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아가서

아가서1

은바리라이프 2013. 10. 16. 13:55


아가서를 공부할텐데요, 아가서는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솔로몬이 쓴 책이죠?

 

솔로몬은 성전을 완성한 그런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성전을 완성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시죠? 솔로몬에게 주신 성전 완성의 지혜.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하나님의 성전이 어떻게 지어지는가? , 하나님의 성전은 바로 여러분인데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잠언, 전도서, 아가서 등 솔로몬이 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가서도 역시 예언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가? 

하나님은 도대체 어떻게 얼마나 큰 사랑으로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셨는가,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시는가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많이 공부해봐서 알지만, 성경은 전부가 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으로 한번 가 봅니다.

 

(눅24:27)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세와 모든 선지자, 성경, 구약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기록한 게 다 예수에 관한 기록입니다. 


아가서의 제목은 '쉬르 하쉬림' 가장 아름다운 노래, 송 오브 송즈. 

솔로몬의 노래이자 하나님의 노래입니다.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하는 존재고 솔로몬이 예수라는 신랑에 의해 어떻게 사랑을 받는지를, 

신랑인 자기와 신부인 술람미의 이야기를 비유로 해서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여기에서의 술람미는, 솔로몬입니다.

이 솔로몬이라는 이름,  남성 히브리어, 슐람미가 똑같은 단어예요. 이건 여성형, 그러니까 똑같은 단언데, 똑같은 이름을 가진, 두 존재입니다. 


솔로몬의 뜻은 샬롬, 평강입니다. 평화의 왕. 

슐람미, 마찬가지예요. 평강의 왕에 의해서 화평케 되는 어떤 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나중에 요한계시록에 가면, 화평, 평강의 왕이신 그분의 이름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름을 받는데, 누구의 이름을 받냐 하면 예수의 이름을 받습니다. 아가서는 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술람미라는 여자에게 어떻게 전해지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야기가 아가서의 이야기입니다.


아가서의 기록 연대는, 6장에 보면, 왕후와 비빈이 백 사십명 밖에 안될 때예요. 나중에 한 천 명 넘었죠? 그러니까, 솔로몬이 왕이 된지 얼마 안됐을 때, B.C. 970~960년 어간에 이 아가서를 쓴 것입니다.

 

각 이단 종파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쓰는 책중의 하나가 아가서입니다. 

음란한 어떤 좌도 밀교 그런 형식을 띤 어떤 이단 기독교들에서 아주 즐겨서 쓰는 책이죠. 그런데 여러분이 나중에 공부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야기 이외에 그 어떤 무슨 음란한 이야기라든지, 낯부끄러운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들어가있지 않아요.

다니엘서, 스갸랴서, 요한계시록들처럼 아가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엉터리 논리와 해석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굉장히 많이 써요.


히브리 사람들은 절기때마다 낭독하는 책이 따로따로 있었어요. 근데, 요 아가서는, 유월절날 항상 이 전체를 낭독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아가서는, 유월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자들이 살아난게 유월절이죠? 패스오버. 고 이야기를 지금 이제 하고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도 알았어요.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긴지 알았는데, 그 진의에 대해서 자세히 인제 알지 못했던 것이죠?

 


1절 솔로몬의 아가라 


그러니까 역시 이렇게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성전 짓는 지혜에 관한 이야기 라고 아시면 돼요. 

사무엘하에 나단의 신탁 있죠? 다윗 언약. 그 다윗 언약에, 다윗의 후손인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이것이 메시야를 모형하고 있던 것이기 때문에, 성전이, 하나님의 백성이 성전이 어떻게 지어지는가?  보시면 되는거죠?

 


2절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내게 입맞추기 원하니 이거 지금 술람미가 하는 이야기에요? 내게 입맞추기 원하니 니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그러니까 입맞추기 원한다. 그러니까 키스를 한번 입맞춤을 해주고 가셨어요. 그 신랑이. 근데 그 입맞춤을 지금 기다리는 그런 내용이에요. 


여러분 그 아가서를 읽다 보면요, 굉장히 뒤죽박죽이죠? 이 신랑과 신부가 만났다가, 곰방 신랑이 어디로 도망갔다가, 신부가 또 막 찾으러 다녀요. 찾아요. 같이 자요. 남편이 어디로 갔는지 또 어디서 와요. 


성경은 연대기적으로 기록이 안돼있는거 아시죠? 그러니까 성경은, 그냥 묵시와 연결이 돼있는데, 묵시라는건, 영원 속에 완료된 하나님 나라, 그걸 묵시라 그래요. 이 묵시는 영원 속에서 완료가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의 날, 종말에 해와 달이 다  말려서 날라가 버립니다. 

시간은 해와 달이 존재하여, 그 해와 달의 운행 주기에 의해서 시간이 측량이 됩니다. 근데 해와 달이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시간을 계산할 수 없어요.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계시록에도 해와 달이 없어진다 그러는데, 그게 영원이에요. 그 영원이라는 곳에는 시간의 순서라는게 없고, 그래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고 하는 겁니다. 


이 묵시는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그런 영역입니다. 

