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라이프] 인천 주안장로교회 나겸일 목사가 정년을 연장하거나 교단을 탈퇴하지 않고 교단 헌법대로 내년 12월에 은퇴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나 목사는 18일 오후 인천의 모 호텔에서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회에서는 정년 연장과 교단 탈퇴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나에게 위임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내년 말에 은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강화도의 모 기도원에서 2박3일간 머물며 기도했다는 그는 이번 결정 배경과 관련해 “반대하는 교인들이 많은데 끌고가는 게 무리라고 생각했다”며 “내게 선교라는 더 큰 목표가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나 목사는 결정 이후 감회를 묻는 질문에 "시원하다"고도 했다.
주안장로교회는 조만간 청빙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후임자 선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와 관련 나 목사는 후임 목회자의 자격에 대해 언급했다. 선교에 헌신적이고, 선교 경험이 있고, 외국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는 40대 전후가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교단은 물론 예장통합 소속이어야 한다.
어떤 후임자라도 주안장로교회 같은 대형교회를 이끌기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나 목사는 “그런 능력까지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며 “나 같은 사람이 큰 교회를 할 줄 누가 알았나. 하나님이 반드시 그런 후임자를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본보 아이미션라이프 이태형 부장이 진행했고, 이 자리엔 주안장로교회 관계자 한 명도 배석했다. 다음은 나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
-정년 연장 문제로 논란이 있는데, 목사님의 속마음을 얘기해달라.
교인들이나 당회원들로부터 더 있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아직 후임자 문제나 선교대학원 등 해야 할 일이 더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물러나면 다른 사람이 맡아서 잘하겠지만 선교대학원의 경우 어떻게 목사님이 시작 1년만에 그만두느냐는 것이다. 사실 후임자 문제는 5년 전부터 기도했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이런 교인들의 요청이 있어서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 그런데 1년 반 전부터 기도하면서 ‘잘못하면 욕심으로 보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비쳐지면 안되지 않나. 2주 전에 이 문제를 당회원들한테 정식 안건으로 내놨다. 그랬더니 어떤 분은 ‘결정을 더 미루자’고 하고 어떤 분은 ‘지금 하자’며 의견이 분분했다. 3년이나 5년 연장 얘기도 나오고, 적어도 내년이나 올 연말에 가서 결정하자는 등 설왕설래했다. 결국 당회는 ‘나중으로 미룰수록 교회가 시끄러워지고 분열의 위험도 있다. 여기서 결정짓자. (정년 연장을) 반대하는 사람도 목사님을 사랑해서 하는 것이고, 찬성하는 사람도 목사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고 말하면서 최종 결론은 나에게 위임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거기엔 정년 연장 여부를 포함해서 교단 탈퇴까지 다 포함된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결론을 내리셨나?
산(기도원)에 좀 다녀왔다. 강화도인데 2박3일간 다녀왔다. 그리고 토요일(13일)에 장로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이런저런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을 말해줬다. ‘지난번 저한테 일임한 것을 다 원안으로 돌립니다. 저한테 위임했던 모든 안건을 전부 교인들에게 돌려드립니다.’ 이런 결정을 한 배경은 교회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데 끌고가는 게 무리라고 생각해서다. 내게 선교라는 더 큰 목표가 있는 것도 또 하나 이유다. 그래서 내년 말에 은퇴하기로 했다. 그게 끝이다. 물론 지금 준비는 안됐지만 내년에 은퇴하는 게 제일 좋다. 다른 사람이 교회를 맡더라도 잘할 수 있다. 내가 꼭 3년이나 5년을 더 끌고갈 필요가 없다.
-교단법에서 정한 정년을 지키겠다고 하셨는데, 은퇴 후에 교단 탈퇴도 할 수 있지 않나?
총회법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다. 내년 말에 목회를 끝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년 은퇴 이후 다른 교단으로 가고싶지는 않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더 이상 욕심을 갖고 있다는 것처럼 비쳐지는 게 싫다. 지난주 장로들에게 발표한 내용 그대로다.
(이에 대해 인터뷰에 동석했던 주안장로교회 관계자는 “교인들 입장에서는 목사님이 아직 건강하시고 또 목사님을 존경한다. 아마 95% 이상이 그럴 것이다. 단지 2~3%의 교인들이 반대한다고 생각하는데 목사님은 그런 잡음 나는 것도 싫으신 것이다. 온 교회가 일치해서 하면 하시겠지만 조금이라도 잡음 나면 싫어하신다. 예전에 총회장 얘기가 나왔을 때도 만장일치가 아니면 안하시겠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렇게 결심하게 된 배경은?
