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아가서

아가서2

은바리라이프 2013. 10. 16. 13:56


어제에 이어서, 아가서, 공부 계속하겠습니다.아가서 2장 1절, 한 절, 제가 봉독하죠. 우리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아멘. 어제 아가서 1장 다 공부했습니다? 

솔로몬이랑 술람미는 같은 단어예요. 근데 여성형, 남성형. 그게 다른거죠? 

예수와 그리스도인, 같은 이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받아 신부가 되는, 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이야기, 술람미의 이야기, 우리 교회의 이야기,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 속에서의 교회의 모습과 묵시 속에 완료되어 있는 교회의 모습,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렇게 지향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성도에게서 나타나게 되는 그런 모습들, 여러가지 모습들...

이런 것들이 연대기순 시간순이 아닌, 사건별로 기록돼 있는 게 아가서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신랑이 분명 입맞춤을 하고, '프로스쿠네오, 솨하'라 그랬죠? 예배라는 단어로도 쓰는데, 그렇게 같이 연합이 되는 입맞춤을 한 이후에도 신랑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또 나타나기도 하고, 혼인 잔치를 올렸는데 신랑이 사라지기도 하고..

그러니까 묵시와 이 역사가 번갈아가면서 막 나타나고 있는게 아가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우리 구속의 이야기로 풀지 못하면 절대 아가서는 풀리지 않는, 그런 책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들과 술람미가 대척점에서 존재하며, 그 예루살렘 여자들이 술람미의 이 세상에서의 외모,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됨됨이,  자격조건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자꾸 힐난하는 그런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그로 말미암아 술람미가 자꾸 힘들어하며 "신랑이여 도대체 어디갔습니까? 당신의 양들이 정오에, 오정에, 안식하는 곳이 어딥니까? 나좀 데려가주세요". 


이는 성도가 반드시 역사 속에서 그런 고난을 통과해야 그런 부르짖음이 나오는 거라 그랬죠? 그건 나쁜게 아닙니다. 

일부러 예루살렘 여자들을 두는 거란 말입니다. 과거에 제가 잠깐 설명해 드린 게 있는데, 창세기 49장 16절 단 지파에 대한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기에 지금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대해서 나오는데, 단 지파에 대해서, 굉장히 무시무시한 , 이야기가 나온단 말이죠? 단은 이스라엘 지파 '같은' 자로, 뱀으로 투입이 된 자이빈다. 나중에 요한계시록에 가면, 십 사만 사천, 열두 지파를 만 이천 명씩 계수하는데, 거기에 단 지파가 빠지죠?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는 거란 말입니다. 거기에 므낫세 지파가 들어갑니다.


12라는 것은, 하나님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가 빠지면? 이거는 백성이 아닌 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열두 지파 중  단 지파가 뱀의 역할을 한단 말입니다. 단 지파가 뱀이 돼버리면 나머지 열한 지파도 완전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다 무효가 돼요. 그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게 돼요. 


마찬가지로 열두 사도 중에 유다가 하나가 빠지게 돼죠? 뱀이란 말입니다. 

이 뱀이 빠져버리면, 11이 되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불완전이 된단 말에요. 


뱀은 왜 투입이 돼냐 하면, 나머지들에게 "너희들은 아니야"라고 미혹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이 뱀에게 다 넘어갑니다. 이 이야기가 창세기 에덴 동산에서 뱀의 이야기로 시작이 되는거에요. 

하나님의 백성,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놨는데, 요 뱀이 그들을 '하나님 백성 아님' 의 자리로 끌어 내리더라는 것입니다. 그후에 하나님이 은혜로 그냥 덮어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백성으로 완성시켜내는게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 이야기잖아요? 마찬가지로 단의 이야기도, 여기에다가 이 단이 빠져버리면 이 하나님의 백성이 불완전해 지는데, 하나님이 여기에 전혀 자격이 없는 므낫세 지파를 은혜로 그냥 넣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이들 때문에 나머지 11 지파도 역시 은혜로 하나님 의 백성이 되는겁니다. 


이스라엘이, 육적 이스라엘 지파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도저히 역할을 못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방인이, 원래 이사람들이 개취급 당하고, 이방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에 들어감에 따라 이스라엘 전체가, 민족적 이스라엘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 백성이 되는 거에요. 제가 나중에 로마서 뒷부분에 가면, 9장부터 시작해갖고, 요 이스라엘에 대한 부분 많이 나오죠? 그래서 세대주의자들은 이걸, 민족적 이스라엘로 이야기를 해서, 지금 이스라엘이 뭐 무화과 꽃이 다시 피었다 그래갖고, 이제 종말이 얼마 안남았다 이렇게들 이야기하는데, 절대 그이야기 아닙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풀어나가면,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를 완성하실 것인가가 드러난단 말에요.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여자들이 술람미에게 나타난 건 '도대체 은혜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함이에요. 


그래서 나중에는 이 예루살렘 여자들이 묵시 속에서는,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시온의 여자들아 이렇게 불른단 말이죠. 그니까 요 사람들이 여기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데, 예루살렘 여자들, 요게 지금 뱀의 역할을 한단 말에요. 유다의 역할을 한단 말에요. 그리고 이 술람미 여자가, 도저히 자격 없는 술람미가, 이방인처럼, 이 술람미는, 예루살렘 여자, 나의 어머니의 아들들이 같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 예루살렘 여자들을 남성 명사로 또 쓰기도 하고 그래요. 


