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57: 요셉의 감옥생활과 꿈(창 40:1-23)
창세기 40장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요셉이 보디발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갇혀있었다는 것이고, 그 후에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감옥생활이 꿈하고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옥생활과 꿈은 서로 상반되는 것입니다. 감옥생활의 반대가 꿈이고, 꿈의 반대가 감옥생활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감옥생활에서 꿈이 주제란 점입니다. 그런데 감옥생활이 집 안에 있다는 점은 우리가 재미있게 생각해볼 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 안에서조차 혹은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서조차 감옥처럼 느끼며 생활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꿈이 있다면, 꿈이 있는 가정이라면, 꿈이 있는 직장이라면, 꿈이 있는 교회라면 그 양상은 사뭇 달라지겠지요!
창세기 40장은 앞서 37장에 나온 첫 번째 꿈, 곧 요셉 자신에 관한 꿈, 그러니까 요셉이 소년 때 꾼 그 꿈을 이루게 할 바로의 두 관원장이 꾼 꿈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 때문에 애급으로 팔려가야 했고, 머슴살이에 급기야는 감옥에까지 가게 되었지만, 요셉은 이제 그곳에서 만난 바로의 두 관원장이 꾼 꿈 때문에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될 역사적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본문 창세기 40장 1-4절은 요셉이 같은 감옥에 갇힌 두 관원장을 시중들게 된 배경이고, 5-19절은 그들이 꾼 꿈을 요셉이 해몽해 주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23절은 요셉의 해몽이 성취된 데 대한 기록입니다. 그러나 40장에서도 요셉의 시련은 지속됩니다. 그것은 첫 절, “그 후에”란 말과 마지막 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치 않고 잊었더라.”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요셉의 삶에 나타난 특징은 꿈과 시련, 시련과 꿈, 그리고 그 꿈의 성취와 영광입니다. 창세기 37장 이하에 나타난 요셉의 꿈과 또 그 꿈의 해석은 다르게 보면 ‘선견지명’ 곧 앞을 내다보는 힘과 또 그것을 준비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선견지명은 세상적인 지혜나 지식에서 온 것이 아니고, 믿음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 신앙에서 온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신앙이란 흑암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곧 카오스가 코스모스가 되고, 무가 유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신앙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에서 나온 것이 또 우리 예수님을 빛을 주시는 분과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신앙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감옥생활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캄캄한 밤처럼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빛을 바라보고, 죽음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감옥생활과 꿈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절망적인 감옥에서 꿈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 때문에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꾼 꿈은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속에서 반드시 이뤄질 원대한 꿈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의 꿈은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꿈을 이뤄주셨습니다. 사실 요셉에게 꿈을 품게 한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감옥에서 두 관원장이 꿈을 꾸었습니다. 한 사람의 꿈은 길한 꿈이었지만, 또 다른 사람의 꿈은 흉한 꿈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꿈을 꾼다 해도 그 꿈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꿈, 바른 꿈,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꾸는 꿈은 빌립보서 1장 6절의 말씀처럼,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합니다.
두 관원장이 꾼 꿈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은 그들이 꾼 꿈이 일상적으로 늘 꾸는 그런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에 의한 비상한 꿈이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두 관원장이 한날한시에 비슷한 유형의 꿈을 꾸었으며, 그에 대한 요셉의 해몽이 어김없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의 꿈은 요셉의 예언자적 능력을 관원장에게 입증시켜 훗날 그로 하여금 요셉을 바로에게 천거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40장이 39장과 다른 점은 ‘여호와’(야훼)란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엘로힘’이란 하나님의 명칭이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엘로힘’이란 하나님의 이름은 ‘강하다’란 ‘울’에서 파생된 말로 ‘두려워해야할 강하고 능력 있는 자’ 또는 ‘경외해야 할 최고 존재’란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애급 사람들에게 요셉이 믿는 ‘엘로힘’이야말로 모든 신(神)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神)이란 사실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 신(神)이 요셉에게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술 맡은 관원장에게 강력하게 입력시켜놓았다는 점에서 요셉의 꿈 해석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창세기 40장에서 묘사된 요셉에 대해서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요셉의 감옥생활은 기다림과 성숙기간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감옥에서 만 2년을 보냈습니다(41:1). 요셉으로부터 간절하게 구명(救命)운동을 부탁받은 술 맡은 관원은 요셉을 완전히 잊고 지냈습니다. 이 기간은 요셉에게 있어서 정말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시간을, 이 험난하고 위기에 처한 자기 인생의 시간을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았을 것입니다. 또한 바른 삶을 위한 깊은 기초와 견고한 터전을 다지는 기간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미디안광야에서 양을 돌보며 40년이나 되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것과 같습니다(출 3:1-12). 뒤에서 보면, 요셉은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자신을 돌보며 하나님의 정한 때가 오기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41장).
