역사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BC 1650년경의 인물이다. 이 시기는 고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의 시대이다. 또 BC 1250년경에 살았던 이집트 중왕조의 람세스 2세보다 400년 이전의 사람이므로(창 15:13), 이 또한 아브라함의 연대를 BC 1650년경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성서 비평학의 결과 오경의 사건들은 BC 750년경에 발생한 사건들로 판단되기도 하고, 오경의 저자가 포로기 시대의 인물이었다고 하니 아브라함의 시대와 무려 1000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러저러한 증거를 바탕으로 성서 비평학은 아브라함을 위시한 창세기의 인물들을 가공의 인물로 간주하고, 성서의 이야기들을 실제의 역사가 아니라 픽션(fiction)으로 간주하게 된다. 여기에서 자못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오경 저자가 믿고 저술했던 역사적 사실은 성서 비평학의 결과 오류임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저자가 믿었던 것을 성서 비평학의 학자는 믿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현대의 교회는 성서 비평학의 연구 결과로 인해서 큰 혼란에 봉착하였다.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라는 믿음과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으며 무오하고 정확하다는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성서 비평학은 이러한 믿음은 문자주의 내지는 축자영감설로서 잘못된 믿음이라고 규정하고, 칼빈의 성서영감무오설을 근거로 성서를 기록한 성령의 영감에 오류가 없는 것이지 인간의 작업에는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새로운 성서관을 개척하려고 애쓰고 있다.

성서 비평학의 결과 오경이 포로 이후기의 작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포로 이후기를 살았던 저자가 오경을 섰다면, 그는 족장기를 무려 1200년 전의 사건들로 제시하고 있으며, 출애굽 사건을 무려 800년 이전의 사건들로 당대에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오경 저자는 자기 시대의 디아스포라 독자들에게 아주 먼 옛날이야기를 전해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오경 저자는 무슨 동기로 그처럼 오랜 옛이야기를 포로기의 디아스포라 유민들에게 전해 주려고 했던가?

나는 오경 저자의 옛날이야기가 말하려고 의도했던 바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저자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저자가 믿었던 바를 그대로 수용하고 믿는다.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따지는 현대의 작업은 성서의 믿음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역사적 사실이면 믿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면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합리적이며 믿음이 요구되지 않는 일이다. 역사학은 믿음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성서의 믿음은 성서가 증언하려고 하는 바 그 메시지에 대한 믿음이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성서의 저자는 동시대의 독자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는가? 이것이 시종 나의 질문이며 연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성서의 주제가 잡히면 그것을 당시의 사회적 배경에 비추어 이해하고 현대의 상황에 적용하여 새롭게 고백한다. 성서에 부응하는 고백으로 삶은 말씀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그렇게 되면 성경을 읽는 나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 책이라는 고백 위에 더욱 확고하게 서게 된다.

축자무오설과 성서 비평학 사이에서 오래 서성이다가 마침내 제삼의 확고한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모든 교회가 통일된 성경관에 도달하는 일은 주의 몸된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 너무나 중요한 과제이다. 칼빈 선생님께서 '개혁교회는 늘 개혁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교훈에 따라 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개역의 기준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분열된 교회가 개혁하여 하나로 서기를 염원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계속 성경을 읽어 나가자.

III. 본문 자세히 읽기

창세기 14장의 본문들을 한 구절 한 구절 빠짐없이 샅샅이 읽는 작업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찬찬히 뜯어보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는 노력에는 큰 기쁨이 선물로 주어진다. 개혁하는 주체는 이 기쁨의 맛을 알아야 교회 개혁의 주인공으로 부름받았다는 사명을 고백할 수 있다. 사명감에 가득 차서 성경을 꼼꼼히 읽는 동역자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분명 성령의 역사임을 느낄 수 있다.

창세기 14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소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 창14:1~12, 전쟁의 원인과 결과
나. 창14:13~16, 야훼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
다. 창14:17~24, 거룩한 전쟁의 원리

가. 창 14:1~12: 전쟁의 원인과 결과

[창 14:1]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히브리어 본문을 보면 1~2절이 하나의 문장이다. 1절의 '와여히 버~'는 ‘~ 때에’란 뜻의 종속절이고, 2절은 와우계속법으로 시작하지 않으므로 주절로 간주해야 한다. '시날 왕 아므라벨 때에 그들이 전쟁을 하였다'란 구문이다. 한글개역은 '당시에 ~ 고임 왕 디달이'라고 번역하여 1절을 2절의 주부로 만들었다. 하지만 '비메이'는 전치사 '버'와 날이나 해를 뜻하는 '욤'의 복수연계형이므로 그 다음에 나오는 네 왕의 이름들과 연결된다.

