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아가서

아가서 강해 4

은바리라이프 2013. 10. 21. 12:49


인제 마지막 날인데, 아가서 5장 오늘 5,6,7,8 짧아요.1절부터 제가 읽으면서 쭉 나갈께요?

 

5: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이거 이제 솔로몬이 하는 얘기거든요?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어제 말씀드렸죠?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이기도 하지만, 또 예수님의 신부이기도 한 그 현실, 그게 인제 연합의 현실이라 그랬죠? 둘 다 한 몸이라 뜻이죠. 형제는 한 핏줄이란 의미고, 부부는 한 몸이란 의미죠. 그죠?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하나가 되리라 에서 그 하나, 연합이 현실을 이야기하는게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그러는거죠? 그거는 인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사야서에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서 아들이라 그러고 또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그러죠?  거 아들이라 그러구 아버지라 그러구 그러면 아버지에요? 아들이에요? 그게 연합의 관계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이렇게 이야기하는거라 했습니다.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이제 연합의 현실을 확고히 확증해 주는거죠. 내가 내동산이라 그래요. 에덴 동산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라 그랬습니다?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그러죠? 여기서 도그라마 쳐야될 단어들이 나예요 나. 우리가 어제도 살펴봤지만, 술람미에게서 향기, 몰약, 젖 뭐 여러가지를 이렇게 취해요. 그리고 칭찬해주죠? 야 어쩌면 너는 그렇게 아름답고 그렇게 향기로운 것들을 가지고 있니?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솔로몬이 여기서 뭐라그러냐면, 그거 내가 준거다 그러는거에요. 내가 준걸 니가 갖고 있구나 그렇게 이야길 하는거죠? 그니까 반드시 성도의 삶 속에서는 예수가 우리에게 준 것이 드러나고 나와야 돼요. 그게 뭐냐면 믿음이라 그랬습니다 그죠? 의와 거룩함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입혀준 옷이라 그랬는데, 그 디카이오수네 하기오스 가 뭐라 그랬어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거룩과 의죠? 근데 고린도서에서 보면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잖아요? 그분이 우리에게 의가 되시고 거룩이 되셨다 그러잖아요? 그러죠? 그러니까 예수로 우리가 옷을 입고 있는거. 그말은 무슨 말이냐면, 점점점점 내가 부인되어져 가는 그러한 현상들, 이런 것들이 이제 우리에게서 나타나게 된다는 거죠? 그러면서 솔로몬이 뭐라 그러냐면, 얘들아 와서 이 잔치에 참여해라. 같이 먹어라 그래요. 자랑하고 싶어서 어쩔줄을 모르는거에요. 이게 내 신부다. 이게 내 동산이고 이게 바로 내 처소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거죠?  그게 우리의 마지막의 묵시 속에서의 우리의 현실이 되는거죠.

 

그른데 금방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나는데, 솔로몬이 술람미를 찾아왔는데 감히 술람미가 일어나지도 않고 문도 안열어줍니다? 역사 속에서의 성도의 모습이 다시한번 또 나타나는 거에요. 한번 볼께요

 

5:2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예수님이, 신랑이, 밤 이슬을 맞으며, 그냥 왕이니까 어디에서 쉬다가 다음날 와도 되는데, 이 신부가 너무 보고 싶으니까 왕인데 밤이슬을 맞고 신부를 찾아온거에요. 밤에 찾아와서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야 그래요. 그 비둘기가 나만 바라보는 사람이거던요. 비둘기, 나의 비둘기야 라고 불렀는데, 3절에 보면 술람미가 뭐라 그러냐면

 

