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작용이란?
두뇌작용 또는 두뇌활동등에 대한 여기 저기 찾아보니 이것을 '지능'이라고도 바꾸어 쓸수 있네요 다음은 두뇌활동에 대한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뇌는 크게 대뇌, 소뇌 및 뇌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두뇌활동은 주로 대뇌에서 이루어진다.
대뇌는 좌-우 2개의 반구로 나누어지며 그 부위에 따라 피질(겉)과 백질(속)로 구분되는데 피질에는 여러 겹의 골과 능선으로 이루어진 주름이 있어 전체적으로는 위 그림처럼 껍질을 깐 호도 알맹이 모양을 한다. 대뇌 피질은 여러 가지 신경 세포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대뇌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위치에 따라 전두엽, 후두엽 그리고 두정엽으로 나누어진다.
지능 또는 지적행동이라 함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시키는 가장 뚜렷한 특정으로 보고, 듣고,느끼는 등의 자극에 대해 비교, 분석, 판단을 가하여 목적에 맞고 주위 환경과도 조화를 이루도록 효과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총체적인 두뇌활동을 말한다."
동양권에서는 영혼이라는 통합개념만 존재하지 서양에서처럼 영(spirit), 혼(soul)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과 혼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리고 영혼이 만약 혼만을 가리킨다면 두뇌 작용, 또는 두뇌 활동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맞습니다 그러나 두뇌활동은 혼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이지 영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므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혼은 생각(mind), 감정(feeling), 의지(will) 세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지적행동은 주로 생각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래글을 읽어보시면 사람의 내적 구조와 영과 혼의 구분이 명확하게 생길 것입니다.
1. 사람의 구조-영, 혼, 몸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spirit)과 혼(soul)과 몸(body)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우리의 영과 혼과 몸에 관한 바울의 말은 사람이 세부분, 즉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강하게 지적한다. 영(spirit)은 우리의 가장 깊은 부분으로,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소유하는 내적인 기관인데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다(요 4:24, 롬 1:9). 혼(soul)은 우리의 자아 그 자체이며(마 16:25, 눅 9:25), 우리의 영과 몸의 중간에 있는 부분으로, 자아의식이 있어, 우리로 인격을 갖게 한다. 몸은 우리의 외적인 부분이며 세상에 대한 의식을 소유하는 밖의 기관으로서 이로써 우리는 물질 세계를 접촉할 수 있다.
2. 영에 관하여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영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 스가랴 12장 1절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주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을 경배하는 자들은 반드시 영 안에서 경배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기본 원칙이다.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 족속 중에, 하나님은 영이시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사람의 영을 사용함으로써 그분을 접촉하고 그분을 영접하도록하셨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원칙들이 있다. 예를들어, 우리가 만일 서로 다른 색깔들을 보기 원한다면 반드시 눈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가령 내가 소경이라 하자. 색깔을 볼 수 있겠는가? 그것들을 식별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럴 수 없다! 우리가 색깔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당한 기관을 사용해야 한다. 원칙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동일하다. 하나님은 실재하시지만, 어떤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가 우리 영을 훈련하지 않는다면, 확실히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체적인 몸으로는 하나님을 만질 수 없다. 우리의 지성으로, 우리의 생각으로도 그분을 깨달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을 접촉하는 데 사용하는 합당한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우리가 만일 그분을 접촉하고 그분을 영접함으로 그분을 경배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리 영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창조에서 하나님이 세 가지 중대한 것들, 동등하게 중요한 것들-하늘, 땅, 우리의 영-을 만드셨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므로 우리 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중대하고도 중요하다.
2. 혼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3절은 우리가 영과 혼과 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가리키며, 시편 51편에서 감추인 부분과 속 부분들을 계시하고 있다. 속 부분들이란 혼의 부분들로서, 히브리서 8장 10절과 예레미야 31장 33절을 비교할 때 증명된다. 거기에서는 생각이 속 부분들의 변형으로서 인용된다.
혼에 세 부분이 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3절은 우리가 영과 혼과 몸의 세부분으로 되어있음을 지적한다. ... 잠언 2장 10절은 혼이 지식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knowledge is pleasant unto thy soul, KJV). 잠언 19장 2절과 24장 14절도 주목해 보라.(19:2 the soul [be] without knowledge,24:14) So [shall] the knowledge of wisdom [be] unto thy soul,KJV) 지식은 생각의 기능이므로, 이것은 생각이 혼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잠언의 이 세 구절은 모두 혼 안에 지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시편 139편 14절은 혼이 안다고 말한다(and [that] my soul knoweth right well). 아는 것은 생각에 속한 것이며, 그것은 또 생각이 혼의 일부분임을 증명한다. 시편 13편 2절은 『내 혼이 숙고한다(How long shall I take counsel in my soul, KJV)』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예레미야애가 3장 20절은 기억이 혼에 속한 것임을 지적한다(My soul hath [them] still in remembrance, KJV). 혼은 사물을 기억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혼 안에 알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이 생각(mind)이라고 불려진다.