1. 시날

아브람 당시 가나안 땅은 시날 왕이 지배하고 있었다. 1절에 네 왕들이 거명된다. 시날 왕 아므라벨, 엘라살 왕 아리옥, 엘람 왕 그돌라오멜, 고임 왕 디달. 이들이 누구인지는 본문은 상세히 알려 주지는 않는다. 다만 '시날'이란 도성의 이름이 창 10:10; 11:2에 이미 언급되어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저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시날'은 창 11:2로 미루어 바벨론 도성이 있는 지방을 가리킨다. 에덴동산이 동쪽에 창설되었고(창 2:8),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 사람은 자꾸만 동쪽으로 옮겨갔다(창 3:24). 가인이 동쪽으로 갔으며(창 4:16) 노아의 아들 함의 후예들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그들은 동쪽 시날 땅에서 바벨 도성의 망대를 하늘 높이 쌓아 올렸다(창 11:2). 롯이 아브람을 떠나 동쪽으로 이주하였다(창 13:11). 동쪽은 문명이 발달한 도시 지역으로 각 도성에는 군왕이 다스리고 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을 때 아간이 시날 산 명품 외투 한 벌을 몰래 취하였다가 벌을 받았다. 창세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문명의 편리함을 찾아서 자꾸만 동쪽으로 나아간다.

2. 엘라살

엘라살은 라르사라는 성읍를 지칭한다고 한다. 아리옥은 일반적으로 라르사 왕 림신과 동일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라르사는 오늘날의 센케레인데, 하부 바벨론의 유브라데 강 동안, 고대에는 소위 갈대아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그 곁에는 이곳은 태양신 샤마스 신전의 예배로 유명해진 도시국가였다. 갈대아 우르 도성의 곁에 위치했다. 그러나 다른 견해도 있는데 엘라살을 갈그미스와 하란 사이의 지방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3. 엘람

엘람은 바빌론 동쪽 지방으로서 Susiana라고도 한다. 엘람어로 Ḥaltami, 아카드어로 Elamtu이다. 대체로 지금의 후제스탄 지역과 일치하는 이란 남서 지역의 고대국가로 여긴다. 고대 사료에서는 엘람국의 이름 난 곳으로 아완·안샨·시마슈 및 수사 등 네 도성을 꼽는다. 수사는 엘람국의 수도였으며 고전에서는 때때로 국명을 수시아나로 표기하기도 한다.

고대에 엘람은 아카드 왕조의 지배를 받아서(BC 2200년경) 수메르-아카드 설형문자를 사용했다. 아카드 지배 이후 엘람은 산악 족속 구티의 통치를 받다가 그 뒤에는 우르 제3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갈대아 우르 세력이 물러가자 엘람은 다시 독립을 누렸다. 그 후 BC 1600년경 카사이트인의 침략으로 바빌론과 엘람은 몰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BC 13세기경 엘람이 재건되어 엘람 왕 슈트루크-나훈테와 쿠티르-나훈테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여 짧은 기간 동안 티그리스 강 동부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했다. 그러나 엘람의 시대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1세(BC 1124경~1103경 재위)가 수사를 점령했을 때 끝이 났다. 수백년 동안 잠잠하다가 BC 640년에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엘람을 침략하여 수사를 점령하고 기존 지배자들을 사마리아에 유배시켰다. 그 후 아케메네스 제국에서 에람은 한 속주(사트라피 : 총독령)가 되었고, 수사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가장 큰 삼대 도시 중 하나로 번창하였다.

엘람어로 된 서사시나 제의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엘람인들의 종교 생활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엘람어 자체도 너무나 독특해서 확실히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엘람의 미술과 건축이 바빌로니아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만은 확실하다.

4. 고임

고임은 디달 왕이 다스린 성읍을 지칭한다(창 14:1, 9). 이들은 북쪽에 사는 비(非)셈족으로 추정된다. 디달이란 이름이 헷 족속의 왕들이 지녔던 투드얄리아(Tud Jalia)라는 명칭과 비숫하다. 투드얄리아 1세(주전 1700-1650년경)가 창세기 14장의 역사적 인물일 수도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디달이 이 이름과는 잘 맞지 않기 때문에 고임은 히타이트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수12:23에서 언급된 고임 왕은 여호수아에게 패배한 블레셋 이주민 집단으로 보인다. 그리스어역본 LXX에는 갈릴리로 나오고(RSV), 히브리어 본문 MT에는 길갈로 되어 있다. 이것을 삿4:2의 하로셋 하고임과 동일시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아빅의 북쪽 길갈을 가리킬 수도 있다.

