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분열왕국 선한 왕과 악한 왕을 조사하기
1.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분열된 이후, 북 왕국은 이스라엘로 남 왕국은 유다로 불려지게 되었다. 물론 이 두 왕국은 서
로가 자신들이 하나님의 참된 백성, 참으로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주장하였다.
1) 이스라엘
토지가 유다 보다 비옥하여 살찐 가축과 풍성한 곡식, 그리고 좋은 과일을 거둘 수 있었으며, 이웃 나
라들과 손쉽게 무역을 할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한편으로 외부로부터 많은 영향도 받게 되었다.
2) 유다
적은 강우량으로 인해 토질이 좋지 못하여 먹고 쓸 양식이 부족하였으며, 지형적으로 고립되어 다른
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2. 국제적인 상황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은 역사적으로 변화무쌍한 틈바구니에서 살았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분열될 즈음 인근에 있는 두나라(애굽과 앗수르)는 그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서서히
그 마수를 뻗치기 시작하였다.
1) 애굽
사울-다윗-솔로몬 시대에는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음-그러나 리비아의 방백인 시송크(성경에는 "시
삭")가 애굽을 정복하고 거기에 22대 왕조를 세우면서부터 사태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솔로몬
이 죽은 후 르호보암 제 5년에 이스라엘과 유다에 총공세를 취하면서 쳐들어왔다. 그러나 그 이후 애
굽은 세계 무대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에디오피아와 앗수르를 막는데 주력했다.)
2) 앗수르
그 다음에 부상했던 나라는 앗수르였다. 앗수르는 이 시기 동안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혔던 나라였으
며, 이 나라는 세계적인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잔인해서 적들을 사로잡으면 산채로
장대에 꽂고, 불에 태워 죽였으며, 사람의 해골로 피라밋을 쌓아 올리거나 사람의 가죽으로 장신구나
벽을 장식하였다. 특히 디글랏 빌레셀(B. C 1114-1076)은 앗수르의 영토를 서쪽 지중해 연안까지 확
장시켰으며, 그 이후의 통치자들도 계속 남쪽으로 밀고 나갈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앗수르의 발전은
매우 느리고 점진적이었지만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분열될 즈음에는 이미 상당한 세력을 가진 나라로
등장해 있었다.
3) 블레셋: 블레셋도 계속적으로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해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4) 페니키아와 아람: 이 나라들도 이스라엘을 침략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5) 에돔이나 암몬: 이때에 이들은 이미 상당한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음
3.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국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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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이스라엘 왕국 |
남 유다왕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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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
왕조이름 |
왕이름 |
특징 |
선지자 |
왕이름 |
특징 |
선지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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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여로보암1세 |
북이스라엘 창시자 금송아지 숭배시작 |
르호보암 |
압제정치. 남쪽 2개지파 유다왕국. 애국의 시삭이 성전 약탈 |
스마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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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 |
여로보암 아들. 바아사에 의해 살해됨 |
아비얌 |
르호보암 아들. 여로보암과 전쟁하여 승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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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바아사 |
남유다 아사왕과 오랫동안 전쟁. |
예후 |
아사 |
선한 왕. 우상숭배하는 모친 폐위 이디오피아의 100만군대 기도로 물리침 |
아사랴 하나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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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 |
바아사의아들,술주정꾼 시므리에 살해됨 |
여호사밧 |
아사의 아들. 선한 왕. 산당을 허하지 않음. 아합과 연합하여 책망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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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시므리 |
즉위7일만에 오므리에 패해 불타 죽음 |
여호람 |
여호사밧의 아들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 여섯형을 모두 죽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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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오므리 |
수도 사마리아로 옮김, 백성이세워 번영함. |
아하시아 |