이 묵시는 잠깐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이 역사의 전 영역 위에 존재하는 영역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드리면, 태양이 지금 여기 떠있어요, 이 위에 떠 있으면, 샌호세아에서도 이 태양을 보고, 저기 뉴욕에서도 이 태양 보죠? 시차가 있어도 같은 태양입니다. 시간이 저기는 세 시간이 빠르고  여기는 두 시간이 느리고, 여긴 뭐 이렇게 시간이 각각 다르고, 공간도 각각 다른데, 각기 바라보는 태양이 하나인 것처럼, 묵시는 역사 전체 위에 떠있는 것입니다.

 

그게 인제 하나님 나라까지 올라가게 되면, 이 묵시라는 게 존재하면, 이 역사 전체가 여기에 영향을 받아요. 여기에 장악이 되는거죠. 이 영원이라는 영역에 잠깐 이 역사라는게 있다가 사라지는 건데, 역사 전체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흩뿌려지는 거에요. 


기독교의 역사관은 수직적 역사관이죠? 시작이 있고, 끝이 있어요. (다른 범신론의 역사관은 순환적 역사관입니다.) 

아담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흩뿌려져요. 마지막에 어떤 사람 하나가 구원 받으면 끝나는 거에요. 

마지막 어떤 사람이 구원 받으면역사가 딱 끝납니다. 전체 역사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흩뿌려지는데,  그 백성들이 이 묵시와 연결이 닿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묵시에서 온 사람들. 


그래서 시간 속에서 보면,  굉장히 큰 순서와 기다림이 있기 때문에 차이가 많은것 같지만, 묵시와 연결된 여기에서 보면, 이사람들은 그냥 하나입니다. 여기에서 보내진 사람들이 각각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 살지만, 여기에서 출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리로 올라가면 다 하나란 말에요. 그 태양, 태양을 바라보면서,  몇 날 몇 시에 딱 그 자리에 있을 때,  쫙 뭐 캘리포니아에서 보고, 뉴저지에서 보고, 뭐 저기서, 플로리다에서 보고 하면, 그 태양 하나로 쫙 끌어올려지는 것처럼, 그걸 묵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성경은 시간순이 아니라 사건별로 기록이 돼 있어요. 

아가서도 보면, 묵시 속에서 완료 되어있는 어린양의 혼인잔치 얘기가 나왔다가, 계시록 에서도 마찬가지죠? 

이 역사속에서의 성도의 삶이 어떤가를 묘사하는 그런 에피스도가 또 나왔다가, 이 이전의 상황이 나왔다가, 막 뒤죽박죽이에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로 이거를 풀어내지 않으면 이건 도저히 풀어낼 수가 없어요. 중간에 꿈두 나오고, 그러니까 꿈이던 뭐던, 묵시로 연결을 시키면 이거는 완벽하게 십자가로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볼 때 시간순이나 연대기순이나 아니면 어떤 순서적인 논리를 자꾸 찾을려고 하지 마시고 거기에 예수가 어떻게 숨어 있나를 보시면 됩니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다. 

자 입맞춤이 포도주보다 낫다. 구약성경에서 포도주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어떤 것이에요.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의 대표가 포도주라면,  신랑과 신부의 그 입맞춤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낫다,라는 걸 지금 이야기하는 건데,  그 입맞춤이 입맞춤들이란 말에요. 그러니까 한 번 입맞춤을 하고 신랑이 갔는데, 지금 술람니가 그 입맞춤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지금 예수와 함께 영적으로 존재하지만,  예수님이 지금 가시적으로 여러분을 떠난 상태죠? 여러분의 신랑이 떠나있는 상탠데, 그걸 믿음으로 내가 알아버렸어요. 입맞춤. 프로스쿠네오(헬라어, 노예가 주인의 발에 입맞춤) 여기선 솨하(히브리어, 엎드러짐, 부복/ 네쉬카?)인데, 그 단어 자체가 시편 2편에 보면, '내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들은 전부 망하게된다' 할때 고 입맞춤이에요. 아들과 입맞추지 않으면 다 죽는데, 그 입을 맞추면 살아요. 영생으로 가는데, 그 입맞춤을 한번씩 경험한 사람들이 바로 성도예요. 

그 성도들은 "그 입맞춤. 그 내 진짜 신랑인 그 솔로몬의 입맞춤. 그 입맞춤이 그립고 그립다" 해요. 


개역성경은 아가서를 굉장히 어렵게 번역을 해 놨습니다. 왕에게 너라 그랬다가, 왕이라 그랬다가, 임금이라 그랬다가, 막 이렇게 해놔서 여러분들이 굉장히 읽기가 힘들어요. 심지어 표준 새번역을 봐도, 그 화자를 임의로 나눴어요. 원본에는 없어요. 그런게 그게 너무 엉터리로 나뉘어져 있어가지구, 표준 새번역을 같이 놓고 봐도 헷갈리더라구요. 그러니까 다 잊어버리세요. 화자가 누구인지도 필요없어요. 화자가 누구인지 그거 구별해 낼려고도 하지 마시구, 이 안에,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십자가 복음 내용이 어떻게 기록돼 있는지 그걸 보시란 말에요.

 


3절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여기서 기름이라는건 항상 어떤 존재가 으깨지고 거기에서 발생되는 걸 기름이라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벌써 메시아의 희생에 관한 암시가 나오는 거에요. 나에게, 술람미인 나에게, 신부인, 교회인 나에게, 입맞춤을 해주고 간, 시편 2편의 그 아들의 입맞춤을 해주고 간 그분이 바로 그 향기로운 기름을 내뿜는 그런 분입니다. 그 기름이 바로 자기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으깨짐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그런 기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녀들이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거에요. 그걸 아는 이들은. 근데, 4절 보며는, 



4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그러죠? 그럼 왕은 누구고, 너는 누구에요? 

