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희 집에 함께 사는 가족은 세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상을 같이 나누는 친척들과 오래된 친구들로 구성된 유사가족들까지 포함하면 남부럽지 않은 대가족입니다. 아직까지 고추장, 된장, 간장을 직접 담그시는 어머니는 김치도 이 대가족의 수에 맞게 넉넉히 준비하시는 편입니다. 지난겨울에 김장을 할 때, 대가족의 일원으로 이 거사에 참여한 사람은 왠지 불안했던 예감 그대로 어머니와 저 이렇게 딱 두 사람이었습니다. 부엌에서 참견하는 업무가 실력과 상관없이 해마다 늘어가는 저는 무김치 만들기와 김치 속 넣기를 자신 있게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담대한 선택을 하고나서 늘 소심한 뒷수습과 후회로 바쁜 저는 이번에도 예외 없이 다채로운 고생을 했습니다. 소금에 절여진 배추는 어쩌면 그리 거대한지 마치 신소재의 야채인 것처럼 보이고, 김치 속을 넣느라 매운 눈과 쑤시는 팔은 점점 더 감각이 없어져 갔습니다. 한밤중에 소규모 김치공장의 외로운 주인이 된 어머니와 저는 도대체 김치의 기원은 언제, 어디일까? 중국산 김치도 맛있다! 등을 주제로 토론을 하다가, 어린 시절 단체견학을 갔던 김치박물관에서 잠시 없어졌던 송모양에 대한 회고담을 나누며 겨우 그 날의 과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원래 김치 없이도 밥을 잘 먹으며 빵과 치즈로도 얼마간 버틸 수 있는 다국적 식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의 눈물겨운 활약이 들어간 김장김치에 한동안 깊게 집중하다보니 앞으로는 김치 없는 식탁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그 맛에 새롭게 매혹된 듯 합니다. 김치밥과 김치파스타, 고기나 해산물 등을 넣은 다양한 방법의 김치찌개 등 김치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요리를 해보면서 느끼게 된 것은 맛의 감동을 뛰어넘는 삶의 교훈입니다. 시간에 따라서 다른 깊이의 빛깔과 맛을 보여주는 김치는 그 자체로 완전한 음식이지만 조리방법에 따른 식재료로서의 여러 가지 역할도 무리 없이 해냅니다. 김치는 그 존재 자체로 빛이 나는 스페셜리스트인 동시에 다양한 소통의 방식에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제네럴리스트인 것입니다. 김치는 지난겨울 이후 저에게 치열하게 닮고 싶은 역할모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봄, 조만간 올해의 첫 번째 김치를 담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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