여기 잘 보며는, 그니까 히브리 사람들은 보면 안단 말이죠. 왜 예루살렘 여자들을 남성으로 쓰지? 아 이게 이 율법주의 인본주의 전체를 모형하고 있다는걸 그사람들은  보면 알게 되어 있어요. 그러이까 이 예루살렘 여자들이, 지금 술람미를 괴롭히는 역할을 하다가, 이 술람미를 하나님이, 아무 자격 없는 것같은 이 술람미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입시킴으로 말미암아, 나중에는 이 술람미를 건진 그 은혜로, 이들까지 건지는 거에요. 이게 로마서에요. 


그러이까 원 가지에 있다가 짤려나간 자들이, 나중에, 얘네들 이방인들이 구원받은 것 처럼,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잖아요 그죠? 고 이야기란 말에요. 창세기 에덴 동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란 말에요 그게. 


근데 중요한건, 어저께, 그렇게, 이세상에서 성도는, 도대체 내가 구원받은 사람 맞나? 근데 왜 신랑이 입맞춤 한번 하고 어디 간거야? 이 상황에 수시로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24시간 나는 구원에 확신이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다는 사람은 가짜에요.  백퍼센트 가짜에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인간인데. 하나님의 백성은,  지금 술람미가 그러한 것 처럼, 도대체 지금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하고 계시는건가? 하나님이 진짜 나를 구원하신거 맞나? 하나님의 말씀과 내가 이렇게 접촉점을 형성할 때는, 그때 갑자기 내 속에서 천국이 팡 터지는데, 그 접촉점이 24시간 맺어지지 않아요. 왜냐면 우리가 육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기는 천국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그게 떨어질 때는, 금방 마귀 새끼 된다니까요 내가. 그래갖구, 그런 나를 자각하는데, 입맞춤은 입이 한번 해버렸기 때문에, 내 안에서 탄식이 터져나온다 말에요. 도대체, 이러고 내가 무슨 성도, 성돈가 라는 그런 탄식이 나온단 말이죠. 그래서 술람미가 그렇게 막 이야기 를 한거에요. 어딨냐구. 어딨냐구. 그랬더니, 솔로몬이 뭐라 그러냐면, 양떼의 발자취를 쫓아 가봐. 그들이 다 너같이 갔다니까.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너와 나의 집은, 그리고 너와 나의 침상은, 백향목, 잣나무, 이야기하죠. 이게 성전 짓는 재료라 그랬어요? 그래놓고 그게 우리 집이라 그래요. 너와 나는 이미 하나로 연합하여, 집, 성전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거는 누구도, 파괴할 수 없고 멸해버릴 수 없다. 라고 1장을 마친다 말에요. 


그래놓고, 2장에서, 1절에서,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다 그러죠? 이거 지금 술람미가 하는 이야기에요. 지금 그러한 이야기, 내러티브 가운데, 갑자기 술람미가, 맞네요, 나는 샤론의 수선화고,  골짜기의 백홥화네요. 이게 뭐, 굉장히 뭐, 나는 굉장히 이쁜 사람이에요 이런 말이 아니라,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샤론이라는건 광야에요 광야. 광야의 수선화 골짜기의 백합화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거였어요. 


무조건 성경을 사람을 자꾸 높일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갖고 성경을 보다 보면, 무조건 좋은걸로 해석을 하게 돼 있기 때문에 아가서 주석서, 주석서가 많지도 않아요. 주석서라고 나와있는거 맻 개 찾아보면요, 전부 우리는 술람미를 본받자로 결론을 내요. 절대 아니에요. 이거는 솔로몬의 노래라니깐요? 솔로몬이 술람미를 어떻게 사랑했는가를 그리고 있는거지, 술람미가 솔로몬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기다렸는가 여기에는 초점이 없어요.  지금 술람미가 자아 인식을 어떻게 하고있냐 하면, 나는 정말 보잘것없는 인간입니다. 솔로몬이 금방 너와 나는 지금 연합이 되어서 성전 안에서 함께 동거하고 있어 그거는 영원할꺼야. 라는 의미로 이야기를 해줬더니, 술람미가 금방 자아 인식을, 어떻게 자각하냐 하면, 나는 그런 자격 없는 사람이에요. 나는 이렇게 보잘것 없고 이렇게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왜 날 사랑하실까요? 왜 날 사랑하죠 여러분? 우리가 해야할 말이잖아요 왜 날 사랑하죠? 


여러분 이스라엘의 혼인 풍습을 보면요, 먼저 부모가, 아버지가, 엄마는 거의 힘이 없어요. 나는 내가 돈을 지불하고 너를 샀기 때문에, 너는 내 물건이다 인식이 있었어요 그때, 히브리 사람들이. 그래서 물건 취급을 했어요. 가구 취급해 가구. 필요 없으면 아무데에나 갖다 버리는 거에요. 근데, 이 아버지가 신부를, 신부를 선택하면, 아버지의 집에서 먼저 종이 가요. 리브가를 데려올 때 엘리에셀이 먼저 가죠? 종이 가요. 신부를 데리러 종이 가는데, 종이 가서 설명을 해줘요. 신랑은 이런 인품이고 이런 인품이고 요렇게 생겼습니다 라고 설명을 해주게 돼 있어요.  고거 잘못 들을면 큰일 나는거에요. 봤는데 아니면. 종이 가서 설명을 해주면, 그리구 이 종이 가서, 신랑이 준 폐물을 갖다 줘요. 요걸 뭐 우리는 함이라 그러는데,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인제 신랑이 신부에게 갖다 주는 선물들이에요. 신부가 요걸 입고 있어야 돼요. 그리고 요걸 걸치고 있어야 돼요. 그래야 나중에, 여러분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보셨지만, 신부가 밤에, 유대인들은 밤에 결혼하거던요? 밤에 그 희미한 등불을 들고 기달려요. 근데 신랑이 찾아가서, 금방 신부를 찾아낼 수 있었어요.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요? 예, 자기가 준걸 입고 있는 그사람이 내 신부에요. 그러이까 금방 찾을 수 있었다니까요. 