5: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샌달을 신고 다니거든요? 더우니까. 그래서 어디 손님들이 오며는, 발을 씻어주는 종이 따로 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자기전에 닦는 발, 그렇게 발을 닦으면 그 담부턴 안일어나는 거에요. 그냥 자는 거거던요? 근데 이 신부가 지금 그렇게 발을 닦고 자고 있는 거에요.  근데 아직 잠이 안들었어요. 정신이 있는데, 근데 옷을 다 벗구 자고 있는데, 신랑이 와서, 그 신랑이 누군데? 신랑이 와서 문을 뚜들기면서 나의 사랑 나의 누이 나의 비둘기야 그러는데 문을 안열어주는거에요. 왕궁에서 신부가 보고 싶어서 왔는데 그런데 비밀번호 바꾸고 문 잠그고 자는거랑 똑같은거에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죠 여러분? 우리가 그러잖아요?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 교회의 밖에서 문을 계속 두드리는 장면이 나오죠? 그거는 여러분 교회에게 하는 말이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문열어라 그러면 내가 너로 들어가서 먹겠다 너에게 구원을 선물해 주겠다 이런 얘기 아니에요. 그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역사속 교회, 일곱 교회, 그 역사 속 일곱 개 교회가 역사 속에서 갖고 있을 흠이나 맹점 같은 걸 인제 지적하는게 일곱교회였잖아요? 계시록에서. 예수님이 와서 문을 두드리는데, 우리는 내 편하자고 그 신앙 생활에 게을러 질 때까 한두번이 아니죠? 고거 이야기하는 거에요. 내가 지금 발까지 다 닦았는데, 아무리 신랑이라도 그렇지 아무때나 막 찾아오면 되는거에요? 이렇게 되는거죠. 자 이게 내 중심, 인본주의 신앙의 특징이에요. 요 상태로 그냥 가면, 나중에 진짜 신랑이 찾아왔을 때, 내가 이세상에서 누리는 열락이나 이런 것들이 너무 좋으면 그신랑 마다하게 되는 거거던요? 그니까 요상태가 안될라믄 어떡해야돼요? 발딱고 편히 잘수있는 일이 여러분에게 없어져야 되는거에요. 발딱고 편히 잘 수 있는 환경이 우리에게 마련이 되면, 우리는 항상 그 환경이 좋아서, 그게 편해서, 신랑이 와도, 그 문을 안열게 되는 거에요. 그때

 

5: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인제 뭘하는지 보세요 이 신랑이

 

5: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아주 힘이들었어요. 아이시 이시간까지 저 웬수는 밤에 찾아와가지고. 근데 남편이 뭘 하는것 같애요.  손을 디미는 바람에 일어났는데, 신랑이 뭘 하고 사라졌어요. 뭘 했냐면 몰약을 손잡이에다가 발라놓고 떠났어요. 몰약이 뭐죠? 시체에다가 묻히는 향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항상 상징할 때 몰약이라 그러죠? 그래서 예수와 몰약을 함께 싸는거죠. 다시 처음자리 확인르 시키는거죠. 봐라 내가 잠깐만 너를 떠나 있으면, 니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라는 거에요. 니가 나를 사랑한다구? 내가 너 사랑한거야. 고 이야기 하는거에요. 내가 너 위해 피흘려 죽은거야. 니가 나를 사랑해? 천만의 말씀. 니가 변했어? 뭘 변했어. 너 혼인잔치까지 치렀어. 근데 내가 잠깐 떠났다 돌아왔더니, 너 니 편하자고 문도 안열어주는게 너야. 이야기하는거죠. 그래놓고 니가 내 신부가 된 이유를 다시 가르쳐 주는게 몰약을 발라논 것입니다. 십자가를 다시한 번 새기는 거에요 거기다가. 그 십자가 몰약이 뚝뚝 떨어져요. 그니까 정신이 번쩍 나죠 그죠? 6절에서

 

5: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역사 속에 두고 침묵을 하시는 이유, 기도를 해도 별로 응답도 안돼죠? 침묵이에요 그게. 뭐 대단하게 기도응답 받은게 뭐가 있어요? 나는 오만 번 기도해서 두 번,  택시 한번 오게 해주세요, 잊어버린 지갑 찾게해주세요 이거. 그게 맞는거에요. 우리 안에서, 이 탐심 속에서 나오는 기도제목들이 자꾸 들어지게 되면, 여러분 우리는 고기에 맛이 들려갖구 내 의지대로, 내 죄의 본성대로 이 삶을 살려고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 여기에서 여러분의 의견이 자꾸 묵살 당해야 돼요. 그래야 아버지가 나를 이끌고 간다라는걸 알게 되는 거거든요? 고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이에요. 그니까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그냥 성경을 그냥 표피적으로 읽고 신앙생활도 그냥 자기 상식으로 하는거죠. 그니까 인간들에게 유익이 되면 그게 신앙이 좋은거고, 그리고 그렇게 해주는게 하나님께 상을 받는거고, 뭐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천국가도 그런 식의 상이 우리에게 올거라고 착각들을 하는거죠.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은 이들은 몇 마디만 던져도 그 사람의 자아가 왕창 허물어지는걸 봐요. 느껴요. 술람미에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딱 보여주자 마자 술람미가 똑 찾아나서는 거죠. 맞아 그신랑이었지 이렇게. 


