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교회 박해 사건을 다윗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열방과 민족들이 연합해서 메시야를 대적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예언과 같이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연합해서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대적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과 예정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께 대적들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을 감찰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박해 속에서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시며, 이를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박해를 성경의 성취로 보았고, 이러한 박해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 기도 응답과 성령 충만으로 나타난 열매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31).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32)."
제자들이 기도를 마쳤을 때에 "그들이 모인 곳이 진동했습니다."
여기에서 '진동했다'고 번역된 말(에살류데)은 성경에서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 첫째로 이 말은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상태"(마 11:7)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2) 때로는 "지진을 통해 일어나는 진동 상태"(행 16:26)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이 말은 두 번째 의미, 즉 "지진을 통해 일어난 진동 상태"로 사용되었습니다. 지진과 진동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에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사 6:4). 그러나 여기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끝났을 때에 모인 곳이 진동한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성도들이 모두 성령에 충만해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성령충만은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임무를 부여할 때에 일시적으로 나타났습니다(행 13:9). 이러한 현상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때로 성령충만은 성도들이 계속적인 사모해야 할 덕목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엡 5:18).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성령 충만을 성도들이 사모해야 할 덕목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성령 충만'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일시적으로 임한 성령 충만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셨으며, 이로 인해서 그들은 박해 앞에서도 담대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의 결과로 믿는 무리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믿는 무리"라고 번역된 말은 '믿는 자들의 그 무리'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믿는 무리"는 같은 신앙을 가진 종교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신앙 공동체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그들을 "한 마음과 한 뜻"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는 말은 온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였으며, 그들은 각기 다른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또한 성령 충만의 결과로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 누가는 그들 중에서 자기 재물을 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통용했다"는 말('코이나)은 '친교', '교류', '분배'등의 다양한 뜻을 가진 말입니다. 본문에서 이 말은 각 사람들의 재산을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들은 자기 재산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 소유권을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공동체가 필요로 하면, 자기 재산을 기거이 드릴 수 있을 정도로 헌신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하나됨은 성령 충만으로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누가는 여기에서 성령 충만한 교회가 가진 교제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성도들과도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 유뮤상통하는 성도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33),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34),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35)."
사도들은 성령이 주신 큰 능력을 받고 담대히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여기에서 '증거했다'는 말(아페디둔)은 '돌려준다, 빚을 갚는다'는 말로서, '법적 채무를 이행했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사도들은 빚진 자가 빚을 갚는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맡은 사람들이었으며, 따라서 복음을 증거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그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빚을 갚는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정죄하고 죽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산헤드린 회원들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지 못하도록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히 주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무리들은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받고 재산을 함께 사용했으며, 이로 인해 교회 안에는 궁핍한 자들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들 중에 일부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밭과 집을 팔았으며, 그것을 사도들의 발앞에 가져왔습니다. 여기에서 "팔았다"고 번역된 말(폴룬테스)은 현재 능동태 분사형으로 되어 있으며, 이 말은 계속적인 진행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성도들이 자기 소유를 팔아서 드린 일이 궁핍한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계속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소유는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서 드릴 때까지 잠시 맡고 있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재산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했고,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필요로 할 때에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는 말은 그 재물이 교회에 속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 어떤 소유물을 발 앞에 두는 것은, 그 소유나 처분권을 일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성도들은 필요에 따라 자기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드렸으며, 사도들은 그 재산을 받아 관리하고, 필요를 따라 그것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 바나바의 헌신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36),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37)."
누가는 특별히 자기 재산을 교회에 드렸던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브로에서 태어난 레위인인 요셉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를 가리켜서 '바나바'(위로자)라고 불렀습니다. 사도들이 요셉을 바나바, 즉 위로자라고 부른 것은, 그가 말과 행동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하는 일을 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당시 구브로에는 소수의 유대인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행 11:29).
바나바라는 이름은 원래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문자적으로 바나바는 원래 '예언자' 또는 '선지자의 아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고전 14:3). 그러므로 다른 곳에서 바나바는 '선지자'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다(행 11:23; 13:1).
2) 또한 이 이름은 '위로 혹은 권면의 아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Robertson). 본문에서 누가는 바나바를 이러한 의미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권위한다'는 말(파라클레시스)은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행 9:31; 13:15).
여기에서 누가가 바나바를 소개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보입니다.
1) 첫째로 바나바는 자기 소유를 팔아서 교회에 내어 놓음으로 큰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 둘째로 바나바는 교회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행 11:24).
3) 셋째로 그는 기독교인이 된 첫 번째 레위인이었으며, 복음에 대한 유대인의 편견을 허문 사람이었습니다.
적용을 |
1. 제자들이 극심한 유대 당국의 박해 속에서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2. 성령 충만한 초대 교회 성도들은 물질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았는가? 그들의 자세와 우리들의 자세를 비교해서 말해보자. 3. 누가는 바나바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바나바의 특성과 우리의 특성이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자. |
연락처 |
발행인 : 최영찬 메일주소: bible@biblenra.org 홈페이지: http://biblenara.org http://biblenar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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