히브리 원어를 보면 다 같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왕이시여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우리가 왕을 따라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뒷 부분은 다른 이가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주: <히브리어 원본 직역>너는 나를 인도하라. 너를 따라 우리가 달려가리라.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니, 니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여기서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들이신다. 굉장히 중요한 단어가 여기 하나 나옵ㅂ니다. '침궁(헤데르)'라는 히브리어.

에스더서에 보며는 여기에는 왕비도 함부로 왕의 허락을 안받고 들어가면 죽습니다. 

그러니까 침궁은 왕의 처소 중 가장 안쪽에 들어있는 곳, 지성소입니다. 


지성소에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는거 이외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다 죽죠? 

그겁니다. 나를 이끌어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왕이여 나를 인도하소서. 어떻게 그 왕이 이 술람미를 그리로 끌고가고 있냐구요? 


내가 가면 죽지만, 그 왕이 인도하여 지성소로, 침궁으로 끌어 들이면 살아요. 

근데 그 침궁은 뭐하는 곳이냐면, 왕과 왕비가 같이 잠자는 곳이에요. 부부관계를 하는곳.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게 뭐냐면, 이 아가서에서, 한몸 사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몸 사상'이 뭐냐면, 나중에 보면 또 침궁, 침상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신랑과 신부, 최초의 신랑은 아담이죠? 최초의 신부는? 하왑니다. 그런데 원래 처음에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그랬죠?  사람을 만들어서 여기에서 여자를 빼냈더니 남자가 된 거죠? 이해가 가세요? 사람을 만들자 해서 하나님이 만들었어요. 그건 아담이에요. 사람. 남자가 아니라. 그래서 이 아담, 남자 안에서 갈비뼈인 여자를 빼버렸어요. 쑥 빼냈더니, 이제 남자가 됐습니다. '남자 + 여자 = 사람'이 되는거죠?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형이에요. 


여기에서 빠져나간 어떤 것이 다시 제자리로 들어와서 '사람'이 되는 것. 그걸 구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몸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인류의 보편적 생활 관습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 있죠? 부부생활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그냥 인간들이 막 만들어낸 게 아니에요. 한 몸이 되는 거라구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이 되면 요철이 맞듯 하나로 맞아져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 사람에서 빠져나간게 하나로 뭉쳐지는 끼워지는 그런 모형이 되는 거에요. 그림이 그려지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솔로몬이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있는 건데요, 아담이 예수를 모형했었죠?  그런데 여기에서 하와가 나왔고 이게 사람이 된 거니까, 지금 예수 안에서 교회가 나오구요,  어떻게? 아담이 잠들고 옆구리가 뚫리고 물과 피가 쏟아짐으로 말미암아 여자가 생긴 것처럼,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서 그 옆구리가 뚫리고 심장을 막고 있는 갈비뼈가 적출이 되어 교회가 탄생되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나온 이 예수로 말미암은 교회가 저 혼자 독립적으로 독자적으로 막 살아서 이 예수의 도움을 안 받고도 "나는 살 수 있어요" 한다면 이건 선악과 따먹은 아담이잖아요. 그게 아니라, "나는 당신이 없으면 탄생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그 비워진 그 자리로 내가 들어가야  나는 비로소 존재가 됩니다"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에요.

 

이 이야기가 이 아가서 안에서,  네가 내안에 내가 너 안에, 술람미가 솔로몬 안에 솔로몬이 술람미 안에, 이렇게 거의 서너 번이 반복되어 나와요. 이게 요한복음 7장의 이야기입니다. 예수가 너희안에, 너희가 예수 안에, 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신랑과 신부의 이야기로 설명을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솔로몬 안으로, 이 술람미가 어떻게 들어가게 되는가, 그리고 이 술람미가 솔로몬 밖으로 나가서는 어떻게 살 수밖에 없는가를, 그냥 에피소드를 쭉쭉쭉쭉 나열을 해서 설명을 하는 거란 말입니다.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내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5절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여기서 드디어 이제 예루살렘여자들이 나오는데,  예루살렘 여자들은요, 나중에도 계속 등장을 하는데,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교회, 술람미와 대척점에 있는 율법주의, 인본주의를 이야기 하는거에요. 그래서 예루살렘 여자들인데, 여기 예수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요거 술람미가 하는 이야기죠? 예루살렘 여자들아, 니들은 굉장히 깨끗하고, 바리새인들처럼, 굉장히 깨끗하고, 멋지고. 사람들이 볼 때 본받을만 하고 한데, 나는 이렇게 검고, 게달의 장막같다 그래요. 게달의 장막이라는건, 유목민들의 천막, 다 떨어진 너덜너덜한 천막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검고 게달의 장막같은 나를 아름답다, 솔로몬의 휘장같다고 그럽니다. 누가? 왕이. 


(주일아침에 아내가 옷입을 때 환장하죠?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옷이 없대.  그거까진 좋아요. 근데 어디서 골라 입고 나오는게, 남자들이 정말 맘에 안 드는 거. 지는 좋대는거죠.  이쁘대요. 그거 갖고 많이 싸우죠? 그래 한 시간을 입고 나온게 고작 그거냐, 이런 식으로 싸운다 말이죠. 