그러니까 요 종은 뭐겠어요? 지금 오늘날로 와보잔 말에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니 신랑은 이러 이러 하다고 지금 설명해주고 계시죠? 말씀으로.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는데, 빙폐물을 갖고 오셨어요. 뭘 갖고 오셨어요? 뭘 입고 있어야 돼요 우리가? 요한계시록 19장 7절로 한번 가보세요. 19장 7절


 

(계19:7)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자 옷을 입고 있는데, 옷이 옳은 행실이래요. 근데 그 옳은 행실을 우리가 보통. 착한 일, 착한 삶 이렇게 이해하잖아요? 옳은 행실이 뭐냐면, 디카이오수네(헬라어) 하기오스, 두 단어 거든요? 뭐냐 하면, 의 거룩 이에요. 의와 거룩함 이라는 뜻이지, 착한 행실이 아니에요. 개역성경이 그렇게 번역을 해노니까, 그러구 영어 성경도 그렇게 번역을 해 논게 있어요. 디카이오수네는 예수가 우리에게 주는 의 예요. 의, 로마서에 나오는 그 의. 그리고 하기오스는 거룩이란 말에요. 그게 우리에게 신랑이 먼저 준 빙폐물이에요. 그쵸? 그럼 고린도전서로 가보세요. 1장 30절, 한번 읽어보세요.

 


(고전1:30)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디카이오수네 하기오스, 똑같이 또 나와요. 근데 누가 의고, 거룩함이에요? 예수가. 그니까 여러분이 입어야할 옷은 예수의 은혜라는 옷이에요. 그 옷이 어떻게 우리에게 입혀지냐면, 계시록 7장으로 가보세요. 14절. 제가 읽으께요?

 


(계7:14)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의 은혜를 꼭 붙들고,  나는 다른거 없어요, 이 은혜 놓치면 난 죽어요. 라고 기다리는 사람을 옳은 행실로 옷을 입은 사람이라 그래요. 그가 신부에요. 그르니까 이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꼴 같지도 않고, 별로 착한 거 같지도 않고, 여러분 기독교의 성화를 잘못 오해하시면 안돼요. 기독교의 성화를 다른종교들이 고대로 추구하는, 보다 나은 사람 되기, 보다 나은 도덕적 윤리적 삶을 많이 내놓는 것, 이렇게 성화를 이해하시면 여러분은 굳이 예수 믿을 필요 없어요. 다른 종교인들도 자기들이 믿는 신 의지하여 더잘 살거던요. 그럼 예수가 다른게 뭐에요? 성화는,  성경에 나오는 단어가 아니에요. 삼위일체, 성경에 나옵니까? 마찬가지로 성화라는 단어는 성경에 없어요. 성화 라는건 뭐냐면, 그 단어 자체가 하나님화 되는 거잖아요? 근데 인간은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걸 비워내고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걸 성화라 그래요. 그래서 성화는, 하나님 당신의 은혜가 없으면 저는 한순간도 존재일 수 없습니다 가 성화의 극치이며 절정인 거에요. 근데 뭐 자꾸 성화하자 뭐하자, 서머나 교회는 은혜만 이야기하니까 사람들이 뭐 굉장히 게을러지고 지 맘대로 살더라 뭐 이런 얘기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건, 진짜, 말없이, 이 은혜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말없이 새벽부터 나와서 교회에서 봉사하고 애쓰고  가정에서 잘살아 낼려고 힘쓰는 우리 교인들을 모독하는 이야기에요. 지가 그렇게 못사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줄 알아. 아니에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새벽부터 나와서 우리 주방팀들 일하는거 보셨어요? 매주 나와서? 금요일 저녁, 토요일 새벽, 애까지 데려 나와서 우리 교회 화장실 청소 하시는 분들 있어요. 그사람들이 뭐 자기 의 쌓을려고 나오겠습니까? 내 안에 성령이 있고, 예수님의 은혜 그 십자가 복음이 너무 감사하니까 뭔가 보탬이 되기 위해서 나와서 하는 거에요. 근데 은혜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게을러진다구요? 천만의 말씀. 누가 그래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 하나님의 은혜가 오히려 그 사람을 더 확 뒤집어 엎어 논다니깐요. 하나님이 왜 이런 방법으로 일을 한다 그랬어요? 하나님의 은혜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창세기 14장으로 가보세요. 창세기 14장 1절 한번 보세요. 지금 롯이 잡혀가는 이야기거던요?

 

(창14:1)1 당시에 시날왕 아므라벨과

 

시날은 어디죠? 바벨탑이 세워졌던 곳이죠? 바벨론의 전신이에요? 그래서 시날왕 이에요, 바벨론.

 

엘라살왕 아리옥과 엘람왕

 

이 엘람이라는 나라가, 그 당시에 그 사해지역 최고 강국이었어요.

