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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닫힌 사회’에 미래는 없다

은바리라이프 2010. 4. 29. 21:51

[아침논단]‘닫힌 사회’에 미래는 없다

한 세기전 개항을 놓고 수구·개화파 대립했듯이
美와 FTA체결 싸고 찬반 양론이 맞선 오늘…


▲ 허동현 교수
“서울 밝은 달밤에 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쌍화점(만두가게)에 쌍화 사러 갔더니 회회아비(아라비아사람)가 내 손목을 쥐더이다.” 아내의 밀통(密通)에 상처 입은 처용의 아픈 마음을 노래한 신라의 ‘처용가’나 유학자들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고 깎아 내린 고려가요 ‘쌍화점’의 노랫말은 대외개방과 자유연애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진다. 국제결혼 비율이 10%에 이르며 외국계 패스트푸드점이 성업 중인 지금 우리들의 눈에 서역(西域) 출신 처용처럼 다른 국적의 배우자를 가진 사람이나 외국자본이 운영하는 쌍화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고대 동서세계를 이어주던 비단길의 종착역이 경주였음을 알려주는 고분 출토 페르시아 유리잔, 당나라 때 중국 연안 지방에 세워졌던 신라방(新羅坊)과 최초의 ‘종합무역상사’를 세운 해상 왕 장보고, 그리고 송나라는 물론 아라비아 상인들도 드나들던 고려 때 국제무역항 벽란도(碧瀾渡)는 우리 조상들의 진취성을 잘 보여준다. 이렇듯 신라나 고려가 안팎으로 열린 사회였다면, 1876년 개항 전 조선은 빗장을 굳게 잠근 닫힌 사회였다.

“조수가 들고 나매, 오고 가는 배는 머리와 꼬리가 잇대었구나. …이 목도(木道·배)를 빌리면 어느 곳이고 가지 못할 곳이 있으랴.”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李奎報)가 그린 벽란도의 번성함은 조선의 개국과 함께 옛 이야기가 되었으며, 세계를 향해 열려 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닫혀버렸다. “조선조 400년 동안 딴 나라 배는 한 척도 오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기술을 배우고 풍속을 알아내어 백성들의 견문을 넓혀주면 천하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될 것이고,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물자의 교역만이 아니라 의식의 개방까지 촉구한 조선후기 선각자 박제가(朴齊家)의 탁견도 서슬 푸른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외침 속에 묻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주자학 이외의 사상과 종교를 배척하고, 문명사회는 조선밖에 없다고 자만하던 소중화(小中華)의 지식인들은 분명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다. 유학의 본고장 중국에서 주자학이 양명학으로, 다시 고증학으로 진화하고 있을 때 줄곧 주자학만을 숭봉하며 우월감을 느꼈다면, 이는 흐르는 시간을 뒤로 돌리는 시대착오에 다름 아니다. 1871년 신미양요를 치른 후 흥선대원군이 전국 요소에 세운 척화비(斥和碑)의 명문이 우리의 가슴을 짓누른다.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和親)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1860년대 중국이 서양의 기술과 무기를 배우려고 양무(洋務)운동을 전개하고, 1868년 일본이 문물과 제도 전반을 서구화한 메이지유신을 일으켰을 때도 우리의 문호는 열릴 줄 몰랐다. 근대의 역사 시간을 허송한 우리는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인은 미국과의 유대를 바탕으로 ‘은자(隱者)의 나라’에서 해양 지향의 열린 사회로 급속히 변모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내었으며, 지금 우리는 ‘남녀동권(男女同權) 사회’와 ‘타자(他者)와 더불어 사는 세상’도 꿈꾼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의 진로를 비추는 등대다. 세계사적 시각에서 볼 때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큰 물결이다. 무역을 통해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이자 11위의 경제대국을 이룬 오늘의 우리가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이 아니 행복하냐”던 쇄국시대 조선 선비들의 안빈낙도(安貧樂道) 하는 삶을 다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한 세기 전 개항을 놓고 개화와 수구의 양론이 대립했듯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의 교훈 하나는 고인 물이 썩듯 사람과 정보와 물자의 출입이 막힌 닫힌 사회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한국사
입력 : 2006.05.21 23:31 18' / 수정 : 2006.05.22 07:48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