길가다 보면 개, 강아지들 옷입혀갖구 다니는 아줌마들 있죠? 잘 생각해보세요. 그 개가 그 옷을 골랐겠습니까? 주인이 자기가 좋은걸 골라서 입히고, 만족하고 흡족해서 들고 다니는거죠? 그리고 자랑스럽게 여기잖아요. 애기들 마찬가지에요. 애들, 어른들이 봤을 때 참 깨끗하고 단정한 옷들 있죠? 근데 꼭 그놈의 새끼들은 지들이 입고 싶은걸 입고 나온다고 그러면 꼭 바지가 반쯤 내려가 있지 않거나,  아니면 다 찢어져가지구 쫓아다니면서 꼬매주고 싶은 거, 이런 거 입고 오잖아요. 지들이 입고 싶은걸 입으라고 놔두면요, 강아지는, 주인이 안보면 그거다 물어뜯습니다. 애들? 그거 보세요. 어른들이 전혀, 저게 무슨 옷이야? 하는거 입고 나오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보아서 이쁜 옷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인간들이 선악과 따먹고 합의하고 결정하여, 인간들이 이런 옷 입으면 근사해 질거야 하는 옷, 그 옷 입지 말라고 하세요. 여자들 마찬가지에요. 결혼했으면 남편이 이쁘다고 하는 그옷을 입으세요. 누구한테 잘보일라고, 남편이 싫대는데 굳이 그걸 입고 나와야 돼요?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성도는요, 신랑이 이쁘다 하는 그 옷을 입는거에요. 그게 세마포입니다. 어린양의 피. 그런데 우린 자꾸 우리 행위의 옷을 입을려고 하죠. 그게 자기 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보면, 술람미는 세상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으로 볼때 시커멓고 게달의 장막같이 너덜너덜하고, 쪼끔 있다가 밑에 보면 알지만, 포도원에서 죽도록 노동하는 노예였거든요. 그런데 신랑이 야 이거 솔로몬의 휘장, 왕궁의 휘장이라 그러구, 그 너덜너덜한 게달의 장막을. 이 시커먼 여자를 이쁘다! 그래요. 그걸 구원이라 합니다. 신랑이 자기가 만든 자기 옷을 입히는 것. 나중에 복음서에 가면 그걸 예복이라 그럽니다. 


혼인 잔치에는 예복 입고 가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합니다. 밖에 쫓겨나가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런단 말이죠. 예수님이 입혀주는 그옷 입어야 돼요. 예수의 의의 옷. 그래서 민수기에 가면, 모세가 구스여인을 아내로 맞아서 결혼하잖아요? 근데 그 구스 여인이 이디오피아 여인이란 말입니다. 그랬더니 미리암이 어떻게 니가 우리 가문에 저런 흑인을 데리고 와서, 신부라고 데리고 와서 아내를 삼을 수 있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미리암을 문둥병에 걸리게 만드신다구요. 


그 말은 구원이라는게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신랑이신 어린 양의 피가 그 이스라엘을 덮어서 데리구 나오는 중이에요. 그러니까 그들이 뭐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들은 구스 여인이에요. 그런데 신랑이신 예수가 자기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 피로 덮어서 데리고 나오는건데, 이스라엘이, 그 미리암이 바리새인을 예표하는거죠? 아니 어떻게 저런 시커먼걸, 게달의 장막을 어떻게 (왕이나 다름없는 모세의)신부로 데리고 올 수 있느냐?  요걸 율법주의 인본주의라고 하는 거에요. 외모로 사람 판단하는거. 그러니까 5절은 우리의 지금 현실을 바라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눈으로 봐주시는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거에요. 그게 바로 지금 이게 술람미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그게 우리란 말입니다.


 

6절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찌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내가 일광에 쬐어서, 햇빛에 타서 검다. (이쁘게 선텐한게 아니라 밥만 먹으면 나가서 햇빛에서 일을 한 사람은요, 이게 관리가 안돼서, 정말 움푹 패어요. 시골에서 농사짓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얼굴 보시면, 그렇잖아요? 그런 모습인거에요.) 그래도 흘겨보지 말아라. 왜?  왜 내가 이런 꼴이 됐는줄 아니? 그러는거에요. 내 어미의 아들들이, 어미의 아들들이라는 것은,  그 당시 히브리사람들이 이 어미의 아들들 그러면, 이복오빠들을 지칭하는 어휘였어요. 이복오빠들, 나랑 한 가족인 것 같은데 나랑 배가 달라요. 요게 바로, 유대주의와 그 안에 있는 교회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것 같은데, 나온 배가 달라요. 근데 그들이 나를 어떻게 했냐 하면, 포도원지기를 삼았어요. 포도원에 가서 죽도록 일을 시켰어요. 뭐가? 율법주의가. 교회, 하나님의, 솔로몬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저 발생이 된 이 교회를 율법주의가 자기들의 포도원에 데려다가 죽도록 일을 시킨 거에요. 


그렇게 죽도록 일을 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와서 뭐라 그랬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랬잖아요? 그 이야기에요. 근데 그 사람이 그들에게 끌려다니면서, 그 율법주의의 포도원에서 죽도록 일을 하느라, 정작 자기에게 주어진 포도원이 있었는데, 그 포도원은 관리를 못한 거에요.  이게 뒤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나중에 보시면, 이 포도원이 나중에 그대로 나오거든요? 그건 그때 가서 설명해 드릴게요.