 

엘람와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이 고임이라는 곳은,  앗수르의 전신이에요. 자, 여기 어떤 나라가 나오고 있어요? 세계 최강국에 의해서 선택받은 바벨론과 앗수르가 나오죠? 이나라들이 뭐였어요?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나라 아니에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남유대가 바벨론에게 망하잖아요. 그죠? 요기에, 창세기부터 나오는거에요. 그래서 고들이 와서, 그 세상의 힘을 상징하는 그들이 와서 누구를 잡아가요? 롯을 잡아가요. 근데, 베드로후서에 가면 롯이 뭐라그래요? 내 백성이라 그래요, 하나님의 백성. 근데 아주 꼴같지 않은, 우리같이, 그냥 이 세상에서 별루, 그냥 하나님 백성답지 않은 그런 사람이 롯이에요. 근데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그 백성을 잡아가요 와서. 그랬더니 거기에 그 백성을 살게한 어떤 존재가 출격을 하죠? 누구에요? 아브라함이 출격을 하는데 ㅎ, 몇 명 데리고 가요? 삼백 열 여덟 명. 사해 지역, 다섯 개국 연합국이, 연합군이, 조카를 잡아갔는데,  집에서 키우던 가신들 삼백 열 여덟 명 데리고, 쫓아가는 거에요. 이게 전쟁이 돼요 안돼요? 자 요런 전쟁이 또 어디 있었어요? 사사기 7장에 있었죠? 기드온과 삼백 용사. 하나님이 일부러 삼백으로 다 끌어내리죠? 왜끌어내려요? 이전쟁 니전쟁 아냐 가르쳐주기 위해서요. 아브라함, 롯을 살려낸,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에요 지금. 근데 그가, 삼백 명 데리고 쫓아 가는거에요. 마찬가지에요. 나중에 다윗의 이야기로 가보면, 다윗이라는 사람이, 골리앗이라는, 말도 안되는 상대를, 물맷돌 다섯 개 갖고 가요. 이게 다 여호와의 전쟁이에요.  그 에피소드 안에는 전부, 여호와의 전쟁이라는 말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근데 왜 여호와의 전쟁은, 이런식으로 가야되냔 말에요. 그리구 왜 하나님의 백성은 거기서 늘 이렇게 져요 왜? 그러구 잡혀가구?  누군가가 나를 건져주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그런 전쟁이 되는 거에요. 자 삼백 열 여덟명 데리고 가서, 완전히 그냥, 대파하고 롯을 구해오죠? 하나님의 백성을 구해와요. 그러면, 그 하나님의 백성을 구해온 그 아브라함이 이 전쟁에서 얻은 유익이 뭘까요? 뭘 얻었어요? 가서 전리품 많이 걷어왔지만, 원래 가야할 자리에 다 돌려줬죠? 소돔과 고모라 왕에게도 다 돌려줬어요. 그리고 나머지 자기가 썼던 경비 제하고, 십분의 일을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주고 끝이예요. 성도의, 이땅에서의 전쟁은, 여러분의 이세상에서의 육적 외모나, 아니면 여러분의 자존심이나 가치를 높여주는 데에  요만큼도 기여하지 않아요. 야 저사람 많이 변했네, 굉장히 성숙한 사람이네, 이거는 그냥 인품으로 되는 거에요. 다른 사람, 다른 종교에 있는 사람도 그거는 해요. 여호와의 전쟁은, 그런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치르시는 전쟁에 의해, 내가 죽는 거에요. 여러분 보세요. 여기에서, 이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는데, 살렘 왕이라는건, 예루 살렘 이에요 여러분? 평강의 왕이에요? 살렘이라는 단어가 평강이에요, 평강, 샬롬. 살렘왕 멜기세덱. 나중에 히브리서 7장, 히브리서 9장 여기가면 멜기세댁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죠? 거기에 대해서 나중에 히브리서 할 때 설명을 드릴텐데, 그 히브리서에 보면, 이분이 예수다 그래요. 멜기세댁이 예수 래요. 그니까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몰라. 근데 평강의 왕이에요. 셀렘 왕이에요. 그런데 그가 죽도록 고생하고, 전쟁하고 온 아브라함에게 뭘 줍니까? 떡과 포도주죠 여러분. 그게 뭘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 살렘왕이 최종적으로 그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게 뭐에요? 떡과 포도주, 예수의 살과 피에요. 그게 쪼끔 있다가 이 아가서에 나와요. 그래놓고, 15장 1절 보세요. 그 떡과 포도주를 뭐라 그러는지 보세요?

 

(창15: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 떡과 포도주가 누구라는 거에요? 상으로 받은 고거, 예수. 그거 받는게 영적 전쟁의 승리란 말이죠. 에베소서 6장으로 가보세요 12절 보세요. 에베소서 6장 12절

 

(엡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가 지금 이세상에서 싸우는건, 여러분의 이 육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계발하는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이세상에서 육적인 재물이나 뭐 이따우것들 그걸 갖고 싸우는 이런 뜻이 아니라, 혈과 육에 관한 게 아니다 라는건, 이 몸뚱아리를 어떻게 계발시키고 발전시키는 전쟁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거기에 쭉 나오는 그게 바로, 마귀의 위계 거든요? 근데 그 마귀가 어디에 있어요? 내 안에 있단 말에요. 그 이 안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사도 바울이 영적 전쟁이라 그래요. 근데 그 영적 전쟁을 골로새서 2장에 보며는, 요기에다 손가락 끼워노시고 골로새서 2장 가보세요. 14절 보세요, 14절,

 

(골2:14-16)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지금 율법을 다 없애버리고, 이 율법으로 사람들은, 도덕 윤리 이런걸로, 자기들의 가치와 자존심을 챙길라고 하죠? 그게 예루살렘 여자들이에요. 인본주의 잖아요? 근데 그걸 다 도말하고, 십자가로 승리 하셨대요?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6절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이게 율법이죠?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아! 15절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여기서 정사와 권세가 쪼금 전에 우리가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본 고 마귀의 세력이죠 그죠? 그게 정사와 권세에요. 악한 천사들. 고걸 어트게 했다 그래요? 십자가로 벗어버려. 이게 디스암드 에요. 무장해제. 그러이까 나를 위해서 나에 존재의 가치와 나에 영광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하나님처럼 된 아담들, 죄인들, 그들의 무장을 해제시키는게, 그게 마귀성이거던요? 우상성이라 그래요. 그걸 해제시키는게 영적 전쟁의 실체이고, 그걸 누가 이기냐면, 십자가가 이긴단 말에요. 다시 에베소서 6장으로 와서, 13절부터 보세요.

