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깊은 랍비 가말리엘 성경
2010/02/0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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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말리엘'은 '하나님의 상급'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통상 랍반 가말리엘 1세(Rabban Gamaliel Ⅰ세)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는 대랍비 힐렐(Hillel)의 손자며 시몬의 아들이고, 바리새파의 유명한 율법학자요 산헤드린 공회원, 헤롯의 종교 문제 조언자였다고 한다.
그는 스데반과 사도 바울의 스승(행 22:3)으로서 매우 사려 깊은 학사였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의 역사에 3대 랍비(에스라, 힐렐, 가말리엘) 중의 한 사람이다.
사도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유대교를 지도한 대학자로 대략 AD 25-50년경에 활약한 것 같다. 율법 해석에 엄격한 샴마이(Shammai) 학파와는 달리 율법 해석에 온건한 입장을 취한 힐렐(Hillel) 학파의 대표적 인물로서 안식일, 이혼 등에 대해 자유롭고 온건한 견해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유력한 유대교 가문 출신으로 헬라 문학을 전공하였고, 바리새파의 대지도자로 성장하였다. 그는 대율법학자요 공회원으로서 사도들을 심문하는 공회 석상에서 조리 있는 말로 청중들을 설득하였다(행 5:33-40).
후일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했다고 전해지나 확실치 않다. AD 50년경에 별세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바울이 그의 스승인 가말리엘에게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어떻게든지 전도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다.
자기 동족을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율법에 빚진 자의 심령으로 살았던 바울이 그의 스승에게도 복음을 전했을 것으로 사료되나 확인할 수는 없다.
가말리엘은 안식일, 결혼, 이혼 등에 대해 자유롭고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힐렐 학파의 전형적 인물로서 사도들의 복음전파에 대해서도 역시 너그러운 입장을 취했다. 전설에는 스데반을 끔찍히도 사랑하여 바울과 다른 바리새인들을 온건하게 하려고 애를 쓴 것으로 전해진다.
바리새인이었던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였다. 그 문하에서 스데반이 나왔고, 특히 초대교회의 복음 전도자 사도 바울의 스승으로서 바울에게 직접, 간접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중후한 학자적 인품과 덕망을 갖춘 사람으로서 사도시대 당시에 유대교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백성들은 그를 존경하여 일반 존칭 '랍비'(Rabbi-'나의 선생') 대신 최상의 존칭인 '랍반'(Rabban-'우리의 선생')을 처음으로 부여했다.
랍비 가말리엘 사후에 기록된 「미슈나」(Mishnah)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랍반 가말리엘 장로의 죽음과 함께 율법의 영광이 중단되었다."
아마도 가말리엘이 죽은 후에는 기독교가 예루살렘에 가득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말이 나왔을 것으로 본다.
그는 고상한 학식으로 사도 바울을 길러내었고(행 22:3), 뛰어난 언변으로 사도들을 변증해주었다(행 5:33-40). 결국 가말리엘은 초기 복음확장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것이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서서 저희를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는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 5:17-42).
이때 만약 가말리엘이 지혜롭게 말리지 않았다면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든 사도들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가말리엘은 역시 학자다운 학문과 덕망과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정치적인 종교인이나 정치적인 학자가 아니라 역사적인 관점에서 드다의 사건과 갈릴리 유다의 사건을 예로 들어서 설득력 있게 한마디 한 것이 사도들로 하여금 위기를 면케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도 왜 좀더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니고데모처럼 예수님을 찾아가서 알아보아야 했을 것인데 그는 자기 체면 때문인지 한번도 예수님을 찾아가서 만나뵌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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