 


7절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내가 네 동무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 같이 되랴   


자 이렇게 세상에서 교회가 핍박을 받고   야 넌 얼굴도 그렇게 검고 여전히 그렇게 더러운 모습이고,  여전히 변하지도 못한 그런 모습으로, 니가 무슨 신부야? 니가 무슨 예수 믿는 놈이냐? 니가 무슨 교회야? 라는 욕을 먹고 있다가,  그렇게 욕을 먹다 보니까, 근데 나는 분명히 신랑이 입맞추고 간 기억이 있단 말예요. 내 안에 성령이 들어와서, 


나는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한심해요.  그러니까 이 술람미가, 교회가 쉴 곳을 찾는 거에요.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 이게 솔로몬이에요. 니 양떼 먹이는 곳, 당신의 양떼를 먹이는 곳, 오정에 쉬는 곳,  안식하는 곳, 제발 그곳에 나를 데려가주세요 그러는 거에요. 성도는 이세상에서 그런 핍박이나, 어려움이나 고난이 없으면 그 신랑과 함께 안식할 곳을 절대 간절히 구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일들을 허락하시는 거란 말에요. 


내가 니 동무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자같이 되랴, 

얼굴을 가리운 자라는 건 이때 당시 창녀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너울을 쓰고 돌아다니면서, 다말이 시아버지와 통간을 할려고 할 때 너울을 쓰고 가죠 그죠?  그 그림이에요. 사람들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나를 지금 창녀 취급하는 거에요. 내가 언제까지 이런 취급을 받아야 되는가? 난 신랑이 있잖아. 지금 이렇게도 수시로 생각나는 내게 입맞추고 간 신랑이 있는데 내가 언제까지 이런 창녀 취급을 받아야돼? 라고 하는 거에요 

 

8절 보면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찌니라. 


모르겠지?  모르겠지? 그러면 그 양떼들이 어떻게 그 목자가 양을 치는 곳으로 어떻게 갔는지 그 발자취를 니가 따라가보라는 거에요. 다 똑같이 갔다 뜻이에요. 너처럼 다 창녀취급 받으면서 그렇게 갔다라는 얘기에요.  모르겠거던,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가봐. 그리고 거기에서, 여기에서 작은 염소 새끼라는 건 아주 보잘것 없는 그런 별로 값어치없는 염소떼에요 양떼와 비교해서. 그런 너의 모습, 너의 실존을 너는 분명히 알아야 된다 라는 그런 뜻이에요.

 


9절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신랑이여 어디갔어요? 나에게 왜 입맞춤해줘놓고 어디 갔어요. 나에게 입맞춤 한 번 더해주세요 이게 2절이거든요? 입맞춤 한번 더해주세요에요. 정확히 번역을 하면. 그러구 있는데, 신랑이 갑자기,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교했다는것이죠. 솔로몬이 하나님이 말 많이 갖지 말라, 금 많이 갖지 말라, 와이프 많이 갖지 말라 그랬어요. 근데 다 많이 가졌죠? 


특히 병거, 말을 어디서 수입해서 썼어요? 솔로몬은 그 말을 애굽에서 수입해서 썼어요. 왜냐면 애굽말이 최고였어요 당시에. 그런데, 그때 당시에 왕의 말들은요, 명마는, 왕이 가는 곳에 자식은 안 데리고 가도 자기의 준마는 항상 데리고 갔어요. 어디든지. 심지어 왕이 죽으면  그 왕의 말은 같이 순장을 했습니다. 그러니 바로가, 애굽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할지라도 바로가 타는 말은 누구에게 안 팔겠지요? 왕의 말은 그렇게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솔로몬이 그 많은 애굽의 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의 말을 보니까, 자기가 갖고 있는 말은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술람미가 바로 야 그 바로가 가진 바로의 병거의 그 준마, 그거는 비교할 것도 아니야 라고 얘기하는 거에요. 내 색시는 세계 최고의, 최강의 나라인 애굽의 왕 그 바로의 말,  그거랑은 비교할 것도 아냐. 왕에게 있어 가장 귀한 보물은 말이었거든요. 


왕의 가장 귀한 보물, 그것보다 더 멋진 게 교회라는 거에요.  지금 이 여자는, 나는 이렇게 게달의 장막같고 시커멓고, 그래서 남들이 나를 창녀라고 놀리고 있는데,  언제 나를 당신이 쉬는 그 안식의 자리로 데려갈 거예요?  이러고 있는데, 그 신랑이 뭐라 그러냐면, 야  아니야!  나에게 있어서는 너는 이세상 그 어떤 왕이 아끼는 준마보다도 더 귀한 존재야 누구한테? 나한테 있어서. 근데 왜 두고 갔냐구요? 그 이야기가 쭉 펼쳐지는 거에요 계속. 그렇게 귀한데 나를 여기다 왜두고 갔냐구요?

