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랑 속에 함께 있고 싶어 한다-김덕일](http://www.monul.com/_images/_webzine/20060506/Title/Title_ch_001.gif)
긴급출동이 필요한 가정폭력의 현장을 찾아가는 방송 프로그램 통해, 한 성직자 가족을 의뢰받아 찾았다. 무려 15년 동안, 부부가 사사로운 말다툼에서 싸움에서 흥분하여 서로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감정이 섞인 말로 학대를 하고, 남편은 신체 폭력으로 자해를 하기도 하였다. 둘 다 극심한 우울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자녀들은 똑똑한데 비해 불안하고 집중을 잘하지 못해 성적이 낮았고, 또래 친구와 사이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주일이 되면 아버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성도들을 섬기고, 아이들은 중고등부에서 찬양인도를 한다. 한편 새벽에, 밤중에 가정 안에서 폭력이 사라지길 기도하며 울부짖는다. 3개월간 지속한 치료 과정 통해, 서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대화가 가능해지고 흥분하지 않으며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를 나누는 법, 무례히 말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자신의 요청을 거절할 권리, 화가 나면 대화를 중단하고 산책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다시 표현하는 훈련, 함께 즐겁게 노는 시간 등을 반복해서 나누고 가졌다. 다행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 마음으로 집중하면서, 사사로운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의 표현이 깃들 수 있었다.
관계 갈등이 더 거세진다
예전보다 더욱 사랑과 결혼과 가족의 고민이 심각하다. 이젠 대중매체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해결을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새롭게 결혼과 가족 보호와 관련한 법과 제도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혼란 속에서 살게 된 것일까?
사회가 선진화되고 산업화로 나아가면서, 빠른 변화 속에 찾아오는 후유증을 겪고 있다. 대가족에선 관계 속 상하가 정해져, 책임과 권력이 달라 갈등이 깊어지고, 욕구가 억압받았다. 하지만 서로를 돌보는 여러 층에서 정서적인 필요를 충족할 수 있었다.
지금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 많지 않다. 자기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고,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해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고 정서적인 필요가 충족되지 않아서 외도를 하거나, 약물이나 도박 등 중독에 빠진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도 친밀감을 잘 나누지 못한다. 가족관계에서 충분히 연습되지 않아 갈등 대처 능력이 미숙한데, 사회에서 경험하는 관계 갈등의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어진다. 결국 사람들은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분노의 폭발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방화와 성폭력과 연쇄 살인 등으로 퍼져간다.
민감한 기업의 대처 있지만
미국 가족의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메리칸 뷰티> 라면, 우리 가족의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는 <바람난 가족>을 꼽을 수 있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가족 안에서는 그 행복을 찾지 못하는 모순된 한국인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시아버지는 중독을 선택하여 죽음을 맞이하고, 시어머니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사랑하는 남자와 떠나버린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지친 아내는 미성년자와 성적 만족감을 얻는다. 이런 가족과는 모순되게 입양된 아이는 너무나도 밝게 자라나지만, 아빠의 범죄로 인해 살해를 당한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는 상대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아내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가족의 해체를 선택한다. 영화에서 그들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나누는 대화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없고, 열정을 찾아볼 수 없으며, 서로에 대한 헌신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감하게도, 많은 기업들에서 이런 어려움을 가진 구성원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도입하고 있다. 임원들은 관계 중심의 리더십을 연구하고, 기업 내에 코칭이나 멘토 시스템을 갖추고, 언제든지 심리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담센터를 운용한다. 우수한 사원들에게 부부관계 및 가족관계 증진을 위한 부부캠프와 가족 캠프를 제공하는 기업도 있다. 이전에 대가족이 제공해주었던 인간관계를 회사가 제공해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기업이 가진 생존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가족을 돕는 교회의 몫 다할 때
하나님의 사랑엔 세 가지 모습이 있는데, 필레오와 에로스와 아가페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따뜻한 마음과 열정과 헌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뜻한 마음은 존중과 배려와 신뢰와 칭찬과 격려를 통해, 열정은 즐거움과 보람과 비전과 스킨십을 통해, 헌신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이나 물질을 희생하는 것을 통해 전달된다. 따라서 사람이 이 세 가지 사랑 속에 있을 때에라야, 건강해진다.
기실 가족을 돕는 역할은 교회의 몫이다. 교회는 성도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신뢰하면서 칭찬과 격려를 하는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다. 또한 예배와 절기행사를 통해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게 하고 은사의 발견과 개발을 돕고 비전을 품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서로의 어려움을 돌보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가 기업과 같은 마인드를 갖게 되거나 군대 조직과 같이 상하 수직구조를 갖게 되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은 그곳에서 인정받기 위해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을 하나의 소모품처럼 느끼게 된다. 눈에 보이는 행사와 결과에 집중하고, 사역을 위하여 성도의 희생이 강요되면 결국 성도들은 소외감과 열등감으로 교회에 적개심을 품게 되면서 마음이 떠난다. 그러면 소수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더욱 사역이 집중되는 악순환의 고리 형성되는데, 성도들은 교회를 생각하면 부담감을 느끼고 사역을 생각하면 열정이나 헌신보다는 회피하고 싶어진다. 교회가 가족의 기능을 상실할 때,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교회가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할 때, 사랑의 본을 잃게 되고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지만 말과 행동은 학대를 주고받는 기형적인 모습을 갖게 된다.
가정을 위한 시간을 배려하는 교회
교회가 자기 몫을 다할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 이런 교회 역할모델 하나로 미국의 뉴 호프 교회(New Hope Christian Fellowship)를 들 수 있다. 소수의 성도들이 많은 희생을 하는 일반 교회와는 달리 이 교회는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에 따라 섬길 수 있도록 독려한다.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주중 행사는 주중 예배 한번, 소그룹 한번, 그리고 섬김이 있는 주간에 연습이나 준비모임 참석이 전부이다.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과 생업을 위한 시간도 배려한 것이다. 만약 자원자가 없어서 사역이 잘 운영되지 않으면, 없는 채로 비워둔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이 소모되거나 소진되지 않도록 각별한 신경을 쓰며, 소그룹을 통해 사랑을 나누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돕는다.
교회가 이런 사랑을 사회에 전달한다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다. TV에서 종종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지방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아버지 학교’를 유치하려 하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필자는 작년에 새롭게 사역의 목표를 교회가 자기 몫을 다하여 내 자신이 더 이상 이혼의 위기와 가족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잡았다. 이를 위해 성직자들을 위한 가족 캠프를 개최하고, 청년들을 위한 데이트 문화 강연 등으로 돕는다. 그동안 일반 심리학을 공부하고 이혼의 위기나 가족의 갈등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치료해오면서,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할 때에 마음이 건강해지고 온전한 치유를 경험한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기 때문이다.
김덕일|<결혼과 가족관계 연구소> 소장으로, 가정 사역의 비전을 갖고 미국 미네소타에서 결혼과 가족치료를 전공했고, 현재 SBS TV <SOS 24> 솔루션 위원과 KBS 제2라디오 <남녀본색> 진행자 등으로 공익 활동을 하고 있다.
[문화매거진 오늘 2006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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