어제 켈리 전도사님 남편분, 외국분인데도 불구하고, 저에게 오더니 눈물을 글썽글썽 하시면서 유 세이브 마이 라이프. 말이 안 통하는데 난 단 알아듣는거에요. 솔직이 통역을 하면 얼마나 완벽하게 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말로 하는데 한국사람도 못알아듣는데, (ㅎㅎㅎㅎㅎ) 못알아듣잖아요 뭐 알아듣는척해, 그런데 그 통역기를 끼고 몇 달을 앉아서 그렇게 듣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유 세이브 마이 라이프. 저 같이 울었잖아요! 알아듣는다닌깐요. 이게 복음이구나 하는걸 알아들어요. 그렇게 해서

 

5:7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내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찾아온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육신의 안일이나 나의 이세상의 힘과 가치의 추구 이런거 때문에 멀리했을 때 우리에게 오는게 뭐죠?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닥치는게 뭐에요? 성도에게 닥치는거. 힘들어요 고난이에요 그게. 아 이 어떻게 내가 여전히 이모양인가 그때 성도가 제일 힘들어요. 우리가 앞에서 예루살렘 성중에 순행하는 자들이 뭐라 그랬어요? 니 신랑이 있는 곳 가르쳐준 분. 성령, 말씀이 우리가 그상태가 되었을 때, 그 말씀에 의해 우리가 공격을 당하게 되는거에요. 봐라 니가 이꼴이란다. 이모양이란다 이렇게. 우리는 현실 속에서 늘 실수하고, 늘 나만을 위해서 살고, 내 자식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 자식까지도 이용해먹고, 내 마누라 남편 날 위해 이용하는거지 뭘 그렇게 사랑해요 우리가? 그런 모습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씀이 우리에게 들이닥칠 때마다 아 나는 이런 존재밖에 되지 못하는구나. 말씀이 나를 두들겨패더니 옷까지 다 벗겨버리는거죠. 나에게 그 예수를 가르쳐줬던 그가 나를 두들겨패더니 너는 도대체 뭘 한거냐는 거에요. 니가 도대체 니 신랑에게 뭘 한거냐는거죠. 그러더니 8절에

 

5:8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자 이게 우리가 역사 속에서 겪어야할 일들이에요. 말씀 속에서 예수를 사랑해요 우리가. 사랑하죠? 목숨버리고 구원해 주셨는데...이렇게 말씀을 나눌 때는 그분이 사랑스러워서 어쩔줄을 모르겠잖아요? 어떨땐 말씀을 듣고 보다가 눈물이 터져서 어떻게 나같은 자를 위해서 예수가 죽어셨지? 그런데 현실 속에 나가보면, 또 여전히 나는 마귀새끼처럼 살고있어요. 나만을 위해서. 그럴 때, 그렇게 고민하면서 애통해하면서 살아가는 성도의 현실을 병이 걸렸다 그러는거에요. 병이 걸렸어요. 그런데 앞에서 그 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건? 건포도와 사과밖에 없었어요. 그죠? 떡과 포도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그렇게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뭐라그러냐면, 비아냥이 인제 나오는데,

 

5:9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너 그렇게 어여쁜 자라매? 그래서 왕이 너를 신부로 맞을 거라매? 야 근데 너 이렇게 벌거벗고 돌아다니는데, 니 신랑이 너를 왜  보호해주지 않을까? 이런 신랑이 너 왜좋니? 하고 비아냥거리는 거에요. (행순하는 자들이 성령이라면, 예루살렘 여자들이 성경 아닐까?) 보세요,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게 뭐냐?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게 뭐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도대체 뭐가 낫니? 너를 이 역사 속에서 도와주지도 않고, 고작 피, 몰약, 문 손잡이에다 발라놓고 간 그이가 그리고 역사 속에서 늘 침묵하고 돕는것 같지도 않고 기도응답도 안해주고 그이가, 뭐가 그렇게 좋니?  그랬더니 10절에서

 

5:10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희다라는건 순결이고, 여기서 붉어 라는 담 이라는 이 단어는 피에요 피. 아둠 이라는 단언데, 담 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거거든요? 피, 그러니까 순결 한 피. 이 세상에 순결한 피를 갖고 나온 이는  예수 하나밖에 없어요. 우리의 피는 다 더러운 피죠 그죠?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그가 바로 내 문에 빗장에 피 발르고 간, 그러나  순결하고 깨끗한 그 피 발르고 간 그 신랑이다 라는 거에요.