둘째, 요셉은 이 고난의 기간을 열심히 일함으로써 극복했다는 점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슬하에서 특별한 배려를 받으면서 성장해왔습니다. 비록 형들에 의해 애급에 노예로 팔려 왔지만 보디발의 집에서도 그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힘으로써 요셉은 자신이 겪는 고난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 기간을 겸손을 배우는 기회로 삼아 섬기는 자세를 지속하였습니다(4절).
셋째, 하나님께서 감옥에 갇힌 요셉을 당신의 경륜 가운데서 인도하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39장에 보면, 하나님은 감옥에 갇힌 요셉과 함께하셨고, 감옥담당자로부터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사랑하고 인정하는 자녀들이 어디에 있든,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장소나 상황을 물론하고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감옥에서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으로 하여금 감옥 안에서 바로의 측근인 술 관원장을 만나게 하시고 친분을 쌓게 함으로써 이후 애급을 구하며 일가친척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보호하고 인도하시며 섭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한편 하나님은 당신께서 사랑하고 인정하는 자들을 연단하시고 훈련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잊지 말고 어떤 악조건에서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해야할 줄 압니다.
넷째, 능력과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께 있다는 점입니다. 두 명의 관원장들이 자기들이 꾼 꿈을 인해서 궁금해 하고 근심하고 있을 때에 요셉은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8절)고 말함으로써 모든 숨겨진 지식과 지혜가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선언하였습니다. 이 선언에서 능력과 지혜가 애급의 신이나 지혜자의 학식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선언은 하나님께서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 해석케 하는 자만이 그 꿈의 숨겨진 비밀을 밝힐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 이 능력과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기 때문에 애급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능력과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을 신앙하고 신뢰하는 그의 믿음이 그를 애급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39장에서 한없이 낮아진 요셉의 움츠림을 보게 되고, 40장에서는 뛰어 오르려는 그의 준비 자세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41장에서는 요셉이 한없이 높아진 위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요셉을 감옥에까지 낮추신 하나님이 그를 애급의 총리로 높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점에서 볼 때 요셉의 감옥생활은 희망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요셉을 보호하고 인도하셨습니다. 고난에 처할 때, 어려움을 당할 때 상황자체만을 바라보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봐야할 것은 하나님이고, 응답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환란에서 승리하는 자가 믿음이 큰 자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위에서 아래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십니다. 내게 일어나는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부탁을 잊고 지냈던 것처럼 사람들은 우리를 실망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지속적으로 꿈을 심어 주시고 생각의 감옥, 행동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탈출하게 하십니다. 감옥을 집으로, 어둠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다.
'성극 > 요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060: 하나님을 믿고 내린 결단(창 43:1-34) (0) | 2009.09.12 |
---|---|
창세기 058: 애급의 총리가 된 요셉(창 41:1-57) (0) | 2009.09.12 |
창세기 056: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성실한 요셉(창 39:1-23) (0) | 2009.09.12 |
요셉의 유년 시절 (0) | 2009.09.12 |
창세기 054: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37:1-36) (0) | 2009.09.12 |