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아들 - 바나바
* 사도행전 4:36-37(신약193쪽) *
Ⅰ. 바나바의 인적사항
① 바나바의 뜻 : “위로의 아들”, “권면의 아들”② 고향이 구브로이며 레위지파사람이다.
③ 바나바의 본명 : 요셉④ 바나바의 생질 : 마가(골4:10)
Ⅱ. 시대적 배경
A.D.30-68년경 주로 활동함. 이 시기는 예루살렘에 큰 이슈를 일으켰던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이스라엘 에 새로운 성령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성령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도처에서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초대교회가 갑작스럽게 급성장하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관리가 필요했으며 효과적인 선교전략들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기에 예수님의 공생애를 경험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군들이 많이 필요했다. 그 시기에 바나바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데 교회사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인물로 전해진다.
Ⅲ. 바나바의 특징
1.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 외에 별칭을 가지게 됩니다. 이름은 보통 부모님이 지어 주게 된다. 흔히 부모님이 바라는 사람이 되라고 그 의미도 좋게 생각해서 이름을 짓게 됩니다. 이렇게 이름은 그 사람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이름이 아니라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 준다는 의미에서 부모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 이름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에게 특별한 별칭을 부여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장난기 섞인 마음으로 별칭을 부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별칭이 이름처럼 불리워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 하나님은 구약의 인물들을 개명해 준 적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람-아브라함, 사래-사라, 야곱-이스라엘, 시몬-베드로,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별칭이 곧 이름보다 더 유명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본래 본명이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요셉으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고 바나바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바나바의 뜻이 무엇입니까? 바나바의 뜻은 “위로의 아들”, “권면의 아들”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나바라는 별칭은 누가 붙여준 이름입니까? 이는 사도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바나바는 어느날 뚝딱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인물이 아닙니다. 추측으로는 70인의 제자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사도들은 요셉의 행동을 주의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너무나 잘 하는 일은 사람을 위로하는 일입니다. 실의에 빠진 사람, 낙담하는 사람, 좌절하는 사람, 큰 어려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잘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참으로 좋은 상담자의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가 만나면 사람이 회복되고, 생기를 얻고 용기를 찾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사람을 상처받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람을 참으로 힘이 나게 만들고 소망을 갖게 합니다. 이 일에 탁월했던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요셉을 어느날부터 요셉은 바나바같아! 바나바야! 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등장하면 나중에는 아예 어이 바나바 라고 별칭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부르던 별칭이 급기야는 이름보다 더 유명해 지게 된 것입니다.
행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바나바는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에 아주 탁월했던 사람입니다. 훗날 바나바가 사울을 설득하여 동역자로 세우는 일에도 탁월했습니다. 한 번 실패를 경험한 마가를 다시 세워서 일꾼으로 만든 것도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세우는 일에 아주 탁월한 인물이었습니다.
적용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를 가기고 가서 기준에 못 미치면 탈락, 기준에 이르면 통과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기준에 이르도록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이 그리스도인들일 감당해야 할 진정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진정한 위로자와 격려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사람을 세우는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바나바는 인정받는 인물입니다.
바나바는 믿을 만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야! 라고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은 가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속임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성실하게 자기의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1) 헌신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바나바는 초대교회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서로 물건을 통요하고 나눌 때 자기의 것을 속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풍부함을 내어 놓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 유무상통하는 가운데 바나바도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갔다 드렸습니다. 이는 바나바의 헌신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살겠다는 행위입니다.
행4: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2) 사도들과 교회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행11: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사도들은 요셉을 바나바로 부를 정도로 그의 위로와 권면에 대해서 인정을 했습니다.
또한 교회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의 복음의 불길은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자 더욱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흩어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역사가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에서 더욱 거세게 타올랐습니다. 심지어는 이 복음이 헬라인에게도 전달되고 헬라인들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소문이 예루살렘에 까지 전달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러한 보고를 듣고 안디옥에 누군가를 파송해서 그 사정을 알고 정리하여 바른 진리를 가르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단순히 안디옥의 사정을 알아오는 것이 아니라 안디옥에 일꾼을 파송하는 것입니다. 안디옥에 가서 그곳 신자들을 지도하고 관리하고 양육하는 일을 맡길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적임자로 선택된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그러니 바나바는 교회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바나바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가서 1년간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많은 무리들이 주께 더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바나바가 가르친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나바는 가르치는 일에도 탁월하고 사람들이 믿고 따를 정도로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행11: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 있습니다. 보이는 곳에서만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면 가면을 쓴 것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나바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4) 바나바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훗날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성령이 안디옥 교회에 이르시되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안수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친히 바나바를 선교사로 세우게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정하고 일꾼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바나바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사도들에게, 무리들에게, 교회에게,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무엇을 인정받았습니까? 그의 헌신, 그의 열정, 그의 성실, 그의 정직이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나는 정말 인정받는 사람입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애써 노력한 사람이 아닙니다. 바나바는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맡겨진 일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기꺼이 헌신하고, 기꺼이 순종하고, 기꺼이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럴때 우리도 인정받는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3. 착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다는 기준이 모호합니다. 그러나 바나바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재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은사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행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는 세상에 중심을 두지 않았고 하나님께 중심을 둔 사람입니다. 보이는 것에 연연한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바나바는 NO가 없었습니다. 안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된다. 가능하다. 그리고 실천했던 인물입니다.
