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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 의 상징*

은바리라이프 2009. 10. 27. 12:54

* 돼지 의 상징*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본문: 마7장6절의 말씀),

이 상징을 연구하다 보면 재미도 있고 눈물도 나며 안타까워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그 속에 직접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만큼 성경에서 말하는 상징은 뜻이 깊고 의미가 크며 우리가 꼭 알고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돼지에 대하여 연구하면서 성경을 이해하도록 공부하여 보시기를...

돼지는 한번에 새끼를 12마리 이상 낳을 수 있는 다산성 동물로서 이방인들은 돼지꿈을 길운 내지는 다복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구약 성경은 돼지는 굽이 갈라져 있으나 되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부정한 동물로 규정하였다. 돼지는 원래 깨끗한 곳을 좋아하는 가축이지만, 우리 안에 가두어 키우기 때문에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누울 수 밖에 없다.


아무튼 돼지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1. 돼지의 특성,

(1).돼지는 더러운 곳에 다시 눕는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곳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2장22절).

이는 회개한 죄를 다시 반복하여 죄짓는 사람을 가리켜서 돼지 같은 사람에 비유하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배교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2).돼지는 먹기를 탐하고 잠자기를 좋아한다.
돼지는 애완용 동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소처럼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살찌워 도살하는 사육용 동물로서 탐하고

게으르며 욕심이 많은 사람을 의미한다.

 

(3).돼지는 머리를 숙이고 코로서 땅을 후벼파며 먹이를 찾는다.
이는 신령한 하늘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며, 육에 속하여 땅에 것,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찾는 속된 사람을 상징한다.

2. 예수는 돼지를 두고 교훈하셨다.

산상보훈 중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교훈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7장6절).

거룩한 것과 진주는 동격으로서 진리이다.
저희는 개와 돼지 같은 사람을 받은 대명사이다. 가치 있는 말, 선한 말, 생명의 말씀 곧 그를 위하는
말씀이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개와 돼지 같은 사람에게는 교훈의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 예수는 많은 군대귀신이 들려서 무덤 사이에 거하는 두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다.
귀신들이 예수께 구하기를 많은 돼지때에게 들어가기를 구하메 예수는 허락하였다.
이에 사람에게서 나간 귀신이 많은 돼지 때에게 들어가매 돼지들이 비탈로 내달아 바다에 빠져 몰사하엿다.(마8장28-34).

이는 인간 생명을 많은 돼지 때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과 돼지와 같은 사람, 곧 더러운 곳에 다시 눕는 배교자,

명리를 탐하며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육에 속된 사람에게는 귀신이 언제든지 들어 갈 수 있다는 영적인 의미의 말이다.

또한 돼지는 미련하다. 옛날에는 돼지를 도살장에 끌고 가기 위해서 볶은 콩을 돼지 앞에 한알씩 떨어뜨렸다. 돼지는 머리를 땅에 쳐박고 코로 땅을 후비며 부지런히 떨어진 콩을 주워 먹으면서 도살장에 이르렀다. 돼지는 도살장 문앞에 와서야 사지로 왔다는 것을 알고 비로서 앞발을 버티며 하늘을 쳐다본다.

돼지처럼 사는 사람이 많다. 땅에 속하여 살며 신령한 하늘의 세계와 하늘의 뜻을 한번도 생각지 못하고
육신의 것만 취하다가 임종 앞에서야 비로서 하늘을 바라보는 미련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임종 앞에서야만이, "인생을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는데!'하고 후회하지만 어찌 죽음을 돌이킬 수 있으랴!
그저 지옥으로 더러운 곳으로 가는 길뿐이다.


이상이 돼지를 일컬어서 성경에서 말하는 상징의 비유이다. 우리는 이처럼 돼지처럼 살아서는 아니된다.
기존의 기성교회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집단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속된 곳이 많다고 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런 곳에 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늘 이 비유의 상징이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