여호람의 아들 여호람 문병 때 예후에 의해 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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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 |
이세벨과 결혼. 바알 숭배 가장 악한 왕 |
엘리야 미가야 |
아달랴 |
아하시아의 모친. 손자들 학살. 여호야다와 여호세바(아하시아의누이)가 요아스 숨김. 여호야다에의해 살해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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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시아 |
아합의 아들, 병들었을 때 엘리야 도움. |
엘리야 |
요아스 |
아하시야의 아들. 우상 숭배. 신복에게 암살당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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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람 |
아하시야의 형제. 바알주상 제거 예후에게 살해 당함. |
엘리사 |
아마샤 |
요아스의 아들.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에돔신 가져와 섬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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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예후 |
엘리사 기름부음. 송아지 숭배 |
엘리사 |
웃시아 |
아마샤의 아들. 제사장의 권리행하여 교만함으로 문둥병에 걸림. |
요엘 호세아 이사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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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 아하스 |
예후의아들. 아람에게 침공당함 |
엘리사 |
요담 |
웃시아 아들 아버지 섭정 받음 |
미가 이사야 호세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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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스 |
여호아하스 아들 아람에게 빼앗긴 성읍회복 |
아하스 |
요담의 아들. 우상 숭배. 아들을 불사름 |
미가 이사야 호세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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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II |
요아스 아들 이스라엘 최고의 부와 번영 우상숭배, 부패 만연 |
요나 아모스 호세아 |
히스기야 |
아하스 아들. 산당제함. 놋뱀부숨. 주상 깨뜨림. 유월절 지킴 |
미가 이사야 호세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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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
여로보암2세 아들 샬룸에게 살해 됨. |
호세아 |
므낫세 |
히스기야 아들. 우상숭배. 바로느고에게 죽임 당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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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살룸 |
즉위 1개월만에 므나헴에게 살해됨. |
호세아 |
아몬 |
므낫세의 아들. 우상숭배 신하들에게 살해 당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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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므나헴 |
앗수르 왕 불에게 조공을 바침 |
호세아 |
요시아 |
아몬의 아들. 하나님을 경외함. 성전수리, 율법책낭독, 유월절지킴. 우상숭배제거의 종교개혁 단행 |
홀다 예레미야 스바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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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가히야 |
므나헴의 아들 베가에 의해 살해됨. |
호세아 |
여호아하스 |
요시야의 아들. 바로에 의해 폐위. 애굽에 포로로 잡혀감. |
예레미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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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베가 |
앗수르의 침공. 백성들 포로로 잡혀감. |
호세아 |
여호야김 |
요시야의 아들. 바로에 의해 즉위 바벨론에게 포로됨 |
예레미야 하박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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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호세아 |
북이스라엘 마지막 왕 앗수르에 의해 멸망,포로됨 |
여호야긴 |
여호야김의 아들. 바벨론에 포로됨. |
예레미야 하박국 | |||
|
시드기야 |
여호야긴의 아자비. 바벨론에 포로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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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북이스라엘 분열왕국의 선한 왕
* 북쪽의 왕들은 모두 악했던 것으로 평가됨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
지 아니하였더라."(-금송아지-비합법적인 제사장-자의적인 절기 행사-)
* 여러 왕조들
북쪽 이스라엘은 9개의 왕조가 왕이 되었는데 그 중 2대 이상 유지된 왕조는 둘밖에 안되고, 일곱 왕
조는 모두 칼로 왕위를 찬탈하였다.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 시기는 매우 혼란한 시대였다. 여로보암
2세가 죽고 나서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으며, 주민들은 포로로 잡혀갔다. 이 기간의 25년
동안에 6명의 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이 중 네 명은 이전 왕을 살해하고 왕이 된 사람이었다.