 


10절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이 말을 직역을 하면, 두 뺨이 땋은 머리털로, 가려져 있단 뜻이에요. 그건, 당시 사람들은 너울을 쓰다는 말과 혼용해서 썼어요.  그 말은 무슨 말이야 하면요, 면사포 있죠? 면사요. 여인들의 면사포는 항상 신랑만 올리게 돼있어요. 따른 사람이 올리면 안돼요 그거는. 근데 그걸 머리로 면사포의, 면사포를 쓰고 있었다는건,  신랑만 그 머리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첫날밤에 신랑이 신부 머리를 올려준다 그러는거죠?  면사포를 올리는 것, 그건 신랑만 올리는 거에요. 그니까 지금 솔로몬이 너는 이세상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내 아내로 내가 찍었다 뜻이에요. 너는 내 아내다. 그래서 네 두 뺨이 머리털로 가려 있다는 거에요. 


이걸 나중에 여러분, 고린도서로 가며는, 여자들이 머리에 뭘 쓰는건, 내 위에 남자가 있다 라는 뜻이에요. 그게 없을 때는 머리를 길러야 돼죠? 그래서 여인의 머리라는건 항상 나는 내가 순종해야 할 남자가 있어요 라는 뜻이에요. 그니까 술람미가 지금, 그런 상태. 예수의 신부라는 뜻이에요. 


네 목은 구술꿰미로 아름답구나. 

노예가 목에 구슬꿰미로 만들어놓은 목걸이를 차고 있어요. 이건 불가능이거든요? 그럼 그 목걸이를 누가 줬대는 거에요? 신랑이 주고 간거에요. 


목이 곧은 짐승, 목이 곧은 백성이 뭐에요?  교만한 사람들을 목이 곧다 라고 그러죠? 그래서 독사 같은것들 보면요, 독을 확 품을 때 목이 가장 먼저 서죠? 그래서 예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복음서에 가보면,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면서, 내 멍에를 메라 그러죠? 이 멍에를 목에다가 메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그 뻣뻣한 목, 선악과 따먹고 교만의 극치에 올라간 그 뻣뻣한 목에 신랑이 목걸이를 건다, 라는건 너는 내 꺼다라는 뜻이에요. 니 뻣뻣한 목은 내 앞에서 꺾여야 된다 뜻이거든요. 


그래서 드라크마의 비유에서 열 드라크마가 목걸이에요. 빙폐물로 신랑이 반드시 신부에 주어야 되는게 목걸이에요. 열 드라크마. 그래서 그거 하나 잃어버리면 이 빙폐물의 가치가 없어져서 죽어라고 찾은거예요 그거. 그게 있어야 이 여자는 신랑 것입니다, 그걸 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는 신랑의 뜻에 순종하는 신부입니다는 뜻이에요.

 

예전에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때 당시에는 여자는 사람 취급도 못받았던 때죠? 근데 신랑이 나를 사람 취급해주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 순종해야 산다라는걸 여자들이 알았단 말이죠. 그래서 남자들이, 뭐, 심지어 밥을 좀 잘못해도 그냥 이혼을 해버리고, 와이프가 옆집 여자보다 못생기면 그냥 맘대로 이혼했어요. 이게 샴마이 학파였어요. 그니까 나중에, 그런거죠. 이혼 증서 써주고 해. 그렇게 막 하지말고. 그니까 이혼증서 써주면 이혼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이런 뜻이에요. 함부로 그렇게 대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때 당시에, 여자들이 남자의 목걸이를 잃어버린다는 건 바로 과부되는 거에요. 이때 당시 과부는 그냥 죽은거나 마찬가지였어요. 고아와 과부는요. 


그러니까 목걸이 잃어버리면 안돼요. 근데 예수님이 자기의 신부들을 부르면서, 그 목에다가 멍에를 걸어버린다구요. 근데 내 멍에를 메라 그래놓고, 이게 쉽대요. 쉽고 가볍다 그러죠? 왜그럴까요? 여러분? 예수님이 끌고가는 그 길이 역사 속에서 어려워요. 십자가를 지는 삶인데 어떻게 그게 쉬워요? 

우리 남자분들 군대 가신 분들 아시겠지만, 군대가서 그냥 시키는대로 하면 그처럼 마음편한 게 없죠? 그래서 살이 쪄갖구 나오잖아요? 다들. 승질 드러운 사람들 말고, 그냥 웬만한, 평범한 성격의 사람들은 군대에 가면 다 살 쪄갖구 와요. 왜냐면 생각할게 없구, 그냥 위에서 시키는대로 하면 돼요. 그래서 파 하면 파고. 

우리 진짜 그랬어요. 이 행정부대는요, 할일이 별루 없으니까,  애들 가만 놔두며는 군기 빠진다고, 산에 전부 데리고 올라가갖구 파라 그래서 파면, 또 그다음날 와서 묻어 그래요. 그러면 또 묻어 ㅎ. 그러니까 아무 필요가 없는 일들을 그렇게 시키고 그랬거던요? 근데 군대에선 하라면 해야돼요. 왜 이렇게 일을 비효율적으로 합니까? 따지면 안돼요. 

교회는 민주주의 아니라 그랬죠? 하나님이 왕 돼서 무조건 끌고가는 거에요.  전제군주제. 그러이까 멍에를 딱 씌워서, 하나님이 원치 않는 곳으루 알아서 끌고 가주겠다는 거에요. 니들한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라고 아무리 뒤에서 채찍질해도 니들 안가는거 내가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끌고 가야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술람미의 목에 그 구슬꿰미가  걸려있어요.

