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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겐: 그의 순교적 삶이 만들어내는 영성

은바리라이프 2012. 7. 13. 15:10

오리겐: 그의 순교적 삶이 만들어내는 영성




기독교 역사에서 오리겐 (184년- 254년) 만큼 찬양과 비판을 동시에 받는 사람도 드물다. 오리겐은 초대교회의 큰 사상적 줄기인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좌장으로 많은 신학적 업적을 남기며 경건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죽은 후 역사가 170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은 존경의 대상이고 그의 신학 역시 연구의 대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사후 200년이 지날 무렵에 교회 회의가 그의 사상의 일부분을 이단적 내용이 있는 것으로 정죄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의 사상을 의심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때 그의 이름은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이름이 되었고, 그의 저서는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이론적 신학 사상보다는 그가 어떻게 영적으로 살았는가를 먼저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신학은 자기 삶에 대한 반성이기 때문이다.


세베루스 황제의 통치 10년에 오리겐의 아버지 레오니다(Leonida)는 기독교인의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 때 오리겐의 나이가 17세였다. 오리겐도 아버지와 함께 나가 순교의 길로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간절히 말리고 옷을 감추는 바람에 따라 나서지 못했다. 당시 오리겐은 밑으로 동생이 6명이나 있었지만 감옥에 갇힌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 때문에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라고 신앙의 격려를 보내었다. 그의 아버지는 결국 순교의 길로 갔고, 17살의 오리겐은 어머니와 동생 6명을 책임지는 소년 가장이 되었다. 다행히 교인 가운데 부유한 한 여인이 제공하는 집에서 숙식을 할 수 있어 극도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피할 수 있었다. 


오리겐의 삶은 아버지의 순교 이후에는 살아있는 순교의 삶이 되었다. 그의 노년기가 되는 251년 데키우스 황제 때 기독교인의 죄목으로 체포되어 순교의 길로 갈 기회가 생겼지만 모진 고문 끝에 풀려 나와 몇 해를 더 살다가 하나님께로 갔다. 결국 평생 소원이던 순교의 길을 육체적으로는 이루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삶은 사실 순교의 삶이었다. 심지어 생활 방편으로 한 철학 강의도 단지 경제적 목적만이 아니라 순교와 연관이 있었다. 철학 강의를 통해 전도를 하였고, 전도를 통해 교인이 된 제자들 여러 명이 순교의 길로 가게 되었다. 18세부터 철학으로 사람을 모아 강의하여 생활 수단으로 삼았는데 이 때 철학을 배운 제자들 가운데 플루타크, 세베루스, 헤라클리데스, 헤론, 또 다른 세베루스, 아직 초심자였던 여인 헤라이스, 바실리데스, 포타미애나 등이 불과 칼에 의해 순교의 길로 갔다. 오리겐은 헤라이스라는 여인의 순교를 “불로 세례를 받았다”고 표현한다. 오리겐 자신은 교회에서 세례문답을 가르치는 교사로 그리고 장로로 평생을 살면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교훈을 글자 그대로 믿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젊은 날의 육체적 정욕을 피하고자 맨 땅에서 잠을 자는 훈련으로 시작해 결국 스스로 고자가 되었다. 오리겐은 극도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순교의 정신을 불어넣었다.


오리겐이 이렇게 순교의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또는 신학적으로 협소한 교리주의에 붙들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대교회사에서 오리겐 만큼 성서의 세계를 철학의 세계에 연결해 그 범위를 넓힌 사람이 없다. 오리겐이 이렇게 순교적 신앙과 열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버지가 베푼 교육의 힘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헬라철학과 동시에 성경을 가르쳤다. 성경을 정독하고 암송하도록 했다. 어려서부터 성서의 문자적인 의미가 이해되지 않으면 보다 깊은 의미에 대해 아버지에게 질의하여 측량할 수 없는 성서의 세계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어렸을 때 이렇게 성경을 암송하고 의미를 탐구하는 일은 오리겐 평생의 작업이 되었고, 이 작업에서 얻은 영적 열매는 그의 영성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이점이 오리겐의 영성을 오늘 다시 배워야하는 이유가 된다. 오늘날 흔히 우리는 “영성”하면 다른 종교의 실천적 프로그램도 마다 않고 관심 있어 하면서 정작 우리의 영적 삶의 원천인 성서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것을 본다.


오리겐의 영성의 첫 번째 특징은 성서 안의 영성, 성서를 통해서 얻는 영성이었다. 

오리겐은 성서에서 영적인 원천에 도달하기 위해 두 가지 길을 모색하였다. 


첫 번 째 길은 성서 원문에 대한 치밀한 연구였다. 

