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 중독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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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에 길들여진 사람들
약 40년 전 문화인류학자들은 인간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안면 표정을 찾기 위해 단맛을 이용했다. 흑인이나 황인종 그리고 백인 아이들 모두 단 것을 맛보고는 좋아하는 표정을 똑같이 지었다. 한편 거의 모든 동물들이 단맛을 거의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이 후속 연구를 통해 밝혀져 이미 상식이 되었다. 아마 여러분들도 곰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벌통을 습격하는 장면이나, 애완견이 단 것들에 강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단맛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설탕을 대량생산하기 전까지 단 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사회 내에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자연 상태에서 꿀처럼 단맛이 강한 먹을거리는 그다지 많지 않았고, 이를 채집하고 수집하는 일 역시 그다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설탕이 서구에서 19세기에 대량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이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였고, 서구인은 본격적으로 단맛에 푹 빠져들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조상들도 약과와 약식같이 단 음식을 약처럼 여겼다. 단 것을 적당히 먹으면 단 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귀한 약이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이와 거의 비슷한데, 1950년대에 1인당 연간 설탕 소비량은 100그램이 채 못 되었지만, 후기산업사회로 들어선 2000년에는 21.4kg에 이른다. 50년 동안 214배나 증가했고, 우리는 쌀자루 하나 이상의 설탕을 먹고 있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의 오리지널 글레이즈드는 “한 입 베어 물면 목구멍이 탄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강력한’ 설탕 시럽을 얇게 바른 이 도넛은 예전에 우리가 먹던 설탕 도넛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단맛 세계로 유혹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도를 훨씬 넘어 버린 단맛을 사람들이 점차 정상으로 느끼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물건 팔기에 급급한 상인들은 이보다 더 강한 단맛을 가진 음식을 시장에 내놓을 것이며, 소비자들은 다시 이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은 너무나 뻔하다. 설탕 시럽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공개하기를 거부하는 스타벅스의 녹차라떼가 날개 돋힌 듯이 팔리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걱정이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예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맛을 제외한 다른 맛들은 농도가 일정한 값을 넘으면 불쾌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유독 단맛만은 농도에 관계없이 항상 쾌적하게 느낀다. 설탕이 대량생산되면서 값이 싸졌고, 단맛은 농도가 진해져도 항상 쾌적하게 느껴지는 특성 때문에 사람들은 단맛 중독에 빠진다.
왜 설탕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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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기독교 전통에서 육체의 쾌락을 위해 음식에 탐닉하는 것은 교만, 인색, 음욕, 분노, 질투, 나태와 더불어서 가장 큰 죄악 중의 하나다. 개화기에 일부 서구 지식인들이 한국에 와서 다양하게 발전된 음식문화에 놀라고, 음식에 탐닉하는 한국인들을 보고는 더욱 놀랐다. 현재 한국인도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음식에 대해서 유달리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텔레비전에는 온갖 맛 기행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있고, 사람들은 여기서 소개된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해 많은 노력과 돈을 기꺼이 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이런 맛난 음식들은 이미 자연의 섭리를 벗어난 인위적인 조미료들로 범벅되어 있다. 이런 기형적인 현상은 음식에만 그치지 않고, 기호식품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종류의 과자들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청량음료들이 설탕으로 범벅이 되어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에 길들여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점차 더욱 더 강한 단맛을 찾고 있다.
단맛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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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방식은 어느 하나에 집착하거나 치우치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이 속에 존재하는 다양함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와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닐까? 단맛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또 다른 노력은 야채 요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서구에서는 야채 요리를 건강식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야채가 많이 들어가는 동양 음식이 서구인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래서 요즘 서구인들의 가정을 방문해 보면 동양 요리 책자 한두 권을 발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또한 야채샐러드에 단맛이 강한 드레싱 대신에 올리브유와 식초를 섞어 만든 심심한 소스를 곁들여서 먹고 있다. 즉 일부 서구인들은 점차 자연의 섭리에 따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단맛의 유혹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오리지널 글레이즈드가 전세계 360개 매장에서 22초 동안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높이만큼이나 팔리고 있으며, 서울의 강남 매장에서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먹고 있다. 이것은 분명 음식을 과도하게 탐닉하는 죄악이며,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행동이다. 비록 우리가 선천적으로 단맛을 좋아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단맛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언젠가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다시 되돌아오게 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런 설탕이 마침내 마약과 같은 범주에 속하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신경정신과 의사인 회벨 박사는 동물 실험을 통해 설탕이 중독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쥐들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기적으로 증가하는 설탕 섭취에 대해 점차 적응하는 양상을 보였다. 설탕 공급량이 처음의 두 배에 이르자 이의 공급을 중단했는데, 설탕을 못 먹게 된 쥐들은 이를 떠는 것과 같은 금단현상을 보였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아직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단맛, 그 중에서도 설탕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프랑스 속담에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이야기하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 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소비는 소비 그 자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성과 품격 형성에도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책을 통한 인격 형성도 중요하지만, 소비 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행위가 낳게 될 결과들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성찰적 소비는 자기 자신의 인격을 닦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살기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자기가 소비의 능동적인 주체가 될 때 우리는 단맛 중독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조관연|한신대학교 디지털문화콘텐츠전공 초빙교수로 있으며 <음식으로 본 동, 서양문화> <영화 속의 동서양 문화> <효문화와 콘텐츠> 저서를 지었다.
[문화매거진 오늘 200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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