 


11절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사슬을 은을 박아 만들리라


 여기 개역성경에는 귀걸이란 말이 빠졌죠? 귀걸이에요. 이 이야기가. 근데 귀걸이는 언제 하죠? 옛날에 귀걸이는, 종들이 나중에  주인집에서 풀려날 그런 시기가 됐음에도, 나가봐야 뭐 별 거 없을 때,  그리고, 내 가족들이 그 여전히 종인데 나혼자 나갈 수는 없을 때, 저는 주인 집에서 영원히 종으로 살겠습니다 했을 때, 데려다가 귀를 뚫어요. 그때 쓰는 단어가 여기 나오는 거죠.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사슬을 은을 박아 만들리라. 

그러니까 여기에서 뭐 복수로 나오고, 단수로 나오고 하는데,  그런거 자꾸 뭐, 무슨 성령이니, 삼위일체 하나님이니,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꼭 그렇게 굳이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말들을 갖다가 억지로 해석을 안해두 돼요. 그냥 그 안에 있는 그 복음의 메시지만 보시면 되는거죠?

 


12절 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 


왕이 상에 앉았을 때,

이 상이라는 단어가요, 원래 이게 침상 이라는 단언데, 그 왕만 들어가는 왕의 침대 가 있는 곳, 이게 식탁이라는 단어로 쓰여요. 왕이 여기 앉았더니, 신부인 술람미에게서 나도 기름이 터졌어요. 여러분, 이 나도 기름이 어디에 나올까요? 나중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바로 전에 옥합을 깨트리죠? 그때 거기에서 쏟아진 게 나도 기름이에요. 


그러면, 술람미에게서, 지금 술람미의 머리 이야기 나오고, 나도 기름 나오고, 침상, 식탁이라는, 요런 개념이 나오는데, 

침상이라는거, 술람미와 솔로몬이 함께 자는 곳이에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자서 한몸이 돼서 부부가 된다라는건, 이걸 성경에서 쌍방이 먹는다 그래요. 신부가 신랑을 먹고, 신랑이 신부를 먹는다 그래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러 갈 때 헐레벌떡 가셔 가지고 인제 그여자를 그 시간에 만나야돼기 때문에, 너무너무 힘들게 가서 털썩 주저앉으셨어요. 여자를 만나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이 여자가 알아들었어요. 제자들은 전부 양식을 구하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와보니까, 스승이 사마리아 여자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사마리아 땅은 유대인들이 부정한 곳이고, 랍비는 낮에라도 사마리아 여자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 안돼요. 근데 스승이 사마리아 여자하고 사마리아 땅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식사하세요 그랬더니, 스승이 뭐라 그래요? 난 양식이 있다 그러죠? 그때 그 양식이 뭘까요? 

나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거라 그러죠? 

지금, 신랑이신 솔로몬, 예수가 창녀에 불과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간 거에요. 찾아가서, 내가 생수 준다. 그리구선 그 여자를 살려내어 신부 삼아 버린 사건이예요 그것이요.  그리고 내 양식은 지금 내가 한 이 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게 내 양식이다 그럽니다. 


내가 사마리아 여인을 아버지 뜻대로 내 신부 만들어서 내가 먹었다는 뜻이에요. 내 양식. 그런데, 나중에 6장으로 가면, 예수님이, 신부들아 나를 먹어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까, 나를 먹어라 그러죠? 신랑과 신부는, 그렇게 서로 먹어서, 하나가 되는, 그래서, 침상과 식탁이 같은 단어로 쓰이는 거에요. 


이렇게 신랑과 신부가 침상에서 하나가 되어, 또 한 상에서 함께 먹음으로 말미암아 연합이 되자 신부의 몸에서 나도 기름이, 향기가 터져나오는 거에요. 그러면, 뭐에요? 마리아가, 창녀였죠? 그 여자가, 이 나도 기름을, 왜 거기다 갖다 쏟아부었어요? 감사해서요.  고마워서. 나 일곱 귀신 들렸던 여잔데, 이 세상 아무도 나 사람 취급해주지 않았는데, 이분이 처음 나 신부취급 해줬다는 거에요. 그러이까 자기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그건 그여자 자신이에요. 그걸 깨서 예수님께 갖다 부어버린 것입니다.

 


13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요 


이것도 술라미가 하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다. 

옛날에 조선시대 같은 때 같을 때, 여자들이 목욕을 자주 못하잖아요? 당시에는 냇물에나 가야 목욕을 하죠. 사람한테 냄새가 많이 나서 사향주머니를 여자들이 항상 가슴골 가운데다 넣구 다녔어요.  냄새 나지 말라구. 


여기에 유대인들은요, 내 가슴 가운데 몰약 향낭, 향 주머니라 그러죠? 나는 냄새 나고 더러운 존재야. 창녀에요. 그런데, 내 님, 내가 사랑하는 내 신랑이, 나의 향기가 되더라는 거에요. 나는 시체 썩는 냄새나는데. 이 몰약은 시체 썩는 냄새 막는 약이란 말에요. 그래서 몰약과 유향을 항상 같이 묶는거에요 시체하고. 그러니까 나는 시체에요. 술람미는 게달의 장막의 시체에요. 썩는 냄새 풀풀 나는 시체. 나, 내가 술람미란 말에요. 근데, 내 몸에서 향기가 나요. 신랑이 좋아하는 향기가 나요. 근데 그 향기가 뭐냐면, 내 신랑이에요. 내 신랑이, 내 더러운 냄새를 다 막아주는 거에요. 그래서 창녀같이 더러운 냄새가 나는 내가, 이렇게 향기나는 아름다운 신부로 여겨지는 거에요. 


