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성 산악인 오은선씨가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 미터급 14좌 완등에 성공했다고 한다. 오은선 대장은 정상에 오른 뒤 태극기를 들고 손을 흔들면서 “이 기쁨을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등정 소감을 밝혔다.
특히 이번 등반은 한국방송공사에서 생중계를 하는 등 한껏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그들은 오은선 대장이 정상 가까이 이르자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며 경탄을 자아내며 흥분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히기도 했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수확(풍요)의 여신”이라는 이름과 함께 한국 산악계에서는 가혹한 산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언론은 “여신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수많은 눈사태와 위험한 고비를 넘기는 가운데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면서 최고봉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시대를 거르지 않고 수많은 산악인들이 이처럼 험난한 산 정상을 정복하기를 염원하며 오르고, 또 오르며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서로가 먼저 새 기록을 세우기 위해 치열한 경쟁도 이어진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택한 영역에서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면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그 중에서 등반가들의 기록 도전 역시 끝없는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그들의 놀라운 노력과 인내심을 볼 때 나름대로 인간체력의 한계를 극복한 하나의 업적으로서 기록될 만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런 도전과 성공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성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왜?” 인간이 지구라고 하는 자연의 가장 높은 꼭지점에 올라서야만 되며, 그곳에 올랐다는 사실에 왜 그처럼 과장되게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먼저 등반가들을 떠올리자면 그들이 정상 정복을 하기 전에 늘 등장하는 제사의례다. 히말라야에 오르기 전에는 등반 대원들이 베이스캠프에서 어김없이 라마제를 지낸다. 그 이유는 라마교를 믿는 셰르파들이 라마제를 지내지 않고는 산에 오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마교를 믿지 않는 대원들도 이때는 반드시 예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셰르파들은 제사 음식을 만들기 위해 베이스캠프에서 음식을 장만한다. 그것은 대개 도넛이나 꽈배기처럼 기름에 튀긴 것과, 곡식 가루인 “짬바”라는 것을 반죽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든 것들인데, 음식이 모두 만들어지면 셰르파들은 제단에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올려놓은 후 기다란 봉을 세워 등반가의 국기, 네팔기, 후원 업체 깃발과 함께 라마 경전이 새겨진 색색의 깃발들을 사방으로 늘어뜨린다. 이것은 등반의 연장선상에 놓고 보면 일종의 무속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행사는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통과 의례이므로 불문율로 되어 있는데, 특히나 한국 사람들 정서에는 더욱더 잘 들어맞는 행사이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그것을 행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다 한국의 토속 신앙인 무속신앙에 잘 길들여져 있어서 거부감 없이 그들의 제사에 동참할 기초가 잘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사히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라면 그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이번에 정상정복에 성공한 오은선 대장 역시도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지난 21일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캠프에 입성한 오 대장은 본격 고산등반에 앞서 23일 '라마제'를 지냈다고 한다. 라마제란, 앞서 살펴본 대로 셰르파들이 높은 산을 관장하는 시바신(네팔어로 그루림부제)에게 등반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제사로, 산악인들의 안전과 성공을 기원하는 전통 의식이다. 이들은 윤회설을 믿는 사람들이다. 죽은 사람들을 위로할 때 늘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란다는 말과 다음 세상에서는 더 좋은 환경에서 태아나기를 바란다는 말이 그것이다. 과학(과학적 장비, 과학적 데이터)과 미신(맹목적으로 알지 못하는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높은 산을 대단히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그 장엄함을 노래하고(금강산에 관한 노래 등)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산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그 산이 아름다워 마음으로 느끼고 즐기면 그만일 뿐, 그 산 역시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 세계에 불과한 것이지 숭배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다만 성경에 등장하는 산, 하나님의 산 호렙 산이 거룩한 산이었다. 그것도 모세와 대화하시기 위해서 그 산에 강림하셨을 때의 일이다. 『이제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데, 그가 그 양떼를 광야의 뒤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더니』(출 3:1). 그러나 거룩한 도성이라 불리는 예루살렘에 있는 산 역시도 인간들이 부패시켰다. 그래서 지금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곳이 없는 것이다. 『그때 솔로몬이 예루살렘 앞에 있는 산에 모압의 가증한 것인 크모스를 위하여 산당을 짓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것인 몰렉을 위하여 산당을 지었으며』(왕상 11:7).
또한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변형되신 산을 거룩한 산이라고 했는데, 그 때 역시 주님께서 나타나셨을 때이다. 『이 음성은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하늘에서 나온 것을 들은 것이라』(벧후 1:18).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본 것처럼 높은 산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등진 사람들이 우상들을 섬기기 위해 그곳에 산당을 지음으로 불경스럽게 되어 버린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지금은 높은 산에 올랐다고 그처럼 흥분하며 마냥 좋아할 때가 아니다. 먼저 육신의 몸을 벗기 전에 구원의 옷을 먼저 입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즐거움에 비교도 되지 않는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형벌은 등산 도중 발을 헛디뎌 수백 미터 낭떠러지로 떨어져 눈 속에 파묻혀 죽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언젠가 때가 되면 높은 산에 올라 즐거워해도 좋을 때가 올 것이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 거룩한 산과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이스라엘의 온 집과 그 땅에 있는 그들 모두가 나를 섬기리라.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며 거기에서 내가 너희 제물들과 너희 예물의 첫열매들을 너희 모든 거룩한 것들과 더불어 요구하리라』(겔 20:40). 이때는 천년왕국 때이다. 구원받지 않은 등반가들은 지금 구원받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피조 세계를 높이는 일을 중단하고 그 산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이 이루신 경이로운 일들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오, 그의 선하심과 사람의 자손들에게 행하신 그의 경이로운 일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주를 찬양할지어다』(시 107:31).
산을 정복하고자 하는 전문 등반가들은 산이 좋아 그냥 산을 즐긴다는 측면보다는 모두 정복주의, 기록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영국의 등반가 조지 말로리(George Leigh Mallory)가 에베레스트 산에 왜 오르려 하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던 것과 같은 철학적인 답변과는 달리, 필자는 누군가가 “왜 산에 올라 하나님의 경이를 찬양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분이 산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답하고 싶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이는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 좋으며 그것이 즐거움이요, 찬양은 합당한 것임이라』(시 147:1). BP
등반가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경이를 찬양하라
박재권 / 캐나다 주재 기자
▲ 라마제를 지내는 등반 대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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