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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구미정

은바리라이프 2010. 9. 27. 16:53

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윌 스미스 주연/ 미국 2007


제발 단 하루라도 좋으니 혼자 있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 주부 직함을 가진 친구가 하소연한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집안일이며 아이들 뒤치다꺼리에서 잠시라도 놓여나고픈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래도 혼자 사는 줄 뻔히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면 괜스레 서글프고 약이 오르는 법이다. 남편 있고 자식 있다고 유세 떠나, 속생각을 삼키는 동안에도 사정없이 가슴을 후벼 파는 찬바람. 혼자 먹는 밥의 설움을 모르는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했거늘.

혼자다, 나 밖에 없다, 오로지 나 하나뿐이다, 천지간에 아무도 없고 오롯이 나만 남았다. … 이 절절한 실존의 고독감은 그 자체로 공포요 고문이다. ‘나 홀로 집에’ 있어도 무섭기는커녕 신나 죽겠는 사람은 <나 홀로 집에>의 악동 케빈(매컬리 컬킨)밖에 없으리라. 평범한 보통 아이들에게 ‘나 홀로 집’의 경험은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초래하기 마련. 자고로 인간은 함께 있어야 산다. 지금 당장은 혼자 지내더라도, 함께 있음의 기억 내지 소망이 있는 한, 그의 삶은 무너지지 않고 지탱될 수 있다.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 역)이 비록 고통스럽지만 죽은 아내와 딸을 기억하고, 죽기 살기로 방송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오늘로 1001일째, 동물의 왕국처럼 변해버린 흉물스런 뉴욕에서 달랑 혼자 남아 버틴 시간들이다. 모든 라디오 주파수를 동원하여 그는 애타게 ‘사람’을 찾는다. 아무라도 좋으니 사람이 살아서 이 방송을 듣기를, 듣고서 나를 찾아와 주기를, 그리하여 이 거대도시 안에, 이 지구상에 나 홀로 존재한다는 엄혹한 느낌으로부터 제발 나를 구원해주기를.

아니, 틀렸다. 그 도시에는 그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밤만 되면 나타나,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힘으로 폭력과 파괴를 일삼는 존재들, 일명 ‘크리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로 돌변한 변종인류도 존재한다.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만 활개를 치는 그들은 인간다움의 요소를 깡그리 상실한 채 가공할 생존본능만 남아 으르렁댄다. 사람의 외양은 갖추었으되 사람의 능력이 없는 그들은 그야말로 어둠의 자식들이다.

그러므로 혼자라는 느낌은 실체론적으로 이해할 성질이 아니다. 다른 존재자들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존재방식과 나의 그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혼자라고 느껴지는 것뿐이다. 그들은 밤에 살고, 나는 낮에 산다. 그들은 빛을 거부하지만, 나는 빛 가운데 거한다. 그들은 살아있으되 그 안에 생명이 없어서 죽지도 못하나, 나는 생명인고로 기꺼이 죽을 수 있다. 그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한 죽음 말이다. 이러한 죽음은 결코 한 개인의 종말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상을 여는 문이 되며, 다른 생명을 낳는 씨앗이 된다. 인류 역사에는 이렇게 ‘전설’이 된 죽음이 여럿 있다.

<나는 전설이다>는 2012년 뉴욕을 배경으로 군인이자 과학도인 로버트 네빌 박사가 좀비로 변한 인간들에 맞서 싸우는 SF 호러물이다. 흔히 이런 유의 영화에서는 흉측스런 좀비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한다거나 피비린내 나는 영상이 줄기차게 이어져서 역겨운 잔상이 오래 남기가 일쑤지만, 이 영화는 그런 억지를 쓰지 않아 다행이다.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은 네빌과 좀비들의 결투를, 이를테면 한 줄기 빛의 미학으로 에둘러 표현한다.