[창 14: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동쪽에 도시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이 지역에 전쟁이 빈발했고 잠시도 평화가 없었다. 문명이 발달한 지역의 왕들이 세력을 떨치며 정복의 길에 올랐다. 이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문명의 주도자들은 전쟁을 일으키는 전범들이었다. 지배자들은 작은 도성들을 다스리며 조약을 맺고 조공을 매겼다. 작은 도성의 왕이 조공을 바치지 않거나 반란을 일으키면 여지없이 무자비한 보복전이 감행되었다.

소돔 왕은 기존의 지배 체제에 저항하여 동맹군을 결성하였다. 왕의 명단이 다섯 명 나온다. 소돔 왕 베라, 고모라 왕 비르사, 아드마 왕 시납, 스보임 왕 세메벨, 소알 왕 벨라가 그들이다. 이 다섯 도성은 염해 남부 지역에서 번성하였다. 이 중에 소알은 소돔 보다 훨씬 작은 소도시였다(창 19:20).

[창 14:3]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시날 왕 아므라벨이 이끄는 연맹국의 지배에 반대해서 소돔 왕이 독립을 꾀하였다. 도시국가들의 왕들은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 서로 동맹을 체결하고 그 중에 가장 강한 왕이 맹주가 되고 그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이 관례였다. 이 구절에서 처음 언급된 동사 '하바르'는 '연결되다/짝지우다'란 뜻인데 여기서 '모였더라'라고 번역되었다.

이 동사는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지을 때 천막을 서로 연결하는 동작을 가리켜서 14회나 반복하여 언급된다. 삿 20:11에는 베냐민 지파를 치려고 이스라엘 나머지 지파들이 단합하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이 구절의 용법과 동일한 뜻이다. 이 단어는 신 18:11에서 '진언자'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BDB사전을 보면 to unite, to tie a magic knot 라는 설명을 첨가하고 있다[KJV/RSV, charmer ; NRSV, one who casts spells ; NKJV, one who conjectures spells].

[창 14:4]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맹주는 아마도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십이 년 동안 섬긴 왕이 그돌라오멜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 5절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라고 표현한다. 염해 지역의 도성들은 시날 곧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십이 년 동안 조공을 바치다가 십삼 년째 되던 해에 조공을 보내지 않았다. '배반하였다'란 말이 조공을 보내지 않고 반역을 도모했다는 말이다.

이 구절에 섬기다'란 뜻의 동사 '아바드'가 전반절에 나오고 후반절에는 '반역하다'란 뜻의 동사 '마라드'가 나온다. '마라드'는 이 구절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이 동사는 히브리어 성경에 25회 언급되며 모두 칼형으로 나온다.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를 가리켜서 두 차례 언급된다. 자국의 왕에게 반역하는 행위와 국제조약을 어기고 반역하는 경우가 주종을 이루는데 이 중에 국제적인 종주권 계약을 어기는 것에 빗대어 야훼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를 이 단어가 묘사하게 되었다.

여호수아 22장에 여섯 차례 언급된 단어들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수 22:16, 18, 19, 19, 22, 29). 하지만 수 22:19의 경우 번역 상의 논란은 있다. 범죄 '파샤', 죄 '핫타', 악행 '마알' 등 하나님과 언약을 깨는 행위를 가리키는 동사들이 이 동사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언약에 대한 배신의 뜻을 담고 있다.

한글 번역에 '제십삼년'이라고 붙여쓴 것은 맞춤법에 맞지 않는다. '제십삼 년'이라고 해야 바로 앞의 '십이 년 동안'이란 표기와 통일성을 갖추게 된다. 성경이 한글의 표준이 되도록 맞춤법을 철저히 따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창 14:5]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복속된 지 14년째 되던 해에 시날 왕의 연맹군이 소돔 지역을 쳐들어 왔다. '치고'의 원어는 '와약쿠'인데 그 기본형 '나카'는 창 4:15; 8:21에 나왔으며 여기에는 세 번째로 등장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행위, 노아 홍수로 죄인과 그 망가진 땅을 쓸어버린 행위를 가리켜 '나카'를 사용했다. 이 동사는 창세기 14장에 네 차례 나온다(5, 7, 15, 17절). 그돌라오멜 연맹군이 친 족속들이 열거된다. '아쉬테롤·카르나임'에서 '러파임'을, '함'에서 '주짐'을, '사웨 키르야타임'에서 '에밈'을 쳤다. 본문의 각주 2번을 보면 '사웨'를 '평지'라고 설명한다.