 

(엡6:13-17)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1번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

 

2번 의에요

 

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3번 평안의 복음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4번 믿음의 방패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5번 구원의 투구6번 성령의 검, 말씀다 뭐에요? 한 마디로 줄여보세요. 십자가 복음, 예수. 이게 우리의 무기에요. 그리고 그 예수, 전신갑주를 입는게 구원의 완성이에요. 예수를 입는거에요. 성경은 전부 그이야기 하고 있단 말에요. 그러이까 우리는 어트게 해야돼요? 우리는 점점 쇠하고, 예수의 은혜가 흥하는 거에요. 그런데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는거죠. 고린도전서 15장으로 가보세요 고린도전서 15장 24절 보세요. 최후의 승리의 순간인데, 24절.

 

(고전15:24)그 후에는 나중이니

 

인제 나중이에요.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마귀성이 다 멸해지는 거에요. 우리 안에

 

나라를

 

누구께 바쳐요?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 나라가 누구? 배웠잖아요 로마서에서 뭐, 몸은 아녜요. 제가 강조를 했기 땜에. 그 나라가 누구에요? 성전. 하나님 나라, 거룩한 나라, 우리.  나를 하나님께 바치는게 최후 승리에요. 내가 나에게 바쳐져 있는게 역사고, 이 나가, 니 안에 있는 마귀성, 정사와 권세가 십자가 복음에 의해 찢어지고, 무장 해제당해, 하나님께 드려지는거, 그게 나라를 드린다 라는 이야기에요. 예수님이 뭐 나중에 열심히 일했다가 나중에 이거 뭐 아버지꺼니까 아버지께 줘야되겠다. 그러구 실업자에요 그러믄? 그이야기 아냐. 예수님은 영원한 왕이세요. 근데 고 밑에 보면, 예수님도, 그 아버지께, 드리는, 드려지는 자가 돼요? 25절

 

(고전15:25-28)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멸망 받을 원수, 사망, 그 죄죠? 마귀성. 이건 다 죽여버리는 거에요?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뭐에요? 예수가 머리가 되어, 교회에 머리가 되어 교회와 연합되기 때문에, 그때 예수에 의해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와 함께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거에요. 그게 성도의 신앙 생활이에요. 그래서 술람미가 이런 모습으로, 아브라함의 삼백 열 여덟 명, 기드온의 삼백, 다윗의 물맷돌,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으로 이렇게 나타나는 거에요. 그런데 여기에 승리가 있어요. 여러분 십자가라는게 뭐에요? 예수님이 가장 약해진 곳이에요. 여기서 세상 사람들이 매달아놨는데 못내려왔다니깐요. 그리고 죽었어요. 예수가 가장 약해진 곳에서 가장 큰 힘이 발휘돼요. 그게 교회의 탄생이잖아요? 마찬가지에요. 여러분은 이세상에서 쇠해가는거에요. 쇠해간다는게 점점 개차반으로 산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한 순간도 존재일 수 없다는 자리에로 계속 숨어지는 거에요. 사라져버리는 거에요. 그러니까 교회 안에는, 절대 교만이 있을 수없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거란 말입니다. 아가서로 다시 가보세요. 2절. 1절은 했으닌깐요 2절 보세요

 

(아2:2)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지금 술람미가 나는 그렇게 이렇게요 나는 흔하디 흔한 존잽니다. 신랑이여 나를 왜 사랑합니까? 그랬더니 솔로몬이 뭐라그러냐면 내사랑 너는 백합화 맞다. 그러나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다 그래요. 니가 특별해서 내가 구원한거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너는 백합화 맞다 그러나 나머지는 뭐라는 거에요? 예루살렘 여자들은? 가시나무. 가시나무는 성경에서 항상 저주죠? 저주에서 건져진 백합화란 뜻이에요. 3절

 

(아2:3)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보세요. 5절로 가보세요 5절

 

(아2:5)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지금 사과나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고 바로 밑에서는 그 사과가 나를, 병든 나를 살릴 수 있는거라 그러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포도는, 건포도는 소생제였어요 소생제. 요즘도 가수들이 피곤하다 그러면 포도당 주사 맞고 그러죠? 소생제예요 포도는 소성제고, 사과는, 목을 축이라 그러죠 지금? 갈증을 해소하라는거죠? 생수죠? 


자, 떡과 생수로 이 병에서 나를 살려가 그래요? 그러면 지금 당신이 사과나무다 술람미가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솔로몬 당신은 사과나뭅니다 라고 얘기했을 때, 당신이 나를 살릴 수 있습니다 라는거죠? 그러면 그 사과나무가 무어를 지금 모형하고 있어요? 생명나무죠 그죠?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 안에 생명이 있다 그러잖아요? 그죠? 그리고 이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 그 생명나무로 말미암아 죽은 자가 살 수 있는거잖아요? 바로 그 생명나무, 예수. 당신이 바로 나의 메시압니다 라고 술람미가 알아요. 


