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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고 멋진 바깥세상 -필립 얀시

은바리라이프 2011. 1. 3. 00:06

멋지고 멋진 바깥세상
블라인드를 걷고 경이로운 세상을 보라
필립 얀시  Philip Yancey July 18, 2009 최요한 옮김
유진 피터슨 목사는 옛일을 생각하며 리첸 자매라고 불렀던 괴팍한 할머니에 관한 일화를 나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그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는 예언의 은사를 강조했는데 이 할머니는 거의 매주 자리에서 일어나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주님은 내가 죽기 전에 영광스럽게 오셔서 나를 공중에서 영접하실 것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어느 날 피터슨 목사는 당황스럽게도, 어머니 심부름으로 집에서 만든 쿠키를 이 할머니에게 갖다 드리게 되었다. 그는 벌벌 떨면서 할머니 집 대문을 두드렸다. 할머니는 깡마르고 쭈글쭈글하고 핏기 없는 모습으로 나와서는 쿠키를 먹고 가라며 그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할머니는 우유 한 잔을 건넸고 그는 어둑한 집안에 앉아 불안하게 쿠키를 먹었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블라인드를 내리고 살았기 때문에 실내는 컴컴했다.

그 뒤에 피터슨 목사는 할머니 집으로 달려가서 블라인드를 몽땅 걷으며 소리치는 공상에 빠졌다. “할머니, 밖을 보세요! 저기 버드나무가 보이세요? 꼭대기에는 물수리가 앉아 있어요! 흰꼬리사슴도 있어요. 할머니, 이렇게 멋진 바깥세상을 좀 보세요!”

나를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무엇보다 이 멋지고 멋진 바깥세상이었다. 나는 어릴 적에 하나님을 잘못 이해했다. 하나님은 인상을 찌푸린 채, 즐겁게 사는 사람은 누구라도 찌그러뜨리는 슈퍼경찰이었다. 하나님은 변덕을 일삼는 예술가처럼 고슴도치와 스컹크와 혹멧돼지가 세상에 득실거리게도 하시고, 미술관의 어떤 작품보다 아름다운 야생화와 열대어가 세상에 넘실거리게도 하셨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전 책임자였던 프랜시스 콜린스는 DNA 이중나선의 화려한 유전자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다. 퓰리처 상 수상자 애니 딜라드는 버지니아 주 블루릿지산 팅커천에서 뛰노는 동물들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다. 존 뮤어, 앙리 파브르, 로렌 아이슬리, 루이스 토마스 같은 자연주의 작가들의 글에서, 그들은 믿지 않았더라도, 나는 창조주의 솜씨를 보았다. 그들이 경건하고 정확하게 관찰한 덕분에 나는 블라인드를 걷을 수 있었다.

나는 바레인에서 육안으로 조개를 2000종이나 구별하는 목사를 만났고 코스타리카에서는 세상에서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나비와 나방을 많이 채집한 선교사를 만났다. 복음주의 역사학자 마크 놀은 찬송 “눈을 들어 예수를 보라”의 “주 영광과 은혜의 빛에 세상의 것 희미해져가네”는 잘못된 가사라고 말한다. 만물은 그리스도의 빛에 희미해져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그는 말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셨고 예수님을 통해 만물에 계신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의 담장 바깥에서 자원을 얻은 사례를 기록한다. 열왕기하를 펼치면 적군에게 포위되어 지독한 식량난에 빠진 사마리아 성 이야기가 나온다. 나병에 걸려 버림받은 사람들은 절망한 나머지 목숨을 걸고 성벽 너머로 식량을 구하러 간다. 그들은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적군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적군이 버리고 간 물품을 가지고 성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간다. 때때로 우리는 교회 바깥으로 나가서 영감을 얻고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어거스틴도 이와 비슷하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황금으로 하나님의 성막을 지었다고 썼다.

일본계 미국인 마코 후지무라는 세계무역센터 참사가 일어난 뒤에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마코는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이자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으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일반적으로는 폭탄이 떨어진 지점을 말하며,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린 지점을 이렇게 부른다/편주)에서 몇 블록 떨어진,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산다. 뉴욕시의 여러 예술가들이 집과 작업실을 잃게 된 9.11 뒤에 마코는 “그라운드 제로 예술가들이 모여 협동하는 안식처”를 만들고 싶어서 공동 작업실을 열었다.

그 당시 여러 예술가들은 충격을 줄 요량으로 주로 외설과 폭력이 가득한 작품을 만들었다. 갑자기 창의성은 참혹한 현실에 묻혔다. 그 동네의 예술가들은 더욱 외설스럽고 폭력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마코의 안전한 작업실에서 이 예술가들은 아름다움과 인간미, 고결함의 가치를 재발견했고, 작품에 이러한 가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해독”하던 아방가르드 아티스트 그레첸 벤더는 색다른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9.11 사건 며칠 뒤에 자기 얼굴을 가로질러 날아가던 나비를 보고 영감을 받아 종이로 나비 수백 개를 접어서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았다. 그레첸은 이것을 “부활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여섯 달 동안 예술가들은 이 안식처에서 전시회를 열고 공연을 올리고 시를 낭송하고 기도 모임을 열었다. 마코는 나중에 “우리의 상상력은 불안을 포착할 책임이 있는 만큼 치유할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교회는 문화의 청지기와 안내자뿐 아니라 후원자였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담장 바깥의 세상을 외면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만큼 고통을 겪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