러파임, 주짐, 에밈이란 이름은 신명기에 나온다. 러파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십 부족의 명단에 나온다(창 15:20). 롯의 자손 모압 족속이 러파임이라 불리던 원주민 에밈 사람들을 쫓아내고 정주하였다(신 2:10~11). 롯의 자손 암몬 족속도 러파임 족속을 몰살시키고 그들의 땅을 점령하였다. 러파임 족속은 아낙 족속처럼 키가 큰 거인들로 명성이 나 있었다. 동방에서 내려온 그돌라오멜 연맹군은 이들 쟁쟁한 족속들을 다 복속시켰다.

[창 14:6]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연맹군은 세일 산맥에서 호리 족속을 쳐서 광야가 펼쳐지는 '에일·파란'까지 점령하였다. 신명기에 보면 세일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무려 38년 동안 방황하였는데(신 2:1, 14) 그곳에는 에돔 족속이 살고 있었다(민 20:21≠신2:8). 창세기 36장에 나오는 에서의 족보를 보면 호리족속은 에돔 지역의 원주민으로 나오는데(창 36:20) 나중에 에돔 족속에게 밀려서 쫓겨났다(신 2:12, 22). '파란'광야는 이스라엘이 시내산을 떠나 나아간 첫 광야의 이름과 동일하다(민 10:12). 이스마엘이 세력을 떨치던 광야도 '파란'광야였다(창 21:21). 가데스는 '파란'광야에 있었다(민 13:3, 26). 신 1:1에 '파란'이란 지명이 나오고 신 33:2에는 '파란'이 산 이름으로 나오는데 '세일'이란 지명과 나란히 거명된다.

[창 14:7]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연맹군은 에돔과 모압과 암몬 지역을 다 휘젓고 다닌 후에 더 남쪽으로 내려가 가데스 지역의 아말렉 족속과 하사손다말 지역의 아모리 족속도 정복하였다. '에인·미쉬파트'란 지명은 오로지 이 한 구절에만 언급되는데 그곳은 바로 '가데스'였다는 주석이 붙어 있다. 가데스는 모세가 정탐꾼을 파견한 지점이다. 특별히 아말렉 족속을 정복할 때 그들의 '사데'를 쳤다고 한다. '사데'는 들판이나 밭이나 영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연맹군은 소돔 왕을 응징하기 위해서 소돔 성 주변의 여러 부족들을 미리 점령하여 마비시킨 다음에 소돔을 서서히 옥죄어 나기 시작했다.

[창 14:8]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

이 소식을 접한 소돔 왕 동맹군은 사해 주변에 집결하여 진을 쳤다. '그들과 전쟁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라는 번역의 원문은 '와야아르쿠 이탐 밀하마'이다. '밀하마'는 '전쟁'이고 '이탐'은 '그들과'란 뜻인데 '와야아르쿠'는 기본형 '아라크'이다. '아라크'는 '차리다/펼치다/진열하다/벌이다'란 뜻이므로 직역하여 '그들과 전쟁을 벌였다'라고 번역하면 좋겠다. 개역개정의 '그들과 전쟁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란 번역은 너무 길고 또 '아라크'란 동사와 맞지도 않다. 개역은 '그들과 접전하였으니'라고 한자말로 짧게 번역했다. 표준역은 '쳐들어온 왕들과 맞서서 싸웠다'라고 더 길게 번역했다. 공동역은 '진을 치고 그들과 싸움을 벌였다'라고 했다.

'아라크'는 이 구절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단어이다. 창 22:9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결박하는 장면에서 번제단을 쌓으려고 장작을 차리는 동작을 묘사한다. 창세기에는 이 두 차례 언급밖에 없다. 이 동사는 출애굽기에 성막과 관련하여 다섯 차례 나오고 대부분 레위기에 36회나 언급된다. 민수기에도 두 차례만 나온다(민 18:16: 23:4). 신명기에는 없다. 그러므로 이 용어는 레위기를 작성한 P의 전문용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P라는 저자가 오경을 완성했다고 보기 때문에 창세기 14장과 22장은 오경을 저술하는 시점에서 그 작문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 시기는 포로 이후기로서 BC 400~300년 어간이 아닐까 본다.

