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C.S.루이스

북 이스라엘 역사 (왕상12-왕하17장)

은바리라이프 2012. 2. 21. 15:42

북 이스라엘 역사

 

(왕상12-왕하17장)  

1.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분열된 이후, 북 왕국은 이스라엘로 남 왕국은 유다로 불려지게 되었다. 물론 이 두 왕국은 서로가 자신들이 하나님의 참된 백성, 참으로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주장하였다. 

1) 이스라엘 
  토지가 유다 보다 비옥하여 살찐 가축과 풍성한 곡식, 그리고 좋은 과일을 거둘 수 있었으며, 이웃 나라들과 손쉽게 무역을 할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한편으로 외부로부터 많은 영향도 받게 되었다. 

2) 유다 
  적은 강우량으로 인해 토질이 좋지 못하여 먹고 쓸 양식이 부족하였으며, 지형적으로 고립되어 다른 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2. 국제적인 상황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은 역사적으로 변화무쌍한 틈바구니에서 살았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분열될 즈음 인근에 있는 두나라(애굽과 앗수르)는 그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서서히 그 마수를 뻗치기 시작하였다. 

1) 애굽 
  사울-다윗-솔로몬 시대에는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음-그러나 리비아의 방백인 시송크(성경에는 "시삭")가 애굽을 정복하고 거기에 22대 왕조를 세우면서부터 사태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솔로몬이 죽은 후 르호보암 제 5년에 이스라엘과 유다에 총공세를 취하면서 쳐들어왔다. 그러나 그 이후 애굽은 세계 무대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에디오피아와 앗수르를 막는데 주력했다.) 

2) 앗수르 
  그 다음에 부상했던 나라는 앗수르였다. 앗수르는 이 시기 동안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혔던 나라였으며, 이 나라는 세계적인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잔인해서 적들을 사로잡으면 산채로 장대에 꽂고, 불에 태워 죽였으며, 사람의 해골로 피라밋을 쌓아 올리거나 사람의 가죽으로 장신구나 벽을 장식하였다. 특히 디글랏 빌레셀(B. C 1114-1076)은 앗수르의 영토를 서쪽 지중해 연안까지 확장시켰으며, 그 이후의 통치자들도 계속 남쪽으로 밀고 나갈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앗수르의 발전은 매우 느리고 점진적이었지만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분열될 즈음에는 이미 상당한 세력을 가진 나라로 등장해 있었다. 

3) 블레셋: 블레셋도 계속적으로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해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4) 페니키아와 아람: 이 나라들도 이스라엘을 침략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5) 에돔이나 암몬: 이때에 이들은 이미 상당한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음 

3. 열왕기의 주요 주제들 

1)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역사를 신명기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순종-축복, 불순종-저 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함) 

2) 예루살렘이 참된 예배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고 함.(다른 곳의 제사는 죄, "산당"이라 불림) 

3) 이스라엘이 왜 멸망하게 되었는지를 밝힘-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계속 죄를 자행함. 

4) 선지자들의 활동에 대하여 많은 기록을 하고 있음-엘리야, 엘리사, 아히야, 무명의 선지자, 미 가야, 선지자의 생도 등. 

5)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 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시내산 언약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셨다. 

6) 전쟁은 왕들의 역사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4. "왕들에 대한 이야기"의 체제와 형식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는 거의 동일한 문체와 형식으로 언급되고 있다. 

1) 유다 
  a. 이스라엘 왕 -----년에 유다 왕 ----가 통치를 시작하였다. 
  b. 그의 나이, 통치 기간, 이름, 어머니 이름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 
  c. 왕의 통치가 "그 조상 다윗"의 그것에 비교하여 평가되고 있다. 
  d. "--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e. 그가 열조와 함께 잤고, 그 대신----가 왕이 되었다는 마지막 진술. 

