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이퍼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기쁨신학'이라는 용어로 불리워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점에 가서 보니 존 파이퍼의 저서가 국내에서도 약 20권 정도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존 파이퍼가 말하는 크리스챤 헤도니즘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저서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때'라는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우려는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존 파이퍼가 말하는 크리스챤 헤도니즘이 신자로서 기쁨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가 말하는 기쁨이 어떤 것인가는 다음의 글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책과 관련해서 가장 피하고 싶은 오해가 있다면, 마치 이미 피상적인 종교가 되어 버린 기독교라는 케이크 위에 심리학이라는 크림을 얹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쁨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내가 부유한 서구 그리스도인들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이 책을 쓰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시작하면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이 책을 쓰면서 일깨우고 싶은 기쁨은 자비와 선교와 순교를 가능케 하는 힘이라는 점이다"
위의 글을 보면 존 파이퍼는 단지 인간을 즐겁게 하고 해옥하게 하는 기쁨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로 하여금 희생과 선교와 순교까지 가능하게 하는 능력으로서의 기쁨을 말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기독교에서 누리고자 하는 기쁨과 다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가 추구하는 기쁨은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입니다. 즉 희생과 자신의 목숨을 잃는 길도 거부하지 않고 순종하게 하는 능력으로서의 기쁨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한 기쁨을 맛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존 파이서의 헤도니즘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존 파이퍼는 "다른 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그분의 추구를 가로막았으며, 사실은 그분의 선물을 사랑하고 있으면서 그분을 기뻐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추구를 왜곡했다"라는 말을 통해서 현대인들이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 인해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에 대해 꼬집고 있습니다.
즉 존 파이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쁨이시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기쁨이며, 따라서 신자를 하나님을 알기를 갈망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가 신자의 기쁨에 대해 현대 교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존 파이퍼는 믿음의 모든 것을 신자의 기쁨을 위한 것으로 끌어감으로써 마치 기쁨이 신자에게 당연한 것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그리스도가 마치 신자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즉 존 파이퍼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간과하신 것입니다.
물론 신자에게 기쁨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가 기쁨이 있는 것은 당연한 열매입니다. 하지만 신자의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소원을 두고 행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쁨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존 파이퍼는 어쨌든 믿음의 목적과 이유를 기쁨에 둠으로써 결국 기뻐하기 위한 노력까지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읽기와 기도까지 동원을 합니다.
성경읽기와 기도를 통해서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고 행하심에 감사하는 것보다는 기쁨을 위한 성경과 기도로 얘기하는 것이 존 파이퍼의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존 파이퍼의 글은 신자의 기쁨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자기 기쁨을 위한 것으로 말해버립니다.
따라서 존 파이퍼에게는 철저한 자기 부인이 없습니다.
물론 존 파이퍼도 자기 부인을 말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기쁨을 위한 자기 부인으로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안에서 기쁨이 있는 당연한 것이지만 기쁨을 얻기 위한 그리스도로 바라본다면 그 역시 자신을 위한 그리스도로 바라볼 뿐입니다.
신자는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마음이 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쁨은 그리스도안에서 누리는 선물입니다.
즉 기뻐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망에 있는 나를 구출하시고 생명으로 옮기신 분의 의가 고마워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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