그러니까 이건 하나님이 우리를 요자리로 밀고 가는 지향성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완료 지점에서 다 완료될 껄 술람미가 고백을 해요. 고백을 하는데, 역사 속에 들어오면, 또넘어지고 또넘어지고, 신랑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말씀과 접촉점이 생기며는, 또다시 그런 고백을 하고 이러는 거란 말이에요. 당신이 사과나무 맞습니다. 내가 그 그늘에서 살아났습니다 라고 이야기 한단 말이에요. 


그래놓고 얘들아 내가 병들었다. 그 병들었다는 말이 미완료 분사에요 분사. 그러니까 나는 계속 병들어있다 라는거에요. 그 말은 죽은 자란 뜻이에요. 그런데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포도와 사과 밖에 없는거에요. 떡과 포도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유일한 상이, 떡과 포도주밖에 없어요. 이걸 12장 1절에서 하나님 이라 했잖아요? 내가 너에게 줄 상은 나다 그랬단 말입니다. 


그러이까 우리에게 있어서 상이라는거, 가치라는거, 귀중한건, 하나님밖에 없습니다를 배우고 가는게 기독교지, 이세상에서 여러분이 천국가면, 주구장창 착한 일을 멫 개 더하고 덜하는 오는게 기독교가 아니란 말에요. 그건 타종교인이 더 잘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모르고 여기에 대해서 전혀 감동도 없고, 그러니까 낮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착하기만 한 인간들은 같이 사귀기가 불편하잖아요?

자 4절 보세요


(아2:4)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 


여기서 잔치집이라는 요단어가 야인바이트 라는 단언데요, 왕이 베푸는 가장 큰 잔치에요. 그 잔치집에 신랑이 나를 데리고 들어갔는데, 신랑의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다. 기. 출애굽기 보며는 하나님이 기를 뭐라그러죠? 출애굽기 보며는 여호와 닛시 라 그러죠? 승리의 깃발이에요. 요 깃발은 뭐냐면, 여호와가 싸워 이긴 승리를 고 주고싶은 자에게 주는 거에요. 그런데 요 깃발로 누구를 덮다 그럴 때, 고걸 구원이라 그래요. 


제가 옷자락 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 옷자락이 독수리의 날개에서 날개와 똑같은 단어라 그랬죠? 옷자락으로, 룻 같은 사람이, 보아스에게 옷자락으로 나를 덮어주세요, 이게 히브리사람들에게 있어서 나와 결혼해 주세요 뜻이에요. 근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독수리 날개로 덮어서 꺼냈다 그러죠? 고 날개가 똑같은 단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옷자락으로 덮는게 구원이고, 고게 신랑 신부가 연합되는거고, 이건 히브리 사람들이 그냥 들으면 아는거에요. 


그래서 노아의 홍수 사건도 그 덮어주는 걸로 끝나는 거에요. 하나님이, 진짜 너같이 이렇게 홍수 끝난지 물마르기 전에, 술먹고 벌거벗고 누워있는 너같은 놈과 어떻게 결혼하겠어? 근데, 하나님이 그냥 덮어버리는거, 그냥 결혼해버리는 거에요. 


지금 솔로몬이 술람미를 보고 게달의 장막같고 시커먼 그런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니 외모 안봐. 나는 니가 입고 있는 내아들 옷 본다. 그러고 지금 술람미를 이 저, 솔로몬이 사랑하는 거거던요. 고거, 그게 우리를 기로 덮는거에요. 그분의 사랑의 바로, 기로 그렇게 나를 덮는거다 술람미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는 그 기, 이거를 시편이나 여러가지 선지서에서 하나님, 여호와라고도 하고 메시아 라고도 하죠? 그 기로 덮는다는게 뭔지를 설명하는 5절



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나는 떡이니, 나를 먹어라. 내가 생수니 나를 마셔라. 예수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 병은, 술람미가 갖고 있는 그 병은, 예수라는 포도, 떡과 사과 물로밖에 낫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 다음에 6절

 

6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덮는거에요. 왼손으로 베게를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덮을라면, 포개진 거에요. 그게 기로 덮으는 거에요. 예수가 여러분을 그렇게 덮고 있단 말에요. 근데 우리는 그현실을 자꾸 잊어버리고 내가 지금 내힘으로 뭔가 내옷을 만들어 입을려고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술람미가 도대체 어디갔어요 어디갔어요 한다닌깐요? 조금 있으면 그 솔로몬이 뭐라그러냐면, 나 여깄어 ㅎ 왜자꾸 찾어 이렇게 이야기해요. 나 여깄어. 그러니까 아가서를 보면 우리의 신앙 생활, 이 역사속 신앙 생활의 모양새가, 그 형국이 너무나 잘 나타나 있어요. 7절 보세요

 

7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예루살렘 여자들'이 남성형이에요. 그러니까 인본주의 율법주의 유대주의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고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을 내 사랑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아가페 라고 돼있어요. 신적 사랑 이에요. 


노루와 사슴, 이 단어가 상당히 어려운,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그런 어휜데, 저한테는 전혀 문제가 안됐어요. 그러니까 이거를 찾고 찾다가, 70 인역 성경을 보니까, 70인역 성경이 헬라아로 이거를 어떻게 번역해 놨냐면, 여기서 노루 라는 단어가 체빈데, 체바우터라고 번역이 돼있어요. 근데 이 단어가 뭐냐면, 이 노루라는 단어를 히브리 사람들이 뭘루쓰냐면,  군대, 천군 있죠? 하늘의 군대. 어마어마한 숫자의 막강한 군대. 이게 cheval‍ 체발 노루에요.