 

5:11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이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에 대한 묘삽니다.

 

5: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5:13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이게 십자가 복음이에요.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 분,

 

5:14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듯하구나 5:15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5:16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 


이 묘사들이 그 앞부분에서 전부 술람미를 묘사하던 단어였죠? 그런데 이것들이 지금 신랑의 묘사에 동원되고 있단 말에요. 그러니까 신랑이 신부에게 바로 이 신랑이 갖고 있는 거룩함, 신랑이 갖고 있는 그 모든 하늘의 자격, 풍요, 신분 이런 것들을 신부에게 다 불어준거에요. 넣어준거죠. 근데 신부가 그걸 아는 거에요. 바로 그분이 십자가에서 못박아 , 못박혀 죽은 분이다 라고 하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결국 나중에 나의 유익, 나의 구원, 나의 천국이 아닌 내 신랑이 그런 분이구나를 칭찬하는 자리, 그자리로 가는거에요 성도는요. 신랑을 칭찬하는 자리, 그분이 그분이었어 라고 신랑을 칭찬하는 자리. 그게 바로 성도의 존재 목적인거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존재로 태어난 그 인간이 그 순간부터 자기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삶을 살게 돼요.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며는,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구원한 이유를 뭐라그래요? 9장으로 가보세요. 사도행전 9장 15절

 

(행9:15)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여기서 해를 받다 라는건, 살인 이란 뜻이거던요? 정확한 단어가? 뭘 왜 사도 바울을 구원했냐면, 그사람만, 이게 그사람에게만 해당된게 아니에요. 모든 백성이에요. 다메섹에서 사도 바울을 건진 다음에, 예수님이 뭐라그러냐면, 내 이름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만드는, 만들기 위해 그를 구원했다 라는 말이에요.  사도 바울만 그러는게 아니라 요한계시록을 보면 모든 성도를 순교자라 그러죠? 예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자기의 존재가 죽는거에요. 그게 구원의 목적이라니깐요. 그러이까 여러분은 예수 믿고 내 일이 왜 이렇게 안풀리나 그런 걸로 불평하시면 안돼요. 더더군다나 예수 믿고 나는 왜 저 간디나 슈바이쩌 처럼 성자의 삶을 못살지? 그래서도 안돼요. 그렇게 살게되면 여러분이 죽는 거에요. 그렇게 살지 말라는게 아니라, 그러고나서 내가 나를 칭찬하는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여러분은 잘못간거에요 오히려. 성도는, 나는 왜 죽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도대체 왜 나를 위해 죽으셨는지,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그현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그 현실을 오히려 찬양하고 자랑하는 자가 돼야지, 그래서 어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창세전 언약이 있고 인간이 있었던 거지, 그 언약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드러내기 위해 인간이 소품으로 존재하는거지, 인간을 위해 언약이 있었던게 아니란 말에요. 인간은 아예 없었어요. 하나님의 마음 속에도 없었는데, 언약이 있자마자 인간이 생기고, 창조가 되는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본주의,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교회는 이건 망한거에요, 교회가 아닌거에요 그거는요. 요한계시록으로 가면요, 거기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죠?   계시록에 나오는게 다 찬송이죠? 계시록 4장을 한번 가보세요. 4장 10절 보세요

 

