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성경 상식

'예수님의 몸에선 무슨 냄새가 났을까'

은바리라이프 2009. 12. 25. 22:25

'예수님의 몸에선 무슨 냄새가 났을까'
김동문 목사의 성경 체험 세미나, '성경을 맛보자'
2009년 08월 04일 (화) 10:32:50 [조회수 : 723] 박지호 ( simpro

   
 
  ▲ 강의를 듣던 마가교회의 한 학생이 성경에 나오는 실제 물맷돌을 만져보고 있다.  
 
"성경을 지식으로 풀지 말고, 일상의 언어로 누리고 느끼라"고 김동문 목사(중동 지역 전문 저널리스트)는 말했다. 예수님은 일상으로 다가왔지만,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을 현학적이고 학문적인 틀 안에 가두어버렸다며 오감을 자극하면서 성경을 읽어낼 수 있다면 지금 이곳에서 성경을 느낄 수 있고, 살아있는 존재로 다가오신 그분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성경을 일상의 언어로 '느끼고' '누리라'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일까. 김동문 목사는 대답 대신 질문부터 했다. 코스타 참석차 LA를 방문한 김 목사가 마가교회에서 강의한 내용과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한 내용을 종합해 재구성했다.

"성경을 읽을 때 오감을 자극하면서 읽어본 적 있나. 청국장이란 단어를 연상하면, 그 단어와 함께 오감이 자극되지 않는가.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떠오르고,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벌써 우리 입엔 침이 고인다. 하지만 야곱이 에서에게 건넨 팥죽을 생각하면서 입맛을 다신 적 있는가."

   
 
  ▲ 주님은 스스로를 떡이라 칭했다. 일상 속에서 늘 가까이 함께하시는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교인들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뗀 떡을 나누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한국 크리스천들은 야곱이 에서에게 팔았다는 팥죽을 연상하면서 동지섣달에 먹는 팥죽을 떠올린다. 하지만 중동에는 그런 팥이 없단다. 김 목사는 "에서가 먹었다는 팥죽은 '렌틀'이라는 붉은색 씨앗으로 끓여 만든 노란색 죽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성경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며 박하와 회향과 근채를 언급하는데, 그 말씀을 읽으면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냄새가 어떨까 하고 궁금하게 여긴 적 있냐"고.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우리로 치자면 깨소금과 간장과 고춧가루와 같은 기본 조미료이자 향신료에 해당한다. 하나님이 '깨소금과 간장과 고춧가루의 십일조를 드릴지라도'라고 말한 것과 같다. 한국 사람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면, 중동 사람에게 박하와 근채와 회향의 냄새가 난다. 예수님 몸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나지 않았을까."

   
 
  ▲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냄새를 맡아보고 있는 교인들.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중동 이민자들이 사는 지역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냄새를 아는 이도,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도 드물다. 김 목사의 말처럼 성경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설사 그렇지 못한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데 그게 그리 큰 문제가 될까. 이에 김 목사는 "성경을 우리의 일상과 무관한 책으로 여기는 태도는 성서를 일상과 거리가 먼 존재로 생각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잘못된 성서 해석을 낳는다"며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있던 엘리야를 예로 들었다.

"한국 교회에선 로뎀나무 그늘을 쉼의 공간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로뎀나무는 싸리나무의 일종이다. 커봤자 2미터도 안 되는 나무고, 그늘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거기 앉아서 누워있으면 죽는 거다. 성경에도 엘리야가 죽기를 청했다고 했다. 죽겠다고 드러 누워버린 엘리야의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엘리야는 죽음으로 달려드는 처참한 상황까지 내려 간 것이다. 로뎀나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니 처절한 고뇌의 현장에 찾아오는 주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 로뎀나무 잎사귀. 로뎀나무는 싸리나무의 일종이다.  
 
성경에 나오는 시대적 정황, 즉 현실을 알면 성경을 더욱 깊고 재밌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김 목사는 과부가 냈던 두 렙돈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해석을 내놨다.

"렙돈은 종교적으로 경건했던 시대에 만든 동전이다. 동전의 문양도 하나님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당시 독립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마카비 왕조 때 주조된 동전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이스라엘의 독립을 연상케 하는 매개였다. 그 불온한 동전을 로마가 왜 유통시켰을까. 로마는 렙돈을 유통시키면서, 화폐의 가치를 터무니없이 낮춰버렸다.(당시 예루살렘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데나리온이었는데 그것의 500분의 1밖에 안 된다.) 일종의 탄압의 수단이었다. 정치적·종교적으로 말살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당시 모두 이방신이 그려진 돈을 성전세로 바쳤지만, 과부는 하나님이 새겨진 렙돈을 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인에게 성전 회복과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드러낸 사건이다."

겨자나무는 어떤가. 우리는 겨자씨를 아주 작은 것으로, 겨자나무를 아주 큰 식물로 이해한다. 하지만 실제 겨자씨는 그리 작지 않고, 겨자나무도 유채꽃의 일종으로 아주 크지 않은 식물이다. 김 목사는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는 아주 작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주 흔한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제주도가 유채꽃이라면, 갈릴리는 겨자꽃이다. 갈릴리 들판에 널린 게 겨자꽃이다. 겨자씨 비유는 사이즈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다. 별 볼 일 없다는 것, 흔해빠진 거라는 의미다. 겨자씨처럼 흔해 빠진 믿음도 없다는 말이다. 당시 종교적인 믿음은 많았지만, 실질적인 믿음은 없던 때다. 종교적 언어, 종교적 활동은 넘쳐났지만, 실질적인 믿음은 없던 당시 종교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일갈이다."

   
 
  ▲ 실제 겨자씨(오른쪽)는 생각보다 크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겨자씨는 사실 담배씨앗(왼쪽)의 일종이다.  
 
성경을 일상의 언어로 읽고 해석하지 못하면, 현실과 무관하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뿐만 아니라 "오늘날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비인간화시키고 우리와 무관한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고 김 목사는 말했다. 그들이 아직 예수를 모르고 있을 뿐, 성경의 냄새, 예수님의 냄새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놓쳐버린다는 것이다.

"성경은 일상을 사는 자만이 느끼는 것이다. 성경이 어느새 현학적인 이야기로 둔갑했다. 성경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성육신의 형태로 우리에게 온 것처럼, 우리 역시 성육신의 형태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으로 푸는 성경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누리고 느끼고 나눌 때 그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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