2) 이스라엘 
  a. 유다 왕 ----년에 이스라엘 왕 ----가 통치를 시작하였다. 
  b. 통치 기간과 수도의 위치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 
  c. 대개 다음과 같이 평가되고 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의 죄를 좆고" 
  d.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e. 그가 열조와 함께 잤고, 그 대신 ----가 왕이 되었다는 진술 

* 북쪽의 왕들은 모두 악했던 것으로 평가됨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금송아지-비합법적인 제사장-자의적인 절기 행사-) 

* 남왕국 유다-ꅸ 사람만이 인정을 받음(특히 히스기야와 요시야) 
  - 10명의 왕들에 대하여는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졌다(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 열왕기는 왕들의 업적보다 예루살렘에서 행한 예배와 율법 준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5. 여러 왕조들 
  북쪽 이스라엘은 9개의 왕조가 왕이 되었는데 그 중 2대 이상 유지된 왕조는 둘밖에 안되고, 일곱 왕조는 모두 칼로 왕위를 찬탈하였다. 그러나 유다는 다윗 가문이 줄곧 왕이 되었다. 유다의 경우도 가끔 왕이 몰려나고 살해된 경우가 있었지만, 이는 모두 악한 왕을 몰아내고 선한 왕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 시기는 매우 혼란한 시대였다. 여로보암 2세가 죽고 나서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으며, 주민들은 포로로 잡혀갔다. 이 기간의 25년 동안에 6명의 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이 중 네 명은 이전 왕을 살해하고 왕이 된 사람이었다. 

6. B. C. 721년까지의 북 이스라엘 역사와 선지자들. 

1) 여로보암 왕가(B. C. 922-901)-2대-(12:25-14:20, 15:25-31) 

  가. 여로보암(주전 931-910)-22년간-(12:25-14:20) 
  * 솔로몬의 강제 부역과 지나친 과세 부담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선지자 아히 야가 이스라엘 10지파의 왕이 될 것을 예고하자 반역을 함(유다와 에브라임 지파의 알력) 
  * 이 일로 인해 솔로몬의 노여움을 사서 애굽으로 도망하였다가 르호보암 때에 세겜에서 반란을 주도하여 북 이스라엘을 세우고 초대 왕이 됨.(수도를 세겜-브누엘-디르사로 옮김) 
  *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쪽 예루살렘으로 내려갈 것을 두려워하여 벧엘과 단에 금 송아지를 만들고 그 곳에서 제사하게 하였으며, 평민을 제사장으로 삼고, 절기를 7월이 아닌 8월 15일로 임의로 바꾸어 이스라엘로 죄짓게 함. 
  * 이러한 그의 행동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게 하는 종교 혼합주의 를 가져오게 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람을 보내어 그 제단을 파괴하고 장차 다윗의 자손 중 요시야라는 사람이 그의 뼈를 이 제단에 불사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 고 이를 저지하려던 그의 팔이 마비되었으며, 죄를 회개했던 그의 아들을 제외한 모든 남자들이 죽게됨. 
  * 남 왕국의 2대왕인 아비얌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하나님의 재앙을 입어 사망함. 

  나. 나답(주전 910-909년)-2년간-(15:25-31) 
  * 여로보암의 아들, 바아사라는 모반자에게 피살당함. 


2) 바아사 왕가(B. C. 909-876)(15:33-16:10) 

  가. 바아사(주전 909-886)-24년간-(15:33-16:7) 
  *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여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을 성취시킴(왕상 14:4, 15:29을 비교하라) 
  * 여로보암의 죄악을 그대로 답습함. 
  * 남왕국의 제 3대왕 아사와 일평생 전쟁상태에 있었음. 
  * 이스라엘 백성들로 유다와 연락하지 못하도록 벧엘과 예루살렘 중간에 있는 라마에 성을 건축하였으나, 유다왕인 아사왕의 다메섹(아람)왕 벤하닷에게 원병을 청함으로 이 일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아사왕은 라마성을 짓던 건축 자재들로 게바와 미스바(베냐민 지파의 땅)를 지어서 오히려 국경을 더욱 확장하는 계기로 만들었다. 
  * 여로보암의 가문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문도 같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선고됨. 

  나. 엘라(주전 886-885)-2년-(16:8-10) 
  * 바아사의 아들로 군대장관 오므리를 기브돈에 파송하고 자신은 술을 마시고 취해있을 때에 그의 신복이었던 군대장관 시므리에 의해서 피살당함. 이때에 시므리는 그의 친족과 친구들까 지 모두 죽임으로서 예후의 예언을 성취하였다. 