5.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1) 여로보암1세(B. C. 931-910,22년간)(왕상13:1-14:31)
* 솔로몬의 강제 부역과 지나친 과세 부담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선지자 아히야가 이
스라엘 10지파의 왕이 될 것을 예고하자 반역을 함(유다와 에브라임 지파의 알력)
* 이 일로 인해 솔로몬의 노여움을 사서 애굽으로 도망하였다가 르호보암 때에 세겜에서 반란을 주도
하여 북 이스라엘을 세우고 초대 왕이 됨.(수도를 세겜-브누엘-디르사로 옮김)
*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쪽 예루살렘으로 내려갈 것을 두려워하여 벧엘과 단에 금 송아지
를 만들고 그 곳에서 제사하게 하였으며, 레위 족속을 제사장 삼아야 함에도 평민을 제사장으로 삼
고, 절기를 7월이 아닌 8월 15일로 임의로 바꾸어 이스라엘로 죄짓게 함.
* 이러한 그의 행동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게 하는 종교 혼합주의를 가져
오게 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람을 보내어 그 제단을 파괴하고 장차 다윗의 자손 중 요시
야라는 사람이 그의 뼈를 이 제단에 불사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이를 저지하려던
그의 팔이 마비되었으며, 죄를 회개했던 그의 아들을 제외한 모든 남자들이 죽게됨.
* 남 왕국의 2대왕인 아비얌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하나님의 재앙을 입어 사망함.
2) 오므리(B. C. 885-874,12년간)(왕상16:21-28)
1) 세속적으로 강력한 국가였다.
- 북왕국의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김
- 이때까지의 왕 중 가장 막강한 왕이었음.
- 모압을 속국으로 삼음으로서 요단 동편의 남부를 다시 장악하게 됨.
2) 영적으로는 암흑의 시기였다.
- 아들 아합을 이세벨과 결혼시킴
- 성경은 그의 정치적 성공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고 그의 영적인 타락상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얼마나 그의 나라와 그의 의 를 위하여 헌신하였
는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3) 아합(B.C 874-853,22년)(왕상 16:29-34, 17:1-22:40)
1) 요단 동편(요단 동편의 옥토와 왕의 대로) 점령을 위해 노력함
- 이를 위해 다메섹(아람) 의 남하정책을 막아야만 하였는데, 아합은 북쪽의 베니게(두로와 시돈 지역)
와 동맹관계를 맺음으로서 다메섹(아람)을 막으려 하였다. 그리하여 그 표시로 당시 베니게를 통치
하던 시돈 사람 엣바알 왕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남쪽 유다의 힘을 빌리기 위
하여 자신의 딸(아달랴)을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에게 주었다.
2) 왕후 이세벨은 바알에게 헌신한 여인이었다.
- 그녀가 적극적으로 바알종교를 지원하게 되자,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바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분기점에 이르게 되었다.
- 바알 종교는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 가나안의 우수한 문화를 형성시킨 신으로 동경받고 있었기 때문
에 이세벨의 바알 선교 정책은 가속화되었다.
- 사마리아의 바알의 산당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음.
- 아세라 목상을 만듦.
3) 아합은 상아궁을 짓고 사치한 생활을 하다가 아모스 선지자에게 공격을 받았다.
4) 아합은 북쪽 아람왕 벤하닷과 싸워 두 차례 승리하여 아벡을 점령하였다(20:1-43).
5) 그러나 그는 3년 후에 남쪽 도시 길르앗 라못을 점령하기 위해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유다 왕
여호사밧과 함께 아람을 공격하다가 전사하고 말았다.(22:1-40)
* 참고: 불의 선지자 엘리야(왕상 17:-왕하 2:11-)-백성들의 마음을 여호와께로-
1) 길르앗에 거하는 디셉 사람
- 3년반 동안의 가뭄 선포
- 그릿 시냇가의 까마귀(왕상 17: 2-7)
- 사르밧 과부(왕상 17:8-16)의 부양
- 죽은 아들을 살림(왕상 17:17-24)
2) 바알의 선지자들을 상대로 850대 1로 싸워서 승리한 후에 그들을 처형함.