혼의 둘째 부분은 의지이다.
욥기 7장 15절은 혼이 선택한다고 말한다(So that my soul chooseth strangling, KJV).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은 의지에 의해 이루어 지는 의지의 결정이다. 이것은 의지가 혼의 일부분임을 증명한다. 욥기 6장 7절은 혼이 거절한다고 말한다(The things [that] my soul refused to touch, KJV) 선택하는 것과 거절하는 것은 모두 의지의 기능이다. 역대상 22장 19절은 『너의 혼을 진정하여 구하고(your soul to seek the LORD your God, KJV)』라고 한다. 생각을 정하여 사고 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또 혼을 진정하여 구한다.
물론 이것은 결정을 내리는 혼인데, 그것은 바로 의지가 혼의 일부분임을 인정한다. 또한 민수기 30장에서는 『혼을 제어한다(to bind his soul with a bond, KJV)』는 말이 열 번이나 언급된다. 우리가 이 장을 읽을 때 혼을 제어한다는 것은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루어진 서약을 다룬다. 혼을 제어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주님과 맹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지는 혼의 일부분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시편27편 12절, 41편 2절, 에스겔 16장 27절은 히브리어 혼을 의지로 번역하고 있다(네페쉬- will). 시편 기자는,『나를 내 대적의 뜻(의지)에 맡기지 마소서』라고 기도한다. 원래의 의미는 『나를 내 대적의 혼(네페쉬)에 맡기기 마소서』이다. 이것은 의지가 혼의 일부분임을 명백히 입증하는 것이다.
감정은 혼의 세번째 부분이다. 감정에는 여러 면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랑, 미움, 기쁨, 슬픔 등등이 모두 감정의 표현이다. 사랑에 대한 언급은 사무엘상 18장 1절(the soul of Jonathan was knit with the soul of David, and Jonathan loved him as his own soul, KJV)과 아가 1장 7절(O thou whom my soul loveth)과 시편 42편 1절에 발견된다. 이 구절들은 사랑이 혼 안에 있는 거이며 혼 안에는 감정과 같은 기관이나 기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미움에 관해서는 사무엘 하 5장 8절([that are] hated of David's soul, KJV), 시편 107편 18절(Their soul abhorreth all manner of meat), 에스겔 36장 5절을 주목해 보라. 이 구절들은 미움이 혼에 속한 것임을 지적한다. 미움의 감정의 표현이므로 이 구절 또한 감정이 혼의 일부분임을 증명한다.
에스겔 36장 5절은 미국 표준역(ASV)에서 더 잘 번역되었는데 거기에서는 '혼의 멸시로(with despiteful minds, KJV)'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것은 혼의 싫어함이나 미워함을 의미한다. 감정의 한 요소인 기쁨은 또한 이사야 61장 10절과 시편 86편 4절에서 혼의 일부분임이 증명된다. 사무엘상 30장 6절과 사사기 10장 16절에서는 슬픔을 언급한다. 슬픔은 혼이 또 다른 표현이다. 소원을 말하는 곳은 사무엘상 20장 4절, 신명기 14장 26절, 에스겔 24장 25절, 예레미야 44장 14절이다. 영(Young)의 성구사전이나 스트롱(Strong) 성구사전을 볼 때 감정의 한 요소인 소원이나 혼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 에스겔 24장 25절과 예레미야 44장 14절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구절들은 혼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세 부분을 증명하기 위한 근거가 된다. 성경 말씀 가운데서 혼에 속한 부분을 더 이상 발견해 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세 부분이 혼에 속한 모든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인도하는 부분이요, 그 다음은 의지와 감정이 수반된다. 이러한 구절들은 혼의 세 부분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나타낸다.
