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까마귀

은바리라이프 2010. 7. 17. 19:35

예루살렘의 까마귀

 

비상(飛翔)하는 까마귀들도 보였다.

“저놈들도 원정 오는 놈들이 있나 봅니다.”

블라스투스는 또 다시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원정이라니?”

“축제가 임박하면 까마귀 숫자가 늘어났다가 끝나면 줄어들곤 합니다.”

축제를 전후해서 까마귀 숫자가 많아졌다가 줄어든다고 그가 말했지만, 한 번쯤 예루살렘을 다녀간 사람들이라면 무심중에 ‘까마귀가 많더라.’는 말이 나오게끔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로마에 있을 때 ‘예루살렘에는 황금과 거지와 까마귀가 많다면서요?’ 하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 왔던 터라, 일몰(日沒)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하늘을 비행하던 수백 마리의 까마귀들이 자취를 감추곤 했는데도 무덤덤하게 보아 넘겼던 것이다.

번제단에서는 로마 황제를 위한 제사를 아침과 저녁 두 차례에 걸쳐서 꼬박꼬박 지내고 있었다. 안토니요새의 병사들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제사를 빼먹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살한 가축의 내장과 오물을 물과 함께 기드론 골짜기로 흘려보냈다. 이것을 토박이 까마귀들이 먹어치웠던 것이다.

유월절과 같은 기간 중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가축을 연이어 도살하기 때문에 원정을 오는 까마귀가 없었더라면 오물과 가축의 내장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으로 블라스투스는 말하고 있었다.

“노숙자들도 감람산에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감람산이 까마귀 서식지라고 이야기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유월절의 경우, 순례자들은 유월절 예비일 4일전에 미리 와서 여관이나 민박에 들었다. 행사가 끝나면 곧바로 7일간의 무교절 행사가 이어지기 때문에 천막이라도 준비해 와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난한 순례자들은 노숙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람산에는 결코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까마귀들이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데다가 바닥에는 온통 배설물로 덮여 있으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답니다.”

그는 유독 감람산에만 민가(民家)가 없는 이유를 까마귀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오벨산에는 축제 때마다 찾아오는 그랍테 왕후와 아디아베네의 왕족 별장이 있었다. 시온산 중턱에는 고관(高官)들의 으리으리한 저택(邸宅)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서쪽의 힌놈 골짜기는 경사가 심해서 집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은 디로베온 골짜기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설 파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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