소위 “영적인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성서 원문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는데 반해, 오리겐은 철저한 원문의 복원이 성서의 세계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길임을 믿었다. 그는 Hexapla라고 부르는 6개국어 대역 성경을 만들었다. 당시에 구약성경은 70인역으로 보고 있었는데 오리겐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히브리어 원문에다 다른 헬라어 번역본을 대조해 6개의 칸을 만들고 각기 6개 언어의 성서를 나란히 기록하였다. 이 작업을 위해 무려 27년을 보냈다. 오리겐 사후 1세기가 지난 즈음에 역사학자 유세비우스는 이 Hexapla를 읽고 있다고 보고하지만 안타깝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아마 유세비우스 이후에 오리겐의 일부 사상이 이단적이라고 비판받으면서 오리겐의 모든 서적이 폐기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오리겐은 Tetrapla라고 불리는 4개국어 대역 성경도 만들었다. 그는 성서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배웠고 오늘날의 용어로 쓴다면 성서 고고학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어 고대 사본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두 번째 길은 성서 해석을 통한 길이었다. 

이미 어려서부터 성서의 문자적인 의미 뒤에 있는 의미를 질문해 왔던 오리겐에게 해석에 대한 길은 영적 원천에 이르는 핵심적인 길이었다. 성서 해석에는 문자적(역사적) 해석, 도덕적 해석, 영적 해석(allegorical)이 있다고 생각했다. 성서의 어떤 구절은 문자적인 의미만 파악하면 되는 반면, 어떤 구절은 도덕적이거나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그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오늘날에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알레고리 해석의 주인공이 바로 오리겐이다. 그러나 오리겐의 알레고리 해석은 오늘날 문제되는 알레고리 해석과 (실은 자의적 해석) 다르다. 오리겐은 성서의 계시는 모든 인간에게 알려지도록 주어졌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여러 차원으로 주어진 것은 인간 삶의 깊이가 여러 차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순하게 문자적인 뜻으로 알려지지 않는 구절들은 더 깊은 연구를 통해 그 문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의 소리(성령이 성서의 저자임으로)를 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바로 이 더 깊은 연구가 알레고리이다. 오리겐이 알레고리를 말할 때 여기에는 다음의 4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 치밀한 원문 연구, 암송을 통해 얻은 구절 구절의 연관성,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과 영적 진리가 계시되어 있는 성서 본문에 대한 철학적인 구조 이해, 그리고 성령과의 교감. 자의적인 해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이런 구성 요소를 이루어야 했다. 앞의 3 구성 요소들은 보다 학문적인 연구이다. 이런 연구를 통해서 성서의 원저자인 성령과 직접적인 부딪힘을 통해 성서의 신비로 들어가게 된다.


영성의 두 번째 특징으로 오리겐은 성서를 통해서 얻은 영성은 일상 생활 속에서 그 열매를 보여야함을 강조한다. 오리겐은 기독교인은 두 종류의 교인, 즉 대부분 교인이 보통의 신자이고 소수의 영적으로 진보된 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소수의 영적으로 진보된 자로 구분한 것 때문에 간혹 학자들은 오리겐이 영적 엘리트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 생활에서 간신히 구원받을 만큼만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이렇게 영적으로 헌신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가. 그럼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인가. 순교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람, 즉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만나는 사람이 가장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자기처럼 육체적으로 순교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수덕주의(asceticism)로 일상 생활에서 영적으로 순교하며 사는 것이 영적으로 완전에 이르는 길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할 것이 있다. 오리겐도 그렇지만 초대교회의 모든 사람들은 영적으로 완전에 이르는 길을 신비주의로 이해했어도 이 신비주의는 일상 생활에서 착하게 사는 일(덕스럽게 사는 일)을 의미했지 일상 생활을 벗어나 비사회적이고, 비이성적인 체험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십자가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일상 생활에서 덕스럽게 사는 일로 십자가의 삶에 참여하게 되고 여기서 그리스도와의 합일을 경험했다. 덕스럽게 산다는 일은 남들에게 최대한 사랑과 겸손으로 대하는 일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혹독하게 훈련하고 절제하는 산다는 것을 뜻했다.


“영성”이 유행이고 다른 종교의 실천적 프로그램도 무분별하게 교회 안으로 도입되는 시점에서 오리겐의 영성을 배우는 일은 기독교 역사의 원천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이 되돌아감이 바로 오늘날 가장 필요한 기독교 영성, “성서와 삶”을 배우게 한다. 오리겐 “영성”에 관한 내용을 더 자세히 보려면 “기도에 관하여”와 “순교에의 권면”이라는 저서를 추천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말로 서울신대 주승민 교수가 번역한 “순교에의 권면”이 있다. 이레서원에서 출판한 오리겐을 중심으로 한 알렉산드리아와 로고스라는 주승민 교수의 저작에 번역이 나온다. 오리겐 자신의 글을 조금 더 보려면 “제일원리”와 “셀수스 반박” 등에서 발췌해 번역해 놓은 약간의 글들이 크리스챤다이제스트에서 출판한 초기 기독교 교부라는 책을 참고하면 된다.

(방성규, 한영신대 교회사, 영등포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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