좀비가 쳐놓은 덫에 걸려 우리의 주인공이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기절해 있다가 손목시계에서 울리는 알람소리에 놀라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지는 시간. 조금만 있으면 좀비들이 기승을 부릴 찰나다. 평소에 다져놓은 운동 실력을 발휘해 간신히 줄을 끊고 탈출을 시도한 것까지는 좋은데, 아뿔싸, 다리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 팔 힘을 이용해서 기다시피 자동차를 향해 가는 동안, 어느덧 야속한 해는 뉘엿뉘엿 지고, 빌딩숲 사이로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다. 이 때 깨어진 창문 밖으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좀비 두목. 그의 지시에 따라 역시 좀비로 변한 개들이 뛰쳐나와 사나운 기세로 네빌 박사를 뒤쫓는다. 하지만 이게 웬일? 개들은 한 줄기 빛으로 그어진 선을 차마 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짖어댄다. 빛을 사이에 두고 선과 악이 대립하는 이런 형이상학적 설정은 로렌스 감독의 특허일 터.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나는 감히 이 영화를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영화로 추천하는 바이다. 전작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 주연, 2005)에서 천국과 지옥의 경계, 선과 악의 균형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 물음을 재주 있게 풀어낸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연출력으로 원작을 과감히 재해석하고 있다.

<나는 전설이다>는 본래 리처드 매드슨이 1954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거의 자포자기한 삶을 사는 것으로 그려진 반면에, 로렌스 감독은 윌 스미스에게 원작의 이미지와 달리 진취적인 성격을 부여했다. 그는 빨간 무스탕을 타고 황폐한 뉴욕 시내 곳곳을 질주한다. 빨간 색은 무엇보다도 생명의 색이다. 죽음의 기운에 맞서 싸우려는 강렬한 의지가 내포된 장면이라 하겠다.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만들기 위해 땀 흘려 운동하고, 매일 일출과 일몰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여 손목시계의 알람을 설정하며, 변종인류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고자 연구와 실험에 매진하는 등, 그의 삶은 매순간 치열하며 진지하다. 어차피 혼자 있으니 누가 볼 것도 아닌데 그는 왜 흐트러지고 망가지지 않는가?

위에서 하나님이 내려다보시기 때문이 아니다. 나중에 등장하는 안나(‘애나’라고도 불리는데, 이 이름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예언자 안나를 연상시킨다.)와의 대화에서 네빌은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천명한다. 그는 신이 아니라 인간을 믿는단다.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가수 밥 말리처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그런 인간 말이다. 애완견 샘을 목욕시키면서 흥얼거리는 노래는 어김없이 밥 말리의 것이다. (하기야 나도 밥 말리의 노래 가운데 “No Woman, No Cry”를 크게 틀어놓고 대청소를 할 때가 가장 신나더라.) 딸의 이름을 ‘말리’라 지은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밥 말리를 존경하는지 알 수 있다. 공연이 코앞에 다가온 어느 날, 밥 말리는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 다른 유명 가수들 같으면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공연을 취소할 법도 하련만, 그는 개의치 않고 공연을 강행한다. 왜 그렇게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대답한다. 세상의 악이 멈추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노래를 멈출 수 있냐고.

네빌은 밥 말리를 따라서 자기 역시 좀비로 변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쉬지 않고 연구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안다. 밥 말리 같은 인간이 흔치 않은 만큼이나 네빌 같은 인간도 흔치 않다는 것을. 세상의 악과 상관없이, 혹은 세상의 악에 편승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네빌은 인간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하지만, 그 말은 곧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을 살리고 자기가 대신 죽는 그런 대속적 죽음을 죽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런데 가만 있자, 배경도시가 왜 하필이면 뉴욕이지? 뉴욕이라면 미국식 자본주의 문화의 정점이자, 2001년에 이른바 9ㆍ11 테러가 발생한 본거지가 아닌가? 영화는 지금 그 뉴욕이 좀비가 태어난 진원지라고 고발한다. 그렇다면 좀비는 미국식 자본주의 문화를 선망하여 물신숭배에 사로잡힌 현대인을 가리키는 은유가 아닌지.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내가 바로 좀비가 아닌가 하는.


* 구미정 박사는 이화여대 철학과와 동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졸업했다. 여성과 자연, 생명과 평화를 화두로 삼고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 저서로 『이제는 생명의 노래를 불러라』, 『생태여성주의와 기독교윤리』, 『한 글자로 신학하기』등이 있으며, 역서로 『교회 다시 살리기』, 『기초생명윤리학』등이 있다.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서울복음교회 교육목사로 섬기고 있다.

** <활천>, 2008. 2월호. "영화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