(계4:10)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이십사 장로는 교횝니다? /보세요,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그 앞에 완전히 프로스코메온, 엎드려 입맞추는 거에요. /솔로몬이 술라미 찾아올 때 어떤 면류관 쓰고 찾아왔죠? 어미가 씌어준 관 쓰고왔죠? 그게 뭐라그랬어요? 나는 자격없는 잔데, 어미때문에, 아버지가 어미를 사랑하는 바람에 내가 왕된거야 이게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이된 바로 그이야기를 하는거에요. 내가 지금 너를 사랑하는게 바로 그사랑으로 사랑하는거야. 니가 뭔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냥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자격없는 너를 사랑해 버린거야 라고 이야기하는거죠? 그 면류관 그니까 이거는 사실 내 자격때문에 쓴게 아니니까, 교회가 어떻게 한다? 술람미는 교회니까. 니가 이면류관 쓰고 있다 가르쳐주기 위해 솔로몬이 그 면류관 쓰고 온거에요 어미가 씌운 면류관. 그러이까 천국에 가면 그하나님 앞에서, 그거 씌워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돼요? 벗죠! 내꺼 아니니까. 면목 없으니까 하나님, 이거 하나님 껍니다. 라고 돌려드리는걸 이게 하나님과의 연합이며, 이걸 순종이라고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그걸 찬양이라고 하는거구. 어떻게 이거 쓸 자격이 없는 나를 하늘의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십니까 하나님? 아버지, 이거 아버지꺼에요. 이걸 찬송이라그래요. 그러기 위해선 이땅에서 우리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알고 가야 되는데,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바리새인이 돼간다니깐요? 안그래요?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이렇게 잘난 인간들이 많아지는지 모르겠어요.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나는 세리요 창깁니다 이렇게 내려가야 되는데,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야 너는 왜 아직도 그모냥이냐 이자리로 간다닌깐요? 원래 기독교의 잘못가는 점이 바로 이점이에요. 다른 타종교에서 만들어낼려고 하는, 그 탕자의 형, 아버지말 잘듣고, 집도 안나가고, 아버지 시키는대로 다 한 그 형! 그러나 자기가 한 그 착한 일을 갖고 아버지를 탄핵해버리는, 왜 나한테는 잔치안벌려줘요 하는 그자를 만들어낼려고 하는거에요. 은혜 앞으로 간 자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산 걸 갖고 나가서 이거 내가 만들어서 쓴거니까 이건 거드리지 마세요 이러냐구요. 그거 안된다 말입니다. 그래서, 찬송이라는건, 내 존재의 부인과 부정이 전제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던져드리는 거에요. 던져드린다는건, 나는 없음입니다 에요. 그러이까 아버지가, 하나님이 날 채워주세요 라는 것이죠, 하늘의 것으로. 그걸 구원이라 그러고, 그걸 연합니라고 하는거에요. 골로새서 1장 16절로 한번 가볼께요. 15절부터 제가 읽습니다.

 

(골1:15-17)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이게다 뭐라그랬어요? 권세들 이게다? 마귀, 천사들, 영적 세력, 그죠? 선한 천사, 악한 천사 다 마찬가지에요. 그게 다 뭐때문에 만들어졌어요?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예수를 위해 창조된거에요. 언약을 위해서 창조된거에요.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여러분, 여러분의 존재 목적은 여러분의 소원을 이루고, 여러분의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런게 존재 목적이 아니라, 그냥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이땅을 살면서, 하나님은 흥하고 우리는 없음으로 쇠해야 되다 는것을 증명하는 소품으로살면 되는거에요. 여러분 거지 나사로가 뭘 했길래 천국 갔습니까? 부자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자다 라는걸 증명하는 도구로 평생 그 앞에서 빌어먹고 사는 자로 살다 그 역할 맡고 간거에요. 그게 잘하는거에요? 게을러서 그지로 사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걸 인간들의 도덕이나 윤리나 이런 것으로, 세계관이나 가치관으로 판단을 해서 성경을 이해하실려고 하면 안돼요. 개가 자기의 헌데를 핥는데, 이 개를 치울 수 있는 힘이 없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갖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배웠지만, 힘만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방인의 그 말을 안들어요. 이방인으로 오시는, 사마리아인으로 오시는 그분의 치료를 안받는다구요. 치료라는건 뭐냐하면, 나는 이렇게 죽은 자고, 당신이 나를 사랑해줘야 나는 사는거네요. 이게 치료에요. 근데 조금이라도 힘이 있으면 어떻게 돼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왜받습니까? 안받아요. 땅도 안밟은 사람들이. 그러이까 거반 죽은 자가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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