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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와의 대화]요약

은바리라이프 2010. 2. 5. 15:24

1. 유대인의 역사

 

지금부터는 성경에 기록된 유태인의 역사에 대한 설명입니다. BC 2000년 이전으로 추정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그의 손자 야곱의 자손이 이집트에 내려가 430년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때 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뚜렷한 역사 기록을 남겨 주시지 않으시고, 아브라함과 한 약속만을 기억 속에 간직하셨을 뿐입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증거를 보여주시지 않으셨으니, 아마 그들도 이방신을 섬기고 그 영향 아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때까지의 고대 사람들을 히브리인 또는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BC 1500년경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선지자를 세우셔서 수백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종 이적과 기적 가운데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어,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시키셨습니다. 350년간의 사사(재판관) 시대가 흘렀고 사무엘 제사장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 왕을 세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통치 기반을 조성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바뀐 이름으로써 국가 명이 되었습니다. 이때가 BC 1,000년 경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와 팔레스타인에 정착했을 때까지 백성들 일부는 가나안 지역의 바알신을 비롯해 많은 미신을 섬겼다는 기록이 성경에 나옵니다.

 

장막에서 모신 하나님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을 건축해 섬기기 시작하였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왕국은 남북으로 갈리어 남쪽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유다, 베냐민, 레위 지파와 다스렸고, 나머지 10개 지파를 북쪽에서 여로보암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남북이 대립되었던 이 시기부터 서서히 왕과 백성들이 타락하기 시작하였고, 구약 성경을 기록한 많은 선지자들이 나타나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중동지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앗시리아에 의해서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였고 이방인과의 잡혼을 통한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이 많이 훼손되었습니다.(열왕기, 역대하) 이때부터 북이스라엘 사람을 가리켜 옛 수도의 이름을 딴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릅니다. 남유다의 사람들은 혼혈화된 사마리아인을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선지자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열왕기상 1918)

그 후 북이스라엘이 망한지 불과 백여년을 넘겨 BC 586년 남유다 조차도 앗시리아를 누른 중동의 새로운 통일 제국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예루살렘 성전도 함께 파괴되었고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유수사건입니다. 이 포로생활 기간이 약 70년간입니다.(예레미야 25 11) 이때부터 남유다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켜 유대인, 유태인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포로생활 기간 동안에 기독교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神과 조로아스터교의 神은 서로 다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 神의 영을 받아 기록한 경전 또한 다른 것입니다. 이후 곧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신바벨로니아를 멸망시키고 중동의 새로운 통일 제국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시조인 고레스 왕 때에(BC 538년경) 여호와의 영이 내려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였고, 유대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에스라,느헤미야)

 

BC 333년경 알렉산더 제국이 페르시아를 누르고 다시 중동지방을 통일하게 됩니다. 그후 BC 63년경 로마제국이 지중해 연안의 모든 국가들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리이스의 높은 문화와 문명은 로마 제국내에서 그 영향력을 계속 유지했습니다. 그리이스의 철학은 물론 수학, 의학 등 방대한 학문과 지식들은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스라엘의 종교가 많은 강대국들의 지배와 그들의 범신론적 종교와 철학과 섞여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고대 히브리인으로서 정착지가 없이 유리 방황하던 시대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던 로마 제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태인들은 많은 민족과 국가들로부터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런 식민지배와 정복자들로부터 억압받는 가운데 기독교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유태인들이 잘살고 힘이 있고 민족이 능력을 펼치는 최고의 상황에서 기독교가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민족적으로는 절망적이고 국가적으로는 희망이 보이지 않고 신앙으로는 암울한 가운데 탄생한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성경의 비밀이 있고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음을 모든 사람들은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그 능력을 나타내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2. 사도행전으로 보는 초대 교회의 모습

 

사도행전에 나온 기독교의 복음 전파 역사를 간단히 요약하겠습니다.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가 사도행전을 편지의 형식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까이서 본 제자였고, 예수님 부활 승천 이후에는 사도들과 함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을 수행하여 제1, 2, 3차 전도여행을 했으며 바울의 건강을 돌본 의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마 여행까지도 함께 하며 옥에 함께 갇혔고 그후 죽음도 함께 했으리라 추정됩니다. 그의 이름이 사도 바울이 기록한 편지들에서 여러 번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누가는 기독교의 복음 전파 사역에 있어서 가장 큰 증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십일을 부활의 증인들인 제자들과 함께 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사도행전 1 3) 12사도 중 부족한 한 자리를 맛디아로 뽑아 채우고,(1 15~26) 오순절 날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내려 방언과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2)