3) 시므리(주전 885)-7일간-(16:11-20) 
  * 바아사의 후손을 멸함으로 예언을 성취함. 
  * 그러나 그도 7일만에 동료 군대장관 오므리에 의해 궁전에서 포위당하여 자결함. 
  * 이때에 절반은 디브니를 좆고 절반은 오므리를 좆음. 
    결국 오므리가 디브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통일함. 

4) 오므리 왕가(B. C. 885-841)(왕상16:21-왕하 10:11) 
  * 4대 44년간-남방 유다와 우호관계를 맺음 
  * 북 이스라엘의 초기 50년간은 매우 불안하였다. 그러나 오므리 왕조가 들어섬으로 이스라엘은 안정세력을 찾게 되었고 유다와의 긴장도 해소되었다. 그러나 외부적인 안정과 반영과는 달리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는 암흑시대였다. 

  가. 오므리(주전 885-874)-12년-(왕상 16:21-28) 
  * 세속적으로 강력한 국가였다. 
  - 북왕국의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김 
  - 이때까지의 왕 중 가장 막강한 왕이었음. 
  - 모압을 속국으로 삼음으로서 요단 동편의 남부를 다시 장악하게 됨. 
  * 영적으로는 암흑의 시기였다. 
  - 아들 아합을 이세벨과 결혼시킴 
  - 성경은 그의 정치적 성공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고 그의 영적인 타락상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얼마나 그의 나라와 그의 의 를 위하여 헌신하였는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나. 아합(주전 874-853)-22년-(왕상 16:29-34, 17:1-22:40) 
  * 요단 동편(요단 동편의 옥토와 왕의 대로) 점령을 위해 노력함 
  - 이를 위해 다메섹(아람) 의 남하정책을 막아야만 하였는데, 아합은 북쪽의 베니게(두로와 시돈 지역)와 동맹관계를 맺 음으로서 다메섹(아람)을 막으려 하였다. 그리하여 그 표시로 당시 베니게를 통치하던 시돈 사람 엣바알 왕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남쪽 유다의 힘을 빌리기 위하 여 자신의 딸(아달랴)을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에게 주었다. 
  * 왕후 이세벨은 바알에게 헌신한 여인이었다. 
  - 그녀가 적극적으로 바알종교를 지원하게 되자,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바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분기점에 이르게 되었다. 
  - 바알 종교는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 가나안의 우수한 문화를 형성시킨 신으로 동경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세벨의 바알 선교 정책은 가속화되었다. 
  - 사마리아의 바알의 산당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음. 
  - 아세라 목상을 만듦. 

* 참고: 불의 선지자 엘리야(왕상 17:-왕하 2:11-)-백성들의 마음을 여호와께로- 

1) 길르앗에 거하는 디셉 사람 
  - 3년반 동안의 가뭄 선포 
  - 그릿 시냇가의 까마귀(왕상 17: 2-7) 
  - 사르밧 과부(왕상 17:8-16)의 부양 
  - 죽은 아들을 살림(왕상 17:17-24) 

2) 바알의 선지자들을 상대로 850대 1로 싸워서 승리한 후에 그들을 처형함. 

3) 엘리야와 하나님 
- 이세벨을 두려워하여 낙심한 엘리야가 세미한 음성을 통해 하나님의 지시를 받음 
- 다음 지도자 예고; 하사엘-예후-엘리사 

4)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에게 저주를 선포함.(21:1-29) 

5) 바알에게 가서 병이 낫겠느냐고 묻는 아하시야 왕에게 죽음을 선고함. 