사실 바나바가 안디옥에 파견을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거리상으로 약 480KM나 떨어진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익숙한 지역이 아닙니다. 낯선곳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파송을 보낼 때 순종하며 갑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을 만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그곳으로 떠납니다. 사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한지 얼망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언제나 목숨의 위협이 따르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믿음으로 안디옥까지 갑니다.
바나바의 이런한 행동은 성령이 충만했기에 가능합니다. 그의 온 마음과 생각을 사로 잡은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없이 걱정이 없이 맡겨진 일에 충성할 정도로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사람의 한계를 가지고 바라본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람의 한계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바라본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자신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 산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순종합니다.
적용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 중심에 서서 성령충만 믿음 충만한 사람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4. 아름다운 동역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일에 동역할 줄 아는 아주 귀한 사람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을 품고 함께 일하는데 아주 능한 사람입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세워서 함께 일하도록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1) 사울을 제자들에게 소개한 일
사울의 다메섹 도상에게 강력한 은총으로 회심했을 때 사도들이나 많은 사람들은 사울의 회심에 대해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을 예수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는 아주 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어느날 회심했다고 할 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모두 두려워했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긴장 관계에 놓여있을 때 그 가운데서 중재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의 회심 사실을 잘 살펴보고 사도들에게 사울이 어떻게 회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잘 설명했고, 또한 실제로 회심한 이후에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담대히 증거했는지를 잘 설명해 준 인물입니다.
행9:26-27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실 바나바가 아니었다면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동역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바나바가 한 것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이 함께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공동체안에 의심의 담과 경계의 담을 허문 인물입니다.
2) 다소에 있는 사울을 불러 함께 동역한 일
또한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파송을 갔을 때에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고향으로 간 사울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안디옥 사역에 사울을 불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소로 가서 사울을 잘 설득하여 불러와서 함께 안디옥 교회를 일구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바나바와 사울을 아주 본격적으로 함께 사역하게 됩니다.
안디옥교회에서 부조를 예루살렘에 보낼 때 바나바와 사울이 함께 가게 됩니다.
안디옥에서 선교사로 파송 될 때에도 둘이 함께 떠나게 됩니다. 둘은 아주 아름다운 동역을 이루게 됩니다. 이 배경에는 바나바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3) 자신의 생질 마가를 세워 함께 동역한 일
바나바가 바울과 다툰 일이 있습니다. 안디옥교회에서 처음으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선교여행을 떠났을 때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 요한이라는 바나바의 생질(누이의 아들)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마가가 밤빌리아 버가에서 힘들어서 중도에 하차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둘은 둘이 힘들게 선교여행을 마쳤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돌아와 선교 보고를 하고 나서 바나바와 바울은 2차 선교 여행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바나바는 마가를 데려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마가를 데려가는 것은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둘은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하게 다툰 둘은 결국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은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다소 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 권면의 아들 답게 마가를 다시 설득하고 같이 일할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바나바는 함께 동역하는 사람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그 때는 약했지만 이번에는 강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를 다시 세워 귀한 일꾼이 되도록 끝까지 붙들어 준 인물입니다. 이것이 바나바의 강점입니다.
행15:39-40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그렇다면 바울과는 영영 헤어졌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훗날 바울은 다시 바나바를 언급하고 마가를 언급하면서 그들이 소중함을 언급합니다. 나중에는 둘이 화해하고 더불어 동역의 사역을 감당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바나바와 마가에 대해서 아주 좋게 평가하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고전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딤후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만약 그때 바나바가 마가를 포기했다면 마가는 함께 동역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나바의 놀라운 힘입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세우고 그 사람을 격려하여 함께 동역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사역을 하면서 자신보다 더욱 탁월한 바울을 보면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바나바는 기꺼이 뒤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사실 여행 중에 대부분의 설교는 바울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그런 일을 기꺼이 내어 준 인물입니다.
함께 동역을 하기 위해서는 양보할 것을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양보하지 않고는 결코 동역을 이룰 수가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이렇게 양보하며 동역자의 장점을 살려주며 아름다운 동역을 이룬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아름다움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적용
우리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동역을 이루고 있습니까? 재능을 가지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지는 않습니까? 사람을 세우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니면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가지고 판단하기에 앞장서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유능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함께 헌신하고 동역을 이루고 양보하며 세워주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뛰어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참으로 그 속에 진리가 살아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동역을 이루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역 안에서, 각 팀과 부서 안에서 우리가 서로 세워주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1.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됩시다.
2.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됩시다.
3. 인정받는 사람이 됩시다.
4. 아름다운 동역을 이루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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