그리고 사슴 아얄라 라는 요 단어를 70인역이 에얄리 라고 번역을 해놨어요. 근데 그단어가 뭐냐면, 신과 능력 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은 요거를 알았든 거에요. 그니까  70인역이 뭐냐면 히브리 성경을  히브리어를 잊어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읽게끔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해준 거란 말에요. 그러이까 히브리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의미는 이거였다 를 찾을라면, 70인역을 보면 돼요. 근데 70인역에서 노루와 사슴을 강력한 힘과 군대 라고 번역을 했다구요. 그니까 노루와 사슴은 그냥 읽으면, 개역성경은 그냥 읽으면, 노루와 사슴으로 부탁을 하는게 뭐야? 그러죠.


이게 신랑이 나를 깃발로 덮고 나를 이렇게 포개고 안고 있다는걸 자각한 백성들이 힘이 나는거에요. 내가 하늘 군대 맞고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고 덮고 있는데, 네가 왜 너희들의 그, 그런 힐난이나 너희들의 나에대한 폄하나 이런거에 흔들려야 돼? 아냐 나는 굳게 설꺼야. 이게  노루와 사슴으로 에요. 내가 너희들한테 말하는데, 야 내 신랑과 내사랑 사이에 껴들지마 그러는거에요. 내사랑, 내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아라. 왜냐면 내 신랑이 지금 나를 포개안고 나만 사랑해. 나만 보호하고 있어. 나만 봐. 


그런데 예루살렘 여자들이 그걸 자꾸 깨울려고 한단 말에요. 근데  그러는거에요. 나는 알았다는 거에요. 이제 나는 알았다는 거에요. 내 신랑이 잔치집에 나를 끌어들여서 나를 덮고 있는거. 나를 최고로 사랑하는거 나는 알았기 때문에 너희들은 나 깨울 수 없어 이야기에요. 그게 노루와 사슴으로 부탁한다 8절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자,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가 들려요. 내님, 솔로몬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그런데 그분이 산을 달리고 작은 산을 넘어오세요. 이게 다 복수에요. 여태까지의 문맥을 갖고 한번 이해를 해보세요. 술람미에게 있어서 신랑과 사랑하는 과정에 너무 많은 장벽들이 있죠? 장애물들. 그런데 내 신랑은 이사야서의 내용이 인제 거기 나오는거에요. 내신랑은 그런게 전혀 문제가 안되는거에요. 넘고 넘고 넘어서 나에게 달려오는 거에요. 평지처럼 달려오는 내님. 그신랑이 나 사랑하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흔들어도 나는 괜찮아 얘기하는 거에요. 내신랑 봐라. 내 신랑이 달려온다 라는거에요. 9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또 나오죠. 내 신랑 내 왕은, 여기서 어린 이라고 번역이 된 이 단어는 젊은 이에요. 그니까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이런뜻, 젊은, 그니까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사슴인데, 어떤 사슴이냐면 젊은 사슴이에요. 이세상 그 어떤 것도 이 천군을 이길 수 없어요. 그렇게 이 강력한 힘을 갖고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고 오는 그 신랑에 의해 덮이는게 구원이란 말에요. 그거 알고 가는게 기독교 신앙이란 말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보세요, 술람미는 솔로몬이 어디로 떠난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분이 노루와 강력한 사슴으로 강력한 힘과 권능으로 내 안에 창을 들여다 보고 계시는거에요 계속. 계속 거기 있었다는 거에요. 너를 지키고 있었던 건데, 우리가 자꾸, 고 여우들, 예루살렘 여자들의 그 말에, 혹해갖고, 그래 너같은게 무슨 예수 믿는자냐. 여러분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몇 가지 착한 일을 더하고 덜하고, 이거 아니에요. 나는 내 신랑이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냥 게달의 장막인데, 내신랑이 나 사랑해주니까 내가 하늘 왕의 왕비로 이렇게 살 수 있게 된거다. 그거 배우는거에요. 10절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거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이에요.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진짜 신랑인 예수님이 여러분을, 그래서 이게 연애편지에요.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가자. 지금 이렇게 그 여우들의 혀, 그리고 그 여우들의 힐난, 이런 것들로 얼마나 힘드니? 여기는 너희가 벗어나야 할 곳이거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가자. 그날이 와요. 그 신랑이 여러분 데리러 지금 백마를 타고 철장을 들고 오신다니까요. 그러니까 조금 참으시면 돼요. 견디시면 돼요. 이게 또 종말의 때가, 묵시의 현상이, 묵시의 현실이 확 펼쳐지는데,  11절 보세요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우리의 인생이죠? 이게 지금. 그죠? 겨울, 비. 근데 그게 다 지나갔다는거에요. 지나가요 그날이 와요.  그니까 조금 추워도 괜찮아요. 좀 비맞아도 괜찮아요. 겨울에 겨울비 맞으면 참 불쌍하죠? 힘들고. 그거 우리 모습이에요. 근데 겨울비 다 그쳤대요. 그리고 봄이 왔어요.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반구는 비둘기죠. 비둘기는 항상 평화를 전달하는 새라 그랬어요. 야 이제 평화가 왔다 봄이 왔다 겨울이 끝났어 비가 그쳤어. 우리 땅에 우리가 들어왔잖아 이야기하는거에요.  우리땅, 하나님이 날보고 우리 라고 불러주세요. 우리,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에는 꽃이 피었죠?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봄이 온거예요 14절

 