 

많은 유태인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이것으로써 초대 교회가 탄생하여 각종 병 치유의 능력과 기적이 나타났고, 이스라엘 곳곳과 사마리아와 이디오피아내시 같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3~8)

 

이후 유태인들은 더욱 박해를 강화했고 스데반 집사의 순교에 가담했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여 이방인의 사도로서 쓰임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9) 그는 3년 동안을 아라비아에서 기도로써 구약 성경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은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갈라디아서 1 17~18)

 

베드로가 주의 계시로 환상을 보고 이방인 고넬료에게 이방인의 최초로 성령이 내리심을 보고 모든 사도들에게 알려 이방 세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음을 확인하였습니다.(10) 사도들과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모두 흩어져서 로마 제국 영토는 물론, 아라비아와 인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전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11~12)

 

사도 바울은 큰 계획을 가지고 안디옥(지금의 시리아 도시)을 기점으로 하여 소아시아 반도(지금의 터어키 땅), 그리이스, 마케도니아(발칸반도)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걸려 총 3차 전도 여행을 통한 많은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13~21) 그래서, 이 지역이 초대 교회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신분이었고, 이스라엘에서는 베냐민 지파로서 가말리엘 율법사 문하에서 엄한 율법을 배운 바리세인이었습니다.(사도행전22 3, 28, 빌립보서 35) 그는 사회적으로는 로마인으로서 최상위 계층에 속하였고, 권세로는 유대의 대제사장으로부터 성도를 잡아 가둘 전권을 위임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빌립보서 3 8) 그에게 주신 유창한 로마어, 그리이스어 능력을 복음 전파에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모든 학식은 신약 성경을 기록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본고장 아테네에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토론하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섬기는 신을 인용하여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그들에게도 전파하였습니다.(사도행전 17 16~31) 사도 바울은 3차의 전도 여행을 통하여 그리이스 문화 지역에 교회를 굳건히 세우고, 말년에 예루살렘에 돌아와 많은 사도들 앞에서 선교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22~28) 사도 바울은 로마를 거쳐 스페인(서바나)선교 계획도 가지고 있었습니다.(로마서 15 28)

 

 

3.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기독교

 

이렇게 사도 바울과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파한 복음은 로마 제국 전 영토에 박해 가운데 전파되었고, 로마 왕실 까지도 기독교를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로마의 지하 도시인 카타콤은 천국의 소망을 가진 믿음의 성도들이 그곳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장사된 무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밖에 나와서 햇빛을 마음대로 보며 얼마든지 편안한 생활을 할 수가 있는데, 그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장차 다가올 천국의 소망을 그 땅속에 믿음의 흔적으로 남기고 잠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 기독교의 믿음의 능력과 힘과 신비가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칼과 창의 무력으로 사람의 육신을 지배할 줄만 알았던 로마 제국의 권력자들은 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능력과 힘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써 기독교를 국교화한다는 통치 이념으로써의 정치적 타협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가 기독교의 초대 교회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이 믿는 보편적인 종교로써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의 기독교 역사입니다.

 

