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연례 한ㆍ일 편집인 세미나 참석 차 일본 도쿄를 다녀왔다. 우리는 잠깐 잊었지만 일본에서 3ㆍ11 대지진과 원전대란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방사능 공포도 사실상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이상할 정도로 여전히 평온했다. 우리와는 참 다르다는 느낌을 다시금 받았다. 요즘 2040 세대의 분노로 펄펄 끓고 있는 우리 모습과 교묘하게 대비된다. 물론 공통점도 눈에 들어왔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무력한 정치다. 이번 세미나에서 일본 측 발표자인 요미우리신문 다나카 다카유키 논설위원은 오늘날 일본의 `불능시대`를 두고 "전략적으로 중대한 결정이 이뤄질 수 없는 내향(內向)적 정치상황"이라고 규정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매일경제가 `분노의 시대를 넘어서` 기획을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회의원이 내 의사를 대변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고작 5.5%에 불과했다. 민심이 이러니 중차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못하기로는 우리 현실도 매한가지다.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돌아보자. 국가의 장래를 위해 여야를 초월해 장기 안목에서 내려진 결단이 있는가. 김대중 정부 시절 적잖은 성과가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외환위기에 따른 글로벌 압력이 먹힌 덕분(?)일지 모른다. 혹자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치적을 치켜세우는데 거기에는 민주주의라는 기회비용도 함께 대차대조표에 올려야 한다. 이러니 분노가 쌓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한국식 게임 룰이라는 게 명확하지도 않고 그다지 공정하지도 않아 보이는데 그나마 한국 자본주의가 허점을 드러내는 상황에서도 이걸 뜯어고치기가 막막하다. 교육 노동 복지 등 굵직굵직한 이해집단 사이의 갈등을 통 크게 조정하는 게 지금 같은 현실에서 얼마나 가능하겠느냐 말이다. 어디 이뿐인가. 고성장 대신 저성장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고 반복된 경제위기는 인적 물적 자원의 정상적 신진대사를 꽉 틀어막고 있다. 수출주도 경제를 탈피하고 내수를 키우려면 변호사 의사 약사 등 철밥통 기득권층의 쪽박을 깨야 하고, 전면적 세제개편도 필수다. 표를 잃고 정권을 내줄 각오를 해야 한다. 저성장 시대엔 부동산 패러다임도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부동산 공개념을 건드려야 할지 모른다. 안 그러면 부동산은 앞으로도 계속 양날의 칼이다. 집값 폭등이 노무현 정부를 거꾸러뜨렸다면 가까스로 집을 장만하니 집값이 오르지 않아 가계빚만 늘어난 40대 불만과 전세금 폭등에 따른 20, 30대 분노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하는 질문 한 가지. 혁명 전야 레닌의 화두처럼 우리는 분노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이다. 여기에 대한 정답의 단초를 가진 쪽이 개인적으론 내년 선거에서 다음 정권을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출간된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은 이와 관련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9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의 정수는 전기작가 대신 잡스 자신의 글인 책 말미 마지막 여섯 페이지. 여기서 잡스는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임을 분명히 했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잡스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면서 그는 `이윤` 대신 인간애와 인문학이 담긴 `위대한 제품`을 창조하는 혁명을 꿈꿨다. 그리고 치밀한 장기전략을 토대로 결국 그것을 창조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구분되는 이유다. 잡스 안목대로라면 대중이 원하는 것을 쥐어주는 로빈 후드식의 포퓰리즘 영합도 사이비다. 보수든 진보든 자기 정파에 유리한지 여부를 먼저 따지는 우리 정치지도자나 사회 지도층이 한번 생각해볼 대목이다. 무엇이 과연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일까. 한ㆍ미 FTA 비준안 처리 방향부터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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