( 내용출처: 한국복음서원 『스가랴 라이프스타디』, 『결정성결』 결정 2183번 , 『하나님의 경륜』 ) 사람안에 영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경배하는 자가 영안에서 실제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원문 참조). 이 말씀은 하나님을 접촉하려면 반드시 영안에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에는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영이 알고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이 안다고 말합니다. 영은 마치 라디오의 수신기와 같습니다. 우리의 영을 통해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을 또는 그분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수신기가 고장난 라디오는 제기능을 발휘할 수 없듯이 영을 사용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 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과 혼의 기능의 차이를 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아래 글은 영과 혼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조 바랍니다.
누가복음 1장 46절부터 47절에서 마리아는 『내 혼이 주를 찬양하며(My soul doth magnify the Lord)』(현재 시제), 『내 영이 하나님 내 구주 안에서 기뻐하였음은(my spirit hath rejoiced in God my Saviour)』(완료 시제)라고 말했다. 첫째로 『나의 영이 하나님 안에서 기뻐했고』, 둘째로 『나의 혼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한다.』 영이 먼저 오고 그 다음이 혼이다. 영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 후에 혼이 주를 찬양한다. 이 두 가지는 다른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영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혼으로 주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주님과 교통해야 하며, 우리의 혼 안에서 주님을 표현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주님과 교통하고, 그 다음에 주님을 표현한다. 먼저 우리는 주님을 기뻐하고 그 다음에 주님을 찬양한다.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주님을 기뻐하고 그 후에 우리의 혼으로 주님을 찬양한다. 이 두 기관들은 두 가지 용도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주님을 접촉하려면 여러분의 영을 사용해야 한다. 여러분이 주님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의 혼을 사용해야 한다. 내 영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 후에 내 혼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한국복음서원 『사람의 영』 1장 우리 사람의 영(1)중에서 )) 1.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으신 사람의 영(슥 12:1)
이 우주 안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영이다(욥 32:8). 하늘은 땅을 위한 것이고, 땅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영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땅을 위해 하늘들을 창조하셨다. 하늘이 없이는 땅은 아무것도 자라게 할 수 없다. 땅은 사람을 위하며,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을 담는 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온 우주의 중심이요, 사람의 중심은 사람의 영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밀접하기 때문에 사람 안에 영이 없다면 텅 빈 껍질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이 땅에 사람이 없다면, 이 땅은 공허하고 하늘은 쓸모없다. 하늘은 땅을 위하고, 땅은 사람을 위하고,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영이 있다. 사람 안에 영이 있다는 사실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자!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영께서 역사하시는 곳이다. 스가랴는 청년이었지만,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 하나님을 접촉하는 비결을 알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우리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결정성경』 결정 1725번)
2. 영을 비워야 하나님의 갈망을 볼 수 있음(욥17:1-3)
욥은 하늘에 계신 분을 신뢰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큰 계시를 얻은 후에(욥 16:19), “나의 기운이 쇠하였다”(My spirit is broken)고 말한다(1절). 이것은 욥의 영이 계시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상하게 된 것을 말한다. 시편 51편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가 ‘상한 심령’(a broken spirit)이라는 것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님께서 멸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17절). 마태복음 5장은 영 안에서 가난하고 겸손한 것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첫 번째 복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영이 상하고 비워질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들과 그분의 영원한 갈망에 대해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갈망과 그분의 어떠하심에 대해 분명히 계시하시기 전까지는 여전히 우리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심지어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얻고 배운 모든 것도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더 계시하시는 것을 막는 두꺼운 수건이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더 주실 수 있도록 우리의 영을 비우고 상하게 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결정성경』 결정 1012번)
3.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과 한 영으로 연합되는 것이 우리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본다. 이 연합은 영이신 주님과 우리 영의 연합을 가리킨다. 우리 영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거듭났는데(요 3:6), 이 하나님의 영은 지금 우리 안에 계시며(고전 6:19) 우리 영과 하나이시다(롬 8:16). 주님과 한 영이 되는 것은 그분과의 유기적인 연합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러한 유기적인 연합은 우리 몸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서 주님과 한 영으로 연합될 때, 이 연합이 우리 몸에 영향을 주고, 우리 몸을 통제하며, 우리 몸을 악한 모든 것, 특히 음란에서 지킬 것임을 암시한다.
그럴 때 우리 영이 하나님의 처소일 뿐 아니라 우리 몸도 하나님의 처소가 된다. 우리 몸이 성령의 전(殿)이 된다는 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주님과 한 영으로 연합되는 것이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결과는 우리 영은 물론 우리 몸까지도 하나님의 전이 되도록 우리 몸을 분별하는 것, 즉 우리 몸을 성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전(全) 존재는 하나님의 전이 된다.(『결정성경』결정 2098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