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셉

창세기 058: 애급의 총리가 된 요셉(창 41:1-57)

은바리라이프 2009. 9. 12. 19:03

창세기 058: 애급의 총리가 된 요셉(창 41:1-57)

창세기 41장은 요셉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짓게 만든 세 번째 꿈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1-8절은 바로가 연거푸 두 번 꿈을 꾸고서 번민하며 해몽해 줄자를 찾았지만, 그 꿈을 해석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9-13절은 까마득히 요셉을 잊고 지냈던 술 맡은 관원장이 2년 전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 내고 바로에게 고하였다는 내용입니다.

 

7년 풍년과 7년 흉년의 때에 맞춰 바로에게 이를 예고하는 꿈을 주시고, 또 아무도 그 꿈을 해석치 못하는 상황에 맞춰 술 맡은 관원장으로 하여금 요셉을 기억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바로가 꾼 꿈에 대한 해석을 요셉에게 알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일로 인해서 요셉이 애급의 총리가 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41장은 만사가 하나님의 정하신 기한과 때를 따라 이뤄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또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자는 참고 인내하며 믿음을 잃지 말아야할 것을 교훈해 줍니다. 성경 66권의 주제는 흑암으로부터 빛, 혼돈으로부터 질서, 무로부터 유, 고난으로부터 승리, 죽음으로부터 부활 그리고 낮아짐으로부터 높아짐에 관한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관여해 오셨다는 확고한 믿음을 체험한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흑암이 빛이 되는 과정, 혼돈이 질서가 되는 과정, 무가 유가 되는 과정, 고난이 승리로 변해가는 과정, 죽음이 부활이 되는 과정, 낮아짐이 높아짐이 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성경은 끊임없이 인내와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인내와 믿음을 요구하는 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요셉의 입장에 보면 세월이 마냥 더디게 흘러간다고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꿈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치 않았던 요셉은 결국 애급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요셉처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하면서 우리의 꿈이 이뤄지기를 고대한다면 반드시 그 꿈들은 이뤄지고 말 것입니다.

 

14절부터 36절까지는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에 의하여 요셉이 바로 앞에 나아가 그의 꿈을 풀이해 주는 장면입니다. 14-24절은 바로가 요셉에게 자신이 꾼 꿈을 들려주는 장면이고, 25-32절은 요셉이 그의 꿈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해 주는 장면이며, 33-36절은 요셉이 7년 풍년에 이어서 닥칠 7년 흉년에 대한 대비책을 일러주는 장면입니다.

 

어느 사회이든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는 존경을 받습니다. 거기다가 적절한 대응책까지 마련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인간의 문제를 꼬집고 책망하거나 벌하기에 급급하기보다는 해결책을 마련하시고 한 영혼이라도 더 많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 것을 봅니다. 그 해결책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당신께서 낮아지시고 죄 범한 우리 인간들을 높이실 방법을 마련하셨던 것입니다.

 

청춘을 노예로서 혹은 어두운 감옥에서 보낸 죄수에게서 밝고 건설적인 생각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에 선 요셉은 출세나 개인적인 명예회복에 집착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그것들을 들어내기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요셉은 자신이 히브리출신의 노예란 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요셉은 다른 신(神)을 믿고, 그 다른 신의 대리자격인 바로 앞에서 세상일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며 또 그것을 계시하시는 분이 야훼 하나님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꿈에 대한 해석의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꿈 해석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이 받으셔야할 영광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셋째, 요셉은 바로의 꿈에 대해서 바르게 해석할 뿐 아니라, 대비책까지 말해 줌으로써 바로로부터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이란 칭찬까지 받습니다.
넷째, 요셉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는 아들들의 이름을 모두 하나님과 관련하여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의 므낫세와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는 뜻의 에브라임이란 이름은 요셉 자신의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51-52절). 좋은 일의 탓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분께 감사하는 요셉의 하나님중심신앙이 우리들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37-41절은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다는 바로의 칙령입니다. 42-45절은 요셉의 지위를 강화시켜 주는 추가 조치로써 그에게 새 이름과 아내가 주어지는 장면입니다. 보좌에 앉은 왕은 바로이나 그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은 요셉이었습니다. 히브리노예가 변하여 애급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까지 낮아지셨다가 부활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게 된 것과 같습니다.

 

46-57절의 말씀은 국사를 수행하는 요셉의 활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는 모든 것이 형통하여 잘 나갈 때, 닥쳐올 재난에 대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풍년이 든 7년 동안 부지런히 곡물을 사들여 비축하였습니다. 그 결과 흉년이 찾아든 7년 동안에 비축곡물을 비싼 가격에 팔아 엄청난 부를 바로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요셉의 선견지명과 치세도 훌륭했지만, 요셉을 발탁한 바로도 탁월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일컬어 윈-윈(win-win)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바로를 들어 쓰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탄생케 하시려는 보다 큰 뜻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집트는 이스라엘 민족이란 미숙아를 키우기 위한 인큐베이터였던 셈입니다. 12명의 아들들 가운데 11번째 아들은 관심 밖의 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큰 꿈을 심어주시고, 부모와 형제들의 관심을 사게 하여 애급에 팔리게 하신 것이나, 일개 히브리 노예에 불과한 요셉으로 하여금 시위대장 보디발과 전옥의 관심을 사게 하신 것과 술 맡은 관원장의 관심을 사게 하신 것이나 끝내는 바로의 관심을 사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좁게 보면 몇몇 인간들의 사소한 인간사일 수 있지만, 넓게 보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숨어 있는 대 역사드라마였습니다.

 

 

창세기를 기록한 역사가나 하나님을 신뢰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 사건을 좁은 면에서 인간들의 사소한 개인사로 보지 않고, 넓은 면에서 하나님의 대역사로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우리들 자신들의 개인역사를 무명인에 불과한 사소한 인간들의 역사로 보지 말고, 보다 넓고 큰 시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찮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귀하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무명인일지라도 하나님이 알아주시며, 세상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관심을 갖고 개시고, 친히 개입하시고 관여하신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과 기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도록 하십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다 가치 있고 소중한 삶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