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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와 바울!
샬리에르와 모차르트는 동시대를 살았던 음악가이다.
궁정 음악가였던 샬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신적인 재능을 너무 시기한 나머지 신을 저주하고 급기야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독살한다.
이 가상의 현실을 바탕으로 오래전에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노력형 수재가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의 1%의 차이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샬리에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차르트의 방탕함과 무례함이 하늘을 찔렀지만 천재가 만들어낸 음악은 신이 내린 선물 그 자체였다.
샬리에르에게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아 볼 수 있는 눈은 주셨지만 모차르트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음악적인 재능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주목이 모차르트에게 쏠리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샬리에르는 모차르트를 서서히 죽이기로 결정한다.
샬리에르가 숙명적으로 모차르트의 신적인 천재성을 인정하고 그의 음악가로서의 대성을 밀었더라면
천재 모차르트의 음악 세계는 더욱 폭넓어졌을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주옥같은 음악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깝게도 당대의 라이벌 중 한 사람이었던 샬리에르의 모차르트의 천부적인 재능을 향한 질투는 불보다 강해서
결국 천재의 생명을 삼키고 말았다. 모차르트를 독살한 샬리에르는 결국 자살로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지금은 누구도 샬리에르를 음악가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라이벌의 재능을 세워주면서 사닥다리가 되어 주는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은 생명을 내놓는 것처럼 어려운 일인 듯하다.
바나바는 샬리에르와 다르게 다가오는 사람이다.
땅을 팔아서 교회에 헌금할 만큼 바나바는 부자였다.
바나바는 부자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고 성품 역시 나무랄 데가 없다.
원래 바나바의 이름은 요셉이었지만 사도들이 ‘권위자’는 뜻의 바나바로 바꿨다.
성질 급하고 과격한 사도들 틈에서 얼마나 돋보이는 인격을 가지고 있었으면 그렇게 불렀겠는가!
바나바의 사람됨이 더욱 드러난 것은 바울을 만나고부터이다.
바울은 원래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하던 박해자였다.
그런 바울이 다메섹 길 위에서 파격적으로 회심을 하고 전도자가 되었다.
워낙 과거의 전력이 화려해서 바울이 위장 회심해서 기독교인들을 잡아 넣으려한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바나바는 달랐다. 바나바는 바울의 내면의 속사람의 변화를 이해해주고 자기의 신임을 담보로 제자들에게 바울을 소개해주었다.
바울이 하나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이미 새사람이 된 사실을 믿어달라고 제자들을 설득했다.
아무도 믿어주는 사람 없을 때 바나바는 바울의 손을 이끌어 더 큰 사명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주었다.
바나바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더라면 바울의 역사적인 선교사역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외국 선교의 거점지인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바나바와 바울은 함께 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바나바와 바울은 먼저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했다. 선교 활동의 처음 시작은 바나바가 주도권을 가졌다.
그런데 기질 탓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울과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어느 지역을 가서 무슨 사역을 하던지 바울이 눈에 띄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에도 병자를 고치는 사역에도 마치 주객이 전도 된 듯 바울은 거침없이 하이킥이었다.
루스두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고친 후에 그 곳 사람들이 바울을 헤르메스라는 신으로 칭한 것을 보면
바울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말씀을 전하고 능력을 행하면서 쓰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의 동반자로 함께 사역을 했지만 거의 바울이 사역을 다 한 것처럼 보인다.
바나바라는 이름은 그의 성품을 따라 지어진 별명이 확실하다.
바울 앞에서 항상 이인자로 머물러 있었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천부적인 재능과 넘치는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특심한 열심을 가진 바울의 저돌적인 전진이 때로는 힘겹기도 했다.
바나바의 조카 마가는 사역이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
바나바라면 다독거리며 권면하고 위로했겠지만, 바울은 헌신도가 떨어지는 사역자는 함께 사역할 수 없다고 딱 잘라버렸다.
부잣집 아들로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그렇다고 바나바는 생각했지만 바울은 마가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바울에게 바나바는 특별한 존재이다.
특히 예루살렘 제자들 앞에 설 때는 외지에서 전도할 때와는 달리 사역 보고의 주도권은 바나바가 잡았다.
그만큼 사도들에게 바나바는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바울에 처음 이미지 때문에 바나바에게 신세를 많이 진 사람이지만 바울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나바는 소아시아 사역을 마치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갈 때까지 바울과 함께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바울의 손을 놓지 않고 바울을 사역의 길로 이끌어주었지만
바울의 취향과 성격까지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능력을 눈에 띄게 사용하시고 자신에게는 소리 없이 섬기게 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바울은 만만이고 바나바는 천천일지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바울은 권세와 위엄을 가진 영적인 권위자였고 바나바는 권면하고 위로하는 영적인 권위자였다.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소아시아 지역 사역을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이후에 복음 역사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바울의 몫이었다.
사역과 고난 그리고 죽음까지 바울의 일거수일투족이 성경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낱낱이 공개되었지만
바나바의 섬김과 헌신은 수면위로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바나바는 기꺼이 바울의 사닥다리가 되어 주었다.
바울은 바나바가 받쳐주는 사닥다리를 딛고 더 넓고 큰 사명의 길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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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 내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
그리고,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샬리에르가 아닌 바나바의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재능과 능력이,
우리를 통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사닥다리가 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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