6) 엘리야와 불수레/ 엘리야가 요단강물을 가르고 동쪽으로 건너가서 하늘로 승천함./ 

7)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음. 
* 아합은 상아궁을 짓고 사치한 생활을 하다가 아모스 선지자에게 공격을 받았다. 
* 아합은 북쪽 아람왕 벤하닷과 싸워 두 차례 승리하여 아벡을 점령하였다(20:1-43). 
* 그러나 그는 3년 후에 남쪽 도시 길르앗 라못을 점령하기 위해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유다 왕 여호사밧과 함께 아람을 공격하다가 전사하고 말았다.(22:1-40) 

  다. 아하시야(주전 853-852)-2년-(22:51-53, 왕하 1:1-18) 
  * 아합과 이세벨의 맏아들 
  * 그의 아버지와 같이 죄를 범하고 바알을 섬김 
  *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궁전에서 떨어져 병들어 치유를 위해 바알세붑에게 물어보았다가 엘리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음(왕하 1:1-18) 

  라. 요람(여호람)(주전 852-840)-12년-(왕하 3:-8:) 
  * 아합과 이세벨의 막내 아들 
  * 바알의 주상을 제거함으로 아비와 같이 하지는 않았으나, 여로보 암의 길을 따르는 죄를 범하였다(왕하 3:1-3). 
  * 여호사밧을 설득하여 동맹을 맺고 모압을 침. 그러나 물이 갈하게 되었을 때에 선지자 엘리사의 도움으로(여호사밧 때문에) 물을 얻고 전쟁에서 이김.(왕하 3:4-27) 
  * 나아만이 문둥병이 낫고자 하여 왔을 때에 고쳐 보냄(5:-) 
  * 엘리사가 아람의 침입계획을 드러내자 엘리사를 죽이려고 군대를 파송했으나 모두 죽고 말았다. 
  * 그 후에 아람이 다시 침공하여 사마리아가 극한 기아에 시달렸으나 하나님께서 네 문둥병자를 통해 사마리아를 기근으로부터 구출하심.(6:-7:) 
  * 아람 왕 벤하닷이 죽고 하사엘이 왕이 되었을 때에 갈르앗 라못을 탈환하기 위해 하사엘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해 치료하던 중 군대장관 예후에게 피살당하게 되었다. 
  * 그 후에 에돔과 립나가 다시 그 수하에서 떠나게 됨. 

@ 갑절의 영감을 받은 엘리사(왕하 2:12-13:21) 

1) 부유한 농가의 출신(왕상 19;19) 

2) 여호람-요아스 때까지 약 50년간 활동함 

3) 엘리야처럼 극한 투쟁이나 도망다니는 일이 없었으며, 종종 왕들과의 교제도 있었다. 

4) 엘리야가 길갈과 벧엘과 그리고 여리고에 세운 선지 학교를 더욱 발전시켰다. 

5) 수많은 이적들을 행함 
* 여리고의 물이 좋지 않아 토산물이 설익은 채 떨어지자 소금을 물 근원에 넣어 고침 (2:19-22) 
* 엘리사를 조롱한 아이 42명이 암콤에게 찢겨죽음/"대머리여 올라가라!"/승천하라는 말  * 빈 개천에 물을 채워서 모압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함(왕하 3장) 
* 가난한 선지자의 가족을 위해 빈 그릇에 기름이 차게 함(4:1-7) 
* 거처를 마련해 준 수넴 여인에게 아기를 낳게하고, 죽은 아기를 살려줌(4:18-37) 

6) 길갈 에서 독 있는 국을 깨끗게 함(왕한 4:38-41) 

7)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로 100명을 먹임(왕하 4:42-44) 

8) 나아만 장군의 문둥 병을 고침(왕하 5:1-19) 

9) 재물을 탐내는 게하시에게 문둥병을 예언함(5:15-27) 

10) 잃어버린 도끼 머리를 되찾음(왕하 6:1-7) 

11) 수리아의 은밀한 전쟁계획을 폭로함(6:8-12) 

12) 게하시의 눈을 열어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하고 수리아 군대를 눈멀게 함(6:15-23) 

13) 사마리아가 기근에서 해방될 것을 예언함(왕하 7장) 

14) 수리아 왕 벤하닷의 죽음과 하사엘의 수리아 통치를 예언함(왕하 8:7-15) 

15) 임종시 이스라엘이 수리아를 세 번 물리칠 것을 예언함(왕하 13:14-19) 

16) 죽은지 수년이 지난 엘리사의 시신으로 죽은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남(왕하 13:20-21) 

5) 예후 왕가(B. C. 842-753)-5대 89년간-(왕하 9:) 
  오므리 왕가를 멸하고 왕이 된 예후 왕가는 이스라엘 왕가 중에 가장 강력한 정권이었다. 그러나 예후 왕가는 아람의 침입으로 많은 것을 잃었으며, 종교적으로 바알을 반대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는 못하였다. 