앞서 요약 설명한 유태인의 역사를, 히브리인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 때부터 우상숭배와 미신들로 넘치는 온갖 강대국들의 치하에서 억압 가운데 살아온 피지배 민족으로서 소개하였습니다. 이것을 볼 때 유태인들의 혈통과 기독교의 신앙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창조주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과 성령이 간직된 신약, 구약 성경과 2천년이 넘게 자기 나라도 없이 세계를 유리 방황하던 유대민족의 혈통이 지금까지 보존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독교의 신앙이 온전하다는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큰 증거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박하거나 억지를 부릴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참고로 유태인의 혈통이 지금까지 보존된 것은 그들에게 회개할 때와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는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하면 될 듯 싶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믿는 神 여호와는 다른 神들과 겸하여 섬김받는 것을 싫어하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애굽기 34 14) 다른 종교와 다른 神들과 섞이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형상이나 우상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형상 만드는 것에 대해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神 여호와께서 다른 神들과 구별되시는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또한, 기독교는 칼과 창으로 사람의 육신을 지배하는 정복자 로마제국의 박해 속에서 순교의 신앙으로써 무력의 神을 사랑의 힘으로 제압한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종교입니다. 로마의 神이였던 미트라 태양신은 로마의 정복자를 상징하는 神으로써 인간의 육신은 정복했으나 사람의 마음은 정복하지 못한 패배의 神입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자기가 섬기던 정복자 미트라 태양神을 버리고, 국교로써 기독교를 인정하면서 국가 통치 이념으로 선포하고 타 종교를 금하게 된 것은 미트라 神의 무능을 한마디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기독교의 비밀이 있습니다. 능력으로 말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믿는 종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神 여호와께서는 다른 神들과 겸하여 숭배받지 않으시고 오직 홀로 영광과 섬김을 받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이제 다른 神과 섞이기를 싫어하시고 오직 홀로 영광과 찬양 받기를 원하시는 질투의 神 여호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다른 종교의 메시야와 섞이지 않고 오직 홀로 영광받으시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세상의 모든 神들을 이기시고 그 능력과 힘을 만방에 나타내신 여호와께 크리스챤들이 믿음으로 보답해야 할 일은, 기독교가 권력의 손에 들어가면서 부터 발생된 즉, 콘스탄티누스와 같은 이방 권력자의 기독교 간섭을 떠나 예수님의 바른 가르침의 순수성을 지키는 문제입니다. 현재의 기독교가 가장 많은 공격을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욕을 듣는 이유가 바로, 초대 교회의 순수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세속과 권력과의 타협에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로마의 지하도시 카타콤에서 보여준 천국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의 믿음의 발자취를 좇아 그들의 사랑과 인내와 그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또한 미신의 풍속과 교회 안에 잘못 전해져 내려오는 각종 폐습과 전통을 모두 개혁하여 초대교회 오순절에 사도들이 받은 성령의 시대로 회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크리스챤이 살고, 세상이 살고 믿지 않는 세대들로부터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다음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그리고, 크리스챤들이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반드시 개혁해야 할 기독교 안의 잘못된 풍속들입니다.

 

 

4. 세계사 측면에서 바라본 기독교

 

앞에서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양적 성장 가운데 오히려 질적 쇄퇴를 가져온 기독교의 가슴 아픈 세계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들 재학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하겠습니다.

 

기독교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을 거쳐 구약 성경을 기반으로 한 인류 구속사의 기본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 구약 성경의 그림자에 싸인 모든 비밀의 실체가 드러남으로써,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믿는 보편적 종교가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이 완성되어 구약만을 경전으로 삼아 유대인만 믿는 민족 종교 유대교와 구별이 되었고, 마침내 로마 제국의 국교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AD 313) 로마는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터어키의 옛 수도 이스탄불)로 천도를 하였고 로마, 콘스탄티노플, 안디옥,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는 기독교의 주요 5대 성지가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나뉘어 통치되다가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에 의해 5세기경 멸망하게 되었고 동로마 제국은(비잔틴 제국) 계속 유지되다가 오스만 투르크 제국(터어키)에 의해 16세기경 멸망하였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유럽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등 다양한 나라들로 재 건설이 되었는데, 기독교의 신앙은 로마 시대에서부터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다만 로마의 주교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로마 황제의 간섭을 지속적으로 받아오다가, 서로마 제국 영토에서 일어난 여러 나라의 왕들로부터 땅을 헌납받고 권력을 위양 받아서, 11세기경 로마 카톨릭 교회로서 완전히 분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로마 주교는 교황이라는 칭호를 씀으로써 정치적 왕으로 군림하여 타락하는 참혹한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반면, 동로마 제국은 예전 로마 제국 시대와 동일하게 정교 일치의 방식으로 황제가 정교회 신앙의 최고 자리에 있었고, 북방으로 러시아 등 슬라브족과 중앙 아시아를 통한 징기스칸 몽고 제국에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정교회는 7세기경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사라센 제국의 등장으로 예루살렘과 중동의 주요 성지들을 잃고 세력이 위축되었습니다. 16세기경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의해 동로마 제국이 망한 이후 정교회는 동유럽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왔는데, 소련의 등장으로 심한 탄압을 받아오다가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에 전해진 것은 20세기 초 대한제국 시대라고 하고 서울 아현동에도 성당이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의 교황은 옛 서로마 제국의 영토에서 마치 황제처럼 군림하였고, 동로마 제국이 사라센 제국에 잃은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하기 위한 십자군 전쟁 때에 이르러 그 권력이 극에 달했습니다. 13세기 때 예루살렘은 잠시 라틴계 왕국으로 있다가 그 후 이집트,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차 세계 대전 때 영국령으로 30년간 통치 받다가, 1948년 유태인의 손에 돌아와 이스라엘 국가의 수도가 되었습니다.(실제 수도는 텔아비브) 십자군 전쟁은 박해와 순교로써 성장해온 기독교의 가르침과 전통을 한번에 무너뜨리는 기독교 교리에 완전히 어긋나는 정복 전쟁이었습니다. 당시 세계는 서유럽의 로마 카톨릭교와 동로마 제국의 정교회, 그리고 칼과 폭력으로 7세기경 일어선 사라센 제국의 이슬람교로 삼 분할된 형국이었습니다.