3) 엘리야와 하나님
- 이세벨을 두려워하여 낙심한 엘리야가 세미한 음성을 통해 하나님의 지시를 받음
- 다음 지도자 예고; 하사엘-예후-엘리사
4)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에게 저주를 선포함.(21:1-29)
5) 바알에게 가서 병이 낫겠느냐고 묻는 아하시야 왕에게 죽음을 선고함.
6) 엘리야와 불수레/ 엘리야가 요단강물을 가르고 동쪽으로 건너가서 하늘로 승천함./
7)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음.
6. 북이스라엘을 통한 교훈
1) 왕을 요구한 결과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호 13:11)
* 여로보암-호세아까지 209년간(주전 931-722) 9개의 왕가 19명의 왕이 다스렸다.
* 8번의 피 흘리는 혁명이 일어남.
- 여로보암 왕가(2대)-여로보암-나답
- 바아사 왕가(2대)-바아사-엘라
- 오므리 왕가(4대)-오므리-아합-아하시야-여호람
- 예후 왕가(5대)-예후-여호아하스-요아스-여로보암 2세-스가랴
- 므나헴 왕가(2대)-므나헴-브가히야
- 나머지는 모두 1대에 끝남, 특히 5대왕 시므리는 7일, 15대왕 살룸-1개월
- 어느 왕가든지 끝날 때에는 전 왕가가 멸족하는 비극이 따랐다.
2) 선지자를 통해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거절한 이스라엘
* 하나님은 오므리 왕가인 아합 때에 엘리야와 엘리사를, 그리고 예후 왕가 여로보암 때에 는 호세아
와 아모스를 보내셨다.
* 그러나 그들은 끝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장 강력한 대표적인 왕과 선지자)
3) 여로보암의 죄악이 이스라엘에 미친 해악성.
4)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왕하 17:7-18)
* 하나님께 죄를 범함-우상을 섬김-이방인의 규례와 이스라엘 왕들의 규례를 따름
* 하나님을 배반하고 산당을 세움-산과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움
* 산당에서 분향을 함/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함/ 사술과 복술을 행함/
* 선지자들의 전한 말을 듣지 않음-하나님을 배반하고 모세가 준 규례를 어김.
5) 종교 혼합주의와 혼혈족 사마리아인의 탄생(17:24-41)
앗수르는 이스라엘에 수많은 이방인들을 이주시켜 살게 하였다. 이는 혼혈 족으로 만들어 앗수르에 대
항하려는 혁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종교의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방 신과
여호와와를 함께 섬기는 혼합종교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아있던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 이방인
들과 결혼을 함으로 하나의 혼혈족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
들이었다.
7. 남유다의 선한왕
* 남유다-세 사람만이 인정을 받음(특히 히스기야와 요시야)
- 10명의 왕들에 대하여는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졌다(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 열왕기는
왕들의 업적보다 예루살렘에서 행한 예배와 율법 준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다는 다윗 가문이 줄곧 왕이 되었다. 유다의 경우도 가끔 몰려나고 살해된 경우가 있었지만, 이는
모두 악한 왕을 몰아내고 선한 왕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 다.
1) 여호사밧(B.C 872-848,24년)(대하17장)
* 북이스라엘이 아합의 치하에서 바알을 섬기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기근과 전쟁을 겪고 있을 때,
남 왕국 유다는 여호사밧의 통치 아래 부흥과 번영의 영광을 누림
* 여호사밧은 아사 왕의 아들로 아사 왕이 죽은 후에 왕이 됨.
* 그는 왕이 되면서 하나님과 동행.
그는 모든 유다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성읍을 튼튼히 세움. 그는 그 조상 다윗과 같이 마음을
정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고, 바알을 의지하지 않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북이스라엘의 행
위를 하나도 본받지 않음. 그는 결심하고 유다 백성들이 산과 들에 은밀히 세워 둔 모든 산당과 아
세라 목상들을 다 없애버림.
* 여호사밧이 왕이 된지 3 년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침.
