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며느리 다말의 쌍둥이 잉태와 태중 장자권 싸움.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중 세째 아들인 유다에게 다말이라는 며느리가 있는데 시아버지와 동침하므로 쌍둥이를 잉태하게 된다.
[공동번역 창 38:16]
그래서 그는 길가에 있는 여인에게로 발길을 돌리며 수작을 건넸다.
"너한테 들러 가고 싶구나. 어서 가자." 그 여인이 바로 자기의 며느리라는 것을 알았을 리가 만무하다. 다말은 화대로 무엇을 주겠느냐고 물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라는 성경에는 왜 이렇게 추잡한 성적내용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을까?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性的 사건은 현대는 물론이고 윤리관이 형성되지 아니한 고대사회에서도 이해하기가 힘든 일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속에 이러한 사건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을 나타내려 하는 것일까?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본다면 도대체 교인들의 신앙에 무슨 유익이 된단 말인가? 문자 속에 가리워진 그 진정한 뜻을 보지 못하면 이 성경의 장은 찢어져 없어져야만 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쌍둥이 잉태 사건은 야곱과 에서 그리고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다(창 38 장) .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태중에서 두 태아가 먼저 나오기 위해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다말을 통한 쌍둥이 잉태사건 속에 또 다른 모습의 머리와 지체의 싸움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스라엘 야곱의 장자권을 계승한 유다에게는 세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 엘이 다말에게 장가들어 후사를 두지 못하고 죽었다.
모세의 율법에는 형이 후사가 없이 죽으면 그 형제가 형수를 취하여 후사를 잇게 해주라고 말하고 있다.
[신 25:5-6]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은 율법대로 형의 代를 잇게 하기 위하여 형수 다말을 취하여 성관계를 하다가 사정할 때 자궁 밖에다 사정을 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이 행위를 악으로 보시고 그를 죽이신다.
[창 38:8-10]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둘째 아들 오난이 형수를 취하기는 했으나 사정할 때에 자궁밖에다 사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난은 장자가 아니다. 그는 차자이며 지체가 된다.
오난이 자궁밖에다 사정을 한 이유가 아들이 생겨서 장자인 형의 후사를 잇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그러면 오난은 왜 형의 후사를 잇지 못하게 하려 했을까? 이 의문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보자.
유다는 두 아들을 잃고나자 셋째 아들이 장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말에게 친정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세째가 성장할 때 다시 부르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셋째가 장성했으나 유다는 다말을 부르지 않았다.
이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마저 잃을까 해서이다.
[창 38: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
다말은 장자의 중요성을 깨우친 여자였다.
고대사회에서 장자의 축복과 그 중요함의 가치를 아는 여자였다.
야곱이 장자의 가치를 알고 어떻게하든 장자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것과 같다.
그녀 역시 최후의 수단으로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게 된다.
후에 그는 잉태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둘째 아들은 왜 성교하는 중에 정액을 자궁 밖에다 사정을 했는가?
이는 장자의 명분을 가로채기 위해서이다. 만약 자궁 안에 사정하여 임신을 하고 아들이라도 낳게 되면 죽은 형의 代가 그 아들에게 계승되어 장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장자권 계승은 단순한 가족간의 대를 잇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은 가족간의 장자권을 들어서 영적 장자권에 대한 뜻을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는 편에서 이 일은 영적 장자의 자리를 빼앗기 위한 사단의 간계로 보시고 둘째 아들을 죽이신 것이다.
다말은 장자권에 대한 중요성과 더불어 영적 하나님의 장자권의 영적 의미를 깨달았다.
그는 기필코 이 장자권을 얻기 위해 창기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에게 접근을 하여 그 씨를 얻게 되는 것이다.
[창 38:27-30]
"임신하여 보니 쌍태라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장자) 홍사를 가져 그 손으로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차자)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오느냐 한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 형제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야곱이 태밖에서 장자의 명분을 회복한 전형이라면, 베레스는 태 속에서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회복한 전형이다. 태밖으로 먼저 나온 자가 장자다. 세라가 손을 태밖으로 내밀자 산파가 홍사를 묶어 표시를 한다.
해산할 때에 지체가 나오는 예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지체인 손이 먼저 나온다. 무엇을 뜻하는가?
단순한 해산의 한 장면인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가족사를 들어서 참과 생명과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밤은 있으되 먼저가 아니다. 낮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이 우주의 탯집 속에서 거짓 지혜이며 나중이 머리가 되어 나왔으니 이 우주와 자연은 신음한다.
그래서 만물은 하나님의 참 아들들이 나타나서 만물의 질서가 회복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롬 8:19-23]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이 우주 속에는 천사의 선악의 이원론적인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부활 영생인 성령의 지혜가 함께 하는 쌍태의 탯집과도 같다.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의 영의 의식을 가진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영의 의식과 상대적 의식이 함께 거한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생명,영의 의식이 장자요 머리임을 이 사건 속에 묻어 두고 계시는 것이다. 야곱은 태 밖에서 외적 장자권 회복을, 베레스는 태 속에서 내적 장자권을 빼앗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맏아들로 오셔서 잃어버린 장자권을 회복할 것을 암시하는 말씀들이다.
구약은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에 대하여 기록한 책이다.
이 장자와 차자의 싸움은 인간의 내면 속에서도 육신의 소욕과 그 소욕으로부터 벗어나 생명의 영 의식과 격렬하게 싸우는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다. 육신의 소욕(감정)이 먼저 나오면 이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이며, 성령의 그리스도의 생명의 영 의식이(믿음이) 이기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다.
예수가 이 모든 것을 이겼으므로 우리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의 부활을 믿고 구도하는 것은 아담을 통해서 물려받은 상대 차별적 의식을 깨뜨리고 성령의 의식이 머리가 되게하기 위하여 살아있는 동안 싸워야 할 과정이다.
태 안에서 장자권을 회복하고 나오면 고난이 없이 장자권을 계승하나, 태 안에서 장자권을 잃으면 태 밖에서의 회복하기 위해서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게 된다.
예수께서는 아담이 태 안에서 잃어버린 장자권을 태 밖에서 회복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셔야 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가는 구도자의 길은 쓸쓸하고 외로운 길이다.
하지만 가자!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던데 하며 그들을 따라가지 말자.
부활의 주를 믿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영 의식이 북극성이 되어 그대의 길을 안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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