1) 예후(주전 841-814)-28년-다메섹 및 앗수르의 침입-(왕하 9:-10:) 
  * 엘리사가 보낸 사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혁명을 일으켜 치료차 이스르엘에 있던 요람을 죽였으며, 병문안차 요람을 방문한 아하시야도 므깃도에서 죽었다. 그리고 즉시 이세벨을 죽 임으로 엘리야의 예언을 모두 응하게 하였다. (9:-) 

  * 그리고나서 그는 사마리아의 정치적 지도자들에게 아합의 70인 아들 중 한 명을 내세워 싸 우게 하라고 하였으나, 예후를 두려워한 그들은 아합의 아들 70인을 모두 죽여 예후에게 그 머리를 보내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전국에 있는 바알 숭배자들을 처단하였다. 하나님께 서는 이 일을 인하여 그를 4대동안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해셨다. 그러나 그도 역시 하나님 의 율법을 전심으로 섬기지는 않았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이세벨과 유다 왕 아하시야와 그 일가를 죽임으로 베니게와 남 유다와 원수가 되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는 혼자 힘으로 아람과 모든 주위 나라들과 싸워야 할 입장이 되었다. 

  *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람왕 하사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치시기 시작하셨고, 예후는 죽게됨(10:-) 

2) 여호아하스(주전 814-798)-16년-구원자를 만남-(13:1-9) 
  * 예후의 아들 
    그의 군대가 아람의 하사엘에게 공격을 당하여 거의 전멸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 호소하였으며,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일으키셔서 아람을 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 
  * 그러나 그가 계속하여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고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두었으므로, 하나님은 아람을 통해 그 나라를 치게 하셨고, 극히 미약한 군대만 남겨두었다. 

3) 요아스(여호아스)(주전 798-782)-16년-국세를 회복함-(13장) 
  * 여로보암의 길을 좆아 범죄를 함. 
  * 병상에 누운 엘리사를 찾아가 아람에게 세 번 이길 것을 예고 받고 아람을 쳐 성을 빼앗음. 
  * 유다왕 아마샤를 치고 예루살렘의 성벽 일부를 무너뜨리고. 성전과 궁궐의 보물들도 빼앗았 다. 이때 이후 남쪽 유다는 북쪽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예속을 당하게 되었다. 

4)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40년-이스라엘을 부강케 함-(14:23-29) 
  * 북왕국 왕 중 최장기간 통치함/ 북왕국 왕 중에서 가장 막강한 왕중에 하나. 
  * 요아스와 여로보암 2세는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는 아니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요나의 에언을 성취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蕡로보암 2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상실한 영토 중 상당 부분을 회복하게 하셨다."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솔로몬 때의 영토 회복) 
  * 아람을 속국으로 삼고 요단 동편의 모든 영토를 정복(아람이 앗수르의 공격으로 약해졌으며, 앗수르도 북방 민족을 막기에 골몰하였고 연약한 지도자들이 왕위에 있었다.) 
  *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로 더욱 겸손해야 할 이스라엘이 부유해짐에 따라 점차로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부패해졌다. 바로 이때에 이들을 향해 메시지를 던진 사람들이 바로 호세아와 아모스였다. 

5) 스가랴(주전 753년)-6개월-(15:8-12) 
  * 예후의 4대손, 예후 왕조의 4번째 왕. 
  * 살룸이라는 폭도에게 피살당함. 이리하여 하나님이 예후에게 내린 예언이 성취됨.(왕하 10:30/ 14:29/ 15:8-12) 

6) 살룸(주전 752)-1개월-(15:13-16) 
  * 스가랴가 살룸에게 죽으면서 예후왕가와 함께 이스라엘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 므나헴이라는 잔인한 병사에게 살해됨. 

7) 므나헴 왕가(B. C. 752-742)-10년-(15:17-26) 

1) 므나헴(주전 752-742)-10년(15:17-22) 
  * 예후 왕가의 마지막 왕이었던 스가랴의 군대장관으로서 예후 왕가의 스가랴를 죽인 살룸을 물리치고 왕이됨. 그러나 이때에는 앗수르가 다시 강력한 세력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의 침공 때에 은 일천 달란트로 그를 매수하였으나, 결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꼭두각시가 되기에 이르렀다. 

