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뉴스/기독뉴스

“예수정신으로 돌아가라”… 아나뱁티스트 영성, 교회 회복 새 방향 제시

은바리라이프 2010. 12. 20. 16:03

“예수정신으로 돌아가라”… 아나뱁티스트 영성, 교회 회복 새 방향 제시

[2010.12.15 20:53]  


2010년 7월 22일은 세계 기독교 역사를 새로 쓴 날이다. 루터교세계연맹(LWF·Lutheran World Federation)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 제11회 총회를 열어 16세기 당시 루터교가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를 박해했던 일에 대해 깊은 용서와 회개를 선포했다. 총회에서는 아나뱁티스트 후예인 메노나이트 교회 대표자들이 참석했고 루터교 지도자들은 이들에게 사죄했다. 루터와 칼뱅 등 개혁가의 반대를 받으며 500년간 박해 속에서 받아온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나뱁티스트는 종교개혁 시대에 출현했던 개혁적 분파다. 형식에만 그쳤던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세례는 개인의 철저한 신앙고백에 근거해 시행돼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몸 전체가 물속에 들어가는 침례를 실시했다. 이 때문에 반대파들은 이들을 유아세례에 이어 또 한번의 세례를 받는다고 비꼬며 ‘Anabaptist’, 즉 ‘재세례파’라는 별명을 붙였다.

개혁시대 초기 이들은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유아세례 거부뿐 아니라 당시 마르틴 루터 등이 추구하던 정교일치를 비판하고 철저한 정교분리 원칙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와 국가가 서로 대치상태에 있다고 주장하고 사회의 권력구조가 교회 속으로 전이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교회를 세속사회로부터 분리된 자발적 공동체로 정의하고 당시 전통과 관습에 도전했다.

개혁파들보다 더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던 이들은 평화주의를 지향했다. 마태복음 5∼7장에 이르는 예수의 산상수훈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저한 제자도를 추구했으며 이에 대한 대가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확실한 신앙고백에 근거한 침례의식, 정교분리, 공동체, 제자도, 평화주의 등은 당시 기독교 환경에서는 혁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단과 반역자로 몰리며 루터파와 가톨릭교회 둘 다에게 핍박을 받았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나뱁티스트 이단’을 두 발을 묶은 채 물에 빠뜨려 살해하기도 했다. 교회역사가 후스토 곤잘레스는 “순교자의 수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다. 그 숫자는 아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회심하기 전 3세기 박해 기간에 죽은 이들보다 많을 것”이라고 기록했다.

최근 한국교회에 이 같은 아나뱁티스트 신앙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아나뱁티스트 신앙을 배우자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 배경은 한국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안타까움에서 기인한다.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도 정교일치를 추구하고, 공동체 정신을 상실해가며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제자들만 넘쳐난다는 것이다. 산상수훈에 대한 설교는 많지만 산상수훈에 따라 사는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나뱁티스트 신앙과 삶이 고귀하게 비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루터와 칼뱅이 아니라 아나뱁티스트일까. 김기현 부산수정로침례교회 목사는 “화해를 바탕으로 한 평화주의, 공동체 지향, 제자도 추구 등이 현대 한국교회의 병폐를 치유할 요소가 되기 때문”이라며 “아나뱁티스트 영성은 예수 정신의 근본을 잃어가며 종교화되는 교회를 향한 치료제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오늘날 한국교회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목회자를 비롯해 평신도 역시 본질 회복에 대한 목마름으로 넘쳐난다. 아나뱁티스트 영성이 회자되는 이유는 그들은 말 대신 삶으로 예수 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2006년 10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소재 아미시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아나뱁티스트의 삶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피해자 가족은 즉각적으로 범인을 용서한다고 알렸고 그 어떤 보복이나 원망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살아온 이들을 별난 사람으로만 치부하다 용서의 모습 앞에 경의를 표했다.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 김경중 총무는 “현대 아나뱁티스트의 특징은 제자도와 비폭력 평화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며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을 용서하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현대 아나뱁티스트는 메노나이트, 후터라이트, 아미시파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신앙 색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선조들이 추구했던 신앙적 전통은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메노나이트는 가장 큰 규모의 교단으로 메노나이트세계교회 총회 소속 신자만 160만명에 이르고 있다.

아나뱁티스트 영성은 전 세계 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걸출한 신학자이자 기독교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고(故)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전 노트르담대학 교수는 현대 메노나이트파 대표적 신학자다. 요더의 신학은 스탠리 하우어스(듀크대), 글랜 스타센(풀러신학교) 등 기독교윤리학 대가들에게 이어졌다. 하우어스와 스타센 교수는 자신을 각각 ‘아나뱁티스트적 감리교도’ ‘아나뱁티스트적 침례교도’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메노나이트파의 경우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김경중 KAC 총무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메노나이트 봉사자들이 국내에 입국해 대구와 경산 지방에서 71년까지 활동했었다”며 “이들은 구호 원조활동뿐 아니라 직업학교를 세워 사람을 키웠다”고 말했다.

2001년 KAC가 설립돼 아나뱁티스트 신앙과 전통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으며 서울과 춘천에 아나뱁티스트 교회가 설립돼 있다. 침례신학대학교 출신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아나뱁티스트 모임 등도 형성돼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