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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본 통일(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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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삼 목사(에임스한인연합감리교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통일 언행 “누가 저 쓰러진 자의 이웃이 되었느냐?” -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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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웃입니까?” 라는 율법사의 물음과 “누가 저 쓰러진 자의 이웃이 되었는가?” 라는 예수님의 반문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은 “끼리 사랑” 하지 말고, 즉 “나(율법사)”를 중심해서 이웃이야 아니냐를 기준 삼아서는 안되며,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즉 “그(쓰러진 자)”를 기준하여 내가 이웃이 될 것이냐 아니냐(눅10:36)의 실천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방관하고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보면, “나(율법사)”의 편견과 특권 그리고 신분을 포기해야 “그(쓰러진 자)”에게 이웃사랑의 손길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높은 지위와 종교적 특권을 가진 엘리트적 사고로는 민중의 쓰러짐을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린다는 것이다.
셋째는, 사마리아인을 이웃사랑의 모델로 세운 것은 두 민족의 만남을 위해서 분단의 같은 경험을 가진 당사자간의 하나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북사마리아인과 남유다인과의 이웃사랑(=원수사랑=통일)을 언급한 것이다. 결국 원수된 관계에서 이웃된 관계를 말함이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의 핵심이다.
그래서 한창 흑백의 논리가 팽배했을 때, 그래서 빌××××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부흥목사님이(지금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 “흑인은 영이 없으니까, 교회에 들여놓지 말라”고 한 때, 어느 흑인 목사님은 이 본문을 같이 읽은 흑인 청중들에게, “어느 백인이 강도 만나 쓰러졌는데 백인 지도자들이 그를 보고 못 본 체하고 지나갔지만 흑인 장사꾼이 그를 불쌍히 보고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로 설교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극도의 냉전시대에, 어느 목사님은 이 본문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느 소련 사람이 어려움에 빠졌는데 미국의 어느 시민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는 제2, 제3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본다. 이 비유는 요즈음 남북한 문제를 바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으로 남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서로 적대시하고 원수시하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조차도 전쟁의 끔찍한 아픔 때문에 원수사랑을 말하지 않는 우리나라, 그리하여 강단에서 사랑하라는 얘기, 통일을 위해 고난받는(강도 만나 쓰러져 있는) 북한 사람을 도와주자는 얘기보다,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라고 목청 높여 주장하였던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제2, 제3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눅 10:25-27) 했다. 이 때 그 이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원수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하는 일, 즉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통일”이야말로 진정한 영생으로 가는 길이다. “믿음으로 영생을”(요한 5:24) 이라고 전에 말했던 요한은, 후에 “형제를 사랑해야 영생이 그 속에 거한다”고 말한다 (요한일서 3:15) 이 사랑의 사도 요한에 의하면, 통일은 우리의 최고의 이웃사랑이다! 통일은 우리의 최대의 원수사랑이다! “이 사랑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생하리라!”(눅 10:27)한 예수님의 말씀처럼 통일을 위해 일하는 기독교인은 영생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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