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바울 주변인물

복음의 조력자 마가

은바리라이프 2010. 2. 8. 15:34

복음의 조력자 마가

2010/02/08 13:01

 
 
 

 마가는 마르코스로 읽어야 바르게 읽혀지는 이름이다. 그 뜻은 '비추이다'라는 뜻이다. 본명은 요한으로 그의 어머니는 바나바의 여동생으로 구브로 출신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동이를 가지고 제자들을 안내했던 사람(막 14:13)이 바로 마가였으며, 예수님께서 체포되시던 새벽에 벗은 몸으로 도망했던 젊은이(막 14:51-52)가 마가였다고 전해진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로 그의 어머니 이름도 마리아였다(행 12:12). 그는 어려서부터 헬라어를 배웠으며 비교적 여유있는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율법에도 매우 열심이 있었던 것 같이 보인다. 특별히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매우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여인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다락방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셨던 곳으로 유명하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계속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었던 곳이 바로 그녀의 집 이층 다락이었다. 오순절이 되어 성령께서 강림하셨던 곳도 바로 그녀의 다락방이었다.

 주님께서 유월절 식사를 위하여 준비하려 하실 때 이를 주선한 사람이 아마도 바나바였을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전에는 예루살렘에서 유숙하실 곳이 없으셨던지 대개 베다니까지 나가서 나사로의 집에서 신세를 지시곤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12제자들 외에 70인을 길러내셨는데 그 중에 바나바가 있었고 바나바를 통하여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가 자기의 다락방을 개방하여 예수님의 일행을 영접하였던 것 같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나바의 성격은 온유하고 착하고 후덕한 것을 보면 그의 누나였던지 아니면 여동생이었던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도 성품이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 중에서 본토에서 태어난 사람들보다는 열방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 중에 오히려 견문이 넓고 매우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유대인들이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면서 고도의 윤리와 넓어진 안목을 갖추었을 경우 복음 사역의 좋은 일꾼들이 된 경우가 많았다. 바울과 바나바, 아볼로, 디모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루디아 등의 걸출한 인물들이 다 유대인으로서 해외에서 견문을 넓힌 사람들이었다.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해보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도 매우 유익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본토에서 폐쇄된 율법주의자가 되었을 때는 복음에 거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러나 위에서 본 대로 유대인으로서 넓은 세상을 다녀본 사람들 중에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유익하게 쓰임 받은 일군들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오라버니 바나바를 통하여 예수님을 알게 된 마리아는 요한 마가의 장래를 바나바에게 맡긴 것 같다. 그래서 마가는 외삼촌 바나바를 수행하여 안디옥에서 일하고 있다가 첫 번째 전도여행에 바울과 바나바의 수행원으로 동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러 혹심한 고생과 견해차가 심하여 마가는 도중에서 이탈하여 구브로로 돌아오게 되었고 바울은 이 일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던 것 같다.

 "마가와 바울의 견해차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마가는 매우 열심있는 율법주의자요 또 할례를 주장했던 것 같다. 반면에 바울은 이미 할례나 무할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바울과 마가의 관계를 매우 어렵게 했던 것 같다. 이때는 마가가 끝내 바울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섰던 것이다.

 첫 번째 전도여행은 마가의 염려와는 달리 매우 성공적으로 열매가 있었다. 이어서 두 번째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 마가가 다시 동행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것은 마가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외삼촌 바나바로부터 경과와 열매를 듣기도 하였을 것이고 마가 자신이 그간에 복음의 진수를 다시 재고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마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하여 심지어 바나바와도 결렬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그 후로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구브로로 향하여 출발하였고 바울은 실루아노를 데리고 길리기아로 가게 되었다. 그 길로 바나바는 어디에선가 순교하게 된 듯하다. 마가는 그후 베드로의 수행원으로 활동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마가는 할례당이었고 할례당은 바울이 용납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는 가운데 마가는 바울을 이해하게 되었고 할례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바울은 마가같은 사람은 주의 복음을 위하여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가가 매우 훌륭한 사역자가 되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바울이 로마에서 연금상태에 있을 때 마가가 바울을 면회하기 위하여 방문을 했던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때는 결렬되었던 때로부터 약 십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였다. 그리고 거기서 많은 대화를 통하여 바울과 마가는 서로 깊은 이해와 교제를 나누게 되었던 것 같다. 마가가 다녀간 후 바울은 곧 이어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쓰게 되었다.

 골로새에 보낸 바울의 서신에서 바울이 마가에 대하여 한 말을 읽을 수 있다. 바울은 마가가 이제 골로새에 방문하거든 주의 사자로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라는 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골 4:10-11).

 

 마가와 유스도를 보면서 바울은 차츰 할례당 가운데도 하나님의 일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바울이 이제는 마가를 다시 "나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몬 24). 마가는 바울의 생각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해냈다. 율법에도 밝은 사람이었고 복음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바나바를 수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으며 베드로를 수행하면서 더 깊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바울을 이해하게 됨으로 가장 넓은 이해력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생애에 대하여 비교적 간결한 내용으로 복음서를 기록하여 보내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가복음이 바로 그의 책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마가는 애굽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도 마가의 전통을 이어오는 교회들이 건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도 가보면 산 마르코 교회와 산 마르코 광장이 유명하다. 마가의 활동영역은 유대와 구브로 안디옥, 소아시아, 로마, 베네치아, 애굽의 알렉산드리아 등 온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던 것 같다.

 전승에 의하면 AD 64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주경신학자들에 의하면 복음서들 중에서 마가복음은 매우 일찍 기록되어 다른 복음서 기자들이 마가복음을 참고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은 베드로에게 들은 것을 마가가 잘 정리했다는 사실 때문에 권위있게 여겨서 참고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1차 전도여행에서 도중 하차한 까닭에 바울과 마가는 한동안 불편한 관계였다. 이러한 관계는 10여년이 지나서 바울이 로마에 연금되었을 때 마가가 감옥으로 바울을 찾아옴으로써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이해를 넓히게 되었다. 그리고 바울이 두 번째 로마의 마메딘감옥에 투여되어 순교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기록한 디모데후서에는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로마로 오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고 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딤후 4:9-13).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동역했는데 바울은 정작 마메딘감옥에 투옥되자 풀려날 희망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한 사람 두 사람 바울의 곁에서 떠나게 되었고 바울을 위하여 변호하려는 증인도 없었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중에 사무치게 보고 싶은 몇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특히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디모데와 갈수록 더 신실해지는 마가를 보고 싶어 하였던 것이다.

 요하네스 마르코스, 그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유익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던 사람이다. 그에 대한 행적을 상세하게 기록한 문서가 없어서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활약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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