-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관리로 임명.
- 하나님의 율법과 왕의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침.
- 결과 : 하나님께 충성하는 백성들. 나라 부강해져 블레셋도 조공을 여호사밧에게 바침..
* 여호사밧 왕이 점점 강성해져서 유다의 모든 지역에 견고한 요새를 건설하고, 국고성을 건축.
- 많은 군사들을 양성. 유다 지파의 아드나가 거느린 용사가 30만 명이고, 여호하난이 거느린 군사
가 28만 명,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가 거느린 지원병이 20만 명, 베냐민 지파 엘리아다가 거느린
큰 용사는 다 활과 방패를 갖추고 있었는데 그 수가 20만 명, 여호사밧 장군이 거느린 군사가 십
팔만이었습니다. 군사의 총 합계가 106만 명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의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하였습
니다
2) 히스기야(B.C 715-686,29년)(왕하18-20:21) 히스기야
1.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사사들이 치리 하던 사사시대가 지나고, 보다 강력한 왕들이 다스리는 왕권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열왕시대의 행적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하나님의 규례를 어기고 언약을 저버려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다. 심지어는 이방신을 끌어들여 그 앞에 단을 쌓고 제사 지내 섬김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된 역사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의 부친이었던 유다 왕 아하스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여러 왕들의 뒤를 따라 바알을 섬겼다(대하 28장 1∼3절).
대하 28장 22∼27절 “이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열왕의 묘실에 있지 아니하고…”
북쪽 이스라엘 왕 베가와 다메섹 왕이었던 르신이 동맹을 맺어 그 당시 큰 세력을 떨치던 앗수르 제국에 반기를 들어 친앗수르 정책을 펴던 유다 나라 아하스왕을 침략하였다.
이 때 아하스왕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위기를 모면하였으나, 이로 인해 앗수르 제국의 종주국으로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아하스왕은 앗수르의 이방신들을 섬기기 위해 예루살렘과 유다 각 성읍에 단을 쌓고 분향하는 일을 행하였다(왕하 16장 5~16절, 대하 28장 24~25절).
이처럼 유다 나라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망령되이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곤경에 처하게 하여 유다 나라를 낮추시었다.
대하 28장 19절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2. 히스기야의 등극
이렇듯 유다 나라는 앗수르 제국의 속국으로써 간섭을 받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타락하여 우상 숭배에 매우 치우쳐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다.
심지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성전의 문이 닫힘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던 백성들의 정신세계는 피폐해져 우상에게 의지하게 되었으며 나라 안팎이 위기에 빠져 어지러웠다.
이때에 현명한 지도자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유다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여 29년을 통치하게 된다. 그의 부친 아하스가 죽고 대신하여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그의 나이 25세였다.
3. 하나님을 의지한 히스기야의 개혁
젊은 나이에 왕이 된 히스기야가 제일 먼저 행한 일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신앙심을 회복하는 개혁이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그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이끄는 것이 하나님께 부르심 받은 지도자의 소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그의 부친 아하스왕 때 닫혀졌던 성소의 문을 열고, 더럽혀진 성소를 정결하게 하며 성소의 각종 기구들을 깨끗이 청소하였다.
대하 29장 2~3절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원년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그는 성소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악에 치우쳐 하나님께로부터 떠났던 선왕들이 멸시하고 팽개쳐 놓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가장 먼저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성결케 하였다.
대하 29장 4~5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편 광장에 모으고…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 하라”
히스기야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어려움에 봉착한 것은 열조가 하나님을 버리고 그 제사를 드리지 아니 하였기 때문이라고 백성들을 가르치며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겨야 하는 중요성을 역설했다.
대하 29장 6∼9절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고 내어 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 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려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을 향한 히스기야의 열심 있는 마음이 백성들을 감동시켰고 드디어 레위 자손과 제사장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전을 깨끗케 하였다.