나는 교인들이 거의 다 (정년 연장을) 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싫어하는 분이 있을 거라고 봤고, 그래서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실제 누가 얘기해줬고 싫어하는 게 보이기도 했다. 논의 연기가 아니라 전부 철폐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결심 후 심정은 어떤가?
시원하다. 정년 연장이 하나님 뜻인 줄 알았는데 정년 연장이 안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란 걸 알았다. 당회원들이 나에게 맡길 때 ‘전적으로 목사님께 다 맡기겠다’고 했다. 정년 연장을 원했다면 내가 얼마든지 그렇게 결정할 수 있었지만 기도원 갔다와서 대화를 나누면서 철폐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주일예배 때 광고를 통해 ‘저녁예배 공동의회는 없다’고 발표했다.
저는 솔직히 인간적 욕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난 우리 교회가 총회나 인천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 없다.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하다보니 크게 된 것이다. 만약 그런 욕심이 있었으면 총회장도 했을 것이다. 뭔가를 하려고 애쓰고 그런 것 없었다. 그런 관심이 있었으면 진작 총회장 출마했을 것이다. 그런 기회도 얼마든지 있었다. 아마 내게 욕심은 다른 사람에 비해 굉장히 적다고 할 수 있다. 난 신학을 시작하면서 주님 위해서 다 버리겠다는 각오로 평생 고생과 순교를 각오하며 소록도를 지원했다. 그런데 거기 교회가 모두 예장 합동측이었다. 그래서 갈 수 없었다. 대신 충남지역의 농촌 교회에 지원했는데 결정이 됐다. 그런데 부임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그 교회를 한번 가봤더니 이미 다른 목사님이 와계셨다. 그때 서울의 300명 되는 교회와 인천의 200명 되는 교회가 나를 청빙했다. 둘 다 도시여서 꺼렸지만 그래도 인천이 좀 덜한 데다가 숫자도 적어 인천을 지원했다. 그래서 인천 주안장로교회에 부임하게 된 것이다. 부임 이후 난 한번도 큰 교회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내가 그렇게 역량이 뛰어나지가 않다.
-그럼 그동안 후임자는 전혀 준비를 안하신 건가?
나름대로 준비해왔다. 5년 전부터 후임자를 놓고 기도해왔는데, 3년 전부터 교인들의 요청이 있었다. 교회를 더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1년 6개월 전부터 기도하던 중에 ‘잘못하면 욕심으로 보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비쳐지면 안되지 않나. 그래서 2주 전에 당회원들한테 그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내놨다. 후임자 문제도 있고 선교대학원 문제도 있는데 내년이 정년이니 장로들이 토론 좀 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후임자 선정 과정은 어떻게 되나?
지금부터 1년 동안 준비해야 한다. 후임자 선정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선교에 헌신적이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선교 경험도 있어야 한다. 나이는 40대 전후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교단은 물론 예장통합 소속이어야 한다.
-사위가 신학 공부를 하는 걸로 아는데?
독일 튀빙겐에서 신학 박사 공부 중이다. 사위는 목회자 스타일이 아니다. 전형적인 신학자 스타일이다. 사위는 한국에 오지 않을 것이다. 사위가 교회에 들어오는 일은 절대로 없다. 생각도 않하고 있다.
-후임자가 누가 되더라도 주안장로교회처럼 큰 교회를 이끌기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하나님이 후임자를 주실 것이다. 그것(능력)까지 맡겨야지. 나 같은 사람이 큰 교회를 할 줄 누가 알았나. 하나님이 반드시 그런 후임자를 주실 것이다.
-사모님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내는 전형적인 가정주부다. 나와 교회를 위해 기도만 한 사람이다. 정년 연장과 관련해서 ‘좋다 나쁘다’ 반응이 전혀 없다.
-이번 정년 연장과 교단 탈퇴 논란에 대해 교단에서 예의주시했다고 하던데?
교단 임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도 받은 적이 없다. 아무 조건도 없이 모든 안건을 완전 철폐한 것이다. ‘부족함이 많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구나’ 생각했다. ‘큰 교회 하더니 법과 질서를 어기더라도 더 하려고 한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런 것을 겪으면서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상황이 달라지면 교단 탈퇴 같은 논란이 재연되는 것 아닌가?
이미 철폐했는데 무슨 반복이 있겠나. 없다.
