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바울 주변인물

사도 바르나바

은바리라이프 2009. 9. 8. 17:58

사도 바르나바 축일

 

오늘은 사도 바르나바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바르나바 사도에 관해선 사도행전에 잘 나오고 있습니다. 바르나바는 키프로스 섬에서 태어났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신자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1. 사도로서의 인정받음

바르나바는 비록 처음부터 예수님의 열 두 사도로서 불리움을 받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 사람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인 바르나바라고 불리는 요셉도 자기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바쳤다'(사도 4, 36-37)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사도들이 바르나바를 요셉이라는 이름 대신에 '위로의 아들' 이라는 뜻을 지닌 '바르나바'라고 이름을 바꿔주고 사도로서 인정을 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안티오키아 교회의 재건

그는 언제나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사도 10, 24)으로 칭찬받고 있는데, 예루살렘 교회 소속으로 있다가 안티오키아로 파견되었습니다. 바르나바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안티오키아에 파견되어 복응을 전파한 행적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0, 22-30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스테파노의 순교 이후 박해를 받아 신도들이 흩어지게 되자 형성된 교회였는데, 이곳에서도 박해가 심하게 있게 되었습니다. 바르나바는 이렇게 박해가 심한 안티오키아에 파견되어 신자들을 격려하고 그 공동체를 성장시키고자 다르소에서 바오로를 안티오키아에 데리고 와서 바오로와 함께 만 1년 동안 복음을 전하고 안티오키아 교회를 성장시켰습니다.

3. 그리스도인의 유래

이때부터 안티오키아에 있던 신도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며 이 명칭이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광스런 이름을 얻을 수 있도록 산파역을 한 분이 바르나바와 바오로였던 것입니다. 처음엔 바르나바가 더 알려졌었고 나중에 바오로가 유명해졌습니다.

4. 예루살렘 교회에 기부금 전달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 공동체가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안티오키아 공동체의 기부금을 모아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 공동체에 파견되어 그 기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5. 바오로와 함께 제 1차 선교여행

바르나와 바오로는 함께 복을을 전파하는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즉, 바오로의 제 1차 여행때 함께 간 것입니다. 그들이 전도한 지역은 지중해 연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셀류기아-키프로스-안티오키아-이고니온-리스트라-데르베-베르메-안티오키아로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선교여행 중에 바르나바는 바오로와 함께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특히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리스트라에 갔을 때에는 거기에서 앉은뱅이 한 사람을 고쳐주게 되었는데, 그들의 선교와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신으로까지 받들려고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바르나바는 제우스 신으로 그리고 선교를 도맡아 한 바오로는 헤르메스 신이리고 받들여져 사람들이 그들에게 제사를 지내려고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6. 예루살렘 사도회의 참석

그후 그들은 안티오키아에 돌아와서 지내고 있을 때 이방인들에게도 모세법에 의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그곳 교우들의 주장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게 되자, 그 두 사도는 예루살렘으로 파견되고 결국 이 문제로 열렸던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7. 바오로와의 의견 충돌

그후 바르나바는 바오로와 의견 충돌을 일으키고 헤어지게 됩니다. 이 의견충돌은 제 2차 선교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함께 동반할 사람의 선정에 대한 견해차이었습니다. 바르나바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도 데려가자고 했으나, 바오로는 자기들과 함께 일하지 않고 밤필리아에서 떨어져 나갔던 사람을 데리고 갈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심한 언쟁을 하고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택하여 배를 타고 다시 자기 고향 키프로스에 돌아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사도 16, 36-41)

8. 키프로스 교회의 창설자

전승에 의하면, 바르나바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도 전교하였다고 하며, 키프로스 교회의 창설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61년경 살라미스에서 돌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9. 바르나바에게 헌정된 여러 문헌들

  1) 바르나바의 편지 : 바르나바의 편지는 오늘날 디다케와 함께 초대 교회의 생활과 교리교육의 형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문헌이 되고 있는데, 이것이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는 바르나바의 작품이 아니라 70-100년 사이에 알렉산드리아의 신자 중 하나가 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 바르나바 복음서 : 바르나바 복음서라는 것도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이것도 그의 저작이 아니라 어느 신자가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 바르나바 행전 : 바르나바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것중에는 '바르나바 행전'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것도 그의 저술이 아니라 그의 사촌이었던 요한 마르코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비록 바르나바가 직접 저술은 안했지만 바르나바의 이름과 연관되어 당시 신약성서의 여러 주요 문학 형태인 복음서, 서간, 행전 등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바르나바가 당시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르나바는 항상 믿음과 성령에 충만했던 사람으로 불리워졌으며, 일생을 복음 선포에 바친 훌륭한 사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르나바의 모범을 통해 우리가 비록 예수님 시대에 태어날 수는 없었지만 우리도 헌신적인 복음선포를 통해 사도들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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