거기에 고벨화 송이라고 나오는데, 고벨화는, 세 가지 색깔의 꽃인데, 빨강, 노랑, 초록인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메시아꽃이라고 불렸어요. 삼위일체 하나님, 제사장, 왕, 선지자. 뭐 이렇게 해서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숫자 3 있죠? 그래서 그 고벨화는, 아름답기도 아름다왔지만, 메시아꽃이라고 불렸던 꽃이에요. 그러니까 내 님은, 내 사랑은, 내 남편은, 엔게디 고원- 다윗이 언제든지 위험할 때마다 가서 피했던 피난처-의 메시아. 나를 구원해 주고, 나를 피하게 해줄 유일한 분이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요런 개념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아가서를 유월절날 읽어주면, 그냥 이들은 다 이해를 한거에요. 그들이 잘 아는 개념이었으니까. 근데 우리는 이제 그걸 모르니까, 이거를 이렇게 배울 수밖에 없는거죠.



15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여기서 비둘기라는건,  평화를 전해주는 새이기도 하지만, 창세기에 보며는, 비둘기하고 까마귀가 나가죠? 근데 까마귀는? 죽은 고기가 좋아서, 안돌아오죠? 나가자마자. 고 뜯어먹느라구. 물위에 둥둥 떠있잖아요? 그니까 비둘기는? 그거 안먹어요. 앉을 데 없으니까 다시 돌아와요. 그다음에, 새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오죠? 그게 새세상, 평화의 세상을 상징하는거라 그랬잖아요? 고걸 물고 비둘기가 날라와요.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비둘기 하며는, 왜냐면 그 노아의 홍수때부터, 나타났던 새이기 때문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새라고 했어요? 


근데 비둘기는 사물을 하나밖에 못봐요. 둘을 못봐요. 그래서 비둘기, 니 눈이 비둘기 눈이구나 할때, 너는 나만 보는구나 라는 뜻이에요. 내 신부야 너는 나만 보는구나. 이건, 묵시 속에서 완료된 일이기도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지향되어져가는, 바로 그 지향성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지금 우리는 예수가 아니라 돈을 보죠? 세상의 힘을 보고, 비둘기는 비둘긴데, 딴걸 보구 있잖아요? 그 눈을, 말씀과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예수께로 집중하여 돌려내는 거에요. 그게 우리 신앙 생활이에요. 그래서 솔로몬은, 술람미에게 너는 비둘기다 라고 이제 이야기를 하는거죠?

16절 보세요

 


16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17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로구나 


백향목, 잣나무, 이건 성전 짓는 나무들이죠? 이 백향목이나 잣나무는 천년 이상 간다 그래요? 그리고 향이 독해서 벌레들이 범접을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성전을 지을 때 쓰는 나무죠? 근데 뭐라그래요?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집은 성전이다 라고 이야기해요. 니가 아무리 세상 사람들에게 창녀니 게달의 장막이니 흑인이니 이런 소리 듣고, 그리고 그런 말에 그렇게 흔들린다 할지라도 너와 내가 거할 그 성전은 영원하다,는 겁니다. 


천이라는건,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완전수에요. 십 곱하기 십 곱하기 십, 그래서 계시록에서도 천년왕국 등장하는건데, 영원하다 라는거에요. 그러니까, 사건별로 그냥, 묵시의 현실과 또 역사 속에서의 성도의 현실과, 그 신랑과 신부의 관계, 이런 것들을 그냥 쭉 설명하는 거에요. 


오페라 좋아하시죠 여러분? 오페라에서 남자가 아리아 부르고, 여자가 아리아 부르고, 갑자기 또 합창이 나오고, 이러는거 있죠? 그런 식의 오페라를 쓴거에요, 솔로몬이. 그르니까 사실은, 히브리 원어로 보면 이게, 삼삼 사사 이렇게 운율이 있어요. 그리고 워드 플레이들이 있는데, 그런 거까지 하면 너무 복잡해요. 

그런 운율은 몰라도 돼요. 그런것들을 통해서, 뭘 얘기하고자 했는가만 제가 설명드리는거에요. 1장, 어렵지 않죠? 1장은 제일 재미없어. 제가 공부해 본 장 중에. 그래도 이렇게 재미나게 했으니까, 2장부터 진짜 재밌겠죠? 내일 다시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렇게 게달의 장막이고, 이렇게 보잘것 없는 창녀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솔로몬의 왕궁의 휘장이라고 여겨주시고, 비둘기라고 여겨주시고, 

이세상에서 너보다 어여쁜 자 없다라고 그렇게 칭찬을 해주고 계십니다.

내 신랑이 이쁘다는데누가 나를 욕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분이 왕이고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신데, 누가 감히 내 됨됨이와 나의 성숙도를 갖고 판단하며 정죄하겠습니까?

신랑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때때로 우리는 내 신랑이 왜 나에게 입맞춤 한번 해주고 나를 다시 찾아오지 않는가, 고민하고 

때로는 낙심하는 때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술람미에게 찾아와서, 아니 그와 함께 계시면서 그를 늘 위로했던 솔로몬으로 예표되는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 잊지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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