[창 14:9]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맞서니라'는 동사는 원문에 없다. 9절은 모두가 목적격을 나타내는 명사구로만 이루어져 있다. 목적격 조사 '에트'가 두 차례 나오는데 이것은 8절은 '이탐'의 목적격 조사와 동격을 이루고 있다. 8절에서 '그들과 전쟁을 벌였다'라고 번역하고 이어서 9절에서는 '그들이란 곧 엘람 왕 그돌라오멜... 다섯 왕들이다'라고 번역하면 된다. 원문에 없는 동사를 넣어 주는 일은 삼가야 한다.

[창 14: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반란군 주동자 소돔 왕은 패배하여 도망가다가 싯딤 골짜기 역청 구덩이에 빠졌다. '역청 구덩이'는 '베에로트 헤마'이다. '베에로트'는 '버에르'의 복수형인데 '샘/우물/구덩이'란 뜻이다. 이 구절에 '베에로트'가 두 번 반복되는데 앞의 것 '베에로트'는 뒤의 '베에로트 헤마르'와 동격이다. '구덩이' 곧 '역청 구덩이'라는 설명의 동격이다.

싯딤 골짜기는 역청 구덩이들이 여러 군데 널려 있는 위험한 지역이다. 역청을 가리키는 단어 '헤마르'는 창세기 바벨도성 이야기에 처음으로 나왔다. '역청('헤마르')으로 진흙('호메르')을 대신하고'(창 11:3). 10절 전상반절은 직역하면 '싯딤 골짜기는 구덩이들 곧 역청 구덩이들이었다'가 된다.

'도망치다'를 뜻하는 동사 '누스'가 이 구절에 처음 언급되는데 두 차례 나온다. 이 동사는 창세기에 7회 나오며(창 14:10, 10; 19:20; 39:12, 13, 15, 18), 오경에 총 32회 나온다. 전반절에 '와야누수', 후반절에 '나수'라고 되어 있다. 그 중간에 '넘어지다'란 동사 '나팔'이 나온다.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은 역청 구덩이에 넘어져 빠져 버렸고 나머지 세 왕들은 산으로 도망쳤다.

[창 14:11]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전쟁은 그돌라오멜 동맹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절에는 분절기호 아트나가 없다. 동사 두 개가 나오는데 맨 앞에 '취하다/잡다'란 뜻의 '라칵흐', 맨 뒤에 '걷다/가다'란 뜻의 '할라크'가 그것이다('와이크후 ~ 와옐레쿠'). '모든 재물'과 '모든 양식'을 취하여 갔다. 여기에 동사가 삼인칭복수이기 때문에 개역개정에는 작은 글자로 '네 왕이'라고 첨가하였으나 원문에는 이 주어가 없다.

'재물'을 가리키는 명사 '러쿠쉬'는 부동산을 제외한 동산을 가리킨다(참조. 창 12:5 주석). 종주국의 왕들은 소돔 연맹군을 격파하고 소돔을 위시한 다섯 도성들을 약탈하여 모든 동산과 식량을 싹쓸이 약탈해 갔다. 그 속에 롯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 통에 성민들은 포로로 끌려갔으며 전리품으로 끌려간 포로들은 이국땅에서 노예로 팔렸다.

[창 14:12]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여하튼 이 전쟁기는 롯이 택한 소돔 지역에 물이 넉넉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살기 좋아 보였지만 거기에는 평화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역사성을 밝히느라고 수고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승전한 왕 그돌라오멜은 소돔을 함락시키고 성민들을 포로로 끌어갔는데 그 가운데 롯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재산까지도 노략질을 당했다고 오경 저자는 이야기한다. 오경 저자가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2절에는 롯이 소돔에 거주하였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명기해 둠으로써 차후에 19장에 보도되는 소돔 성 멸망의 이야기를 미리 준비해 두고 있다. 12절도 11절과 동일하게 '와이크후 ~ 와예레크'의 구문을 이루고 있는데, 후반절에 '그는 소돔에 살고 있었다'라는 설명구를 첨가하여 강조하고 있다('워후 요쉐브 비스돔').

이영재 / 전주화평교회 목사·전주성경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