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과 감정의 그 아름다운 화음 - 윤원근](http://www.monul.com/_images/_webzine/20060506/Title/Title_ch_002.gif)
유선 TV에서 영화 <이퀼리버리움(equilibrium)> 을 본 적이 있다. 이퀼리버리움은 평형 상태, 균형, 마음의 평정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다양한 액션이 가미된 재미있는 영화라는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를 넘어 인간관계에서 감정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3차 세계 대전 후 생존자들의 지도부는 감정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지도부는 4차 대전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의 감정을 삭제하려는 시도를 한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감정을 억제하는 약물을 강제로 복용시키고, 특수요원들을 동원해 감정을 유발하는 모든 자료들(책, 그림, 음악 등)을 찾아내 불태운다. 또 약물 복용을 거부하고 감정생활을 즐기려는 반역자들을 제거하도록 한다. 주인공은 이 이퀼리버리움 사회에 충성하는 최고 능력의 특수 요원이다. 하지만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몰래 감정생활을 한 동료를 처치한 후, 자신도 역시 약물 투약을 중단하고 통제되었던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감정의 매력과 소중함을 알게 된 그는 반역자들과 함께 이퀼리버리움 시스템을 파괴하는데 성공한다.
여러 문화권에서 인간의 역사를 주도해 온 엘리트들도 이 영화에서처럼 감정을 삭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진리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혐오했다. 그들은 감정을 진리 추구의 장애물 또는 이퀼리버리움을 방해하는 요소로 규정하였다. 그들은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의 몸을 감정의 원천으로 보고, 몸을 정신이나 영혼의 감옥으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몸의 표현을 통제하거나 몸을 벗어던지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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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통해 동감하기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했던 조선 시대의 우리 선조들도 감정 표현을 천박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우리 할매 얼굴 웃으나 우나 매한가지’라는 속담이 있다. 몸을 통한 감정 표현을 죄악시 하였던 터라 우는 표정의 얼굴 근육과 웃는 표정의 얼굴 근육이 분화가 안 된 것을 말하는 속담이다. 아내가 죽었다고 슬퍼한 관리가 관직에서 쫓겨났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는 사람의 몸과 그것의 표현인 감정을 긍정한다. 하나님은 살과 피로 된 몸을 가진 사람을 창조한 후 ‘심히 좋구나!’라고 흡족한 감정을 표현했다. 성경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분으로 묘사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살과 피로 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와서 살과 피로 된 우리의 몸과 어울리셨다. 하나님은 인간과 서로 몸을 부대끼며 사람과 같은 눈높이에서 동일한 상황을 경험하셨다. 게다가 기독교는 몸이 부활한다는 소중한 믿음을 갖고 있다. 성경은 몸을 경멸하는 형이상학적 종교들이나 철학들과는 달리 몸의 창조로 시작해서 몸의 부활로 끝을 맺는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몸을 통해 서로의 다양한 몸짓과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도록 하셨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이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같이 기뻐하거나 슬퍼한 경험을 갖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고통스러운 반응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기분이나 처해 있는 상황을 다양한 형태의 제스처로 표현한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특정한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거나 재생산한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즉석에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동일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동감 현상은 특별한 부류의 사람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사람의 몸은 서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타인이 느끼는 것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 관찰자가 느끼는 것은 여러 점에서 당사자가 느끼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둘의 감정은 ‘동음’은 아니지만 ‘화음’일 수 있으며, 교감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다.
하나님은 사람의 몸속에 서로의 몸짓과 감정에 동감할 수 있는 신경생물학적 토대를 만들어 놓으셨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병원 교수인 요하임 바우어(Joachim Bauer)는 <공감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동감을 가능하게 하는 세포가 뇌 속에 있다고 소개한다. 이름하여 거울 신경 세포. 하나님은 이 거울 신경 세포를 만들어 놓으시고 인간관계가 자연스런 동감의 화음 상태로 이루어지기를 기뻐하신 것이다.
그는 유아나 어린이에게 감정을 무시하고 이성적인 기준만을 가르쳐주려는 시도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그런 아이는 다른 사람과 감정적인 접촉을 하고 그들과 직감적으로 유대감을 느끼는 행위를 하지 못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호엔슈타펜 왕조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식들을 유모에게 키우게 하고 아이들과 얘기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그 결과 아이들이 죽고 말았다고 한다.
동감 통해 자연적인 본성 찾는 사회
서론이 너무 길었다. 원고를 청탁받을 때 2002년 월드컵과 최근의 월드베이스볼에서 나타난 열광적인 응원의 원인과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얼마 전 우연히 기회가 있어서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그 원인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해 보도록 해 보았다. 학생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초.중.고 시절의 국가주의적 교육의 영향, 한의 정서와 열등감에 대한 보상 심리, 집단주의 놀이 문화, 경제 발전의 자부심에 상처를 낸 IMF 상황에서의 탈출구, 쉽게 흥분하는 민족 성향, 대리 만족, 황우석 반대자에서 보는 바와 같은 유의 집착, 역사의 현장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은 동조 현상, 함께 있음을 통한 존재감, 익명적인 공동체에서의 자유감, 감성을 자극하는 여론 조장, 예상하지 못한 성적을 거두는 것에서 오는 비현실적인 것의 성취감, 기적을 바라는 마음, 영웅 숭배와 메시아니즘 등등.
물론 이러한 원인들이 모두 열광적인 응원에 표출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한국 사회의 자연화(naturalization)를 꼽고 싶다. 자연화는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어울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자연화는 인위적 관념의 과도한 개입에 의한 억압 상태에서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표현을 허용하는 자유 상태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발의 자연스러운 발육을 인위적으로 통제한 중국의 흉측한 전족 문화와 통제 없이 자유롭게 자라난 아름다운 발을 비교해 보라!
자연스럽게 자란 발처럼 자연적 자유 상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동감 작용이다. 앞의 책에서 바우어는 스트레스와 공포가 생기면 거울 신경 시스템과 관련된 모든 활동이 위축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당연히 인위적인 억압 상태는 자연스러운 동감작용을 방해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만들기를 원하신 인간 사회의 모습이 ‘자연적 자유 상태’라고 믿는다. 예수님이 병든 인간의 몸을 정상으로 회복시키셨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자연스러운 동감을 허용하는 사회 공간의 형성이야말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응원 열기에서 확인된 역동적인 코리아의 바탕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테마 중심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한류까지 탄생시키는 기본 힘이다. 아시아 각국에 퍼지는 한류는 자신들의 억압적인 사회 공간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불러일으키는 동감이 아닐까?
그러나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에는 동감이 작용하는 것만큼 반감도 작용한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독일 월드컵 응원을 준비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그가 말하기를 상대방 골키퍼의 리듬을 빼앗는 그런 노래들을 응원가로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이 이기는 것을 너무 바란 나머지 선수들의 플레이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려는 자기중심적인 과잉 감정은 그것이 응원으로 표현되든, 테마 공동체로 표현되든, 한류로 표현되든 상대편의 반감을 불러온다.
복음은 인간 사회를 자연적 자유 상태로 회복시키는 진정한 힘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한국 사회, 나아가서 세계 사회에 자연스런 동감을 통해 몸짓과 감정의 아름다운 화음의 문화를 보급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윤원근|사회학 박사로 장신대, 숭실대에서 강의중이다. 최근 출간된 <열린 사회를 위한 성경의 사회학>에서 동감의 원리에 근거한 자연적 자유 체계로서의 현대 기독교 사회 모델 제시하였다.
[문화매거진 오늘 2006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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