![](http://www.kukinews.com/clipImage/2010/1119/juancon_1.jpg)
주안장로교회는 1년 전부터 선교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은 30년 기도의 결실이다. 교회를 크게 지은 것도 크게 짓고 싶어서가 아니라 세계선교를 목표로 두고 한 것이다. 주안교회는 지붕이 둥글다. 지구본을 본 딴 것이다. 우리 교인들의 신앙 목표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주일 낮예배 때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한 기도를 빼놓지 않고 한다. 전도의 대상도 인천시민만이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그만큼 전도를 강조한다. 주안장로교회는 현재 재적 10만명에 출석 6만명이다. 하지만 타교회 교인이 등록하는 것은 못하게 한다. 이렇게 하다보니 타교회 교인인데도 새신자로 등록하고 세례 받는 부작용도 있다.
-대형교회가 된 데는 뭔가 비결이 있을 것 같은데?
열심히 기도하고 성실히 하려고 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 같다. 동창 중에서 내가 큰 교회를 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저는 무리를 끌고갈 카리스마가 있거나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보고 큰 교회를 하니까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서 목회를 더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 더 안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목회하면서 가장 중시했던 원칙은?
영혼구원이다. 그 이유는 내가 예수 안믿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난 장남이고 장손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엘 나갔는데 부모님이 그렇게 반대하셨다. 제사는 누가 지내냐면서 울면서 말리셨다. 하도 말을 안들으니까 나중엔 하숙비를 안보내셨다. 그래도 교회를 계속 다니니까 결국 포기를 하셨다. 난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예수 믿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밥먹을 때도 그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 기도를 시작한 지 20년만인, 내가 신학교 졸업반 때 산에 들어가 금식기도를 했다. 목적은 역시 부모님 구원이었다. 그때는 ‘부모님이 안믿는데 신학교 졸업만 하면 뭐하냐’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와 기숙사 갔더니 부모님한테 전화가 온 것이다. 교회에 다니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했지만 부모님의 그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주에 교회를 나가셨고, 그 다음주부터는 새벽기도도 나가셨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차를 마시셨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못믿게 해도 신학대까지 갔는데 이제 예수 믿어줘야 하지 않겠나 싶어 교회에 등록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후 아버지는 그동안 전도를 못하셨다고 대신 모아놓은 돈을 주시면서 교회를 건축하라고 해서 아내의 고향인 경남 하동군 북천면 방화리에다가 교회를 세웠다. 우리 교회가 1년에 두 차례 총동원 전도주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도 아버지를 20년간 위해 기도하다 보니 그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한 영혼 구원이 결국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에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목회자가 대형교회를 이끄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뭔가?
하나님의 목표를 위해 일치 단결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동안 성도들이 잘 협조해줬다. 내가 주안장로교회에 32년 목회하는 동안 한번도 분열이 없었다. 그게 감사하다.
-목회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고 그렇다. 난 말을 잘 못한다. 말을 많이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친교성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오해 아닌 오해도 많이 받았다.
(이에 대해 주안장로교회 관계자는 “목사님은 어떤 유명한 목회자가 있어도 교단을 초월해 다 초빙하신다. 아마 국내외를 초월해서 주안장로교회에 안다녀간 강사가 없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나보고 장로교인데 어떻게 순복음처럼 성령운동 하느냐고 하는 분들이 있다. 선배 목사들로부터 ‘장로교로도 충분히 다 할 수 있는데 왜 욕을 먹느냐’는 충고도 많이 받았다. 난 숭실대 철학과와 서울대 경영대학원(2년)을 졸업했고, 학원 강사를 하다가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했다. 그때가 33세다. 그 전에 행정고시 공부도 좀 했었다. 그때 시험에 실패하고 교통사고가 났는데 마음속에 신학을 하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들어왔다. 그때 이성봉 목사님처럼 훌륭한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중학교 2학년 때 기도했던 게 생각났다. 주안장로교회엔 38세에 부임했다.
24년 전엔 간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적도 있다. 간암말기였다. 얼굴이 까매지고 배도 불룩 솟아나왔다. 세브란스병원 의사도 ‘이 정도면 3일 이상 못산다’고 했다. 그런데 기도하고 회개했더니 하혈을 했다. 그리고 회복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과로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 20일 금식기도, 40일 금식기도 등 새벽부터 밤까지 쉼없이 뛰다보니 그런 병에 걸린 것이다. 그 경험 이후 나에겐 굉장한 신유은사가 생겼다.
-앞으로 계획은?
선교가 저의 모든 것이다. 선교는 마지막 때의 하나님 뜻이고 명령이다. 한국이 잘 살고 축복받는 것도 선교를 위한 것이다.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부활 승천 직전에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때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오직 성령 충만을 받고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정치와 경제, 문화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 받고 복음 전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치, 경제, 문화는 다 회복된다. 그런 면에서 선교하는 것은 단순히 숫자만 늘리는 게 아니라 한국을 크게 살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나의 사명이다.
인천=정리·사진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