대하 29장 16∼17절 “제사장들도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가서 깨끗케 하여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내어 …정월 초하루에 성결케 하기를 시작하여 그 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정결케 하여 정월 십육일에 이르러 마치고”
그 당시 유다 나라가 내적으로는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척하고 각종 이방신을 섬겨 타락했으며, 외적으로는 강대국 앗수르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유다가 앗수르를 배척하고(왕하 18장 7절) 이방신의 산당을 부수뜨리는 일은 위험을 각오하지 않고서 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곧 앗수르왕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도 같은 의미를 가졌다.
그런 상황에서 히스기야가 정치적, 종교적 지배로부터 유다를 해방시키기 위해 앗수르를 배척하고 각종 우상을 깨뜨리며 과감하게 개혁의 길을 걸어 간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였기 때문이었다.
왕하 18장 3∼5절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 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4.유월절을 지키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르자 제일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여 성결케 하였고 성소와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렸다(대하 29장 18∼24절). 이와 같이 성전이 성결케 되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와 백성에게 유월절을 지킬 수 있도록 축복의 길을 열어 주신다.
대하 29장 36절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이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음을 인하여 히스기야가 백성으로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대하 30장 1절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이때 유다에는 성결케 할 제사장도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했던 연고로 제 1유월절을 정기에 지킬 수 없어, 다음 달 이 월에 제 2유월절을 지키게 되었다(대하 30장 2∼3절).
히스기야는 먼저 유월절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보발꾼들을 유다와 사마리아 땅까지 보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유월절을 지켜보지 못했던 사마리아에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었을 뿐더러 그 의미는 더욱 알지 못했다. 그러기에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온 보발꾼을 조롱하고 비웃었던 것이다.
대하 30장 5절 “드디어 명을 발하여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온 이스라엘에 반포하여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 이는 기록한 규례대로 오래동안 지키지 못하였음이더라”
대하 30장 10절 “보발꾼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에 두루 다녀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저희를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그러나 겸손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기를 원하는 많은 백성들은 유월절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대하 30장 13∼15절 “이월에 백성이 무교절을 지키려 하여 예루살렘에 많이 모이니 심히 큰 회라 무리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과 향단들을 모두 제하여 기드론 시내에 던지고 이월 십사일에 유월절 양을 잡으니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부끄러워하여 성결케 하고 번제물을 가지고 여호와의 전에 이르러 규례대로 각각 자기 처소에 서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을 좇아 제사장이 레위 사람의 손에서 피를 받아 뿌리니라”
5. 가증한 우상을 전멸시키다
귀신의 처소를 발견하는 진리는 유월절이다. 유월절을 지키면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히스기야와 유다 나라 백성이 유월절을 지키고 나서 곧바로 나라 안에 있었던 모든 가증한 우상들을 다 제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다.
대하 31장 1절 “이 모든 일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왕하 18장 3~4절 “히스기야가…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하나님께로부터 유월절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안이 열려 여러 가증한 우상을 제하였다. 그리고 우상들이 제거되었을 때 비로소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할 수가 있었고 온전히 돌아갈 수 있는 십일조를 행하게 되었다.
대하 31장 5∼6절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유다 여러 성읍에 거한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6. 앗수르의 침략
히스기야가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킨 때로부터 3년 후,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북쪽 사마리아로 올라와 에워쌌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3년이 지나 앗수르에 함락되었으니 주전 721년이요, 사마리아의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년이었다. 유월절 소식을 전하는 보발꾼들을 조롱하고 비웃던 그 사마리아 땅은 끝이 나고 말았다.
왕하 18장 9∼12절 “히스기야왕 사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 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년 후에…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그 후 앗수르 제국은 남쪽에 있는 유다 나라에도 침략해 들어왔다.
왕하 18장 13절 “히스기야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왕하 18장 17절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왕을 치게 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니라…”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곤경에 처한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이 보낸 사자 랍사게로부터 유다 나라를 비방하고 업신여기는 편지를 건네 받고 곧 바로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의지한 채 전심으로 기도 드렸다.