2) 브가히야(주전 742-740)-2년-혁명으로 죽음-(15:23-26) 
  * 므나헴의 아들, 군대장관 베가에게 피살됨. 

8) 베가(B. C. 740-732)-20년-앗수르에 굴복함-(15:27-16:20) 
* 브가히야를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됨. 여로보암의 죄를 좆음. 
* 아람과 연합하여 앗수르를 치려했으나 유다 왕 아하스가 앗수르에게 원병을 요청하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이스라엘의 북부와 동부를 공격하고, 백성을 앗수르로 잡아감. 
* 호세아에게 피살당함.- 그 이후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완전히 점령되는 상태가 됨 

9) 호세아(B. C. 732-721) 
*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처음 9년 동안은 앗수르왕 살만에셀의 공격을 받고 그에게 굴복하여 조공을 드렸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애굽과 연합하였다가 호세아 9 년에 앗수르의 공격을 받고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되었다. 

@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왕하 17:7-18) 
1) 우상을 섬기고 이방인의 규례를 따름 
2) 여로보암의 죄악을 좆음. 
3) 하나님을 배반하고 산당을 세우고 산과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움. 
4) 산당에서 분향을 함 
5)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함 
6) 사술과 복술을 행함 
7) 선지자들의 전한 말을 듣지 않음-하나님을 배반하고 모세가 준 규례를 어김. 

@ 종교 혼합주의와 혼혈족 사마리아인의 탄생(17:24-41) 
  앗수르는 이스라엘에 수많은 이방인들을 이주시켜 살게 하였다. 이는 혼혈 족으로 만들어 앗수르에 대항하려는 혁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종교의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방 신과 여호와와를 함께 섬기는 혼합종교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아있던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 이방인들과 결혼을 함으로 하나의 혼혈족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7. 결론 및 적용 

1) 왕을 요구한 결과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호 13:11) 

* 여로보암-호세아까지 209년간(주전 931-722) 9개의 왕가 19명의 왕이 다스렸다. 
* 8번의 피 흘리는 혁명이 일어남. 
  - 예후 왕가(5대)-예후-여호아하스-요아스-여로보암 2세-스가랴 
  - 오므리 왕가(4대)-오므리-아합-아하시야-여호람 
  - 여로보암 왕가(2대)-여로보암-나답 
  - 바아사 왕가(2대)-바아사-엘라 
  - 므나헴 왕가(2대)-므나헴-브가히야 
  - 나머지는 모두 1대에 끝남, 특히 5대왕 시므리는 7일, 15대왕 살룸-1개월) 
  - 어느 왕가든지 끝날 때에는 전 왕가가 멸족하는 비극이 따랐다. 

2) 선지자를 통해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거절한 이스라엘 
  * 하나님은 오므리 왕가인 아합 때에 엘리야와 엘리사를, 그리고 예후 왕가 여로보암 때에 는 호세아와 아모스를 보내셨다. 
  * 그러나 그들은 끝내 그글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장 강력한 대표적인 왕과 선지자); 

3) 여로보암의 죄악이 이스라엘에 미친 해악성. 

4)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왕하 17:7-18) 
  * 하나님께 죄를 범함-우상을 섬김-이방인의 규례와 이스라엘 왕들의 규례를 따름 
  * 하나님을 배반하고 산당을 세움-산과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움 
  * 산당에서 분향을 함/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함/ 사술과 복술을 행함/ 
  * 선지자들의 전한 말을 듣지 않음-하나님을 배반하고 모세가 준 규례를 어김. 

5) 종교 혼합주의와 혼혈족 사마리아인의 탄생(17:24-41) 
  앗수르는 이스라엘에 수많은 이방인들을 이주시켜 살게 하였다. 이는 혼혈 족으로 만들어 앗수르에 대항하려는 혁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종교의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방 신과 여호와와를 함께 섬기는 혼합종교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아있던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 이방인들과 결혼을 함으로 하나의 혼혈족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