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바위틈 낭떠러지는 산비둘기들의, 독수리들을 피하는 산비둘기들의 피난처에요. 왜 이런 단어가 갑자기 나오나  이렇게 생각하실텐데, 피난처에 안전하게 숨어있는 내 비둘기 뜻이에요. 그러나 이 말은 또, 대적이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죽는거 아니에요? 근데 이 피난처는 누구?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꽁꽁 감싸고 있는 그 비둘기는 그 어떤 대적도 공격하지 못해요. 그래서 성경이 그러는 거에요 마귀가 너희들을 만지지도 못한다는 거에요, 만지지도 못한다. 그말은 여러분을 마귀가 장악한 삶 속에 놔두지 않겠다는 것이죠. 마귀가 나를 만지지도 못한다는데 왜 내가 이렇게 마귀 새끼처럼 살지? 고대로 안놔둔다는 뜻이에요. 그게 만지지도 못한다는 뜻이에요. 15절

 

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에스겔서 13장 4절 보세요 그 여우가 뭔지. 에스겔서 13장 4절

 

(겔13:4)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이게 거짓 선지자들을 지금 설명하는 부분인데, 성경은 그 거짓 선지자들을 여우라고 그러는데, 지금 여기에서 그 똑같은 단어가 쓰이고 있어요. 너희의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아라. 그죠? 그 여우를 잡으라는게 뭐예요? 여러분의 외모갖고 니가 그러고도 예수믿는자냐? 요런놈들 잡아버리라는 얘기에요. 항상, 초대교회때도 마찬가지고, 거짓 선지자들은 뭐라고 가르쳤냐하면, 갈라디아 교회도 마찬가지고 고린도교회도 마찬가지에요. 항상 침투해들어와서 율법주의를 가르쳤어요. 복음, 좋아 십자가 믿자. 믿는데, 절기도 지켜야돼. 구제도 해야되고, 착하게 살아야돼. 좋은거에요. 그건 당연히 나와야 될건데, 그걸 붙임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엄청난 은혜가 희석되고 퇴색됐다 말에요. 고 여우 잡으라는 거에요. 지금 술람미가 누구 땜에 괴로와하고 있어요 이렇게? 예루살렘 여자들 때문에. 고걸 여우라고 하는 거에요. 여우 잡아라. 걔네들은 너를 그렇게 평가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니까 고 여우 잡아라 라고 이야기하는거죠. 그래놓고 뭐라그래요?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아. 은혜의 포도원이죠 이거는. 이게 바로 술람미가 1장에서 오빠들의 포도원에 가서 일하느라고 내 포도원은 지키지도 못했다는 고 포도원이에요. 근데 그 포도원을 예수님이, 요 여자와 같이 지켜주고 있었던 거에요. 꽃폈다 얘야, 꽃폈다 그러는거죠.

 

16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보세요. 백합화 가운데서 자기의 양떼를 먹이는거지, 무슨 화려한 장미, 뭐 이런 것들 가운데서 양 안 먹여요 하나님이. 백합화는 뭐라그랬어요? 가장 흔한거 이스라엘에서.  산원에 피는거. 그 가운데서 양떼를 먹인대요. 근데도 우리가 안전한건 뭐냐하면,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기에, 환경이나 외모로 절대로 우리의 신앙 평가할 수 없다 이거에요. 보세요 아가서는 전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거에요. 마지막절 보세요 2장

 

17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여기서 날이 기울고는 바람이 불때 , 서늘할 때거든요? 요게 창세기에서 나왔었죠? 심판의 날. 그죠? 날이 서늘할 때에 하나님이 심판하러 오시잖아요? 고때에,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돌아오라는 거에요.  나의 사랑하는 자여 노루처럼, 사슴처럼 오세요. 와서 뭐하라는 거에요?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이 베데르 산 이라는 요 단어가 베리트 언약의 산이라는 뜻이에요. 베데르 산이라는 산은 없어요. 근데 여기에 솔로몬이 언약이라는 단어를 써서 그 산의 노루와 사슴, 하나님의 언약, 창세전 언약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은 거잖아요? 그 언약 안에 있으면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강도짓만 하다가 예수님 옆에 달려서 당신의 나라에 임할때 저좀 기억해 주세요 해도 천국 간단 말입니다.  고게 언약 안에 들어있는 자잖아요? 그 언약의 산에 있는, 그거는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어요. 그래서 언약의 산에 있는 바로 노루와 사슴, 예수. 그 예수에 의해 나는 안전하다 가 2장 마지막이에요. 그래 여러분, 아가서도 예수와 십자가 이외에는 단 한 절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니까 여러분 이 세상이 참 힘들고 외롭고 어렵고 그 술람미가 느꼈던 것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 같고,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언약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안전한 거에요. 고걸 찬양하고 자랑할 수 있는자가 서머나 성도에요.

요때 기뻐하셔야 돼요. 아셨죠? 여러분이 술람미에요. 그러한 술람미의 인생을 제가 노래로 소절을 몇 개 써서 만들었어요. 술람미의 노래.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은혜를 감사합니다

저희는 상상할 수 없는 고백을 가르쳐 주시고 배우게 해 주셨습니다하나님 그렇게 하여 나를 깃발로 덮고나를 단 순간도 놓지 않고 지켜보고 계실 때우리다 대체 누구 말에 흔들릴 것이며

예수만 붙들게 해 주세요내 신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여이제 가자 하고 나를 데리러 올 내 신랑그 신랑 기다리며 오늘을 견디게 해주세요비록 길바닥에 백합화처럼 수선화처럼그렇게 내모습이 세상에 보인다 할지라도 그런데 내 신랑은 가시나무 중에 백합화로 불러준다는 그 사실잊지말게 하여 주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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