왕하 19장 14~19절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왕하 19장 20절), 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가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며(왕하 19장 31절) 예루살렘성은 보호해 주시겠다는 응답을 주셨다. 그리고 그날 밤 하나님께서 보내신 전사가 앗수르 군대를 쳐서 멸하였다.
왕하 19장 34∼35절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히스기야왕이 이사야 선지자의 권면을 받아 왕위에 즉위하자 즉시 유월절을 지키고 전한 것은 하나님께 축복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과 행함에 따라 유월절을 지킴으로 환난의 때에 보호받았다.
7. 하나님을 감동시킨 기도
히스기야는 기도하는 왕이었다.
앗수르 나라가 침략해 왔을 때 한 나라를 다스리는 주권자로서, 거느리는 신하나 장수나 군사를 통하여 적군을 물리치고 이기려는 생각과 계획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현명하게 어떤 나라나 어떠한 인간의 힘에 의지하지 않았다.
오직 천지를 지으시고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만군의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지하였던 것이다. 한 나라 왕으로서 체통이나 권위를 생각지 않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줄 알았던 겸손한 왕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히스기야가 병들어 자리에 누웠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히스기야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왕하 20장 1절)’하셨다. 이 말을 전해들은 히스기야는 그 즉시로 일어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왕하 20장 2절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감동하셨다. 기도를 들어 주시사 병을 낫게 하여 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다. 그리고 그 징표로써 태양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다.
왕하 20장 5∼11절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내가 네 날을 십오년을 더할 것이며…일영표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8. 히스기야의 실수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말을 들은 바벨론왕 부로닥 발라단이 편지와 예물을 보내왔다. 히스기야는 기뻐서 사자들을 환대하였고 나라 안의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다.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군기고와 내탕고, 무릇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사자에게 다 보여 주었다(왕하 20장 12∼13절).
자기를 위해 바벨론 왕이 많은 선물과 사신까지 보내준 일에 히스기야는 순간 우쭐해졌고 그만 냉정을 잃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를 잘 보존하고 하나님 것을 잘 지켜야 하는데, 엉큼한 마음을 품고 들어온 적군의 사신들에게 조심성 없이 군기고까지 보여주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의 잘못을 책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왕하 20장 16∼18절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 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9. 우리에게 주는 교훈
히스기야는 한 생애를 살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존귀히 여기고 절대적으로 의지하였다. 젊은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혈기를 앞세우지 않고, 외적의 침략을 받았을 때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였다.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배반하고 우상 숭배에 빠진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왕이 되자마자, 결코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성전을 먼저 수리하여 성결케 하고 속죄제를 드리며 여러 산당을 제하고 우상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없애므로 악을 제거할 수 있었다(왕하 18장 5절).
잠 3장 6절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히스기야는 또한 하나님께 기도 할 줄 알았던 왕이었다. 그는 고난을 만나고 위기를 접할 때 기도함으로 대처할 줄 알았다.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나라의 존폐 여부가 위기에 부딪치고 또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불치의 병에 걸려 고난을 만났을 때에 어느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전심으로 기도 드렸다.
히스기야의 기도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기쁘시게 보셨고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곧바로 응답을 주셨던 것이다.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과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를 살려 주실 것도 선지자를 통하여 기도하는 즉시 응답해 주셨다(왕하 19장 14∼20절, 왕하 20장 1∼6절).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사는 날 동안에 유다 나라의 태평을 보장해 주셨던 것이다.
우리들도 히스기야의 생애처럼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겠으며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그 분의 뜻을 묻고 행하라 하신 대로 실천하며 사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어야겠다.
3. 요시야
IV. 남유다의 악한왕
1. 아달랴
2. 여호사밧
3. 웃시야
4. 요아스
5. 므낫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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