 

서유럽의 중세 시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제일 먼저 해외 개척을 시작하여, 아프리카 최남단(현재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마카오, 필리핀,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총과 폭력으로 식민지화 하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 네델란드가 영국과 프랑스가 전자의 식민지 패권을 순차적으로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전쟁 무기가 개량되고 각 나라들의 왕권이 신장되면서, 세속화 권력화된 로마 교황으로부터 차츰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각 나라들의 개별 왕권은 16세기에 그 절정을 맞아 종교 개혁의 명분으로 독일과 북유럽에서 루터교 30년 종교전쟁을 치뤄 독립하였습니다. 영국에서는 성공회가 국왕을 교주로 하여 스페인 무적함대를 꺽고 명분없는 종교 독립을 하여 자신들의 전세계 식민지 영토에 개신교를 전파하였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칼뱅과 쯔빙글리가 장로교 개혁의 명분으로 독립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카톨릭 교황의 손에 사형당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후 성공회에서 감리교가 다시 나왔고 장로교와 더불어 영국에서독립한 미국에 뿌리를 내려 우리나라에 전해졌습니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중남미 지역과 필리핀, 그리고 프랑스 식민지 지역 아프리카는 카톨릭이 전파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는 크게 구교와 신교로 나뉘는데, 구교에 카톨릭교와 정교회가 있고, 신교에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이 있습니다. 세계의 신자 숫자는 열거한 대로 카톨릭교,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순서입니다. 단일 종교로 하면 세계에서 이슬람교 신자가 제일 많으나 기독교 전체를 합치면 기독교가 가장 많습니다.

 

로마 제국 황제가 기독교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기독교가 세속화되었다는 점을 다시 말씀드리며, 십자군 전쟁이나 서유럽의 식민 제국주의 일환에서 전파된 카톨릭과 개신교는 약소 민족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천주교 김대건 신부와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에 반대하고 신앙을 지킨 장로교 고신 교단의 주기철 목사님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이 두 분이 바로 로마제국 시대 카타콤에서 천국의 소망을 안고 믿음의 흔적을 남기고 잠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과 같은 순교자들입니다.

 

한국의 대형화된 교회들은 이미 로마 제국 때 세속화된 카톨릭교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김대건 신부와 주기철 목사와 카타콤의 성도들을 기억하시기 원합니다. 국가 지도자는 로마 황제와 같이 기독교를 통치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않되고, 타종교인과 비종교인으로부터도 존경받는 분의 모습을 보여줄 때 기독교도 살고 하나님께서도 비로소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국가 권력에 맞서지 않고 박해 속에서 순교의 신앙으로 사랑을 실천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세상에 널리 알린 숭고한 정신들이 기독교의 본래 크리스챤들입니다. 참 크리스챤들은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세속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성령을 통해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힘들지만 기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